2026년 상반기 이 회사의 매출은 1조 1,908억원으로 1년 전보다 82.7% 늘었고, 영업이익은 2,144억원으로 여섯 배가 됐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공시된 생산능력은 시간당 33만 개로 전년과 똑같습니다. 공장을 늘리지도, 라인을 새로 깔지도 않았는데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뛴 것입니다. 답은 하나뿐입니다 — 같은 물건을 더 비싸게 팔았습니다. 실제로 패키징 개당 단가는 366원에서 377원, 다시 475원으로 올랐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후공정을 뒤처리에서 이 산업의 다음 전장이 됐다고 정리했는데, 그 전장에서 값을 정하는 방식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
1. 왜 지금 하나마이크론인가 — 남의 칩을 대신 완성하는 국내 1위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반도체 후공정을 다루며 이 구간이 왜 중요해졌는지를 정리했습니다. 회로를 더 작게 새기는 방식으로 성능을 올리는 길이 비용과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자, 성능을 끌어올리는 책임이 앞 공정에서 뒤 공정으로 넘어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 구간에서 남의 칩을 대신 포장하고 검사해주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들을 위탁 패키징 기업, 업계 용어로는 OSAT라 부릅니다. 이 회사가 국내 OSAT 1위입니다.
2001년 설립돼 2005년 코스닥에 상장했고, 지금은 국내와 베트남·브라질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에는 다른 위탁 패키징 기업에 없는 축이 하나 더 있습니다 — 자회사 하나머티리얼즈를 통해 반도체 전공정에 쓰이는 소모성 부품도 만듭니다. 남의 칩을 완성해주는 서비스와, 남의 장비에 들어가 닳아 없어지는 부품.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사업이 한 회사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지금 봐야 하는 이유는 그 구성이 아닙니다. 실적이 움직인 방식 때문입니다. 2025년 영업이익률이 8.3%였는데 2026년 2분기에는 20.8%가 됐습니다. 반년 만에 두 배가 넘게 뛰었는데 생산능력은 그대로입니다. 이 편이 붙잡고 갈 것이 그 구조입니다 — 물량이 아니라 값이 바꾼 실적, 그리고 그 값이 어떻게 정해지는가.
앞서 다룬 편들과 나란히 놓으면 결이 보입니다. 후공정 히어로즈 ②편의 앰코테크놀로지(Amkor)는 같은 위탁 패키징 사업인데 매출총이익률이 10%대이고, 이 회사는 2026년 상반기 23.5%였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남기는 몫이 다릅니다. 그리고 소부장 히어로즈 ①편의 HPSP는 세계에서 유일한데도 매출이 줄었고, 이 회사는 대체할 곳이 여럿인데도 매출이 두 배가 됐습니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드는지가 이 편에서 확인할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편이 묻는 것은 셋입니다. 칩을 대신 완성해준다는 일의 값은 누가 정하는가, 왜 이 회사는 해외에 공장을 두는가, 그리고 지금의 이익률은 사이클인가 구조인가.
하나마이크론, 한눈에 보기
📌 기본 정보 티커: 코스닥 067310 | 설립: 2001년 설립돼 2005년 코스닥 상장 | 사업 구성: 반도체 제조(위탁 패키징·테스트·모듈)가 매출의 80%대, 반도체 재료(전공정 실리콘 부품)가 10%대, 신기술사업금융이 소액 | 생산 구조: 국내와 베트남·브라질에 생산기지를 두고 고객사 인근에서 대응 | 지배구조: 창업주가 최대주주이며 설립 이후 변동이 없음. 자회사 하나머티리얼즈가 소재 부문을 맡음 | 시장 내 위치: 국내 1위 위탁 패키징 기업이며 세계 순위로는 10위권 | 한 줄 정체성: 메모리 회사가 직접 하지 않기로 한 뒷공정을 대신 맡되, 그 값을 해마다 고객과 다시 협상하는 자리에 서 있는 국내 최대 위탁 패키징 기업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공시상 사업부문은 셋인데 실질은 둘입니다. 남의 칩을 완성해주는 반도체 제조 부문과, 반도체 장비에 들어가는 소모성 부품을 만드는 반도체 재료 부문입니다. 두 부문이 파는 것도 사가는 쪽도 전혀 달라서, 나눠 보면 이 회사의 성격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반도체 제조 — 매출의 80%대, 그런데 거의 전부가 수출
웨이퍼를 받아 낱개 칩으로 자르고 감싸 검사한 뒤 돌려주는 일입니다. 여기에 여러 칩을 하나로 묶는 모듈 작업도 포함됩니다. 2026년 상반기 이 부문 매출은 1조 73억원으로 1년 전보다 90% 늘었고, 영업이익은 1,670억원으로 575% 늘었습니다.
눈여겨볼 것은 지역 구성입니다. 이 부문의 주력인 패키징 매출 9,414억원 가운데 수출이 9,120억원으로 96.9%입니다. 국내 매출은 294억원에 그칩니다. 국내 1위 위탁 패키징 기업인데 국내에서 버는 돈은 거의 없다는 뜻인데, 이유는 3절에서 원리로 짚습니다.
반도체 재료 — 매출은 10%대인데 남기는 몫은 더 큽니다
자회사 하나머티리얼즈가 맡는 사업입니다. 반도체 회로를 깎아내는 식각 공정에서 쓰이는 실리콘 부품을 만드는데, 장비 안에 들어가 플라스마에 계속 노출되며 닳아 없어지는 소모품입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1,823억원으로 1년 전보다 49% 늘었고 영업이익은 468억원으로 170% 늘었습니다.
두 부문을 나란히 놓으면 성격 차이가 드러납니다. 매출로는 반도체 제조가 다섯 배 넘게 크지만, 영업이익률로 보면 재료 부문이 25.7%로 제조 부문의 16.6%보다 높습니다. 지역 구성도 정반대입니다 — 실리콘 부품은 매출 1,631억원 중 내수가 1,212억원으로 74.3%입니다. 제조는 밖에서 벌고 재료는 안에서 벌고 있습니다.
값은 어떻게 정해지는가 — 이 회사의 핵심
여기가 이 회사를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이 회사의 주력 고객과는 위탁가공 계약을 맺고 있는데, 단가를 매년 물량과 시장 상황에 따라 다시 협상하는 구조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 번 정해두고 오래 가는 값이 아니라, 해마다 다시 앉아 정하는 값입니다.
그 결과가 공시에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패키징 개당 단가가 2024년 366원, 2025년 377원, 2026년 상반기 475원입니다. 두 해 만에 30% 가까이 올랐는데, 특히 최근 한 해의 상승 폭이 큽니다. 같은 기간 공시된 생산능력은 시간당 33만 개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2026년 상반기의 실적 개선은 더 많이 만들어서가 아니라 더 비싸게 팔아서 생겼습니다. 이 사실 하나가 이 회사를 보는 방법을 정합니다 — 앞으로를 가늠하려면 물량이 아니라 다음 협상을 봐야 합니다. 그 협상이 무엇에 좌우되는지는 3절에서, 숫자에 어떻게 찍혔는지는 6절에서 짚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값을 매년 다시 정한다는 것 제품을 파는 회사는 값을 스스로 붙입니다. 시장이 받아주면 그 값이 유지되고, 안 받아주면 안 팔립니다. 반면 특정 고객의 물량을 전담해 가공해주는 계약에서는 값을 양쪽이 마주 앉아 정합니다. 이 구조에서는 협상력이 곧 값입니다. 그리고 협상력은 대체로 고객의 사정에 따라 움직입니다. 고객이 적자를 내고 있으면 단가를 낮춰달라는 요구가 들어오고, 고객이 큰돈을 벌고 있으면 올려 받을 여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회사의 이익률은 자기 실력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고객의 손익이 한 해 늦게 따라오는 그림자에 가깝습니다. 어떤 회사의 실적이 갑자기 좋아졌을 때, 그 회사가 무엇을 잘해서인지 아니면 고객이 잘돼서인지를 먼저 구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이 회사의 기술을 설명하려면 먼저 하나를 구분해야 합니다. 위탁 패키징이라는 같은 이름 아래 성격이 다른 두 가지 거래가 있는데, 이 회사의 주력은 그중 뒤쪽입니다. 그 차이가 값이 정해지는 방식을 바꾸고, 공장을 어디에 지을지까지 바꿉니다. 칩을 감싸고 잇는 일이 무엇인지(①), 메모리 패키징이 왜 다른 종류의 일인지(②), 남의 물량을 전담한다는 것의 실체(③), 왜 고객 공장 옆에 지어야 하는지(④), 소재 부문이 왜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지(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값에 어떻게 모이는지(⑥)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① 칩을 감싸고 잇는다는 일
후공정 히어로즈 ②편에서 앰코테크놀로지를 다루며 패키징이 하는 일 세 가지를 짚었습니다. 웨이퍼에서 갓 잘라낸 칩은 회로가 드러나 있어 습기와 먼지에 곧바로 상하고, 접점이 너무 작아 기판에 그대로 얹을 수 없으며, 계산하며 내는 열을 빼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감싸 보호하고, 미세한 접점을 기판이 다룰 수 있는 크기로 넓혀주고, 열을 밖으로 내보내는 일이 필요합니다.
그 편이 다룬 것은 인공지능 가속기처럼 여러 칩을 옆으로 붙이는 첨단 방식이었습니다. 이 회사가 주로 다루는 물건은 다릅니다. 메모리입니다. 스마트폰과 서버에 들어가는 D램과 낸드, 그리고 그것들을 여러 개 묶은 모듈이 이 회사 생산의 대부분입니다.
② 메모리 패키징은 다른 종류의 일입니다
연산을 하는 칩과 저장을 하는 칩은 패키징에서 요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인공지능 가속기처럼 연산하는 칩은 종류가 적고 한 종류를 아주 어렵게 만듭니다. 반면 메모리는 종류는 비슷한데 수가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그래서 승부처가 갈립니다. 연산 칩 쪽은 얼마나 정밀하게 붙일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메모리 쪽은 같은 품질을 얼마나 빠르고 싸게 반복할 수 있느냐가 관건입니다. 하루에 수백만 개를 처리하면서 불량률을 일정 수준 아래로 유지하고, 고객이 요구한 날짜에 정확히 넘겨야 합니다. 회사가 자기 강점을 설명할 때 경쟁사 대비 납기와 품질에서의 경쟁력을 앞세우는 것도 그래서입니다.
이 성질이 원가 구조를 정합니다. 개당 처리비가 수백 원 단위인 사업에서는 인건비와 가동률이 곧 이익입니다. 값비싼 장비 한 대의 성능보다, 라인을 얼마나 쉬지 않고 돌리느냐와 사람 손이 얼마나 드느냐가 손익을 가릅니다. 뒤에서 볼 해외 생산기지의 이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③ 남의 물량을 전담한다는 것
세 번째가 이 회사의 성격을 결정합니다. 위탁 패키징에는 성격이 다른 두 가지 거래가 있습니다.
하나는 여러 고객의 물량을 받아 자기 공장에서 처리하는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OSAT라 하면 떠올리는 형태입니다. 고객이 여럿이니 한쪽 주문이 비면 다른 쪽으로 채울 수 있고, 값도 시장에서 비교됩니다. 다른 하나는 특정 고객의 물량을 전담해 가공해주는 방식입니다. 고객의 생산 계획에 맞춰 라인을 통째로 돌리고, 값은 그 고객과 따로 정합니다.
이 회사의 주력이 뒤쪽입니다. 국내 메모리 회사와 2021년 위탁가공 계약을 맺었고, 그 회사의 해외 생산기지 인근에 공장을 두어 물량을 전담해왔습니다. 2절에서 본 수출 비중 96.9%가 이 구조에서 나옵니다 — 국내 1위 위탁 패키징 기업인데 국내 매출이 거의 없는 이유는, 주력 물량이 국내가 아니라 고객의 해외 공장 옆에서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이 방식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물량이 안정적으로 들어오고 영업에 드는 힘이 적다는 것이 한쪽이고, 값을 그 고객과 단둘이 정해야 한다는 것이 다른 쪽입니다. 후공정 히어로즈 ②편에서 위탁 패키징의 값이 얇은 이유로 대체할 곳이 여럿이라는 점을 들었는데, 이 회사는 조건이 조금 다릅니다 — 대체할 곳이 여럿인 것은 같지만, 이미 고객의 공장 옆에 라인을 깔아둔 상태라 옮기는 데 시간이 걸립니다. 값이 얇아지는 힘과 두꺼워지는 힘이 함께 작용합니다.
💡 쉽게 비유하면 — 시장에 내다 파는 방앗간과 공장 안의 방앗간 동네 방앗간은 여러 손님의 곡식을 받아 빻아줍니다. 손님이 많으니 하루가 비는 일이 적고, 값은 옆 방앗간과 비교됩니다. 마음에 안 들면 손님은 옆으로 갑니다. 반면 큰 공장 안에 들어가 그 공장의 물량만 전담하는 방앗간이 있다고 해봅시다. 일감이 끊기지 않고 영업할 필요도 없습니다. 대신 값은 그 공장과 단둘이 정합니다. 옆 방앗간 시세가 얼마인지는 참고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방앗간은 이미 공장 안에 설비를 깔았습니다. 나가려 해도 옮길 데가 마땅치 않고, 공장도 당장 바꾸려면 번거롭습니다. 서로 묶여 있는 셈인데, 그 묶임의 값이 매년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집니다.
④ 왜 고객 공장 옆에 지어야 하는가
②에서 본 대로 메모리 패키징은 대량을 빠르고 싸게 반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공장을 어디에 두느냐가 원가를 크게 좌우합니다. 이유가 셋입니다.
첫째, 사람 손이 많이 듭니다. 자동화가 진행됐어도 검사와 선별, 포장 단계에는 여전히 인력이 필요합니다. 인건비가 낮은 지역에 공장을 두면 개당 처리비가 내려갑니다. 둘째, 물류입니다. 웨이퍼를 받아 처리한 뒤 돌려주는 사업이라 고객 공장과의 거리가 곧 시간이고 비용입니다. 고객의 생산기지 옆에 있으면 왕복에 드는 시간이 거의 사라집니다. 셋째, 대응 속도입니다. 고객이 생산 계획을 바꾸거나 불량이 발생했을 때 같은 지역에 있으면 당일에 조율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베트남에 고객의 생산기지 인근 법인을 두었고 브라질에도 법인이 있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제조 클러스터가 원가를 만든다고 정리했는데, 이 회사는 그 클러스터를 따라간 사례입니다. 다만 자기 클러스터를 만든 것이 아니라 고객의 클러스터에 붙은 것이라, 고객이 그 지역에서 물러나면 그 공장의 값도 함께 흔들립니다.
⑤ 소재 부문은 다른 리듬으로 움직입니다
자회사가 맡는 반도체 재료 부문은 성격이 완전히 다릅니다. 만드는 것은 실리콘 부품인데, 반도체 회로를 깎아내는 식각 장비 안에 들어갑니다.
식각은 플라스마를 만들어 웨이퍼 표면을 정밀하게 깎아내는 공정입니다. 그런데 그 플라스마는 웨이퍼만 깎지 않습니다. 챔버 안에 있는 부품도 함께 깎습니다. 그래서 웨이퍼와 같은 재료인 실리콘으로 그 부품을 만듭니다 — 다른 재료를 쓰면 깎여 나온 입자가 웨이퍼에 떨어져 오염이 되는데, 같은 재료면 그 위험이 줄어듭니다. 대신 부품 자체가 계속 닳으므로 주기적으로 갈아 끼워야 합니다.
여기서 매출이 생기는 조건이 달라집니다. 이 부품은 고객이 라인을 지을 때가 아니라 라인을 돌리는 동안 계속 팔립니다. 반도체 공장이 가동률을 올리면 그만큼 빨리 닳고 그만큼 자주 주문이 들어옵니다. 소부장 히어로즈 ⑦편의 원익QnC가 만드는 석영 부품과 같은 계열의 사업이며, 이 회사가 위탁 패키징이라는 서비스업 안에 소모품 사업을 함께 갖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절에서 본 지역 구성의 차이도 여기서 설명됩니다. 제조 부문은 고객의 해외 공장을 따라가 수출로 잡히고, 재료 부문은 국내 반도체 공장과 장비사에 납품해 내수로 잡힙니다. 한 회사 안에서 서로 다른 두 시장을 보고 있는 셈입니다.
⑥ 그래서 모든 것이 값 하나로 모입니다
앞의 다섯을 합치면 이 회사의 손익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가 드러납니다. 메모리 패키징은 개당 처리비가 수백 원인 사업이고, 그 값은 특정 고객과 해마다 다시 정하며, 원가는 인건비와 가동률로 결정되고, 공장은 이미 고객 옆에 깔려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 이익을 늘리는 길은 셋뿐입니다. 더 많이 처리하거나, 원가를 낮추거나, 값을 올리거나. 그런데 2절에서 본 대로 생산능력은 그대로였고, 인건비가 낮은 지역으로 옮기는 일은 이미 오래전에 했습니다. 남은 것은 값이고, 실제로 값이 올랐습니다.
그러면 다음 질문은 이것입니다 — 그 값은 왜 올랐는가. 이 회사가 갑자기 협상을 잘해서가 아닙니다. 고객이 크게 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메모리 값이 오르고 인공지능 서버 수요가 몰리면서 고객사가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국면이 됐고, 그 국면에서는 단가를 올려달라는 요구가 받아들여집니다. 2절 개념 박스에서 이런 회사의 이익률이 고객의 손익이 한 해 늦게 따라오는 그림자에 가깝다고 한 것이 이 뜻입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3절을 정리하면 이 회사의 우위는 세 겹입니다. 첫째, 대량 메모리 패키징을 낮은 원가로 반복하는 체계를 여러 해에 걸쳐 갖췄습니다. 둘째, 고객의 해외 생산기지 옆에 라인을 깔아 물류와 대응 속도에서 이점을 얻었습니다. 셋째, 자회사를 통해 전공정 소모품 사업을 함께 갖고 있어 후공정 물량이 비어도 다른 축이 돕니다.
셋 중 가장 실질적인 것은 둘째입니다. 첫째는 시간이 지나면 경쟁사도 갖출 수 있고, 셋째는 사업 구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고객의 공장 옆에 이미 깔려 있는 라인은 새로 들어온 회사가 곧바로 재현할 수 없습니다. 부지를 얻고 설비를 들이고 인력을 훈련하는 데 몇 년이 걸리고, 그 사이 고객은 지금 잘 돌아가는 라인을 굳이 바꿀 이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우위가 값을 정해주지는 않습니다
문제는 그 밀착이 협상력으로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옮기기 어려운 것은 양쪽 다 마찬가지인데, 두 회사의 크기가 다릅니다. 고객은 세계적인 메모리 제조사이고 이 회사는 그 물량에 실적의 대부분이 걸려 있습니다. 같은 계약을 두고 마주 앉을 때 잃을 것이 큰 쪽이 불리합니다.
설계 히어로즈 ①편의 LX세미콘에서 본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그 회사도 특정 고객에 밀착해 실력을 키웠고, 그 밀착이 강점이자 약점이었습니다. 다만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 그쪽은 고객이 공급처를 늘려 물량이 갈렸고, 이쪽은 물량은 유지되는데 값이 해마다 다시 정해집니다. 앞은 양의 문제이고 뒤는 값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지금의 값은 고객의 호황 위에 서 있습니다
3절 ⑥에서 본 것이 이 회사를 볼 때 가장 중요한 조건입니다. 지금의 단가는 고객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국면에서 정해진 값입니다. 메모리는 오랫동안 호황과 불황을 크게 오간 산업이고, 불황이 오면 고객은 원가를 줄여야 합니다. 그때 가장 먼저 협상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 외주 가공비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지금 실적을 구조의 개선으로 읽을지 사이클의 산물로 읽을지가 갈립니다. 둘을 가르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 고객의 이익률이 내려가는 국면이 왔을 때 이 회사의 단가가 어떻게 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그때도 유지되면 구조가 바뀐 것이고, 함께 내려가면 사이클이었던 것입니다.
📌 그래서 무엇으로 판별할 것인가 — 값이 오른 뒤에도 유지되는가 이 회사의 판별식은 매출 성장률이 아닙니다. 2절에서 본 대로 지금의 성장은 물량이 아니라 단가에서 나왔고, 단가는 해마다 다시 정해지므로 올라간 만큼 내려갈 수도 있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한 번 오른 값이 고객의 사정이 나빠진 뒤에도 유지되는가. 유지된다면 이 회사가 대체하기 어려운 자리를 만든 것이고, 함께 내려간다면 지금의 이익률은 빌려온 것입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공시된 개당 단가의 추이입니다 — 이 회사는 반기·사업보고서에 패키징 개당 가격을 밝히므로 밖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드문 지표입니다. 둘째, 고객사의 영업이익률과 나란히 놓아보는 것입니다 — 두 곡선이 같이 움직이면 사이클이고, 이 회사만 버티면 구조입니다. 셋째, 주력 고객 밖의 매출이 늘어나는가입니다 — 3절 ③에서 본 전담 구조를 벗어나는 물량이 생기면 협상 조건 자체가 달라집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하나마이크론을 둘러싼 큰 그림
한 회사를 이해하려면 누구와 싸우고 누구에게 팔며 누구에게 기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회사의 지도에는 특징이 둘 있습니다. 경쟁자는 세계에 여럿인데 실제로 겨루는 전선은 좁다는 점이 하나이고, 고객 쪽은 사실상 한 곳에 무게가 실려 있다는 점이 다른 하나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앰코테크놀로지(Amkor) [나스닥 AMKR] 후공정 히어로즈 ②편에서 다룬 세계 2위 위탁 패키징 기업입니다. 다만 겨루는 지점이 다릅니다 — 그 회사는 여러 고객의 물량을 받아 처리하는 방식이고 인공지능 가속기용 첨단 패키징에 무게가 실려 있는 반면, 이 회사는 특정 고객의 메모리 물량을 전담합니다. 같은 업종으로 묶이지만 같은 계약을 두고 맞붙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 ASE·JCET 등 대만·중국 위탁 패키징 기업군 [대만 3711 · 중국 상하이 600584 등] 규모에서 크게 앞서는 상대들입니다. 3절 ②에서 본 대로 메모리 패키징은 대량을 싸게 반복하는 일이라 원가로 겨루는 국면이 오면 이들의 규모가 위협이 됩니다. 다만 고객의 생산기지 옆에 이미 깔려 있는 라인은 규모만으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 SFA반도체·시그네틱스 [코스닥 036540 · 033170] 국내 위탁 패키징 기업들로, 이 회사와 함께 국내 후공정 생태계를 이룹니다. 국내 순위로는 이 회사가 앞서 있으며, 세 회사 모두 국내 메모리 제조사의 물량을 나눠 받는 구조라 고객의 외주 정책 변화에 함께 반응합니다.
🤝 핵심 고객사
- 국내 메모리 제조사 [코스피 상장] 반도체 앵커기업 ②편에서 다룬 회사로, 이 회사가 2021년 위탁가공 계약을 맺은 주력 고객입니다. 3절 ③에서 본 전담 구조의 상대이며, 2절에서 본 수출 비중 96.9%도 이 고객의 해외 생산기지 인근에서 물량이 처리되기 때문입니다. 4절에서 세운 판별식이 이 고객의 손익과 나란히 놓고 보라고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국내외 반도체 제조사·장비사 [코스피·코스닥·글로벌] 자회사가 만드는 실리콘 부품의 고객군입니다. 식각 장비를 만드는 회사와 그 장비를 쓰는 반도체 공장 양쪽에 납품하며, 2절에서 본 대로 내수 비중이 74.3%로 제조 부문과 정반대입니다.
- 비메모리 고객군 [글로벌] 회사는 고부가 메모리 제품 확대와 함께 비메모리 패키징·테스트·모듈 사업 확대를 계획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4절 판별식의 셋째 확인 지점인 주력 고객 밖 매출이 여기서 나올 수 있는데, 아직 규모로 확인되지는 않았습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하나머티리얼즈 [코스닥 166090] 이 회사의 자회사로 반도체 재료 부문을 맡습니다. 3절 ⑤에서 본 실리콘 부품을 만들며, 별도로 상장돼 있어 시장에서 따로 평가받습니다. 후공정 서비스와 전공정 소모품이라는 성격이 다른 두 사업이 한 지배구조 안에 있다는 것이 이 회사의 특징입니다.
- 한미반도체 [코스피 042700] · 이오테크닉스 [코스닥 039030] 후공정 히어로즈 ①편과 소부장 히어로즈 ⑤편에서 다루는 반도체 후공정 장비 기업들로, 이 회사가 쓰는 장비를 만듭니다. 칩을 쌓아 붙이는 장비와 레이저로 가공하는 장비가 이 회사 라인 안에서 돌아갑니다. 이 회사의 증설이 국내 장비사의 매출로 이어지는 경로입니다.
- 원익QnC [코스닥 074600] 소부장 히어로즈 ⑦편에서 다룰 회사로, 자회사가 만드는 실리콘 부품과 같은 계열인 석영 부품을 만듭니다. 장비 챔버 안에서 닳아 없어지는 소모품이라는 점에서 성격이 같고, 두 회사를 나란히 보면 소모품 사업의 리듬이 선명해집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경쟁자는 여럿인데 정작 이 회사의 실적을 정하는 것은 경쟁이 아니라 한 고객과의 협상입니다. 그리고 그 고객은 이 회사보다 훨씬 크고, 이 회사는 그 고객의 공장 옆에 이미 라인을 깔아두었습니다. 서로 묶여 있되 무게가 같지 않은 관계이고, 4절에서 세운 판별식이 값의 지속성을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에서 본 구조가 실제 숫자에 어떻게 찍히는지 보겠습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률의 크기가 아니라, 그 성장이 물량이 아니라 단가에서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구분 | 매출 | 영업이익 | 비고 |
| 2025년(확정) | 1조 5,344억원 | 1,277억원(영업이익률 8.3%) | 당기순이익 656억원. 2024년 매출 1조 2,507억원·영업이익 1,068억원 대비 매출 +22.7%·영업이익 +19.6% |
| 2026년 1분기(확정) | 5,077억원(YoY +62.9%) | 720억원(YoY +513.6%, 영업이익률 14.2%) | 분기순이익 728억원. 매출총이익률 19.9% |
| 2026년 2분기(확정) | 6,832억원(YoY +100.8%) | 1,423억원(영업이익률 20.8%) | 분기순이익 851억원. 매출총이익률 26.1%. 상반기 누적으로는 매출 1조 1,908억원(YoY +82.7%)·영업이익 2,144억원(YoY +609.4%) |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세 행 모두 회사가 공시한 확정 실적이며 연결 기준입니다. 다만 2026년 증가율이 유난히 큰 것은 비교 대상인 2025년 상반기가 낮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302억원으로 연간 1,277억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쳤습니다. 증가율보다 절대 금액의 추이를 함께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부문별 실적은 회사가 사업의 개요에서 밝히는 수준까지만 확인됩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반도체 제조 1조 73억원·영업이익 1,670억원, 반도체 재료 1,823억원·영업이익 468억원인데, 분기별로는 나뉘어 공시되지 않아 위 표의 1분기와 2분기를 부문별로 쪼갤 수는 없습니다. 고객별 매출은 공시되지 않습니다. 회사는 지역별로 수출과 내수만 나눠 밝히므로 특정 고객이 몇 퍼센트인지는 밖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5절의 고객 서술도 계약 사실과 업계에 알려진 내용을 모은 것이지 매출 비중이 아닙니다.
표에서 먼저 볼 곳은 영업이익률의 계단입니다. 8.3%에서 14.2%, 다시 20.8%로 두 분기 만에 두 배가 넘게 올랐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공시된 생산능력은 시간당 33만 개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라인을 늘리지 않고 이익률이 이만큼 오르는 경우는 하나뿐입니다 — 같은 것을 더 비싸게 팔았을 때입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그 값의 실제 숫자입니다. 회사는 반기·사업보고서에 패키징 개당 가격을 공시하는데, 2024년 366원, 2025년 377원, 2026년 상반기 475원입니다. 3절 ⑥에서 본 구조가 이 세 숫자에 그대로 있습니다. 그리고 4절 판별식이 이 항목을 첫 확인 지점으로 잡은 이유이기도 합니다 — 대부분의 회사는 제품 단가를 공시하지 않는데, 이 회사는 밖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매출총이익률의 변화입니다. 1분기 19.9%에서 2분기 26.1%로 올랐습니다. 매출원가는 인건비와 감가상각이 큰 부분을 차지해 단기간에 크게 줄지 않으므로, 이 개선도 대부분 값에서 왔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반대 방향으로도 똑같이 작동합니다 — 값이 내려가면 원가는 그대로인 채 이익률만 빠르게 무너집니다.
마지막으로 이 표에 없는 것을 봐야 합니다. 다음 단가 협상의 결과입니다. 이 회사의 다음 몇 년을 정하는 것은 재무제표에 이미 찍힌 숫자가 아니라 아직 앉지 않은 협상 테이블이고, 그 협상의 조건은 고객의 손익이 정합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는 자기 실적표만이 아니라 고객사의 실적도 함께 보셔야 합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여기까지가 이 회사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반대편입니다. 분기 하나의 악재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위험을 층위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값을 스스로 정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3절 ⑥에서 본 것이 이 회사의 가장 근본적인 조건입니다. 단가는 해마다 고객과 다시 정해지고, 그 협상의 조건은 대체로 고객의 사정이 만듭니다. 지금은 고객이 사상 최대 이익을 내는 국면이라 유리하지만, 같은 구조가 반대로도 작동합니다.
둘째, 고객 집중입니다. 2절에서 본 수출 비중 96.9%가 그 집중도를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주력 고객 한 곳의 물량이 실적의 대부분을 만들고, 그 고객이 외주 정책을 바꾸거나 자체 후공정 비중을 늘리면 대체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회사가 비메모리 확대를 계획으로 밝히는 것도 이 조건을 바꾸려는 시도로 읽을 수 있는데, 아직 규모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셋째, 메모리 사이클입니다. 이 회사의 물량과 값은 모두 메모리 업황에서 내려옵니다. 메모리는 오랫동안 호황과 불황을 크게 오간 산업이고, 불황이 오면 물량과 값이 함께 줄어듭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밸류체인 끝의 수요가 여러 단계를 건너 전달되며 증폭된다고 했는데, 이 회사는 그 끝자락에 있으면서 값까지 재협상 대상이라 진폭이 이중으로 걸립니다.
넷째, 고정비가 무겁습니다. 3절 ②에서 본 대로 이 사업의 원가는 인건비와 감가상각이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매출이 줄어도 이 비용은 곧바로 줄지 않으므로, 6절에서 본 이익률 개선이 반대 방향으로 작동하면 하락 속도도 그만큼 빠릅니다.
다섯째, 해외 생산기지의 조건입니다. 3절 ④에서 본 대로 고객의 클러스터에 붙어 원가 이점을 얻었는데, 이는 그 지역의 조건에 실적이 묶여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건비가 오르거나 환율이 움직이거나 통상 환경이 바뀌면 그 이점이 줄어들고, 고객이 생산기지를 재편하면 함께 흔들립니다.
여섯째, 두 사업의 상관관계입니다. 자회사가 맡는 소재 부문이 완충 역할을 하려면 두 사업의 사이클이 어긋나야 하는데, 실제로는 둘 다 반도체 업황을 따라갑니다. 소부장 히어로즈 ⑨편의 주성엔지니어링에서 세 시장을 가졌는데 셋이 동시에 오지 않아 분산이 되지 못한 사례를 봤는데, 이 회사는 반대 문제입니다 — 두 사업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여 분산이 되지 않습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세 가지 해석
사실을 정리했으니 이제 해석입니다. 하나마이크론을 통해 이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① 성장이 물량에서 왔는지 값에서 왔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매출이 82.7% 늘었다는 사실만 보면 대단한 성장입니다. 그런데 생산능력이 그대로였다면 그 성장은 더 많이 팔아서가 아니라 더 비싸게 팔아서 생긴 것입니다. 둘은 성질이 전혀 다릅니다.
물량으로 는 성장은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고객이 늘었거나 라인이 늘었다면 그 기반은 남습니다. 반면 값으로 는 성장은 값이 내려가면 함께 사라집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매출이 크게 뛰었을 때 확인할 것은 증가율이 아니라 판매량과 단가 중 무엇이 움직였는가입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합니다. 생산능력과 생산실적, 그리고 제품 가격 변동 추이는 사업보고서의 사업의 내용에 대부분 실려 있습니다. 매출이 늘었는데 생산실적이 제자리라면 값이 오른 것이고, 생산실적이 늘었는데 매출이 덜 늘었다면 값이 내린 것입니다. 재무제표보다 이쪽이 먼저 답을 줍니다.
② 대신해주는 사업에서는 고객의 손익이 내 손익입니다
2절 개념 박스에서 본 구조입니다. 특정 고객의 물량을 전담해 가공해주는 계약에서는 값을 양쪽이 마주 앉아 정하고, 그 협상의 조건은 대체로 고객의 사정이 만듭니다. 고객이 적자면 단가 인하 요구가 들어오고, 고객이 크게 벌면 인상 여지가 생깁니다.
그래서 이런 회사의 실적은 고객의 실적을 한 박자 늦게 따라가는 그림자에 가깝습니다. 이 관점은 위탁 가공이나 하청 성격의 사업 전반에 적용됩니다 — 그 회사를 분석하기 전에 고객사의 손익을 먼저 보면 방향이 대체로 맞습니다.
후공정 히어로즈 ②편의 앰코테크놀로지와 비교하면 차이가 보입니다. 그 회사는 여러 고객의 물량을 받아 처리하므로 값이 시장에서 비교되고, 그래서 남기는 몫이 얇은 대신 한 고객의 사정에 통째로 흔들리지는 않습니다. 이 회사는 반대입니다 — 좋을 때 크게 좋고 나쁠 때 크게 나쁩니다. 같은 위탁 패키징인데 고객이 여럿이냐 하나냐가 손익의 모양을 갈라놓습니다.
③ 공시에 적힌 단가는 생각보다 강력한 지표입니다
이 회사가 특별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제품 개당 가격을 공시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기업은 이 숫자를 밝히지 않거나 지수로만 표시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366원, 377원, 475원처럼 실제 금액을 적어둡니다.
이 숫자가 강력한 이유는 다른 어떤 지표보다 앞서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매출과 이익은 결과이고, 단가는 그 결과를 만든 조건입니다. 단가가 오른 것이 확인되면 그다음 분기의 이익률은 대체로 따라옵니다. 반대로 단가가 내려가기 시작하면 실적이 아직 좋아 보여도 방향은 이미 정해진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기업을 볼 때 사업보고서의 사업의 내용을 먼저 읽으시길 권합니다. 주요 제품의 가격 변동 추이, 생산능력, 생산실적, 원재료 매입 구성 같은 항목들은 재무제표가 보여주지 않는 원인을 알려줍니다. 이 시리즈가 매 편 6절에서 재무 수치를 다루기 전에 2절과 3절에서 사업 구조를 먼저 푸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특정 날짜의 일정을 나열하는 대신,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네 가지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남깁니다.
첫째, 공시된 개당 단가가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4절 판별식의 첫 확인 지점입니다. 회사가 반기·사업보고서의 주요 제품 등의 가격변동추이 항목에 실제 금액을 적으므로 밖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가 유지되거나 오르면 자리가 단단해진 것이고, 내려가기 시작하면 지금의 이익률도 함께 내려갑니다.
둘째, 고객사의 영업이익률과 나란히 움직이는가. 8절 ②에서 본 구조를 확인하는 방법입니다. 주력 고객의 실적과 이 회사의 실적을 같은 기간으로 놓고 보시면 됩니다. 두 곡선이 함께 움직이면 지금의 개선은 사이클의 산물이고, 고객이 꺾이는데도 이 회사가 버티면 구조가 바뀐 것입니다.
셋째, 주력 고객 밖의 매출이 늘어나는가. 회사가 비메모리 패키징·테스트·모듈 확대를 계획으로 밝히고 있는데, 그것이 실제 매출로 잡히는지가 관건입니다. 지역별 매출에서 수출 편중이 완화되거나 제품 구성에 새 항목이 잡히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넷째, 생산능력이 늘어나는가. 지금까지의 성장은 값에서 왔는데, 값에는 상한이 있습니다. 다음 단계의 성장은 결국 라인을 늘려야 나옵니다. 회사가 설비에 관한 사항에 시간당 생산량을 공시하므로 이 숫자가 움직이는지를 보시면, 회사가 지금의 국면을 일시적으로 보는지 지속될 것으로 보는지가 드러납니다.
10. 마무리하며
하나마이크론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메모리 회사가 직접 하지 않기로 한 뒷공정을 대신 맡되, 그 값을 해마다 고객과 다시 협상하는 자리에 서 있는 국내 최대 위탁 패키징 기업입니다. 2026년 상반기 영업이익이 여섯 배가 된 것이 그 자리의 폭발력이고, 그 성장이 물량이 아니라 단가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 자리의 성격입니다.
이 편에서 확인한 것은 둘이 같은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생산능력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두 배 가까이 뛰었습니다. 라인을 늘리지 않고 이익률이 8.3%에서 20.8%로 오르는 경우는 하나뿐입니다 — 같은 것을 더 비싸게 팔았을 때입니다. 그리고 그 값이 오른 이유는 이 회사가 갑자기 협상을 잘해서가 아니라 고객이 크게 벌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다음 장은 자기 공장이 아니라 협상 테이블에서 정해집니다. 메모리 업황이 꺾이면 고객은 원가를 줄여야 하고, 그때 가장 먼저 테이블에 오르는 것이 외주 가공비입니다. 지금의 이익률이 이 회사가 만든 것인지 빌려온 것인지는 그때 드러납니다. 그러니 이 회사를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얼마나 벌었는가가 아니라, 한 번 오른 값이 고객의 사정이 나빠진 뒤에도 유지되는가입니다.
다음 편은 소부장 히어로즈의 다섯 번째 자리, 이오테크닉스입니다. 이 회사가 칩을 감싸고 잇는 자리에 있다면, 그 회사는 그 과정에서 쓰이는 레이저 장비를 만듭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빛으로 반도체를 자르고 뚫고 새기는 일이 왜 어려운지를, 국내에서 그 장비를 만드는 대표 기업의 눈으로 보게 되실 겁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Core Asset Insight(코어에셋인사이트)는 목표주가를 제시하거나 저평가·고평가를 판정하지 않으며, 기업과 산업의 사업구조·기술·밸류체인에서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본문의 수치는 작성 시점에 공시·발표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며, 확정된 사실과 회사가 밝힌 계획, 제3자 기관·언론의 추정을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공시와 시장 상황은 이후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자료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본문에 언급된 종목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으며, 글의 발행 전후 일정 기간에는 해당 종목을 매매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 반도체 소부장 히어로즈 시리즈
- [소부장 히어로즈 ①] HPSP, 고압 수소로 트랜지스터의 흠집을 메우는 세계 유일 장비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②] 리노공업, 아직 세상에 없는 칩을 검사하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③] 원익IPS, 발주가 나기 전에 개발을 끝내둬야 하는 증착 장비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④] 하나마이크론, 값을 매년 다시 협상해야 하는 국내 1위 위탁 패키징 기업
- [소부장 히어로즈 ⑤] 이오테크닉스, 레이저 장비를 만들면서 그 안의 빛까지 직접 만드는 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⑥] 유니테스트, 멀쩡한 칩을 일부러 혹독하게 다뤄 불량을 미리 찾는 장비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⑦] 원익QnC, 소모품을 만들다 그 원료 회사까지 사들인 석영 부품 기업
- [소부장 히어로즈 ⑧] 삼성전기, 칩을 만들지 않으면서 칩 성능을 결정하는 회사
- [소부장 히어로즈 ⑨] 주성엔지니어링, 하나의 증착 기술을 세 시장에 파는 장비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