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밸류체인 총정리 ③] 제조(파운드리·소부장), 도면이 실제 칩이 되기까지

2018년, 미국 파운드리 GlobalFoundries가 결정 하나를 발표했습니다. 7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 개발을 아예 중단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최선단 공정을 개발하던 회사는 열 곳이 넘었는데, 이 발표를 기점으로 남은 곳은 사실상 둘이 됐습니다. TSMC와 삼성전자입니다. 반도체 제조는 흔히 ‘나노 전쟁’이라 불리지만, 실제로 벌어진 일은 전쟁이라기보다 탈락에 가깝습니다. 회로 선폭을 한 단계 좁힐 때마다 필요한 장비와 개발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불어나면서, 경쟁자들이 하나씩 스스로 손을 들고 물러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두 회사조차, 네덜란드의 한 회사가 만드는 장비 없이는 최선단 칩을 단 한 장도 찍어낼 수 없습니다. 오늘 3부에서는 2부에서 살펴본 설계도가 실제 칩이 되는 이 제조 단계를, 웨이퍼라는 얇은 원판에서 시작해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1. 파운드리 — 위탁생산이라는 거대한 사업

파운드리(Foundry)는 팹리스가 그려온 설계도대로 실제 칩을 찍어내는 ‘위탁생산 공장’입니다. 2부에서 살펴봤듯, 최신 공정을 갖춘 반도체 공장을 짓는 데는 수십조 원 규모의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사업을 할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옷 공장이 디자이너의 도면을 받아 실제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다만 반도체 공장은 옷 공장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합니다. 먼지 하나, 진동 하나에도 수만 개의 칩이 통째로 불량이 될 수 있어서, 공장 내부는 먼지 농도를 일반 수술실보다도 훨씬 낮게 유지하는 ‘클린룸’으로 지어집니다.

이 공장이 실제로 하는 일의 규모를 가늠해보면 왜 이 사업이 이렇게까지 어려운지 감이 옵니다. 최선단 공정으로 칩 하나를 완성하기까지는 웨이퍼 위에 회로를 그리고, 깎고, 막을 입히는 세부 작업을 무려 수백 번에서 많게는 1,000번 넘게 반복해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을 마치고 웨이퍼 한 장이 공장에 들어가서 완성돼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두세 달, 최선단 공정은 그 이상이 걸리기도 합니다. 공정 하나하나의 정밀도가 극도로 높다 보니, 중간중간 계측·검사를 거치며 문제가 없는지 계속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긴 시간과 수많은 단계 중 단 한 곳에서라도 오차가 생기면 그 웨이퍼 전체가 못 쓰게 될 수 있다는 점이, 파운드리 사업의 진입장벽이 유독 높은 이유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수율, 파운드리의 성적표를 결정하는 한 숫자 수율(yield)은 웨이퍼 한 장에서 나온 칩 가운데 정상 작동하는 칩의 비율입니다. 이 한 숫자가 파운드리 사업의 손익을 사실상 결정합니다. 이유는 원가 구조에 있습니다 — 웨이퍼 한 장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그 웨이퍼에서 좋은 칩이 몇 개 나오든 거의 같기 때문입니다. 수율이 90%인 공장과 50%인 공장이 같은 비용을 쓰고도 팔 수 있는 칩 개수는 두 배 가까이 차이 나고, 그 차이가 그대로 이익률로 옮겨갑니다. 파운드리들이 새 공정을 열고도 한동안 ‘양산 안정화’에 매달리는 이유, 그리고 고객사인 팹리스가 어느 파운드리에 맡길지 고를 때 가격표보다 먼저 수율을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참고로 최선단 공정의 수율은 회사의 핵심 영업비밀이라 TSMC도 삼성전자도 공식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며, 언론에 도는 수치는 대부분 업계 추정치라는 점도 함께 알아두시면 좋습니다.

수익 구조도 함께 짚어두겠습니다. 파운드리는 완성된 칩 하나당 값을 받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웨이퍼 한 장을 처리해준 값을 받습니다. 즉 그 웨이퍼에서 불량이 많이 나와도 손해는 상당 부분 주문한 팹리스가 떠안는 구조입니다(계약 형태에 따라 다르며, 신뢰가 쌓인 대형 고객과는 좋은 칩 개수 기준으로 정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팹리스 입장에서는 수율 높은 파운드리를 쓰는 것이 곧 원가 절감이고, 파운드리 입장에서는 공장을 놀리지 않는 것, 즉 가동률이 생명입니다. 수십조 원을 들여 지은 설비의 감가상각은 공장을 돌리든 세우든 매달 똑같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2부에서 본 팹리스가 ‘설계만 잘하면 되는’ 가벼운 구조였다면, 파운드리는 정반대로 무거운 고정비를 짊어진 채 가동률과 수율이라는 두 숫자에 실적이 매여 있는 사업입니다.

‘나노 공정’이란 정확히 무슨 뜻인가

뉴스에서 흔히 보는 ‘3나노 공정’, ‘2나노 공정’ 같은 표현은 반도체 회로의 선폭, 즉 트랜지스터를 얼마나 가늘고 촘촘하게 그릴 수 있는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트랜지스터는 전기 신호를 켜고 끄는 아주 작은 스위치인데, 이 숫자가 작을수록 같은 면적 안에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어넣을 수 있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트랜지스터가 더 많이, 더 촘촘하게 들어갈수록 칩은 더 빠르게 연산하면서도 전력은 덜 소모합니다. 스마트폰 배터리가 예전보다 오래가면서도 성능은 계속 좋아지는 이유, 데이터센터가 같은 전기료로 더 많은 AI 연산을 처리할 수 있게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미세공정 발전 덕분입니다. 다만 5나노에서 3나노로, 3나노에서 2나노로 한 단계 낮추는 데 필요한 장비와 기술 난이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기 때문에, 이 경쟁을 계속 따라갈 수 있는 회사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트랜지스터의 구조 자체를 바꾸는 GAA(Gate-All-Around, 게이트올어라운드)라는 신기술도 등장했습니다. 기존 방식보다 전류가 새는 것을 더 잘 막아주는 구조인데,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이 기술을 3나노 공정에 도입하며 승부수를 던졌고, TSMC도 2나노부터 이 방식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파운드리 경쟁은 단순히 ‘누가 더 많이 짓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어려운 물리적 난제를 먼저 풀어내느냐’의 싸움이기도 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3나노’는 실제 선폭이 아닙니다 한 가지 오해를 먼저 풀어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3나노 공정’이라는 이름은 트랜지스터 어딘가의 실제 길이가 3나노미터라는 뜻이 아닙니다. 원래는 게이트 선폭을 그대로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트랜지스터가 평면 구조를 벗어나 입체가 되면서 그 대응 관계가 깨졌습니다. 지금의 공정 이름은 ‘이전 세대 대비 성능·전력·면적이 이만큼 좋아졌다’는 세대 표기에 가깝고, 그래서 같은 3나노라도 회사마다 실제 트랜지스터 크기와 밀도가 다릅니다. 뉴스에서 ‘누가 먼저 2나노에 갔다’는 표현을 볼 때 숫자만으로 우열을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고, 업계에서 공정 이름보다 실제 트랜지스터 밀도와 수율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하는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GAA가 왜 등장했는지도 조금 더 들여다볼 만합니다. 트랜지스터는 게이트가 채널이라는 통로에 전압을 걸어 전류를 흘리거나 끊는 스위치입니다. 그런데 채널이 짧아질수록 게이트의 통제력이 약해져, 꺼야 할 때도 전류가 조금씩 새어 나가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를 막기 위해 업계는 채널을 지느러미처럼 세워 게이트가 세 면을 감싸게 하는 핀펫(FinFET) 구조를 도입했고, GAA는 여기서 한 발 더 나가 아랫면까지 포함해 채널의 네 면을 모두 감쌉니다. 게이트가 채널을 붙잡는 면적이 넓어질수록 전류를 더 확실히 끊을 수 있다는 단순한 원리인데, 문제는 구조가 바뀌면 설계 규칙과 공정 조건, 검증 방식이 통째로 함께 바뀐다는 점입니다. 삼성전자가 3나노에서 세계 최초로 GAA를 도입하고도 양산 안정화에 오래 걸린 배경으로 이 점이 자주 지적되며, TSMC가 3나노까지 핀펫을 유지하다가 2나노부터 GAA로 넘어간 것도 같은 위험을 뒤로 미룬 선택으로 읽힙니다.

제조 단계를 이끄는 대표기업 — 파운드리

🌏 해외 — 최선단 경쟁에 남은 곳과 물러선 곳

  • TSMC [뉴욕 ADR TSM]  파운드리 시장의 압도적 1위 기업으로, 대만에 본사를 두고 있지만 미국 증시에도 ADR(주식예탁증서) 형태로 상장돼 있습니다. 최선단 공정 점유율이 워낙 높아 엔비디아·애플 같은 대형 팹리스 고객들의 물량을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고, AI 칩에 필수적인 첨단 패키징 기술(CoWoS)까지 함께 갖추고 있어 경쟁사들이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위치에 있습니다. 시장조사업체 집계에 따르면 TSMC의 전 세계 파운드리 매출 점유율은 70%대 초중반에 이르는데, 이는 2위 삼성전자 파운드리(10%대 초반)의 5배가 넘는 격차로, ‘압도적’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님을 숫자로 보여줍니다.
  • GlobalFoundries [나스닥 GFS]  최선단 공정 경쟁에서는 한 발 물러나, 자동차·통신 등에 쓰이는 성숙 공정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안정적인 입지를 구축한 미국 파운드리입니다. 원래 AMD의 자체 생산공장이었다가 2009년 별도 회사로 분사됐는데, 분사 이후에도 TSMC·삼성전자만큼 막대한 자본을 미세공정 경쟁에 쏟아붓지 못하면서 2018년 7나노 이하 최선단 공정 개발을 아예 중단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결정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됐다는 평가도 있는데, 최선단 경쟁에서 발을 뺀 대신 자동차·통신처럼 안정적이고 꾸준한 수요를 가진 성숙 공정에 역량을 집중해, 소수 대형 고객사의 물량 변동에 실적이 크게 출렁이는 최선단 파운드리들과는 다른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확보했습니다.

🇰🇷 국내 — 최선단과 성숙 공정, 서로 다른 두 길

  • 삼성전자 [코스피 005930]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이자, 파운드리 사업에서도 TSMC를 추격하는 세계 2위 기업입니다. 설계부터 생산까지 모두 수행하는 IDM이면서 동시에 다른 팹리스 고객의 위탁생산도 받는 독특한 위치에 있고, 2나노 GAA 공정을 앞세워 최선단 경쟁에서 승부를 보고 있습니다.
  • DB하이텍 [코스피 000990]  국내 유일의 순수 파운드리 전문기업입니다. 최선단 공정 경쟁과는 결이 다른 전략으로, 비교적 성숙한 8인치 웨이퍼 공정에서 전력관리반도체(PMIC)나 디스플레이구동칩(DDI) 같은 아날로그 반도체를 전문적으로 생산합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는 틈새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진 경우입니다.

🌏 해외 — 그 밖에 함께 봐둘 곳

  • 인텔 [나스닥 INTC]  오랫동안 설계와 제조를 함께 해온 대표적 IDM이지만, 최근에는 외부 고객의 칩도 받아 만드는 파운드리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미국이 자국 내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되찾으려는 정책적 의지와 맞물려 있어, 이 시도의 성패는 기술 문제이자 동시에 지정학적 사안이기도 합니다.
  • SMIC [홍콩 981 · 상하이 STAR]  중국 최대 파운드리로, 미국의 수출 통제로 최선단 노광장비를 들여올 수 없는 상태에서도 성숙 공정을 중심으로 생산능력을 빠르게 늘려왔습니다. 최선단 경쟁의 바깥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전선이라, 파운드리 지형을 볼 때 함께 눈에 담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2. 소부장 — 파운드리를 떠받치는 숨은 주역들

그런데 파운드리는 스스로 모든 공정을 발명하지 않습니다. 대신 전 세계 각지의 전문 장비·소재 회사들로부터 최첨단 장비와 재료를 공급받아 이를 조합해 칩을 만듭니다. 이 장비·소재·부품 회사들을 통틀어 ‘소부장'(소재·부품·장비)이라고 부르는데, 파운드리가 아무리 뛰어나도 이 소부장 생태계가 받쳐주지 못하면 최신 칩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실제 칩 하나가 웨이퍼에서부터 완성되기까지, 이 소부장 기업들과 함께 순서대로 따라가 보겠습니다.

본격적으로 공정을 따라가기 전에, 이 소부장 시장이 왜 하나같이 소수 기업의 손에 쥐어져 있는지를 먼저 짚어두면 뒤가 훨씬 잘 읽힙니다. 앞으로 볼 공정마다 ‘세계에서 이 장비를 만드는 회사는 몇 곳뿐’이라는 이야기가 반복해서 나오는데, 그 이유는 대체로 같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반도체 장비 시장이 소수 과점이 되는 이유 첫째, 고객이 극단적으로 적습니다. 최선단 공정 장비를 살 수 있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대여섯 곳뿐입니다. 시장이 작으니 새로 뛰어드는 회사가 개발비를 회수하기 어렵고, 그래서 후발주자가 잘 생기지 않습니다. 둘째, 한 번 채택되면 잘 바뀌지 않습니다. 파운드리는 새 장비를 들이면 그 장비에 맞춰 공정 조건을 처음부터 다시 잡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수율이 흔들립니다. 지금 잘 돌아가는 라인의 장비를 굳이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꿀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장비 회사 입장에서는 한 번 들어가면 그 팹이 문을 닫을 때까지 부품과 서비스 매출이 따라옵니다. 셋째, 성능이 데이터 위에서 개선됩니다. 장비가 실제 양산 라인에서 얼마나 오래 돌았는지가 곧 그 장비의 완성도가 됩니다. 후발주자는 팔지 못해 데이터를 못 쌓고, 데이터가 없어 또 팔지 못하는 순환에 갇힙니다. 2부에서 본 EDA 소프트웨어가 실측 데이터 위에서 정교해진다고 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구조입니다.

3. 웨이퍼와 포토 — 원판을 만들고 빛으로 새긴다

제조의 앞 두 단계입니다. 먼저 회로를 그릴 원판을 만들고, 그 위에 빛으로 설계도를 옮겨 그립니다. 이 두 공정은 뒤에 이어질 모든 공정의 정밀도 한계를 미리 결정한다는 점에서 특히 중요합니다.

웨이퍼 — 반도체의 ‘도화지’

웨이퍼는 실리콘(규소)을 아주 얇고 둥글게 깎아 만든 원판으로, 이 위에 수백~수천 개의 칩이 그려집니다.

💡 쉽게 비유하면  쿠키 반죽을 넓게 펴놓고 그 위에 여러 개의 쿠키 모양을 찍어내는 것처럼, 웨이퍼는 여러 칩을 한 번에 그려낼 수 있는 ‘큰 반죽판’ 역할을 합니다. 실리콘을 원자 단위로 균일하게 정제하고 결정을 성장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 시장을 장악한 회사는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습니다.

웨이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먼저 모래의 주성분인 이산화규소에서 불순물을 제거해 순도 99.999999999%(‘일레븐 나인’이라 불릴 만큼 극도로 순수한 수준)의 폴리실리콘을 뽑아냅니다. 이 폴리실리콘을 섭씨 1,400도가 넘는 고온에서 녹인 뒤, 씨앗 결정을 담가 아주 천천히 회전시키며 끌어올리면 원기둥 모양의 커다란 실리콘 결정 덩어리(잉곳)가 자라납니다. 이를 ‘초크랄스키(Czochralski) 공법’이라 부르는데, 마치 꿀을 젓가락에 묻혀 천천히 돌리면서 감아올리는 것과 비슷한 원리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원기둥 모양의 잉곳을 아주 얇게 저며 썰고 표면을 매끄럽게 연마하면 비로소 우리가 아는 둥근 웨이퍼가 됩니다. 웨이퍼의 지름도 중요한데, 요즘 최선단 공정에서는 지름 300mm(12인치) 웨이퍼가 표준입니다. 예전에 널리 쓰이던 200mm(8인치) 웨이퍼보다 면적이 훨씬 넓어, 같은 공정 횟수로 한 번에 찍어낼 수 있는 칩의 개수가 늘어나 원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입니다. DB하이텍 같은 8인치 전문 파운드리가 최선단 경쟁 대신 아날로그 반도체라는 틈새시장에 집중하는 이유도, 이런 웨이퍼 크기의 경제성 차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표기업

  • 신에츠화학·섬코 [일본 상장]  웨이퍼 글로벌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는 일본 기업들로, 전 세계 웨이퍼 공급망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 SK실트론 [비상장]  국내 유일의 웨이퍼 생산 기업으로 세계 3위권 실리콘 웨이퍼 제조사입니다. 전력반도체용 SiC(탄화규소) 웨이퍼도 함께 보유하고 있어 미래 성장성도 갖췄지만, 증권시장에는 상장돼 있지 않은 비상장 기업이라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 원익QnC [코스닥 074600]  웨이퍼를 고정하고 다루는 데 필요한 석영·세라믹 부품을 만드는 기업으로, 미국·일본 기업 인수를 통해 이 분야의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왔습니다.
  • 하나머티리얼즈 [코스닥 166090]  식각 공정에 쓰이는 실리콘·SiC 부품(전극, 링)을 전문으로 공급하는 기업입니다.

포토(노광) — 회로를 ‘인화’하는 과정

포토 공정은 웨이퍼 위에 회로 패턴을 그려 넣는 과정입니다. 웨이퍼에 빛에 반응하는 물질(감광액)을 바른 뒤, 회로 모양이 새겨진 마스크를 대고 빛을 쏘아 원하는 패턴만 화학반응을 일으키게 만듭니다.

💡 쉽게 비유하면  사진관에서 필름에 빛을 쏘아 사진을 인화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다만 반도체의 회로 그림은 머리카락 굵기의 수만분의 1 수준으로 극도로 미세해서, 일반적인 빛이 아니라 파장이 훨씬 짧은 EUV(극자외선)라는 특수한 빛을 씁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EUV 노광장비는 전 세계에서 네덜란드의 ASML만 만들 수 있습니다. 빛의 파장을 극단적으로 짧게 만들어야 하는 기술적 난이도가 워낙 높아, 수십 년간 이 기술을 독점적으로 발전시켜온 ASML을 다른 회사가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집니다. 장비 한 대 가격이 2,000억~3,000억 원을 넘나들고, 한 해 생산량도 한정돼 있어 ‘슈퍼을’이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입니다.

포토 공정은 실제로는 세 단계로 이뤄집니다. 먼저 웨이퍼 표면에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액체(포토레지스트, 감광액)를 얇고 고르게 바릅니다. 그다음 회로 패턴이 새겨진 마스크(레티클)를 통해 빛을 쏘면, 마스크의 뚫린 부분으로만 빛이 통과해 감광액에 회로 모양대로 화학반응을 일으킵니다(노광). 마지막으로 이 웨이퍼를 특수 용액에 담그면, 빛을 받은 부분과 받지 않은 부분의 용해도 차이 때문에 한쪽만 씻겨 나가면서 웨이퍼 위에 실제 회로 모양이 도드라지게 남습니다(현상). 왜 EUV처럼 파장이 짧은 빛이 필요한지도 물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빛은 파동이라 그 파장보다 작은 크기의 무늬는 선명하게 그릴 수 없는 ‘회절 한계’라는 물리 법칙의 제약을 받습니다. 회로 선폭이 나노미터 단위로 좁아질수록 이 한계를 피하려면 파장이 훨씬 짧은 빛이 필요한데, 기존에 쓰이던 빛(파장 193나노미터)으로는 더 이상 미세한 패턴을 그릴 수 없어, 파장이 13.5나노미터에 불과한 극자외선(EUV)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 EUV 빛은 어떻게 만들까 EUV는 자연에서 그냥 얻어지는 빛이 아니라 만들어내야 하는 빛입니다. 진공 속으로 아주 작은 주석 방울을 초당 수만 번 떨어뜨리고, 그 방울 하나하나에 강력한 레이저를 두 번씩 정확히 맞혀 섭씨 수십만 도의 플라즈마로 만들면 그 순간 극자외선이 나옵니다. 게다가 이 빛은 공기는 물론 유리도 통과하지 못해서, 렌즈 대신 특수 반사경을 여러 장 거쳐 웨이퍼까지 옮겨야 하고 그 과정에서 빛의 상당 부분이 사라집니다. 총알만 한 표적을 초당 수만 번 정확히 맞히는 장치와, 빛을 거의 잃지 않는 초정밀 반사경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뜻인데, 이 조합을 완성한 회사가 전 세계에 한 곳뿐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포토 공정에서 장비만큼 중요한 것이 감광액(포토레지스트)입니다. 빛의 파장이 짧아질수록 그 빛에 정확히 반응하면서도 원치 않는 곳에서는 반응하지 않는 화학물질을 만드는 난도가 급격히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이 시장은 오랫동안 일본 기업들이 장악해왔습니다 — JSR·도쿄오카공업·신에츠화학·스미토모화학·후지필름 이른바 ‘5강’이 세계 시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특히 EUV용 고급 감광액에서는 집계에 따라 90%를 넘는 점유율이 거론될 만큼 편중이 심합니다. 2019년 일본이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를 걸었을 때 지목한 세 개 품목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EUV용 감광액이었다는 점이, 이 소재가 반도체 제조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대표기업

  • ASML [나스닥 ASML]  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하는 기업으로, 최선단 공정을 하려는 모든 파운드리·IDM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입니다.
  • 피에스케이 [코스닥 319660]  노광 공정 전후로 필요한 감광액 제거·세정(PR Strip)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기업입니다.
  • 파크시스템스 [코스닥 140860]  회로 패턴이 설계대로 잘 새겨졌는지 원자 단위로 측정하는 원자현미경(AFM) 계측 장비에서 세계적인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 오로스테크놀로지 [코스닥 322310]  패턴이 정확한 위치에 겹쳐졌는지 확인하는 오버레이 계측 장비를 전문으로 합니다.
  • 동진쎄미켐 [코스닥 005290]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용 감광액을 국산화한 소재 기업입니다. 1989년 세계 네 번째로 반도체용 감광액을 만들었고, 3D 낸드플래시용 감광액에서는 세계 선두권으로 올라섰습니다. 2019년 수출 규제 이후 국산화의 상징이 된 EUV용 감광액도 개발해 양산 적용 단계에 들어섰는데, 일본 5강이 여전히 압도적인 시장에서 국내 유일의 대안이라는 희소성이 이 회사의 위치를 설명합니다.

4. 식각·증착·계측 — 깎고 쌓고 확인하기를 수백 번

원판 위에 설계도를 그렸다면, 이제 그 그림대로 실제 구조를 만들 차례입니다.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고(식각), 필요한 막을 입히고(증착), 제대로 됐는지 확인하는(계측) 작업을 수백 번 반복하면 손톱만 한 칩 하나가 완성됩니다.

식각(에칭) —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는’ 과정

식각은 포토 공정으로 그려진 패턴만 남기고, 나머지 필요 없는 부분을 화학약품이나 가스로 정밀하게 깎아내는 과정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조각가가 돌덩어리에서 불필요한 부분을 깎아내 원하는 형상만 남기는 것과 비슷합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웨이퍼 위에는 처음 설계한 회로 모양만 도드라지게 남습니다. 아주 미세한 오차도 불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정밀도 경쟁이 특히 치열한 영역입니다.

식각에도 방식이 크게 두 가지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쓰여온 습식 식각은 웨이퍼를 화학 용액에 담가 필요 없는 부분을 녹여내는 방식으로, 비교적 간단하고 저렴하지만 용액이 사방으로 퍼지듯 반응하기 때문에 원하는 방향이 아닌 옆쪽으로도 깎여나가는 단점이 있습니다. 반면 최신 미세공정에서 주로 쓰이는 건식 식각은 반응성 가스를 전기장으로 이온화한 플라즈마 상태로 만들어, 이 이온 입자를 원하는 방향으로만 정확히 내리꽂듯 쏘아 깎아내는 방식입니다. 마치 물줄기를 사방으로 뿌리는 것과, 한 방향으로 정밀하게 쏘는 것의 차이와 비슷합니다. 회로 선폭이 나노미터 단위로 좁아질수록 옆으로 살짝만 더 깎여도 바로 옆 회로와 붙어버리는 불량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렇게 원하는 방향으로만 수직에 가깝게 깎아내는 ‘방향성’이 건식 식각의 핵심 경쟁력입니다.

대표기업

  • Lam Research [나스닥 LRCX]  식각 장비 분야 글로벌 1위 기업으로, AI 반도체 수요 확대의 직접적인 수혜를 받으며 최근 실적과 주가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 도쿄일렉트론 [일본 상장]  식각·증착·코터/디벨로퍼 등 여러 공정 장비를 폭넓게 다루는 일본의 종합 장비 기업입니다.
  • 테스 [코스닥 095610]  가스를 이용한 식각(GPE)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기업으로, 매출의 상당 부분이 반도체 장비에서 나옵니다.
  • 에이피티씨 [코스닥 089970]  디스플레이·반도체용 식각 장비를 함께 다루는 국내 장비 기업입니다.

증착 — 얇은 막을 ‘입히는’ 과정

증착은 웨이퍼 위에 아주 얇은 막(절연막이나 금속막 등)을 씌우는 과정입니다. 포토(그리기) → 식각(깎기) → 증착(막 씌우기), 이 세 과정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최신 반도체는 이를 수십 번에서 많게는 수백 번까지 반복해 회로를 층층이 쌓아 올립니다.

💡 쉽게 비유하면  금속 제품에 도금을 하거나 벽에 페인트를 얇게 칠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데, 반도체에서는 그 두께가 원자 몇 개 수준으로 극도로 정밀합니다. 마치 고층 빌딩을 한 층 한 층 쌓아 올리듯, 이 반복 작업을 통해 평면적인 웨이퍼 위에 입체적인 회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증착 방식도 막을 입히는 원리에 따라 나뉩니다. 화학기상증착(CVD)은 원료가 되는 가스 여러 개를 웨이퍼 표면으로 흘려보내 그 자리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막을 만드는 방식이고, 물리기상증착(PVD)은 금속 같은 원료 덩어리에 강한 에너지를 가해 증발시킨 뒤 웨이퍼 표면에 그대로 얇게 들러붙게 하는 방식입니다. 여기서 한 단계 더 정밀해진 것이 원자층증착(ALD)인데, 가스를 반응시키는 CVD와 원리는 비슷하지만 반응 가스를 한 번에 왕창 흘려보내는 대신, 원자 한 층이 표면 전체를 고르게 덮으면 반응이 저절로 멈추도록(자기제한적 반응) 설계해 원자 단위로 두께를 딱딱 끊어가며 쌓습니다.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막의 두께를 원자 수준까지 정밀하게 통제해야 하는 부분이 늘어나기 때문에, 최선단 공정에서는 이 ALD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대표기업

  • Applied Materials [나스닥 AMAT]  증착을 포함한 다양한 반도체 장비를 폭넓게 다루는 세계 최대 종합 반도체 장비 기업입니다.
  • 원익IPS [코스닥 240810]  원자층을 한 겹씩 쌓아올리는 ALD(원자층증착) 장비로 삼성전자의 최선단 공정에 장비를 공급하는 국내 대표 증착 장비 기업입니다.
  • 주성엔지니어링 [코스닥 036930]  ALD 방식의 증착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대표주로, 최근 중국향 수요 변동에 따라 실적 부침을 겪기도 했지만 미세공정 전환의 핵심 수혜주로 꼽힙니다.
  • 유진테크 [코스닥 084370]  LPCVD(저압화학기상증착) 방식의 증착 장비를 전문으로 하는 국내 기업입니다.

계측·검사 — 보이지 않는 오차를 잡아내는 공정

웨이퍼·포토·식각·증착이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공정이라면, 그 사이사이에는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확인하는’ 공정이 끼어 있습니다. 계측과 검사입니다. 최선단 공정에서 수백 단계를 거치는 동안 어느 한 단계에서 생긴 미세한 오차가 끝까지 발견되지 않으면, 그 웨이퍼는 두세 달의 공정 시간과 비용을 전부 쓰고 나서야 폐기됩니다. 그래서 파운드리는 중간중간 웨이퍼를 꺼내 선폭이 설계대로 나왔는지, 층과 층이 정확히 겹쳐졌는지, 눈에 보이지 않는 결함이 생기지 않았는지를 계속 확인합니다. 앞서 소개한 파크시스템스와 오로스테크놀로지가 이 영역의 국내 기업이고, 세계 시장에서는 미국 KLA가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 KLA [나스닥 KLAC]  공정 중간중간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검사·계측 장비 분야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 소개하지 않은 공정들 — 이온주입·평탄화·세정

지금까지 웨이퍼·포토·식각·증착 네 가지를 따라왔는데, 실제 반도체 제조는 이보다 더 많은 공정으로 이뤄집니다. 이 시리즈가 네 가지를 골라 다룬 것은 이들이 반복되는 핵심 축이기 때문이고, 나머지도 짧게나마 짚어두는 편이 지도가 완성됩니다.

첫째는 이온주입입니다. 1부에서 반도체가 ‘불순물을 섞어 전기적 성질을 조절하는 물질’이라고 했는데, 그 불순물을 실제로 집어넣는 공정이 바로 이것입니다. 붕소나 인 같은 원소를 이온 상태로 만들어 전기장으로 가속한 뒤 웨이퍼에 총알처럼 쏘아 박아, 실리콘의 성질을 원하는 대로 바꿉니다. 트랜지스터가 스위치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결국 이 공정입니다. 둘째는 평탄화(CMP)입니다. 증착과 식각을 수백 번 반복해 층을 쌓다 보면 표면이 울퉁불퉁해지는데, 그 위에 다시 정밀한 회로를 그리려면 바닥이 거울처럼 평평해야 합니다. 그래서 연마용 액체(슬러리)와 패드로 표면을 갈아내 다음 층을 올릴 준비를 합니다. 셋째는 세정입니다. 공정 단계마다 남는 미세한 부산물과 입자를 제거하는 작업으로, 전체 공정 단계 수로만 보면 오히려 가장 자주 반복되는 축에 속합니다.

이 세 공정에도 국내 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평탄화에 쓰이는 슬러리와 세정액 같은 화학 소재는 앞서 나온 동진쎄미켐을 비롯한 국내 소재사들이 공급하고 있고, 세정 장비 쪽에도 국내 강소기업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다만 이온주입 장비처럼 국내 기업의 존재감이 거의 없는 구간도 남아 있어, 소부장 국산화의 지도는 공정마다 두께가 크게 다릅니다.

5. 소부장 국산화, 어디까지 왔나

앞 절까지 각 공정의 대표기업을 살펴봤는데, 국내 기업 이름이 어떤 공정에서는 여럿 나오고 어떤 공정에서는 아예 나오지 않았다는 걸 눈치채셨을 겁니다. 이 차이를 한 번에 정리해두면 소부장 관련 뉴스를 읽는 눈이 훨씬 달라집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공정 세계를 쥔 쪽 한국의 자리
웨이퍼(원판) 일본 신에츠화학·섬코 SK실트론이 국내 유일 — 300mm까지 생산, 세계 5위권
노광장비 네덜란드 ASML (EUV 독점) 부재 — 이 지도에서 가장 크게 비어 있는 칸
감광액 일본 5강 (EUV용 90% 이상) 동진쎄미켐이 국내 유일 국산화, 대형 적용은 진행형
식각장비 미국 Lam Research, 일본 도쿄일렉트론 테스·에이피티씨가 일부 구간 진입
증착장비 미국 Applied Materials 원익IPS·주성엔지니어링·유진테크 — 소부장 중 가장 두터운 층
계측·검사 미국 KLA 파크시스템스·오로스테크놀로지가 특정 계측에서 세계적 기술력
공정 소재·부품 일본·미국 다수 원익QnC·하나머티리얼즈 등 소모성 부품에서 강점
이온주입 장비 미국 Applied Materials 등 사실상 부재

표를 세로로 훑어보면 규칙이 하나 보입니다. 한국 기업이 자리를 잡은 곳은 대체로 ‘같은 공정을 반복해서 정밀하게 해내는’ 장비와 소모성 부품 쪽입니다. 증착과 식각처럼 웨이퍼 한 장에 수백 번 반복되는 공정, 그리고 그 과정에서 계속 갈아 끼워야 하는 부품 영역이 그렇습니다. 반면 노광처럼 물리학의 한계를 밀어붙여야 하는 구간, 감광액처럼 수십 년의 화학 데이터가 필요한 구간에서는 아직 진입하지 못했거나 이제 막 발을 들였습니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가 이 지형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는 점도 함께 봐둘 만합니다. 규제 대상이었던 감광액·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는 모두 ‘일본이 아니면 살 곳이 마땅치 않던’ 소재였고, 그 사건 이후 국산화 투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다만 국산화는 만들어내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 실제 양산 라인에 적용해 수율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확인돼야 비로소 교체가 일어나고, 그 검증에는 몇 년이 걸립니다. 국산화 성공 뉴스와 실제 매출 사이에 긴 시차가 있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소부장 기업 뉴스를 볼 때는 두 가지를 구분하시길 권합니다.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과 ‘양산 라인에 적용됐다’는 소식은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앞의 것은 가능성이고, 뒤의 것은 매출입니다. 그리고 한 번 적용되고 나면 앞에서 본 대로 잘 바뀌지 않기 때문에, 그 진입 자체가 수년치 매출을 확보하는 사건이 됩니다.

6. 그늘도 있다 — 균형 잡힌 시각

제조 단계는 이번 사이클의 최대 수혜 구간처럼 보이지만, 이 흐름을 볼 때 함께 봐둬야 할 반대편이 있습니다. 네 가지를 짚겠습니다.

첫째, 이 단계는 설비투자 사이클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소부장 기업의 매출은 파운드리와 메모리 회사가 공장을 지을 때 발생합니다. 그 투자는 몇 년에 걸쳐 집행되고, 한 번 설비가 채워지면 다음 증설까지 공백이 생깁니다. 지금의 수주 호황이 곧바로 영구적인 성장으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이고, 소부장 주가가 개별 실적보다 ‘삼성전자·TSMC의 내년 설비투자 계획’ 발표에 더 크게 반응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둘째, 고객이 소수인 만큼 협상력이 약합니다. 앞서 이 구조가 진입장벽을 만들어준다고 했는데, 뒤집으면 국내 소부장 기업 대부분이 한두 곳의 대형 고객사에 매출을 의존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 고객사가 투자 시점을 늦추거나 단가 인하를 요구하면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ASML처럼 대체 불가능한 지위를 확보한 소수를 제외하면, 이 단계의 협상력은 대체로 파운드리 쪽에 있습니다.

셋째, 중국 변수가 양방향으로 작용합니다. 중국은 미국의 수출통제로 최선단 장비를 들이지 못하는 대신 성숙 공정 증설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고, 이 물량이 국내 소부장 기업들에게는 상당한 매출원이었습니다. 규제가 강화되면 이 매출이 줄어들 수 있고, 반대로 중국이 자국 장비 국산화에 성공하면 그때는 경쟁자로 돌아옵니다. 어느 쪽으로 가든 국내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라는 점이 문제입니다.

넷째, 미세화의 한계가 이 단계 자체의 성장 속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소부장 시장이 커진 것은 회로를 더 작게 새기기 위해 공정 단계가 계속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4부에서 볼 대로 성능 개선의 무게중심이 미세공정에서 첨단 패키징으로 옮겨가고 있다면, 앞으로 늘어나는 투자의 상당 부분은 전공정이 아니라 후공정 쪽으로 갈 수 있습니다. 이 편에서 본 회사들과 다음 편에서 볼 회사들의 성장 곡선이 갈라질 가능성을 함께 염두에 두시면 좋겠습니다.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이 편에서 확정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 GlobalFoundries의 2018년 7나노 이하 개발 중단 발표, ASML이 EUV 노광장비를 사실상 독점 공급한다는 사실, 2019년 일본의 대한국 수출 규제 3개 품목(감광액·불화수소·불화폴리이미드), 동진쎄미켐이 1989년 세계 네 번째로 반도체용 감광액을 개발했다는 이력, 그리고 각 기업의 상장 시장과 종목코드. 반면 다음은 추정이거나 기관 집계입니다 — TSMC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70%대, 일본 5강의 EUV용 감광액 점유율 90% 이상, 최선단 공정의 수율 수치(회사가 공개하지 않아 언론에 도는 값은 대부분 업계 추정치입니다), 그리고 SK실트론의 세계 순위. 특히 파운드리 점유율은 매출 기준인지 생산능력 기준인지, 최선단만 세는지 전체를 세는지에 따라 크게 달라지므로 인용 시 기준 확인이 필요합니다.

7. ‘나노 전쟁’이 말해주는 것 — 네 가지 해석

파운드리와 소부장, 이 두 축을 함께 놓고 보면 단순한 공정 설명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보입니다.

① ‘나노 전쟁’은 사실 ‘탈락자의 행렬’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최선단 공정을 개발하는 파운드리·IDM은 10곳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공정이 미세해질 때마다 개발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면서, 하나둘 이 경쟁에서 손을 뗐습니다. GlobalFoundries가 2018년 7나노 이하 개발을 포기한 것도, 인텔이 자체 파운드리 사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도 같은 흐름입니다. 지금 최선단 공정을 실제로 양산할 수 있는 곳은 TSMC와 삼성전자, 사실상 둘뿐입니다. ‘나노 전쟁’이라는 표현은 마치 여러 나라가 각축전을 벌이는 그림을 연상시키지만, 실제로는 경쟁자가 하나씩 탈락해 최후의 두 곳만 남는 ‘생존 게임’에 가깝습니다. 이 추세가 이어지면 전 세계 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이 대만과 한국이라는 두 나라, 그중에서도 사실상 두 회사의 손에 집중된다는 뜻이고, 이것이 미국이 자국 내 파운드리 투자를 정책적으로 밀어붙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② 가장 안전한 자리는 1등이 아니라 ‘모두가 넘겨준 자리’다

파운드리 경쟁의 승자가 TSMC든 삼성전자든, 그 승자는 결국 ASML의 EUV 노광장비 없이는 최선단 칩을 찍어낼 수 없고, Lam Research의 식각장비 없이는 회로를 새길 수 없습니다. 즉 소부장, 특히 장비 기업들은 ‘누가 파운드리 전쟁에서 이기느냐’와 무관하게, 그 전쟁 자체가 계속되는 한 꾸준히 수혜를 보는 독특한 위치에 있습니다. 이것이 개별 파운드리 기업에 베팅하는 것보다, 이 산업 전체에 무기를 파는 소부장 기업에 투자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리스크가 낮다고 여겨지는 이유입니다. 다만 그만큼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회사(특히 ASML처럼 대체 불가능한 기술을 가진 곳)의 협상력도 막강해서, 장비 가격 인상분을 고스란히 파운드리에 전가할 수 있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둘 만합니다.

1부에서 잡아둔 관점으로 보면 이 구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설명됩니다. 파운드리는 원래 장비를 직접 만들지 않았습니다. 광학·정밀기계·소재는 반도체 회사가 잘하는 영역이 아니었고,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그 난도가 감당할 수 없이 올라가자 이 일은 전문 회사에 통째로 넘어갔습니다. 감광액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넘겨준 자리는 어김없이 넘겨받은 쪽의 독점이 됐습니다 — 노광장비를 넘겨받은 회사가 지금 ‘슈퍼을’이라 불리고, EUV용 감광액을 넘겨받은 나라가 그것을 외교 카드로 쓸 수 있게 된 것이 그 결과입니다. 즉 소부장이 안전한 자리인 이유는 이들이 특별히 앞서 있어서가 아니라, 산업 전체가 그 일을 스스로 하기를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③ 한국은 ‘선수’이자 ‘무기상’이라는 이중 포지션에 있다

한국은 이 나노 전쟁에서 흔치 않은 위치에 있습니다. 삼성전자가 TSMC와 최선단 경쟁을 직접 벌이는 ‘선수’인 동시에, 원익QnC·하나머티리얼즈·원익IPS·주성엔지니어링 같은 소부장 기업들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TSMC를 포함한 전 세계 파운드리에 장비·소재를 공급하는 ‘무기상’ 역할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이 이중 구조가 갖는 의미는 큽니다. 설령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경쟁에서 TSMC에 밀리더라도, 국내 소부장 생태계는 TSMC向 공급 확대라는 전혀 다른 경로로 수혜를 볼 수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삼성전자 파운드리가 흔들리면 한국 반도체 전체가 흔들린다’는 식의 단순화된 서사는 절반만 맞습니다. 제조 단계 안에서도 ‘선수’와 ‘무기상’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베팅이 공존하고 있다는 점을, 이 시리즈의 다음 편들에서 개별 기업을 살펴볼 때 함께 기억해두면 좋습니다.

④ 이 단계는 ‘포기의 연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구간이다

제조 단계를 1부의 관점으로 다시 훑어보면, 이 구간에서 벌어진 일이 결국 하나의 연쇄였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먼저 팹리스들이 공장을 감당하지 못해 넘겼고, 그 공장을 떠맡은 파운드리들 가운데 상당수가 다시 최선단 공정을 감당하지 못해 손을 들었으며, 끝까지 남은 두 회사조차 장비와 소재는 처음부터 남에게 맡긴 채 하고 있습니다. 포기가 한 번 일어날 때마다 그 자리를 떠맡은 쪽이 대체 불가능해졌고, 지금 이 단계의 권력 지도는 그 연쇄가 멈춘 자리에 그려져 있습니다.

이 관점은 흔한 오해 하나를 바로잡아 줍니다. GlobalFoundries가 최선단 개발을 포기한 것을 두고 패배로 읽기 쉽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를 골라 물러선 선택이었고 그 결과 오히려 안정적인 수익 구조를 얻었습니다. 반대로 끝까지 남은 쪽은 승자처럼 보이지만, 남았기 때문에 매 세대마다 더 큰 자본과 더 높은 난도를 계속 감당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합니다. 이 산업에서 ‘남는다’는 것은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걸어야 한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제조 단계의 기업을 볼 때는 두 가지를 함께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 이 회사는 무엇을 넘겨받아 지금 자리에 서 있는가, 그리고 이 회사가 앞으로 감당해야 할 다음 세대의 난도는 무엇인가. 4부에서는 이 연쇄의 마지막 장면을 보게 됩니다. 미세공정 자체가 한계에 부딪히면서, ‘성능을 올린다’는 책임마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장면입니다.

8. 오늘 배운 내용 한눈에 정리

🔑 핵심 정리

① 파운드리는 팹리스의 설계도대로 실제 칩을 찍어내는 위탁생산 공장으로, 최선단 공정은 TSMC·삼성전자 소수만 경쟁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② ‘나노 공정’ 숫자가 작을수록 더 많은 트랜지스터를 집적해 성능은 높이고 전력 소모는 낮출 수 있지만, 그만큼 기술 난이도도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집니다.

③ 파운드리는 웨이퍼·포토·식각·증착 등 소부장 생태계 없이는 칩을 만들 수 없으며, 특히 ASML의 EUV 노광장비는 사실상 대체 불가능한 독점 기술입니다.

④ 한국은 웨이퍼·식각·증착 소부장 곳곳에 강소기업을 보유하고 있어, AI 반도체 투자 확대의 ‘낙수효과’를 직접 받는 영역으로 꼽힙니다.

⑤ 제조 단계의 권력 지도는 포기의 연쇄가 만든 결과입니다 — 팹리스가 공장을, 파운드리가 장비와 소재를 넘겼고, 그 자리를 떠맡은 쪽이 대체 불가능해졌습니다.

⑥ 한국 소부장이 자리 잡은 곳은 ‘같은 공정을 반복해서 정밀하게 해내는’ 장비와 소모성 부품 쪽입니다. 노광처럼 물리 한계를 미는 구간, 감광액처럼 수십 년 화학 데이터가 필요한 구간은 아직 비어 있습니다.

⑦ 소부장 뉴스는 ‘개발 성공’과 ‘양산 적용’을 구분해서 읽어야 합니다. 앞의 것은 가능성이고 뒤의 것이 매출이며, 그 사이에는 몇 년의 검증 기간이 있습니다.

9. 다음 편 예고

4부에서는 이렇게 완성된 칩이 우리 손에 오기까지의 마지막 관문, ‘후공정(패키징·테스트)’을 다룹니다. 특히 이번 AI 반도체 사이클의 핵심으로 떠오른 HBM이 어떻게 ‘패키징’ 기술의 결과물인지, 그리고 이 첨단 패키징 시장을 이끄는 대표기업들을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확인한 연쇄가 4부에서 마지막 장면을 맞습니다. 지금까지는 ‘더 작게 새기는’ 방식으로 성능을 올려왔는데, 그 방식이 비용과 물리적 한계에 부딪히자 성능을 끌어올리는 책임 자체가 후공정으로 넘어갔습니다. 오랫동안 뒤처리로 불리던 자리가 어떻게 이 산업의 다음 전장이 됐는지, 마지막 편에서 확인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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