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는 반도체와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세 산업의 제조 장비를 함께 만듭니다. 하나의 증착 기술을 세 곳에 쓸 수 있다는 것이 오랜 자랑이었고, 실제로 세계 최초 기술 27개와 특허 3,420여 건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 매출 1,148억원을 뜯어보면 반도체가 1,126억원으로 98%이고 태양전지는 0원, 디스플레이는 22억원입니다. 세 시장을 가진 것이 분산이 아니라 순차적 대기였다는 뜻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증착을 깎고 쌓고 확인하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과정의 한 축으로 소개했는데, 그 축 하나로 세 산업을 상대한다는 것이 어떤 손익을 만드는지가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
1. 왜 지금 주성엔지니어링인가 — 기술은 하나, 시장은 셋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제조 공정을 정리하며 증착을 짚어뒀습니다. 웨이퍼 위에 필요한 막을 입히는 일인데, 가스를 반응시켜 얇게 들러붙게 하는 방식에서 한 단계 더 정밀해진 것이 원자층증착, 곧 ALD라고 했습니다. 원자 한 층이 표면을 고르게 덮으면 반응이 스스로 멈추도록 설계해 두께를 원자 단위로 끊어가며 쌓는 방식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그 ALD 양산 기술을 1997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회사입니다. 그보다 앞선 1995년에는 D램의 핵심인 커패시터 전용 증착 장비를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2018년에는 원자층 성장이라 부르는 다음 세대 기술을 역시 세계 최초로 내놓았습니다. 회사가 공시에 적어둔 세계 최초 기술이 27개, 보유 특허가 3,420여 건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지금 봐야 하는 이유는 그 기술 목록이 아닙니다. 2024년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972억원으로 매출 4,094억원의 23.7%였습니다. 그런데 2025년에는 313억원으로 줄었고 2026년 상반기에는 56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습니다. 세계 최초 기술을 27개 가진 회사가 두 해 만에 이렇게 움직인 이유가 이 편이 붙잡고 갈 구조입니다.
앞 편의 원익IPS와 나란히 놓으면 대비가 선명해집니다. 두 회사는 같은 원자층증착 계열 장비를 만들고 같은 고객의 같은 공정 자리를 두고 겨룹니다. 그런데 2024년에는 이 회사가 영업이익 972억원으로 원익IPS의 106억원을 크게 앞섰고, 2026년 상반기에는 한쪽이 291억원 흑자일 때 다른 쪽이 56억원 적자였습니다. 같은 업황에서 두 회사가 정반대로 움직였다는 뜻이고, 그 이유가 고객이 어디에 투자하느냐에 있었습니다. 두 편을 나란히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편이 묻는 것은 셋입니다. 하나의 증착 기술이 어떻게 세 산업에 쓰이는가, 세 시장을 가진 것이 왜 분산이 되지 못했는가, 그리고 매출이 반토막 나는 동안에도 유지한 개발비는 무엇을 겨냥하고 있는가.
주성엔지니어링, 한눈에 보기
📌 기본 정보 티커: 코스닥 036930 | 설립: 1993년 창업해 1999년 기술성장기업으로 코스닥 상장 | 사업 구성: 반도체·태양전지·디스플레이 제조 장비를 함께 만들며 장비가 매출의 70%대, 원부자재가 나머지 | 생산 구조: 전량 주문 생산이며 중국·미국·대만 등에 현지 법인을 두고 본사 영업팀과 함께 대응 | 지배구조: 창업주가 최대주주로 특수관계인을 합쳐 30% 안팎을 보유 | 시장 내 위치: ALD 양산 기술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세계 최초 기술 27개와 특허 3,420여 건을 보유 | 한 줄 정체성: 원자 단위로 막을 쌓는 하나의 기술을 반도체와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세 산업에 각각 팔되, 세 시장의 투자 시점이 겹치지 않아 늘 한 축에서만 매출이 나오는 회사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이 회사는 세 갈래의 장비를 만듭니다. 반도체 제조용, 태양전지 제조용, 디스플레이 제조용입니다. 세 갈래가 서로 다른 산업을 향하지만 그 안에서 벌어지는 공정은 같은 계열입니다. 무엇을 만들어 어디에 파는지, 그리고 그 매출이 어떤 리듬으로 들어오는지를 차례로 보시면 이 회사의 손익이 왜 그렇게 움직였는지가 그려집니다.
세 갈래의 장비 — 그런데 매출은 한 갈래에서
첫째는 반도체 제조 장비입니다. 원자층증착과 화학기상증착, 건식 식각과 유기금속 화학기상증착 등을 담은 여러 계열의 장비가 있고, 회사는 이들에 각각 이름을 붙여 제품군으로 관리합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1,148억원 가운데 1,126억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둘째는 태양전지 제조 장비입니다. 박막형과 결정질 실리콘형에서 출발해 페로브스카이트와 탠덤 방식까지 제품군을 갖췄고, 회사는 발전전환효율 35% 이상을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을 내놓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 이 갈래의 매출은 0원입니다. 2025년에도 2,300만원, 2024년에도 1,500만원 수준이었습니다.
셋째는 디스플레이 제조 장비입니다. 액정 표시장치용 박막 트랜지스터 장비에서 유기발광다이오드용 장비, 그리고 봉지 공정 장비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이 갈래의 매출은 2024년 597억원이었는데 2025년 70억원, 2026년 상반기 22억원으로 줄었습니다.
세 숫자를 나란히 놓으면 이 회사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세 산업의 장비를 갖췄다는 것은 세 개의 시장을 가졌다는 뜻인데, 실제로 매출이 나오는 곳은 늘 한 곳입니다. 2024년에는 반도체 3,497억원에 디스플레이 597억원이 더해져 두 축이 함께 돌았고, 2026년 상반기에는 사실상 반도체 한 축만 남았습니다. 왜 셋이 동시에 오지 않는지는 3절에서 원리로 짚습니다.
누구에게 파는가 — 그리고 그 지역 구분의 함정
사가는 쪽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태양전지를 만드는 대형 제조사들입니다. 회사는 고객 이름을 공시에 적지 않지만, 연혁에 국내 메모리 제조사와의 장비 공급계약이 여러 건 기재돼 있습니다.
지역별 매출은 눈에 띄게 움직였습니다. 2024년 4,094억원 가운데 해외가 3,495억원으로 85.4%였는데, 2025년에는 3,107억원 중 2,009억원으로 64.6%가 됐고, 2026년 상반기에는 1,148억원 중 363억원으로 31.6%까지 낮아졌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는 599억원에서 1,098억원, 785억원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두 해 만에 무게중심이 해외에서 국내로 완전히 넘어온 셈입니다.
다만 이 숫자를 읽을 때 주의할 대목이 있습니다. 회사는 이 지역 구분이 고객사의 투자 위치에 따른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즉 같은 고객이라도 그 회사가 해외 공장에 투자하면 해외로, 국내 공장에 투자하면 국내로 잡힙니다. 그러니 해외 매출이 줄었다는 것이 곧 해외 고객을 잃었다는 뜻은 아니고, 고객사들의 투자가 어느 지역에서 벌어졌는지가 바뀌었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매출은 언제 잡히는가
이 회사도 전량 주문을 받은 뒤에 만듭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사양과 챔버의 수, 종류가 달라져 같은 제품이라도 값이 다릅니다. 그래서 회사는 제품 가격 변동 추이를 공시하지 않습니다.
수주잔고는 2026년 상반기 말 기준으로 반도체 제조장비가 2,144억원, 디스플레이 제조장비가 193억원입니다. 디스플레이 쪽은 수주총액 193억원 가운데 아직 납품된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들어올 매출이 미리 잡혀 있다는 뜻인데, 그 규모와 구성이 지금의 매출 구성과 어떻게 다른지가 이 회사를 보는 단서가 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사업 다각화가 분산이 되는 조건 한 회사가 여러 산업에 장비를 판다고 하면 보통은 위험이 분산된다고 생각합니다. 한 산업이 나빠도 다른 산업이 받쳐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산이 실제로 작동하려면 조건이 있습니다. 두 산업의 투자 사이클이 서로 어긋나야 하고, 어긋나되 각 산업이 꾸준히 투자를 이어가야 합니다. 한 산업이 몇 년씩 투자를 멈추면 그 축은 분산이 아니라 대기가 됩니다. 장비 회사에서는 대기가 특히 비쌉니다. 팔지 않는 동안에도 그 산업의 다음 세대 장비를 계속 개발해둬야 시장이 열렸을 때 참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각화된 장비 회사를 볼 때는 갈래가 몇 개인지보다 각 갈래에서 실제로 매출이 나오고 있는지를 먼저 보셔야 합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세계 최초 기술 27개라는 목록은 인상적이지만, 그 목록만으로는 이 회사가 왜 지금 이런 손익을 내는지 설명되지 않습니다. 실제로 봐야 할 것은 그 기술들이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는 점과, 그 뿌리가 세 산업으로 뻗을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뻗을 수 있다는 것과 동시에 팔린다는 것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막을 쌓는 일이 세 산업에서 왜 같은 일인지(①), 원자 단위로 쌓는다는 것에서 이 회사가 남긴 자국(②), 다음 세대로 내놓은 기술이 무엇을 겨냥하는지(③), 세 시장의 투자 시점이 왜 겹치지 않는지(④), 그 구조가 개발비에 무엇을 요구하는지(⑤), 그리고 이 회사가 세 시장을 놓지 않는 이유(⑥)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① 세 산업에서 같은 일을 합니다
반도체와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는 최종 제품이 전혀 다릅니다. 그런데 만드는 과정의 뼈대는 겹칩니다. 셋 다 평평한 기판 위에 성질이 다른 막을 여러 겹 쌓아 올려 원하는 기능을 만듭니다. 반도체는 실리콘 웨이퍼 위에 회로를 만들고, 디스플레이는 유리 기판 위에 화소를 켜고 끄는 스위치를 만들며, 태양전지는 빛을 받아 전기를 만드는 층을 쌓습니다.
회사가 자기 사업을 설명하는 방식이 그 관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태양광은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빛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꾸는 기술이고, 디스플레이는 반도체 기술을 기반으로 전기 에너지를 빛으로 바꾸는 기술이라고 적어두고 있습니다. 방향이 반대일 뿐 같은 종류의 층을 다루는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한 회사가 세 산업의 장비를 만들 수 있습니다. 챔버 안에서 가스를 흘려 막을 쌓고, 플라스마로 온도를 낮추고, 필요 없는 부분을 깎아내는 일의 원리가 같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 회사가 반도체 장비 회사이면서 동시에 태양광 장비 회사이고 디스플레이 장비 회사일 수 있는 근거이고, 뒤에서 볼 문제의 뿌리이기도 합니다.
② 원자 단위로 쌓는다는 것에 남긴 자국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설명한 대로 원자층증착은 반응 가스를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대신, 원자 한 층이 표면을 고르게 덮으면 반응이 스스로 멈추도록 설계해 두께를 원자 단위로 끊어가며 쌓는 방식입니다. 이 회사가 1997년에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히는 것이 그 ALD 양산 기술입니다.
왜 이 방식이 필요해졌는지는 그 앞의 기술에서 나옵니다. 1995년 이 회사가 세계 최초로 만들었다는 커패시터 전용 증착 장비를 보면 됩니다. D램은 전하를 담아두는 작은 그릇으로 정보를 저장하는데, 반도체가 미세해질수록 그 그릇을 놓을 자리가 좁아집니다. 좁은 자리에 같은 용량을 담으려면 그릇을 깊게 파거나 벽을 세워 표면적을 늘려야 하고, 그러면 깊고 좁은 구멍의 바닥까지 막을 고르게 입혀야 합니다.
가스를 한꺼번에 흘려보내는 방식으로는 이 일이 잘 안 됩니다. 입구 쪽은 두껍게 쌓이고 바닥은 얇게 쌓입니다. 반면 원자 한 층이 덮이면 반응이 멈추는 방식이라면 구멍의 어느 지점이든 결국 같은 두께가 됩니다. 깊고 좁은 구조가 늘어날수록 이 방식의 필요가 커지고, 그래서 이 회사의 기술 계보가 D램의 커패시터에서 출발한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 쉽게 비유하면 — 깊은 우물 안쪽에 페인트칠하기 넓은 벽에 칠을 하는 것과 좁고 깊은 우물 안쪽에 칠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위에서 페인트를 부으면 입구 근처만 두껍게 묻고 바닥은 거의 안 묻습니다. 반도체가 미세해진다는 것은 이런 우물이 점점 많아지고 깊어진다는 뜻입니다. D램에서 전하를 담는 그릇도, 요즘 트랜지스터의 구조도 전부 좁고 깊은 모양으로 가고 있습니다. 원자층증착은 이 문제를 붓는 대신 스티커를 한 겹씩 붙이는 방식으로 풉니다. 빈 자리에만 붙고 이미 붙은 자리에는 겹치지 않으므로 우물 바닥이든 입구든 두께가 같아집니다. 이 회사가 그 양산 기술을 처음 만들었다는 것은, 미세화가 만든 문제를 남보다 먼저 풀었다는 뜻입니다.
③ 다음 세대로 내놓은 기술이 겨냥하는 것
이 회사가 2018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밝히는 다음 기술은 원자층 성장입니다. 원자층증착이 이미 만들어진 표면 위에 막을 한 겹씩 덮는 일이라면, 이쪽은 원하는 결정 구조를 원자 층 단위로 자라게 하는 데 가깝습니다. 회사는 이 기술이 3족과 5족 화합물 반도체에 적용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화합물 반도체가 무엇인지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대부분의 반도체는 실리콘 하나로 만듭니다. 화합물 반도체는 두 종류 이상의 원소를 결합해 만드는데, 전자가 훨씬 빨리 움직이거나 빛을 잘 내는 성질을 갖습니다. 문제는 이 재료를 실리콘처럼 큰 덩어리로 값싸게 만들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실리콘 기판 위에 화합물 층을 얇게 자라게 하는 방법이 오래 연구돼왔고, 이 회사가 내놓은 기술이 그 갈래에 속합니다.
회사가 이 기술을 세 산업에 모두 걸어둔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반도체에서는 속도와 발열 문제를, 태양전지에서는 빛을 전기로 바꾸는 효율을, 디스플레이에서는 빛을 내는 성능을 각각 이 재료로 풀 수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기술이 세 산업의 다음 세대를 동시에 겨냥하는 구조인데, 뒤집으면 그 세 산업이 모두 다음 세대로 넘어가야 이 기술이 매출이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④ 그런데 세 시장은 동시에 오지 않습니다
여기가 이 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2절에서 본 숫자를 다시 보면 세 갈래의 매출이 함께 오르내린 적이 거의 없습니다. 디스플레이는 2024년 597억원에서 2025년 70억원으로 떨어졌고, 태양전지는 세 해 내내 사실상 0이었으며, 반도체만 계속 매출의 대부분을 냈습니다.
이유는 세 산업의 투자가 각자의 사정으로 정해지기 때문입니다. 반도체 제조사는 메모리 값과 인공지능 수요를 보고 라인을 짓고, 디스플레이 제조사는 패널 값과 새 화면 기술의 채택 속도를 봅니다. 태양전지는 전력 정책과 발전 단가에 걸려 있습니다. 세 산업이 서로 다른 이유로 움직이니 사이클이 겹칠 이유도 없고, 실제로 겹치지 않았습니다.
문제는 어긋나는 것과 멈추는 것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두 산업의 사이클이 어긋나기만 하면 한쪽이 비었을 때 다른 쪽이 채워줍니다. 그런데 한 산업이 몇 년씩 투자를 멈추면 그 축은 채워주는 쪽이 되지 못하고 그냥 대기 상태가 됩니다. 2절 개념 박스에서 본 대로 다각화가 분산이 되려면 각 갈래에서 실제로 매출이 나와야 하는데, 이 회사의 두 갈래는 지금 그 조건을 만족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 시장을 가졌다는 사실이 이 회사의 실적을 안정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반도체 한 축에 의존하는 정도가 커졌고, 그 축에서 고객의 투자가 줄어든 2026년 상반기에 매출이 42.5% 감소하며 영업손실로 돌아섰습니다.
⑤ 그 구조가 개발비에 요구하는 것
④의 구조에는 값이 따라붙습니다. 세 시장을 놓지 않으려면 세 시장의 다음 세대 장비를 모두 준비해둬야 하고, 그 개발은 매출이 나오지 않는 동안에도 계속돼야 합니다. 시장이 열렸을 때 준비된 장비가 없으면 그 세대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가 그 사정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국고보조금을 뺀 순액 기준으로 2024년 942억원, 2025년 1,069억원, 2026년 상반기 453억원을 썼습니다. 매출 대비 비율로는 23.0%, 34.4%, 39.45%입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개발비는 줄이지 않았고, 그 결과 비율이 계속 올라갔습니다.
40%에 가까운 이 비율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손익계산서에서 확인됩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총이익률은 51.3%였는데 영업손익은 56억원 적자였습니다. 물건을 팔아 남긴 마진의 대부분이 판매관리비와 그 안에 포함된 연구개발비로 나갔다는 뜻입니다. 앞 편의 원익IPS도 같은 성질을 갖고 있지만 정도가 다릅니다 — 그 회사의 개발비 비율은 20%대이고 이 회사는 40%에 가깝습니다.
그러니 이 회사의 적자는 물건이 안 팔려서만 생긴 것이 아닙니다. 매출이 줄어든 국면에서도 세 시장의 다음 세대를 계속 준비하기로 한 선택이 함께 만든 결과입니다.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그 시장들이 실제로 열릴 때에만 확인됩니다.
⑥ 그럼에도 세 시장을 놓지 않는 이유
여기까지 보면 두 갈래를 정리하고 반도체에 집중하는 편이 나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그러지 않는 데는 ①에서 본 구조가 작동합니다. 세 산업의 장비가 별개의 제품이 아니라 같은 기술의 응용이라, 한 갈래를 접는다고 해서 그만큼의 개발비가 그대로 줄어들지 않습니다. 챔버 설계와 증착 조건에 대한 연구는 세 갈래에 함께 쓰이기 때문입니다.
반대 방향의 계산도 있습니다.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는 지금 매출이 없지만 시장이 열리면 규모가 큽니다. 태양전지에서 이 회사가 내세우는 차세대 방식이 상용화되거나, 디스플레이에서 새 화면 기술이 채택되면 그때는 준비해둔 회사만 참여할 수 있습니다. 2절에서 본 디스플레이 수주잔고 193억원이 아직 한 대도 납품되지 않은 채 잡혀 있는 것도 그 갈래가 완전히 닫힌 것은 아니라는 신호로 읽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구조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이렇습니다 — 세 시장을 가진 것이 지금은 비용이고 나중에는 자산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판명될지는 이 회사가 정하지 않고, 세 산업의 투자 사이클이 정합니다. 이것이 앞 편의 원익IPS와 같은 장비를 만들면서도 실적이 정반대로 움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 그 회사는 두 갈래 모두에서 매출이 나왔고 이 회사는 한 갈래에서만 나왔습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3절을 정리하면 이 회사의 우위는 세 겹입니다. 첫째, ALD 양산 기술을 세계에서 처음 만들며 쌓은 증착 조건과 챔버 설계의 축적이 있습니다. 둘째, 그 축적을 세 산업에 옮겨 적용해본 경험이 있습니다. 셋째, 다음 세대로 내놓은 화합물 반도체 성장 기술을 세 산업에 동시에 걸어두었습니다.
셋 중 실제로 방어력이 되는 것은 첫째입니다. 둘째는 ④에서 본 대로 지금은 비용에 가깝고, 셋째는 아직 시장이 열리지 않아 값이 매겨지지 않았습니다. 반면 특정 공정에서 요구되는 막을 원하는 두께와 균일도로 쌓아내는 조건은 여러 세대에 걸쳐 실제 라인에서 맞춰봐야 얻어지고, 새로 들어온 회사가 곧바로 재현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우위는 고객이 투자할 때만 값이 됩니다
문제는 그 축적이 매출로 바뀌는 조건입니다. 아무리 좋은 장비를 갖고 있어도 고객이 라인을 짓지 않으면 팔 곳이 없습니다. 그리고 2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지역별 매출은 고객사의 투자 위치에 따라 나뉘는데, 해외 비중이 85.4%에서 31.6%로 낮아진 것은 고객사들의 해외 투자가 크게 줄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앞 편의 원익IPS와 갈립니다. 두 회사는 같은 계열의 장비를 만들지만 매출이 어느 고객의 어느 투자에 걸려 있는지가 달랐습니다. 한쪽은 국내 대형 제조사의 국내 투자에 무게가 실려 있어 그 투자가 재개되자 매출이 버텼고, 다른 쪽은 해외 투자 비중이 높아 그쪽이 식자 매출이 빠르게 줄었습니다.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매출이 붙어 있는 자리의 차이가 두 회사의 실적을 갈라놓은 셈입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비용은 사이클을 따라가지 않습니다
여기에 3절 ⑤에서 본 구조가 겹칩니다. 매출은 고객의 투자 사이클을 그대로 따라가는데, 가장 큰 비용인 연구개발비는 따라가지 않습니다. 세 시장의 다음 세대를 계속 준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손익은 사이클의 진폭을 그대로 받는 정도가 아니라 증폭해서 받습니다.
2024년과 2026년 상반기를 비교하면 그 증폭이 보입니다. 매출이 연간 4,094억원에서 반기 1,148억원 수준으로 줄어드는 사이 영업이익은 972억원 흑자에서 56억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매출이 줄어든 폭보다 이익이 줄어든 폭이 훨씬 크고,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을 유지된 개발비가 설명합니다.
📌 그래서 무엇으로 판별할 것인가 — 두 번째 축이 매출로 서는가 이 회사의 판별식은 기술 목록도 분기 매출도 아닙니다. 세계 최초 기술의 수는 이미 대단하고 그 목록이 늘어난다고 매출이 늘지는 않습니다. 분기 매출은 3절 ④에서 본 대로 한 축의 투자 사이클을 그대로 그린 곡선이라 회사의 실력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반도체 말고 두 번째 축에서 매출이 서기 시작하는가. 이 회사가 세 시장을 준비하며 치르고 있는 비용이 자산으로 바뀌는 지점이 거기이기 때문입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디스플레이나 태양전지 갈래의 매출이 연속된 두 기간 이상 잡히는가 — 한 번의 납품은 우연일 수 있고 이어져야 시장이 열린 것입니다. 둘째, 수주잔고의 구성이 반도체 밖으로 넓어지는가 — 잔고는 매출보다 먼저 움직이므로 이 변화가 손익보다 몇 분기 앞서 나타납니다. 셋째, 매출이 회복될 때 영업이익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 개발비가 고정적이므로 매출이 늘면 이익률은 빠르게 회복돼야 정상이고, 그 회복의 높이가 이 회사의 구조가 여전히 유효한지를 알려줍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주성엔지니어링을 둘러싼 큰 그림
한 회사를 이해하려면 누구와 싸우고 누구에게 팔며 누구에게 기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회사의 지도에는 특징이 둘 있습니다. 경쟁 상대가 산업마다 다르다는 점이 하나이고, 고객이 세 산업에 흩어져 있는데 그 가운데 실제로 주문을 넣고 있는 곳은 한 산업뿐이라는 점이 다른 하나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나스닥 AMAT] · 도쿄일렉트론 [일본 도쿄 8035]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들로 증착 분야에서도 가장 넓은 제품군을 갖고 있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장비 시장이 소수 과점이라고 정리했는데 그 정점에 있는 회사들이고, 이 회사가 세계 최초 기술로 자리를 만들어온 과정이 곧 이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를 조금씩 가져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 원익IPS [코스닥 240810] 소부장 히어로즈 ③편에서 다룬 국내 경쟁사입니다. 같은 ALD 계열 장비를 만들고 같은 고객의 같은 공정 자리를 두고 겨루는데, 4절에서 본 대로 매출이 어느 고객의 어느 투자에 걸려 있는지가 달라 같은 업황에서 실적이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두 편을 나란히 읽을 때 남는 것이 이 대비입니다.
- 중국 반도체·태양광 장비 기업군 [중국] 자국 산업의 성장과 정부 지원을 발판으로 장비 국산화를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 회사가 중국 현지 법인을 두고 오래 영업해온 시장인데, 2절에서 본 해외 매출의 감소에는 고객사 투자 축소뿐 아니라 이런 흐름도 함께 작용하는 것으로 업계는 봅니다.
🤝 핵심 고객사
- 국내 메모리 제조사 [코스피 상장] 회사는 고객 이름을 공시에 적지 않지만 연혁에 장비 공급계약이 여러 건 기재돼 있습니다. 반도체 앵커기업 ②편에서 다룬 회사로, 2절에서 본 국내 매출의 증가가 이 고객의 국내 투자 재개와 맞물려 있습니다.
- 해외 반도체 제조사군 [글로벌] 2024년 해외 매출 3,495억원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다만 회사가 밝힌 대로 이 지역 구분은 고객사의 투자 위치를 따르므로, 해외 매출이 줄었다는 것이 해외 고객을 잃었다는 뜻과 같지는 않습니다.
- 태양전지·디스플레이 제조사군 [글로벌] 이 회사가 장비를 갖추고 있으나 지금은 주문이 거의 없는 고객군입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이 두 갈래가 다시 열리는지가 이 회사의 다음 몇 년을 정하는데, 그 판단은 이 고객들의 투자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국내 부품·가공 협력사군 [코스닥 상장 및 비상장] 이 회사의 원재료 매입은 알루미늄 가공품이 33.8%, 위탁 생산 장비가 23.5%, 위탁 생산 부품이 16.5%, 전기전자 부품이 13.5%로 구성됩니다. 장비 한 대가 팔릴 때 그 뒤로 여러 국내 기업의 매출이 함께 발생하는 구조이고, 반대로 이 회사의 수주가 비면 그 영향도 함께 전달됩니다.
- 소부장 히어로즈의 다른 회사들 [코스닥 상장] HPSP(①)는 이 회사 장비가 쌓아준 막의 계면 결함을 다스리는 열처리 장비를 만들고, 리노공업(②)은 그렇게 만들어진 칩을 검사하는 부품을 만들며, 원익QnC(⑦)는 챔버 안에서 쓰이는 석영 부품을 만듭니다. 같은 라인 위에서 순서를 나눠 맡고 있는 셈이며, 이 회사는 그중 쌓는 자리에 있습니다.
- 국내 연구기관·정부 과제 [비영리·공공] 회사의 연구개발비 항목에는 국고보조금이 차감 형태로 잡혀 있습니다. 세계 최초 기술을 표방하는 개발 과제의 일부가 공공 재원과 함께 진행돼왔다는 뜻이고, 3절 ⑤에서 본 개발비의 실제 부담을 볼 때 이 항목을 함께 보셔야 합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경쟁은 산업마다 다른 상대와 벌어지고, 고객은 세 산업에 흩어져 있는데 지금 주문을 넣는 곳은 한 산업뿐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의 준비 상태뿐이고, 그 준비가 매출이 되는 시점은 세 산업의 투자 결정이 정합니다. 4절에서 세운 판별식이 기술 목록이 아니라 두 번째 축의 매출을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에서 본 구조가 실제 숫자에 어떻게 찍히는지 보겠습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감소의 크기가 아니라, 매출이 줄어드는 동안 비용이 함께 줄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구분 | 매출 | 영업이익 | 비고 |
| 2024년(확정) | 4,094억원 | 972억원(영업이익률 23.7%) | 매출총이익 2,490억원(60.8%). 연구개발비 942억원(매출 대비 23.0%). 반도체 3,497억원·디스플레이 597억원. 국내 599억원·해외 3,495억원 |
| 2025년(확정) | 3,107억원(YoY −24.1%) | 313억원(YoY −67.8%, 영업이익률 10.1%) | 매출총이익 1,773억원(57.1%). 연구개발비 1,069억원(34.4%). 반도체 3,037억원·디스플레이 70억원. 국내 1,098억원·해외 2,009억원 |
| 2026년 상반기(확정, 1~6월 누적) | 1,148억원(YoY −42.5%) | −56억원(전년 동기 405억원 흑자) | 매출총이익 589억원(51.3%). 연구개발비 453억원(39.5%). 반도체 1,126억원·디스플레이 22억원. 국내 785억원·해외 363억원. 2분기만 떼면 영업이익 14억원으로 흑자 전환 |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지역별 매출의 국내와 해외는 고객사의 소재지가 아니라 고객사가 투자한 공장의 위치를 기준으로 나뉩니다. 회사가 공시에 그 사실과 함께 실제 고객사별 매출 현황은 이와 다를 수 있다고 밝혀두었습니다. 해외 매출이 줄었다는 사실을 해외 고객을 잃은 것으로 읽으면 어긋납니다. 연구개발비는 국고보조금을 차감한 순액입니다. 회사가 실제로 집행한 총액은 이보다 크고, 그 차액만큼을 공공 재원이 부담했다는 뜻입니다. 개발 강도를 볼 때는 순액을, 회사가 감당한 부담을 볼 때도 순액을 보시되 총액과의 차이가 있다는 점은 알고 계셔야 합니다. 2026년 2분기만 떼면 영업이익 14억원으로 흑자입니다. 다만 상반기 누적으로는 여전히 적자이고, 이 흑자 전환을 회복의 신호로 읽으려면 3절 ④에서 본 대로 매출이 어느 축에서 나왔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같은 축에서 나온 회복은 그 축의 투자 사이클이 계속되는 동안만 이어집니다.
표에서 먼저 볼 곳은 매출과 이익이 줄어든 속도의 차이입니다. 2025년 매출은 24.1% 줄었는데 영업이익은 67.8% 줄었습니다. 2026년 상반기에는 매출이 42.5% 줄면서 영업손익이 흑자에서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매출이 줄어든 폭보다 이익이 줄어든 폭이 훨씬 크고, 그 차이를 만든 것이 줄지 않은 비용입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연구개발비의 절대액입니다. 2024년 942억원에서 2025년 1,069억원으로 오히려 늘었습니다. 매출이 24% 줄어든 해에 개발비를 13% 늘린 것입니다. 그 결과 매출 대비 비율이 23.0%에서 34.4%로 뛰었고 2026년 상반기에는 39.5%가 됐습니다. 3절 ⑤에서 본 대로 세 시장의 다음 세대를 계속 준비하기로 한 선택이 이 두 줄에 그대로 있습니다.
세 번째는 매출총이익률입니다. 60.8%에서 57.1%, 다시 51.3%로 내려왔습니다. 파는 물건의 값어치 자체는 여전히 높지만 방향이 아래를 향하고 있는데, 물량이 줄면서 고정적으로 들어가는 제조 비용이 개당으로 무거워진 영향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다만 51.3%라는 수치는 여전히 장비 기업으로서 낮지 않고, 이 회사의 적자가 값을 깎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는 근거이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표에 없는 것을 봐야 합니다. 지금 쓰고 있는 개발비가 세 갈래 가운데 어디에 얼마씩 들어가는지는 공시되지 않습니다. 반도체의 다음 세대에 쓰인 것인지 태양전지나 디스플레이의 아직 열리지 않은 시장에 쓰인 것인지가 이 회사를 판단하는 데 결정적인데, 재무제표로는 나뉘지 않습니다. 4절 판별식이 개발비의 크기가 아니라 두 번째 축의 매출을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그 답은 비용이 아니라 결과로만 나옵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여기까지가 이 회사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반대편입니다. 분기 하나의 악재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위험을 층위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매출이 한 축에 몰려 있다는 점입니다. 3절 ④에서 본 대로 세 시장을 가졌지만 실제 매출은 반도체 한 갈래에서 나옵니다. 그 갈래의 고객 투자가 줄면 대체할 곳이 없고, 2026년 상반기가 그 국면이었습니다. 다각화가 장부상으로는 되어 있는데 손익에서는 작동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둘째, 비용이 사이클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매출은 고객의 투자를 따라 줄어드는데 연구개발비는 오히려 늘었습니다. 세 시장을 놓지 않기로 한 선택의 결과인데, 그 선택이 손익의 진폭을 증폭시킵니다. 업황이 길게 나빠지면 적자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재무 여건의 변화입니다. 이 회사의 기업신용등급은 2025년까지 A-였다가 2026년 들어 BBB+로 낮아졌습니다. 신용등급은 채무 이행 능력에 대한 평가이므로 사업 경쟁력과 직접 이어지지는 않지만, 자금을 조달할 때의 조건에 영향을 줍니다. 개발비를 계속 감당해야 하는 회사에게 이 변화는 가볍지 않습니다.
넷째, 지역 구성의 변화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해외 비중이 85.4%에서 31.6%로 낮아졌습니다. 회사 설명대로 이것이 고객사의 투자 위치 변화라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이 회사의 매출이 특정 지역의 투자에 더 집중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사실은 남습니다. 그리고 5절에서 본 대로 그 지역 밖에서는 자국 장비 기업의 부상이라는 흐름도 함께 있습니다.
다섯째, 열리지 않는 시장의 값입니다. 태양전지 갈래는 세 해 내내 사실상 매출이 없었습니다. 회사가 내세우는 차세대 방식이 상용화되면 큰 시장이지만, 그 시점을 이 회사가 정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들어간 개발비는 회수되지 않은 채 쌓여 있고, 시장이 끝내 다른 기술로 열리면 그 비용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섯째, 창업주 중심의 지배구조입니다. 창업주가 최대주주로 특수관계인을 합쳐 30% 안팎을 보유하고 있고 오랫동안 경영을 이끌어왔습니다. 기술 중심의 장기 투자를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이면서, 동시에 그 판단에 대한 견제가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매출이 줄어드는 국면에서 개발비를 늘리는 결정이 가능했던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세 가지 해석
사실을 정리했으니 이제 해석입니다. 주성엔지니어링을 통해 이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① 다각화는 갈래의 수가 아니라 매출의 분포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 회사는 세 산업의 장비를 만듭니다. 사업 구성만 보면 잘 분산된 회사인데, 매출을 보면 한 갈래가 98%입니다. 세 시장을 가졌다는 사실이 실적을 안정시켜주지 못했고 오히려 준비 비용만 늘렸습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다각화를 볼 때는 사업부가 몇 개인지가 아니라 각 사업부에서 실제로 매출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봐야 합니다. 그리고 두 갈래 이상에서 매출이 나온다면 그 갈래들의 사이클이 서로 어긋나는지, 아니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면 갈래가 여럿이어도 분산이 아닙니다.
이 시리즈에서 다룬 회사들 가운데도 비슷한 구도가 있었습니다. 소부장 히어로즈 ③편의 원익IPS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두 갈래를 갖고 있는데 두 산업의 투자 시점이 어긋나 완충이 됐습니다. 같은 다각화가 한 회사에서는 작동하고 다른 회사에서는 작동하지 않은 이유가 갈래의 수가 아니라 그 갈래들이 실제로 돌고 있는지에 있었습니다.
② 세계 최초라는 말은 시점을 말할 뿐 크기를 말하지 않습니다
이 회사의 세계 최초 기술 27개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인 원자층증착 양산 기술은 지금 반도체 산업 전체가 쓰는 방식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 기술을 처음 만든 회사가 그 시장에서 가장 큰 회사가 되지는 않았습니다.
기술을 처음 만드는 것과 그 기술이 만든 시장을 갖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앞의 것은 개발의 문제이고 뒤의 것은 고객이 그 회사에 계속 주문을 넣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뒤의 것은 기술만이 아니라 생산 능력, 대응 속도, 고객과의 관계, 재무 여력이 함께 정합니다.
그래서 세계 최초나 세계 유일이라는 표현을 만나면 한 가지를 더 물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 그 기술이 열어놓은 시장에서 이 회사의 몫이 얼마나 되는가. 소부장 히어로즈 ①편의 HPSP에서는 유일함이 값은 지켜주되 물량은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봤는데, 이 편은 그보다 한 걸음 앞선 질문입니다 — 처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그 시장을 갖게 해주지는 않습니다.
③ 개발비는 줄일 수 없을 때 가장 위험합니다
3절 ⑤와 6절에서 본 것이 이 편에서 가장 낯선 사실일 수 있습니다. 매출이 24% 줄어든 해에 이 회사는 개발비를 13% 늘렸습니다. 이듬해 상반기에는 매출 대비 비율이 39.5%까지 올랐습니다. 그 결과가 영업적자입니다.
이 선택을 무모하다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장비 산업에서는 다음 세대 준비를 멈추면 그 세대에 참여할 수 없고, 한 세대를 건너뛰면 그다음에 돌아가기가 훨씬 어렵습니다. 문제는 그 논리가 세 시장에 동시에 적용될 때입니다. 갈래가 셋이면 준비해야 할 다음 세대도 셋이고, 그중 둘이 열리지 않으면 그 비용은 회수되지 않은 채 쌓입니다.
그래서 연구개발비 비율이 높다는 사실을 볼 때는 그 비용이 무엇을 겨냥하는지와 함께, 그 겨냥이 몇 갈래인지를 봐야 합니다. 한 갈래에 집중된 높은 개발비는 그 갈래가 열리면 회수되지만, 여러 갈래로 나뉜 높은 개발비는 전부가 열려야 회수됩니다. 그리고 그 열림의 시점은 대개 그 회사가 정하지 않습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특정 날짜의 일정을 나열하는 대신,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네 가지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남깁니다.
첫째, 반도체 말고 두 번째 축에서 매출이 연속으로 잡히는가. 4절 판별식의 첫 확인 지점입니다. 회사가 반기·사업보고서에서 제조장비별 매출을 반도체·태양전지·디스플레이로 나눠 밝히므로 세 줄을 나란히 놓기만 하면 됩니다. 한 기간의 납품은 우연일 수 있고 두 기간 이상 이어져야 시장이 열린 것입니다.
둘째, 수주잔고의 구성이 넓어지는가. 잔고는 매출보다 먼저 움직이므로 손익보다 몇 분기 앞서 신호를 줍니다. 2절에서 본 디스플레이 잔고처럼 아직 납품되지 않은 항목이 늘어나는지, 그리고 그것이 실제 납품으로 이어지는지를 함께 보시면 됩니다.
셋째, 매출이 회복될 때 영업이익률이 어디까지 올라가는가. 3절 ⑤에서 본 대로 개발비가 대체로 고정적이므로 매출이 늘면 이익률은 빠르게 회복돼야 정상입니다. 회복의 높이가 과거 수준에 못 미친다면 개발비 부담이 그만큼 더 무거워졌거나 값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넷째, 개발비의 절대액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가. 이것이 이 회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매출이 줄어든 해에 늘렸던 이 숫자가 어느 시점에 눈에 띄게 줄어든다면, 손익이 좋아진다는 신호이면서 동시에 세 갈래 가운데 하나를 놓기로 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그다음에 제조장비별 매출이 어떻게 나뉘는지에서 드러납니다.
10. 마무리하며
주성엔지니어링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원자 단위로 막을 쌓는 하나의 기술을 반도체와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 세 산업에 각각 팔되, 세 시장의 투자 시점이 겹치지 않아 늘 한 축에서만 매출이 나오는 회사입니다. 세계 최초 기술 27개가 그 기술의 깊이를 보여주고, 2026년 상반기 매출의 98%가 한 갈래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그 구조의 값입니다.
이 편에서 확인한 것은 그 둘이 별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반도체와 태양전지와 디스플레이는 모두 평평한 기판 위에 막을 쌓아 만드는 산업이라 하나의 기술이 셋에 다 쓰입니다. 그런데 셋의 투자는 각자의 이유로 정해지므로 동시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 시장을 가졌다는 사실이 분산이 되지 못했고, 대신 세 시장의 다음 세대를 모두 준비해야 하는 비용만 남았습니다. 매출이 24% 줄어든 해에 개발비를 13% 늘린 선택이 그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앞 편의 원익IPS와 나란히 놓으면 그 구조가 더 분명해집니다. 두 회사는 같은 계열의 장비를 만들고 같은 고객의 같은 자리를 두고 겨루는데, 2024년에는 이 회사가 크게 앞섰고 2026년 상반기에는 정반대가 됐습니다. 기술의 우열이 뒤집힌 것이 아니라 매출이 붙어 있던 자리가 달랐을 뿐입니다. 장비 회사를 볼 때 기술 목록보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두 편이 함께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세계 최초 기술이 몇 개인가가 아니라, 반도체 말고 두 번째 축에서 매출이 서기 시작하는가입니다. 그 답이 나오는 순간 지금의 비용은 자산이 되고, 나오지 않으면 계속 비용으로 남습니다.
소부장 히어로즈 시리즈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반도체 제조와 후공정을 떠받치는 국내 기업 가운데 아직 다루지 않은 곳이 여럿이고, 새로 자리를 잡는 회사도 계속 나옵니다. 다음에 어느 회사를 다루든 이 시리즈에서 반복해 확인한 질문은 같습니다 — 이 회사가 서 있는 자리는 누가 넘긴 자리인가, 그리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년 무엇을 치르고 있는가.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실적·점유율·목표주가 등은 각 증권사·시장조사기관의 추정치를 포함하고 있으며, 확정된 사실과 전망을 구분해 판단하시기 바랍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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