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회사의 2026년 상반기 매출총이익률은 48.2%입니다. 물건을 만들어 팔면서 절반 가까이 남긴다는 뜻이니 꽤 좋은 장사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7.6%였습니다. 그 사이 40%포인트가 어디로 갔는지를 보면 이 회사의 성격이 드러납니다. 판매관리비가 18.5%이고 연구개발비가 22.1%입니다. 벌어들인 마진의 절반 가까이를 다음 세대 장비를 만드는 데 다시 넣고 있습니다. 심지어 영업적자를 냈던 2023년에도 매출의 23.8%에 해당하는 1,646억원을 연구개발에 썼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증착을 깎고 쌓고 확인하기를 수백 번 반복하는 과정의 한 축으로 소개했는데, 그 한 축을 맡은 회사가 왜 이런 손익 구조를 갖게 됐는지가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
1. 왜 지금 원익IPS인가 — 쌓는 일을 맡은 자리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제조 공정을 정리하며 증착을 짚어뒀습니다. 웨이퍼 위에 필요한 막을 입히는 일인데, 가스를 반응시켜 얇게 들러붙게 하는 방식이 오래된 방법이고 거기서 한 단계 더 정밀해진 것이 원자층증착이라고 했습니다. 원자 한 층이 표면을 고르게 덮으면 반응이 스스로 멈추도록 설계해 두께를 원자 단위로 끊어가며 쌓는 방식이고,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이 방식의 비중이 커진다고 덧붙였습니다.
원익IPS가 그 장비를 만드는 국내 대표 기업입니다. 원자층증착과 플라스마를 쓰는 화학기상증착, 그리고 열처리 계열 장비를 함께 만들고, 반도체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도 같은 공장에서 생산합니다.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에 오래 공급해왔고 SK하이닉스로도 고객을 넓혀왔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지금 봐야 하는 이유는 시장 지위가 아니라 손익 구조에 있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이 40%대 후반인데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입니다. 그 차이의 절반 이상이 연구개발비이고, 그 비율이 적자를 낸 해에도 20%대를 유지했습니다. 회사가 이익을 못 내는 것이 아니라 이익으로 잡힐 돈을 다음 세대 장비에 먼저 넣고 있다는 뜻인데, 왜 그래야 하는지가 이 편이 붙잡고 갈 구조입니다.
소부장 히어로즈 앞선 두 편과 나란히 놓으면 결이 보입니다. HPSP는 세계에서 유일한 자리를 지키며 영업이익률 50%를 내고, 리노공업은 주문마다 새로 만드는 부품으로 40%대 후반을 냅니다. 둘 다 좁은 자리를 오래 지켜온 강소기업인데, 이 회사는 같은 소부장이면서 손익의 모양이 전혀 다릅니다. 마진은 두텁게 남기는데 그 마진이 이익으로 남지 않습니다. 같은 시리즈 안에서 이 대비가 무엇을 뜻하는지가 이 편에서 확인할 것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이 편이 묻는 것은 셋입니다. 원자 단위로 막을 쌓는 장비에서 무엇이 승부처인가, 왜 개발이 발주보다 먼저 끝나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그 개발비가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돌아오는가.
원익IPS, 한눈에 보기
📌 기본 정보 티커: 코스닥 240810 | 설립: 원익 계열의 반도체 장비 사업에서 출발해 2016년 분할로 현재 법인 체제를 갖춤 | 사업 구성: 단일 사업부문이며 반도체·디스플레이 제조 장비가 매출의 80%대, 부품과 기술용역이 나머지 | 생산 구조: 경기도 평택에 본사와 연구개발 통합센터를 두고 전량 주문 생산하며 설치와 사후 서비스까지 직접 수행 | 지배구조: 원익홀딩스를 정점으로 하는 원익 계열에 속함 | 시장 내 위치: 원자층증착과 플라스마 화학기상증착 장비에서 국내 대표 기업이며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사의 최선단 공정에 공급 | 한 줄 정체성: 웨이퍼 위에 원자 단위로 막을 쌓는 장비를 고객의 다음 공정 세대가 확정되기 전에 미리 개발해두고, 그 개발비를 매년 매출의 20% 안팎으로 감당하는 회사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이 회사는 공시상 단일 사업부문입니다. 한 사업장에서 같은 설비와 인력으로 만들기 때문에 부문을 나누는 것이 현실적이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대신 장비의 성격과 고객이 속한 산업으로 나눠 보면 구조가 드러납니다. 무엇을 만들어 누구에게 파는지, 그리고 그 매출이 언제 잡히는지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무엇을 만드는가 — 반도체 장비와 디스플레이 장비
첫째 갈래는 반도체 제조용 장비입니다. 플라스마를 이용한 화학기상증착, 원자층증착, 그리고 웨이퍼를 가열해 처리하는 확산 열처리 계열이 여기 들어갑니다. 웨이퍼 위에 막을 쌓거나 열로 다스리는 전공정 장비들입니다.
둘째 갈래는 디스플레이 제조용 장비입니다. 건식 식각기와 레이저 드릴러, 화학기상증착, 그리고 저온 폴리실리콘 공정용 열처리 장비 등입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는 다른 산업이지만 웨이퍼 대신 유리 기판을 다룬다는 차이가 있을 뿐 막을 쌓고 깎는 원리는 이어집니다. 같은 공장에서 같은 인력으로 만들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두 갈래를 합친 제품 매출이 2026년 상반기 3,119억원으로 전체의 81.8%였습니다. 나머지 18.2%인 695억원은 이미 팔린 장비에 들어가는 부품과 기술용역입니다. 이 비중이 2024년 12.4%, 2025년 13.5%, 2026년 상반기 18.2%로 올라왔는데, 현장에 설치된 장비가 그만큼 늘었다는 뜻이면서 동시에 신규 장비 매출이 상대적으로 덜 늘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누구에게 파는가 — 국내가 7할
사가는 쪽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대형 제조사들입니다. 회사는 고객 이름을 공시에 적지 않지만, 업계에서는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사와 그 계열 디스플레이 회사를 오랜 주력 고객으로 보고 다른 국내 메모리 회사로도 공급이 넓어졌다고 봅니다.
지역별로 보면 국내 비중이 높습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3,814억원 가운데 국내가 2,805억원으로 73.6%였고 해외가 1,009억원으로 26.4%였습니다. 다만 해외 비중은 늘어왔습니다. 2024년에는 7,482억원 중 해외가 1,787억원으로 23.9%였고 2025년에는 9,098억원 중 2,650억원으로 29.1%였습니다. 미국과 중국, 싱가포르에 현지 법인을 두고 영업망을 넓혀온 결과입니다.
파는 방식은 직접 판매입니다. 국내든 해외든 대리점을 거치지 않고 회사가 직접 팔고, 설치와 보증기간 서비스, 보증 종료 후 서비스, 부품 판매까지 모두 직접 합니다. 앞에서 본 부품·기술용역 매출이 여기서 나옵니다.
매출은 언제 잡히는가 — 수주와 인도 사이
이 회사는 재고를 쌓아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전량 주문을 받은 뒤에 만듭니다. 고객의 요구에 따라 사양이 바뀌고 장비 안에 들어가는 챔버의 구성도 달라져서, 같은 이름의 장비라도 값이 다릅니다. 회사가 제품 가격 변동 추이를 공시하지 않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그래서 수주와 매출 사이에 시차가 있습니다. 회사는 수주 상황을 장비 인도 기준으로 작성한다고 밝히고 있는데, 2026년 상반기 말 기준 수주총액이 1조 1,974억원, 이미 납품한 금액이 5,628억원, 남은 수주잔고가 6,346억원입니다. 이 잔고는 반기 매출의 1.7배에 해당합니다. 계약을 따냈다는 소식과 그 돈이 실적으로 잡히는 시점이 몇 분기 떨어져 있다는 뜻이고,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소부장 뉴스를 볼 때 개발 성공과 양산 적용을 구분하라고 한 것과 같은 종류의 시차가 여기서도 작동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장비 회사의 수주잔고를 읽는 법 수주잔고는 계약은 됐지만 아직 인도하지 않은 금액입니다. 앞으로 들어올 매출을 미리 보여주는 장부라는 점에서 장비 회사를 볼 때 가장 유용한 숫자입니다. 다만 두 가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첫째는 잔고가 몇 분기 치인가입니다. 반기 매출의 1.7배라면 대략 세 분기 남짓의 일감이 확보돼 있다는 뜻인데, 이 배수가 커지면 앞으로 매출이 늘고 작아지면 반대입니다. 둘째는 잔고가 늘어난 이유입니다. 새 계약이 들어와서 늘 수도 있고, 인도가 밀려서 늘 수도 있습니다. 앞은 좋은 신호이고 뒤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서 잔고 숫자 하나만 보는 대신 매출과 함께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잔고가 늘면서 매출도 늘면 사이클이 올라오는 중이고, 잔고만 늘고 매출이 제자리면 인도가 지연되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증착 장비의 경쟁력은 흔히 얼마나 얇게 쌓을 수 있느냐로 요약됩니다. 그런데 원자 한 층씩 쌓는다는 원리 자체는 공개돼 있고 논문도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 장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세계적으로 손에 꼽을 만큼 적을까요. 답은 원리가 아니라 그 원리를 웨이퍼 수백 장에 매번 똑같이 재현하는 데 있고, 그 재현이 벌어지는 장소가 챔버라는 밀폐된 방입니다. 막을 쌓는다는 일이 실제로 무엇인지(①), 원자 한 층씩 쌓는다는 것의 조건(②), 왜 챔버가 승부처인지(③), 왜 개발이 발주보다 먼저 끝나 있어야 하는지(④), 그 개발비가 손익에 어떻게 나타나는지(⑤), 그리고 같은 기술이 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이유(⑥)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① 막을 쌓는다는 일
반도체는 웨이퍼 위에 서로 다른 성질의 막을 층층이 쌓아 만듭니다. 전기가 통하는 막, 통하지 않는 막, 어떤 물질이 스며드는 것을 막아주는 막이 각각의 자리에 필요한 두께로 놓여야 합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깎고 쌓고 확인하기를 수백 번 반복한다고 한 그 쌓기가 증착이고, 이 회사가 만드는 장비가 하는 일입니다.
쌓는 방법은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재료를 물리적으로 떼어내 웨이퍼에 날려 붙이는 방식이고, 다른 하나는 가스를 흘려보내 웨이퍼 표면에서 화학 반응을 일으켜 그 결과물이 들러붙게 하는 방식입니다. 이 회사의 주력은 뒤쪽인데, 여기에 플라스마를 더하면 낮은 온도에서도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미 만들어둔 회로를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막을 쌓아야 하므로 온도를 낮추는 일이 갈수록 중요해졌고, 그래서 플라스마를 쓰는 화학기상증착이 널리 쓰입니다.
그런데 이 방식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가스를 흘려보내는 동안 반응이 계속되므로 두께가 시간과 가스 양에 따라 정해지는데, 웨이퍼 위 모든 지점에서 조건이 똑같지는 않습니다. 특히 요즘 반도체처럼 깊은 구멍이나 좁은 골이 파여 있으면 입구 쪽은 두껍게 쌓이고 바닥은 얇게 쌓입니다. 회로가 미세해질수록 이 편차가 문제가 됩니다.
② 원자 한 층씩 쌓는다는 것의 조건
그 문제를 푼 방식이 원자층증착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설명한 대로 원자 한 층이 표면을 고르게 덮으면 반응이 스스로 멈추도록 설계해 두께를 원자 단위로 끊어가며 쌓습니다. 여기서 짚어둘 것은 그 자기제한이라는 성질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은 이렇습니다. 먼저 첫 번째 가스를 흘려보내 표면에 한 겹만 붙게 하고, 남은 가스를 완전히 빼냅니다. 그다음 두 번째 가스를 넣어 붙어 있던 층과 반응시켜 원하는 막을 만들고, 다시 완전히 빼냅니다. 이 네 단계가 한 주기이고, 한 주기에 원자 한 층이 쌓입니다. 백 층을 쌓으려면 이 주기를 백 번 반복해야 합니다.
여기서 두 가지가 동시에 어렵습니다. 첫째, 사이사이의 빼내기가 완전해야 합니다. 첫 번째 가스가 남아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가스가 들어오면 공중에서 반응해버려 표면이 아니라 가루가 생깁니다. 그러면 자기제한이 깨지고 두께 조절도 무너집니다. 둘째, 그렇다고 빼내는 데 시간을 넉넉히 쓰면 한 주기가 길어집니다. 백 번 반복하는 공정에서 한 주기가 1초 늘면 전체가 100초 늘어나고, 장비 한 대가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웨이퍼 수가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러니까 이 장비의 승부처는 얇게 쌓는 능력이 아니라 가스를 얼마나 빨리 넣고 얼마나 깨끗하게 빼내느냐입니다. 정밀도와 생산성이 같은 변수의 앞뒤에 걸려 있고, 둘 다를 만족시키는 지점을 찾는 일이 이 회사가 하는 일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 페인트를 붓는 대신 스티커를 한 장씩 붙이기 벽에 정확히 정해진 두께로 칠을 하려고 합니다. 페인트를 부어 바르면 빨리 끝나지만 두께가 고르지 않고, 구석이나 홈 안쪽은 얇아집니다. 앞의 방식이 그것입니다. 원자층증착은 대신 아주 얇은 스티커를 한 장씩 붙이는 방식입니다. 스티커는 빈 자리에만 붙고 이미 붙은 자리에는 겹쳐 붙지 않도록 만들어져 있어, 벽 전체가 한 겹 덮이면 더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석이든 홈 안쪽이든 두께가 똑같습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한 겹 붙일 때마다 남은 스티커와 접착제를 완전히 치워야 다음 겹이 제대로 붙습니다. 치우는 일을 대충 하면 뭉치고, 꼼꼼히 하면 시간이 걸립니다. 백 겹을 붙여야 한다면 이 치우는 시간이 전체 공정 시간을 정합니다.
③ 그래서 챔버가 승부처입니다
②의 조건들은 전부 하나의 장소에서 결정됩니다. 웨이퍼가 들어가 공정이 벌어지는 밀폐된 방, 챔버입니다. 가스가 어느 방향에서 들어와 어떻게 퍼지는지, 남은 가스가 어디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 웨이퍼 표면의 온도가 가장자리와 가운데에서 같은지, 플라스마가 고르게 만들어지는지가 모두 챔버의 모양과 내부 구조로 정해집니다.
이 회사가 공시한 주요 원재료를 보면 그 사실이 드러납니다. 웨이퍼를 데우는 히터, 웨이퍼를 옮기는 이송 모듈, 플라스마를 만드는 발생기, 가스 유량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제어기가 매입액의 상위를 차지합니다. 전부 챔버 안팎에서 조건을 만드는 부품들입니다. 회사가 고객의 요구에 따라 장비별 챔버 구성이 바뀌어 같은 제품이라도 값이 다르다고 설명하는 것도 여기서 나옵니다 — 파는 단위가 장비 한 대라기보다 챔버 몇 개짜리 구성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후발주자가 겪는 어려움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원리는 알려져 있고 부품도 살 수 있는데, 그 부품들을 어떤 배치로 놓았을 때 웨이퍼 전면에서 균일한 결과가 나오는지는 만들어보고 돌려보며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의 공정 조건이 바뀌면 그 답도 바뀝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장비 시장이 소수 과점이 되는 이유로 짚은 순환이 이 회사에서는 챔버 설계의 축적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④ 발주는 개발이 끝난 뒤에 옵니다
여기까지가 기술 이야기라면, 다음은 그 기술이 언제 만들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편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입니다.
반도체 제조사가 새 공정 세대로 넘어갈 때는 먼저 그 공정을 개발합니다. 어떤 구조로 만들지, 각 단계에서 어떤 막을 얼마나 쌓을지를 정하는 과정인데, 이때 장비 회사가 함께 들어갑니다. 제조사가 요구하는 조건을 낼 수 있는 장비를 시험용으로 만들어 넣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지 확인하고, 조건을 바꿔가며 맞춰봅니다. 이 과정을 통과한 장비만 나중에 양산 라인 발주 대상이 됩니다.
그러니까 순서가 이렇습니다. 개발 → 평가 → 채택 → 발주 → 인도 → 매출. 발주가 나오는 시점에는 이미 개발이 끝나 있어야 하고, 그 개발에 들어간 돈은 발주가 확정되기 훨씬 전에 지출됩니다. 발주가 난 뒤에 개발을 시작하면 그 세대에는 아예 참여할 수 없습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고객의 다음 세대가 언제 올지, 그때 어떤 조건을 요구할지를 장비 회사가 완전히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 방향을 동시에 준비해두게 되고, 그중 일부는 결국 쓰이지 않습니다. 개발비가 크게 들어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채택된 것에만 쓴 돈이 아니라 채택되지 않은 것에 쓴 돈까지 포함돼 있습니다.
⑤ 그 개발비가 손익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④의 구조가 이 회사의 손익계산서를 그대로 설명합니다. 이 회사는 연구개발비를 판매관리비 안에 묻지 않고 경상연구개발비라는 별도 항목으로 표시하는데, 그 금액이 2024년 1,562억원, 2025년 1,675억원, 2026년 상반기 843억원입니다. 매출 대비 비율로는 20.9%, 18.4%, 22.1%입니다.
이 비율이 왜 중요한지는 매출총이익률과 나란히 놓으면 보입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총이익률이 48.2%였는데 영업이익률은 7.6%였습니다. 그 사이를 판매관리비 18.5%와 연구개발비 22.1%가 채웁니다. 즉 물건을 만들어 남긴 마진의 절반 가까이가 다음 세대 장비 개발로 들어갑니다.
더 눈여겨볼 것은 이 지출이 실적과 무관하게 유지된다는 점입니다. 2023년 이 회사는 181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는데, 그해에도 연구개발비로 1,646억원을 썼습니다. 매출의 23.8%입니다. 업황이 나빠 고객이 투자를 미루면 매출은 줄지만, 그렇다고 다음 세대 개발을 멈출 수는 없습니다. 멈추면 업황이 돌아왔을 때 발주 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의 이익률이 사이클에 따라 크게 출렁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매출은 사이클을 따라가는데 가장 큰 비용 항목은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 영업이익률이 낮다는 사실을 경쟁력이 약하다는 뜻으로 읽으면 대체로 틀립니다. 매출총이익률이 이미 이 회사가 파는 물건의 값어치를 보여주고 있고,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일은 지금의 이익을 다음 세대의 자리와 바꾸는 선택입니다. 다만 그 선택이 옳았는지는 몇 년 뒤 수주로만 확인됩니다.
⑥ 같은 기술이 디스플레이로 이어지는 이유
마지막으로 이 회사가 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장비를 함께 만드는지를 짚어두겠습니다. 두 산업은 최종 제품이 전혀 다르지만 공정의 뼈대가 겹칩니다. 디스플레이도 유리 기판 위에 막을 쌓고 깎아 회로를 만들고, 그 회로가 화소를 켜고 끕니다. 반도체가 실리콘 웨이퍼 위에서 하는 일을 유리 위에서 하는 셈입니다.
그래서 챔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의 종류가 같습니다. 가스를 흘려 막을 쌓고, 플라스마로 온도를 낮추고, 열로 재료의 성질을 바꿉니다. ③에서 본 챔버 설계의 축적이 그대로 옮겨가고, 회사가 한 사업장에서 같은 설비와 인력으로 만든다고 공시에 적은 것도 그 때문입니다.
다만 두 산업의 투자 시점은 겹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도체 제조사가 증설할 때 디스플레이 제조사도 증설한다는 보장이 없고, 오히려 어긋나는 편이 흔합니다. 이 회사에게 이것은 완충이면서 동시에 부담입니다 — 한쪽이 비면 다른 쪽이 메워줄 수 있지만, 두 산업의 다음 세대를 모두 준비해둬야 하므로 ④에서 본 개발 부담이 두 배로 걸립니다. 2절에서 본 연구개발비의 크기에는 이 사정도 들어 있습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3절을 정리하면 이 회사의 우위는 세 겹입니다. 첫째, 챔버 안에서 가스와 온도와 플라스마의 조건을 균일하게 만드는 설계를 여러 세대에 걸쳐 축적했습니다. 둘째,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사의 공정 개발 단계에 오래 참여해왔습니다. 셋째, 그 축적을 디스플레이 장비로도 옮겨 한 조직 안에서 두 산업을 함께 다룹니다.
셋 중 결정적인 것은 둘째입니다. 첫째는 시간이 지나면 다른 회사도 쌓을 수 있고 셋째는 사업 구성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고객이 다음 공정을 설계하는 자리에 함께 앉아 조건을 주고받아온 관계는 새로 들어온 회사가 곧바로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④에서 본 대로 발주는 그 자리에 있었던 회사들 사이에서만 갈립니다.
그런데 이 해자는 고객 안에 서 있습니다
문제는 그 축적이 쌓이는 자리입니다. 그것은 산업 전체가 아니라 특정 고객의 공정 위에 쌓입니다. 같은 원자층증착 장비라도 고객마다 요구하는 막의 종류와 조건이 다르고, 한 고객에서 검증된 챔버 구성이 다른 고객에서 그대로 통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해자는 오래 함께한 고객 안에서 가장 높고 그 바깥에서는 다시 처음부터입니다.
설계 히어로즈 ①편의 LX세미콘에서 본 것과 같은 구조입니다. 그 회사도 특정 고객에 밀착해 실력을 키운 대가로 고객 명단이 짧아졌습니다. 다만 이 회사는 그 구조를 넓히는 쪽으로 움직여왔습니다 — 2절에서 본 대로 해외 매출 비중이 23.9%에서 29.1%로 올라왔고, 국내에서도 오랜 주력 고객 외에 다른 메모리 제조사로 공급이 넓어졌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밀착의 대가를 알고 그것을 줄여가는 중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해자는 매년 새로 사야 합니다
더 근본적인 조건은 3절 ⑤에서 본 비용 구조입니다. 이 회사의 자리는 한 번 확보하면 유지되는 종류가 아니라 세대마다 다시 사야 하는 종류입니다. 다음 세대 개발을 멈추면 그 세대의 발주 대상에서 빠지고, 한 세대를 건너뛰면 그다음 세대에서 다시 들어가기가 훨씬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게 연구개발비는 성장을 위한 선택적 지출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정 지출에 가깝습니다. 2023년 적자에도 매출의 23.8%를 쓴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리고 이 성질이 위험이기도 합니다 — 업황이 길게 나빠지면 매출은 줄어드는데 가장 큰 비용은 줄일 수 없으므로 손익이 빠르게 나빠집니다.
📌 그래서 무엇으로 판별할 것인가 — 지금의 개발비가 다음 세대 수주로 돌아오는가 이 회사의 판별식은 분기 영업이익률이 아닙니다. 3절 ⑤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이익률은 매출이 사이클을 따라가는 동안 가장 큰 비용은 따라가지 않아서 생기는 결과이고, 그래서 이익률이 낮다는 사실만으로는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알 수 없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지금 쓰고 있는 개발비가 다음 세대의 수주로 돌아오고 있는가. ④에서 본 대로 이 회사는 발주가 나기 전에 개발을 끝내두는 방식으로 자리를 사고 있고, 그 거래가 성립하는지가 이 회사의 다음 몇 년을 정합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수주잔고가 매출 대비 몇 분기 치인가 — 2절에서 본 대로 이 배수가 커지면 앞으로 매출이 늘고 작아지면 반대입니다. 다만 잔고와 매출을 함께 보셔야 인도 지연과 구분됩니다. 둘째, 매출이 늘어날 때 영업이익률이 함께 올라가는가 — 개발비가 대체로 고정적이므로 매출이 늘면 이익률은 빠르게 개선돼야 정상이고, 그렇지 않다면 값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셋째, 해외와 신규 고객 매출 비중이 계속 올라가는가 — 고객 안에 서 있는 해자를 넓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입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원익IPS를 둘러싼 큰 그림
한 회사를 이해하려면 누구와 싸우고 누구에게 팔며 누구에게 기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회사의 지도에는 특징이 둘 있습니다. 경쟁자의 체급이 크게 갈린다는 점이 하나이고, 고객이 몇 곳 안 되는 대형 제조사들이라 그들의 투자 계획이 곧 이 회사의 매출 계획이 된다는 점이 다른 하나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나스닥 AMAT]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기업으로 증착 분야에서도 가장 넓은 제품군을 갖고 있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장비 시장이 소수 과점이라고 정리했는데 그 정점에 있는 회사이고, 이 회사와는 체급이 크게 다릅니다. 국내 제조사의 라인 안에서 같은 공정 자리를 두고 겨루는 상대라는 점이 관계의 성격을 정합니다.
- 도쿄일렉트론 [일본 도쿄 8035] 식각과 증착, 코터·디벨로퍼 등 여러 공정 장비를 폭넓게 다루는 일본의 종합 장비 기업입니다. 열처리와 증착 계열에서 오랜 이력을 갖고 있어, 이 회사가 국내에서 국산화로 자리를 넓혀온 과정이 곧 이런 회사들의 자리를 조금씩 가져온 과정이기도 합니다.
- 주성엔지니어링 [코스닥 036930] 소부장 히어로즈 ⑨편에서 다룰 국내 경쟁사로, 같은 원자층증착 계열 장비를 만듭니다. 두 회사는 같은 고객의 같은 공정 자리를 두고 겨루는 관계인데, 고객 구성과 비용 구조가 서로 달라 같은 업황에서도 실적이 다르게 움직였습니다. 이 대비가 두 편을 나란히 읽을 때 남는 것입니다.
🤝 핵심 고객사
- 국내 최대 반도체 제조사와 그 계열 디스플레이 기업 [코스피 상장] 회사는 고객 이름을 공시하지 않지만 업계에서 오랜 주력 고객으로 꼽는 곳입니다. 반도체 앵커기업 ①편에서 다룬 회사가 설계·제조·패키징을 모두 하는 종합반도체기업이라, 메모리와 파운드리 양쪽의 투자가 이 회사의 매출로 이어집니다.
- 국내 메모리 제조사 [코스피 상장] 반도체 앵커기업 ②편에서 다룬 회사로, 이 회사가 고객을 넓히며 확보한 상대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특정 고객 안에 서 있는 해자를 넓히는 일이 이 회사의 과제인데, 그 과제가 실제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이름입니다.
- 해외 디스플레이 제조사군 [중국 등] 2절에서 본 해외 매출의 상당 부분이 여기서 나옵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투자 시점이 어긋나는 경우가 많아, 이 갈래가 반도체 투자가 비는 구간의 완충 역할을 합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원익홀딩스 [코스닥 030530] · 원익QnC [코스닥 074600] 같은 원익 계열에 속한 회사들입니다. 특히 원익QnC는 소부장 히어로즈 ⑦편에서 다룰 회사로, 이 회사 장비의 챔버 안에서 쓰이는 석영 부품이 속한 영역을 만듭니다. 장비를 만드는 회사와 그 장비 안에서 닳아 없어지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가 한 계열 안에 함께 있는 구조입니다.
- 국내 부품·모듈 협력사군 [코스닥 상장 및 비상장] 3절 ③에서 본 히터와 이송 모듈, 플라스마 발생기, 유량 제어기 같은 부품을 대는 회사들입니다. 이 회사의 원재료 매입 구성이 곧 이 생태계의 지도이고, 장비 한 대가 팔릴 때 그 뒤로 여러 국내 기업의 매출이 함께 발생합니다.
- 소부장 히어로즈의 다른 회사들 [코스닥 상장] HPSP(①)는 이 회사 장비가 쌓아준 막의 계면 결함을 다스리는 열처리 장비를 만들고, 리노공업(②)은 그렇게 만들어진 칩을 검사하는 부품을 만듭니다. 같은 라인 위에서 순서를 나눠 맡고 있는 셈이며, 이 회사는 그중 쌓는 자리에 있습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위로는 세계 최대 장비 기업들과 같은 자리를 두고 겨루고, 옆으로는 같은 국내 경쟁사와 같은 고객의 발주를 나눠 갖습니다. 그리고 그 고객은 몇 곳 안 됩니다. 그러니 이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시장의 크기도 경쟁의 판도 아니고, 고객이 다음 세대를 정할 때 그 자리에 준비된 장비를 갖고 있느냐뿐입니다. 4절에서 세운 판별식이 이익률이 아니라 개발비의 회수를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에서 본 구조가 실제 숫자에 어떻게 찍히는지 보겠습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영업이익의 크기가 아니라, 매출총이익과 영업이익 사이의 거리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가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구분 | 매출 | 영업이익 | 비고 |
| 2024년(확정) | 7,482억원 | 106억원(영업이익률 1.4%) | 매출총이익 2,923억원(39.1%). 연구개발비 1,562억원(매출 대비 20.9%). 국내 5,695억원·해외 1,787억원 |
| 2025년(확정) | 9,098억원(YoY +21.6%) | 738억원(YoY +593.6%, 영업이익률 8.1%) | 매출총이익 3,828억원(42.1%). 연구개발비 1,675억원(18.4%). 국내 6,448억원·해외 2,650억원 |
| 2026년 상반기(확정, 1~6월 누적) | 3,814억원(YoY +4.1%) | 291억원(YoY +0.2%, 영업이익률 7.6%) | 매출총이익 1,838억원(48.2%). 연구개발비 843억원(22.1%). 수주잔고 6,346억원 |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2025년 영업이익 증가율 593.6%를 그대로 읽으면 과대평가가 됩니다. 직전 해인 2024년 영업이익이 106억원으로 유난히 낮았기 때문에 나온 배수이고, 그보다 앞선 2023년에는 181억원의 영업손실이었습니다. 이 회사의 이익은 몇 해에 걸쳐 크게 출렁여왔으므로 한 해의 증가율보다 여러 해를 이어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고객별 매출은 공시되지 않습니다. 회사는 지역별로 국내와 해외만 나눠 밝히고 고객 이름과 비중은 적지 않으므로, 5절의 고객 명단은 업계에 알려진 내용을 모은 것이지 매출 순서가 아닙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매출 구분도 공시되지 않아 두 갈래의 비중은 밖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수주잔고는 별도 기준이며 장비 인도 기준으로 작성됩니다. 부품 납품 등은 빠져 있고, 발주처와 납기 같은 세부 내역은 고객의 투자 정보가 드러날 수 있어 공시되지 않습니다. 잔고 금액만으로 어느 고객의 어느 라인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표에서 먼저 볼 곳은 매출총이익률과 영업이익률의 거리입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48.2%와 7.6%로 40%포인트가 넘게 벌어져 있습니다. 3절 ⑤에서 본 대로 그 사이를 판매관리비와 연구개발비가 채우는데, 연구개발비만 22.1%입니다. 물건을 만들어 남긴 마진의 절반 가까이가 다음 세대 장비로 들어간다는 사실이 이 두 줄 사이에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매출총이익률이 계속 올라왔다는 점입니다. 39.1%에서 42.1%, 다시 48.2%입니다. 파는 물건의 값어치가 좋아지고 있다는 뜻이고, 최선단 공정용 장비의 비중이 늘어난 결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영업이익률이 낮은 것은 이 회사가 싸게 팔고 있어서가 아니라는 근거가 여기 있습니다.
세 번째는 2026년 상반기의 정체입니다. 매출이 4.1% 늘었는데 영업이익은 0.2% 느는 데 그쳤습니다. 매출총이익률이 크게 올랐는데도 그렇습니다. 연구개발비가 전년 동기 768억원에서 843억원으로 늘어난 것이 그 차이를 대부분 설명합니다. 3절 ⑤에서 본 구조가 한 반기 안에서 그대로 나타난 장면입니다 — 마진이 좋아져도 그만큼을 다시 개발에 넣으면 이익으로 남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표에 없는 것을 봐야 합니다. 이 개발비가 어느 공정 세대를 겨냥하고 있는지, 그중 얼마가 실제로 채택될지는 재무제표 어디에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흔적이 수주잔고인데, 그것도 이미 계약된 것만 보여줄 뿐 지금 개발 중인 것이 다음에 계약될지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이 회사에서 재무제표로 보이는 것은 과거의 선택이 만든 결과이고, 다음 몇 년을 정하는 결정은 지금 고객사의 공정 개발실 안에서 내려지고 있습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여기까지가 이 회사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반대편입니다. 분기 하나의 악재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위험을 층위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줄일 수 없는 비용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연구개발비는 성장을 위한 선택적 지출이 아니라 자리를 지키기 위한 고정 지출에 가깝습니다. 업황이 좋을 때는 매출이 늘어 이 부담이 희석되지만, 나빠지면 매출만 줄고 비용은 남아 손익이 빠르게 나빠집니다. 2023년 영업손실이 그 구조에서 나왔습니다. 이 회사의 이익이 다른 소부장 기업보다 크게 출렁이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둘째, 고객 집중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국내 매출이 73.6%이고, 그 대부분이 몇 곳 안 되는 대형 제조사에서 나옵니다. 그 가운데 한 곳의 투자 계획이 미뤄지면 이 회사의 한 해가 통째로 밀립니다. 그리고 4절에서 본 대로 해자가 고객 안에 서 있어, 고객을 넓히는 일이 다른 산업보다 느립니다.
셋째, 발주 시점을 통제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이 회사의 매출은 고객이 라인을 짓기로 결정해야 생기고, 그 결정은 메모리 값과 인공지능 투자 같은 더 위쪽 변수에서 나옵니다. 2절에서 본 수주잔고가 앞으로 몇 분기를 보여주긴 하지만 그 너머는 보이지 않고, 인도 시점이 고객 사정으로 밀리면 잔고는 그대로인 채 매출만 늦어집니다.
넷째, 위쪽 경쟁자와의 체급 차이입니다. 5절에서 본 대로 같은 공정 자리를 두고 세계 최대 장비 기업들과 겨룹니다. 그들의 연구개발 규모는 이 회사와 비교가 되지 않고, 여러 공정 장비를 묶어 제안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이 회사가 국산화로 넓혀온 자리를 지키려면 그 격차를 기술의 특정 지점에서 상쇄해야 합니다.
다섯째, 옆의 경쟁자입니다. 같은 국내 경쟁사가 같은 고객의 같은 자리를 두고 겨루고 있어, 한 고객이 공급을 나누기로 하면 물량이 갈립니다. 다만 3절 ④에서 본 대로 이 시장은 세대마다 새로 평가받는 구조라 잃은 자리를 다음 세대에서 되찾을 여지도 함께 있습니다.
여섯째, 두 산업을 함께 하는 데 따르는 부담입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투자 시점이 어긋나면 완충이 되지만, 두 산업의 다음 세대를 모두 준비해야 하므로 개발 부담이 두 배로 걸립니다. 그리고 어느 한쪽의 투자가 오래 멈추면 그쪽에 넣은 개발비는 회수되지 않습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세 가지 해석
사실을 정리했으니 이제 해석입니다. 원익IPS를 통해 이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① 이익률이 낮다는 사실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입니다. 같은 소부장 히어로즈에서 다룬 HPSP나 리노공업이 40~50%대인 것과 비교하면 초라해 보입니다. 그런데 매출총이익률은 48.2%로 그 회사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는 파는 물건의 값어치가 아니라 그 아래에서 벌어지는 선택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익률을 볼 때는 어느 단계의 이익률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매출총이익률은 파는 물건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지를 보여주고, 영업이익률은 거기서 무엇을 얼마나 쓰고 남겼는지를 보여줍니다. 둘 사이가 크게 벌어져 있다면 그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그 회사를 이해하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연구개발비가 있다면 판단이 한 번 더 필요합니다. 그 지출이 지금의 매출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아직 없는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다음 세대의 자리를 미리 사는 것인지에 따라 성격이 다릅니다. 이 회사는 세 번째에 해당하고, 그래서 그 지출의 성패는 몇 년 뒤 수주로만 확인됩니다.
② 개발이 발주보다 앞서야 하는 산업이 있습니다
3절 ④에서 본 순서가 이 편에서 가장 낯선 사실일 수 있습니다. 보통은 주문을 받고 만들어 팝니다. 그런데 이 산업에서는 고객이 다음 공정을 설계하는 단계에 이미 장비가 만들어져 있어야 하고, 그 장비로 조건을 맞춰본 회사들 사이에서만 발주가 갈립니다. 발주가 난 뒤에 개발을 시작하면 그 세대에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산업에서는 매출과 비용의 시차가 구조적으로 벌어집니다. 비용은 지금 나가고 매출은 몇 년 뒤에 들어오는데, 그 사이에 업황이 나빠지면 나간 비용만 남습니다. 그래서 이런 회사의 손익을 볼 때는 한 해가 아니라 사이클 하나를 단위로 놓아야 하고, 그 사이클의 길이는 그 회사가 아니라 고객의 공정 세대가 정합니다.
같은 구조가 이 시리즈의 다른 편에도 있었습니다. 후공정 히어로즈 ①편의 한미반도체는 세대가 바뀔 때만 장비가 팔린다는 매출의 리듬을 보여줬고, 이 편은 그 세대에 참여하기 위해 미리 치러야 하는 비용의 구조를 보여줍니다. 같은 장비 산업의 앞뒤 절반인 셈입니다.
③ 국산화의 값은 뒤늦게 청구됩니다
이 회사가 지금 있는 자리는 오랫동안 해외 장비 기업들이 차지하고 있던 자리입니다. 국내 제조사가 국산 장비를 쓰기 시작하면서 그 자리가 조금씩 옮겨왔고, 이 회사가 그 수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리를 넘겨받는 것과 지키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넘겨받는 데는 국산화라는 명분과 고객의 의지가 도움이 되지만, 지키는 데는 매 세대 기술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증명 비용이 이 회사의 손익에 매년 청구되고 있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한국이 이 산업의 선수이자 무기상이라는 이중 위치에 있다고 했는데, 무기상 쪽에서 자리를 잡는 데 드는 값이 이런 모양이라는 것을 이 회사가 보여줍니다.
그래서 국산화 수혜주라는 말을 만나면 한 가지를 더 물어보는 편이 좋습니다 — 그 회사가 넘겨받은 자리를 지키기 위해 매년 얼마를 쓰고 있는가. 그 금액이 작다면 그 자리는 애초에 지키기 쉬운 자리였거나, 아직 제대로 지키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특정 날짜의 일정을 나열하는 대신,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네 가지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남깁니다.
첫째, 수주잔고가 매출 대비 몇 분기 치인가. 4절 판별식의 첫 확인 지점입니다. 회사가 반기·사업보고서에서 수주총액과 기납품액, 잔고를 밝히므로 잔고를 직전 반기 매출로 나눠 보시면 됩니다. 다만 2절 개념 박스에서 본 대로 잔고와 매출을 함께 보셔야 새 계약이 늘어난 것인지 인도가 밀린 것인지가 갈립니다.
둘째, 매출이 늘 때 영업이익률이 함께 올라가는가. 3절 ⑤에서 본 대로 연구개발비는 대체로 고정적이므로 매출이 늘면 이익률은 빠르게 개선돼야 정상입니다. 매출이 늘었는데 이익률이 제자리라면 두 가지 가운데 하나입니다 — 값 경쟁이 벌어지고 있거나, 다음 세대 개발에 더 크게 걸고 있거나. 매출총이익률을 함께 보면 어느 쪽인지가 갈립니다.
셋째, 해외와 신규 고객 비중이 계속 올라가는가. 4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해자는 고객 안에 서 있어 고객을 넓히는 것이 유일한 확장 경로입니다. 회사가 지역별 매출을 국내와 해외로 나눠 밝히므로 그 비율의 방향을 몇 해에 걸쳐 보시면 됩니다.
넷째, 업황이 나빠지는 구간에서 연구개발비를 줄이는가. 이것이 이 회사의 성격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3절 ⑤에서 본 대로 적자를 낸 해에도 매출의 23.8%를 썼는데, 만약 어느 시점에 이 비율이 눈에 띄게 낮아진다면 그것은 손익이 좋아진다는 신호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 참여를 줄이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그다음 사이클의 수주에서 드러납니다.
10. 마무리하며
원익IPS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웨이퍼 위에 원자 단위로 막을 쌓는 장비를 고객의 다음 공정 세대가 확정되기 전에 미리 개발해두고, 그 개발비를 매년 매출의 20% 안팎으로 감당하는 회사입니다. 매출총이익률 48%와 영업이익률 7.6%라는 두 숫자의 거리가 그 방식의 값입니다.
이 편에서 확인한 것은 그 거리가 약점이 아니라 이 산업의 규칙이라는 점입니다. 반도체 제조사가 새 공정 세대로 넘어갈 때 장비는 이미 만들어져 있어야 하고, 그 장비로 조건을 맞춰본 회사들 사이에서만 발주가 갈립니다. 발주가 난 뒤에 개발을 시작하면 그 세대에는 참여할 수 없으니, 이 회사는 매년 지금의 이익을 다음 세대의 자리와 바꾸고 있는 셈입니다. 영업적자를 낸 해에도 매출의 23.8%를 개발에 쓴 것이 그 선택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다만 그 거래가 반드시 성립하는 것은 아닙니다. 개발해둔 것이 채택되지 않으면 그 돈은 돌아오지 않고, 고객의 투자가 미뤄지면 회수 시점도 함께 밀립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이익률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지금 쓰고 있는 개발비가 다음 세대의 수주로 돌아오고 있는가입니다.
다음 편은 소부장 히어로즈의 네 번째 자리, 하나마이크론입니다. 이 회사가 칩을 만드는 도중에 막을 쌓는 자리에 있다면, 그 회사는 다 만들어진 칩을 대신 포장하고 검사해주는 자리에 있습니다. 국내 1위 위탁 패키징 기업으로 베트남과 브라질에 생산기지를 두고 있는데, 장비를 파는 회사와 공정을 대신해주는 회사가 같은 산업에서 어떻게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버는지를 나란히 보시게 됩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Core Asset Insight(코어에셋인사이트)는 목표주가를 제시하거나 저평가·고평가를 판정하지 않으며, 기업과 산업의 사업구조·기술·밸류체인에서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본문의 수치는 작성 시점에 공시·발표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며, 확정된 사실과 회사가 밝힌 계획, 제3자 기관·언론의 추정을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공시와 시장 상황은 이후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자료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본문에 언급된 종목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으며, 글의 발행 전후 일정 기간에는 해당 종목을 매매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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