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리노공업, 아직 세상에 없는 칩을 검사하는 부품을 만드는 회사 (반도체 소부장 히어로즈 ②)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반도체가 아니라 반도체를 검사할 때 잠깐 쓰이는 부품입니다. 칩을 검사 장비에 올려놓을 때 그 사이를 이어주는 아주 작은 접점이고, 쓰다 보면 닳아서 갈아 끼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이 2024년 44.6%, 2025년 47.5%, 2026년 상반기 49.7%입니다. 소모성 부품을 3만 종 넘게 주문받아 만드는 회사가 어떻게 이런 이익률을 내는지가 이 편의 출발점입니다. 답은 이 부품이 팔리는 시점에 있습니다 — 대부분이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칩, 그러니까 개발 중인 시제품을 검사하는 데 쓰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후공정의 마지막 관문으로 검사를 짚었는데, 그 검사가 양산 라인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 왜 지금 리노공업인가 — 공장이 아니라 개발실에 있는 시장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반도체 후공정을 정리하며 검사 공정을 짚어뒀습니다. 아무리 잘 만든 칩이라도 실제로 동작하는지 확인하지 않으면 팔 수 없고, 그래서 완성된 칩은 전기 신호를 넣어보고 답을 받아보는 시험을 반드시 거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험을 하려면 칩과 검사 장비가 물리적으로 닿아야 하는데, 그 닿는 자리를 만드는 부품이 이 회사의 제품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흔한 소모품 회사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매출을 뜯어보면 성격이 다릅니다. 검사 부품 수요는 보통 칩이 얼마나 많이 생산되느냐를 따라가는데, 이 회사의 주력은 양산 라인이 아니라 개발 단계에서 쓰이는 제품입니다. 반도체 회사가 새 칩을 설계해 시제품을 만들면 그것을 검사할 부품이 필요하고, 그 부품은 그 칩 전용으로 처음부터 만들어야 합니다. 세상에 아직 없는 칩을 위해 세상에 하나뿐인 부품을 만드는 일인 셈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지금 봐야 하는 이유가 생깁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이 격해지면서 새로 설계되는 칩의 수가 크게 늘었습니다. 스마트폰이 얼마나 팔리는가와 무관하게, 여러 회사가 자기 칩을 직접 만들겠다고 나서면 시제품이 늘고 검사할 것도 늘어납니다. 이 회사의 매출이 반도체 업황이 주춤한 구간에도 자란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바로 앞 편에서 다룬 HPSP와 나란히 놓으면 대비가 선명해집니다. 두 회사 모두 좁은 자리를 오래 지켜온 소부장 강소기업이고 영업이익률이 50% 안팎으로 비슷한데, 매출 곡선은 정반대였습니다. 그 회사는 유일한데도 매출이 줄었고 이 회사는 경쟁자가 여럿인데도 매출이 늘었습니다. 파는 물건이 언제 팔리느냐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 앞은 고객이 새 라인을 지을 때 팔리고, 뒤는 고객이 새 칩을 그릴 때 팔립니다. 두 편을 나란히 읽어야 소부장이라는 한 단어 안의 결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편이 묻는 것은 셋입니다. 칩과 장비를 닿게 하는 일이 왜 어려운가, 왜 이 회사는 3만 종이 넘는 물건을 만들면서도 이익률이 높은가, 그리고 개발 단계에서 잡은 자리가 양산까지 따라가는가.

리노공업, 한눈에 보기

📌 기본 정보  티커: 코스닥 058470 | 설립: 1978년 부산에서 창업해 1996년 법인으로 전환, 2001년 코스닥 상장 | 사업 구성: 반도체 검사용 소켓과 검사용 핀이 매출의 90%대, 초음파 진단기용 부품 등 의료기기 부문이 나머지 | 생산 구조: 부산 본사에서 미세가공·도금·조립까지 전 공정을 직접 수행하며 3만여 종을 주문 생산 | 지배구조: 창업주가 최대주주이며 지분을 단계적으로 줄여온 상태이고 자녀 승계 계획은 알려진 바 없음 | 시장 내 위치: 국내에서 처음으로 스프링 방식 검사용 핀을 개발해 국산화했고, 개발 단계에서 쓰이는 고사양 검사 소켓에서 특히 강한 위치 | 한 줄 정체성: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시제품 칩을 검사할 때 칩과 장비 사이를 이어주는 소모성 부품을, 종류마다 새로 설계해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내는 회사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이 회사의 사업은 둘로 나뉩니다. 하나는 반도체 검사용 부품이고 다른 하나는 초음파 진단기에 들어가는 의료기기 부품인데, 뒤쪽은 앞쪽의 미세가공 기술을 다른 곳에 응용한 것입니다. 무엇을 만들어 누구에게 어떻게 파는지를 차례로 보시면 이 회사의 이익률이 어디서 나오는지가 그려집니다.

검사용 소켓과 검사용 핀 — 매출의 90%대

첫째 제품군은 검사용 소켓, 업계에서 흔히 테스트 소켓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칩을 검사 장비에 올려놓을 때 그 사이에 끼우는 받침대 같은 물건인데, 칩 아래쪽 단자와 장비 쪽 단자를 하나하나 맞춰 이어줍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매출 2,430억원 가운데 1,664억원, 비중으로는 68.5%를 차지했습니다. 그 비중이 2024년 61.8%, 2025년 65.5%, 2026년 상반기 68.5%로 계속 올라왔습니다.

둘째 제품군은 그 소켓 안에 들어가는 검사용 핀입니다. 스프링이 들어 있어 눌리면 들어갔다가 놓으면 다시 나오는 아주 작은 부품이고, 회사가 국내에서 처음 국산화한 제품이기도 합니다. 2026년 상반기 565억원으로 비중은 23.3%인데, 2024년 27.0%에서 조금씩 내려왔습니다. 소켓이 더 빠르게 크고 있다는 뜻입니다.

두 제품군의 성격 차이는 생산 수량에서 드러납니다. 2025년 한 해 동안 핀은 6,504만 개를 만들었고 소켓은 19만 1,102개를 만들었습니다. 개수로는 340배 차이인데 매출은 소켓이 2.8배 큽니다. 개당 값이 완전히 다른 물건이라는 뜻이고, 이 회사의 매출 구성이 소켓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여기서 나옵니다.

의료기기 부품 — 나머지 8%대

셋째는 초음파 진단기의 탐촉자에 들어가는 부품입니다. 2026년 상반기 186억원으로 비중은 7.7%이고, 2024년과 2025년에는 10%대였습니다. 회사는 이 사업을 검사용 부품을 만들며 쌓은 미세 가공 노하우를 다른 분야에 응용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규모는 작지만 반도체 업황과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매출이라 성격이 다릅니다.

어떻게 파는가 — 3만 종을 주문받아 만든다는 것

이 회사가 만드는 제품은 3만여 종입니다. 재고를 쌓아놓고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요구에 따라 형태와 사양이 정해진 뒤에 만듭니다. 회사가 생산능력을 품목별로 산출하기 어렵다고 공시에 적어둔 것도 그래서입니다 — 주문마다 가공 방식과 도금 사양이 달라 일률적으로 셀 수가 없습니다.

값을 매기는 방식도 여기서 나옵니다. 회사는 제품이 개발 당시에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갖고 시간이 지나면서 값이 내려간다고 설명하면서도, 매출 대부분이 주문 제작이고 거래처와 수량과 난이도에 따라 값을 정하므로 하락 위험은 크지 않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같은 물건을 계속 찍어 파는 사업이 아니라, 새 물건을 계속 만들어 파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파는 상대는 대부분 해외입니다. 2026년 상반기 소켓 매출 1,664억원 가운데 1,571억원이 수출이었고 핀도 565억원 중 452억원이 수출이었습니다. 두 제품군을 합치면 수출 비중이 90%를 넘습니다. 회사가 밝힌 판매 방식을 보면 해외는 대리점을 통한 간접 판매와 현지 바이어 대상 직접 판매를 병행하고, 국내는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붙어 대응하는 기술 영업 체계를 두고 있습니다. 왜 개발 초기부터 붙어야 하는지는 3절에서 원리로 짚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소모품이라고 다 같은 소모품이 아닙니다 반도체 공정에는 쓰다 보면 닳아 없어지는 부품과 소재가 많습니다. 그런 물건을 만드는 회사는 대개 고객이 생산을 많이 할수록 매출이 늘고, 값은 비교되기 쉬워 이익률이 얇습니다. 그런데 같은 소모품이라도 그 물건이 표준품인지 전용품인지에 따라 사정이 크게 달라집니다. 표준품은 여러 회사가 만들 수 있어 값이 비교되지만, 고객의 특정 제품에 맞춰 새로 설계해야 하는 전용품은 비교할 대상이 없습니다. 이 회사의 제품이 3만여 종인 것은 다양한 제품을 갖췄다는 뜻이 아니라 거의 모든 주문이 전용품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소모품 회사인데도 값이 잘 지켜지고, 대신 매번 새로 설계하고 만들어야 하는 부담을 안습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검사용 부품이라는 말은 대단히 단순하게 들립니다. 칩과 장비를 닿게 해주는 물건이니 전기만 통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40년 넘게 자리를 지켰고 그 사이 영업이익률이 오히려 올라간 것을 보면 그 요약이 틀렸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어려운 것은 통하게 하는 일이 아니라, 수천 개의 접점을 동시에 같은 조건으로 닿게 하고 그것을 수십만 번 반복해도 흐트러지지 않게 만드는 일입니다. 칩을 왜 하나하나 검사해야 하는지(①), 닿는다는 일의 진짜 난제가 무엇인지(②), 왜 칩마다 다른 부품이 필요한지(③), 개발 단계에 먼저 들어간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④), 왜 전 공정을 직접 하는지(⑤), 그리고 소켓과 핀이 어떻게 다른 리듬으로 팔리는지(⑥)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① 칩은 왜 하나하나 검사해야 하는가

반도체는 같은 설계로 같은 웨이퍼에서 나와도 개체마다 성능이 다릅니다. 공정이 수백 단계를 거치는 동안 미세한 편차가 쌓이기 때문인데, 그래서 완성된 칩은 전부 시험을 거칩니다. 전기 신호를 넣고 답이 제대로 나오는지, 정해진 속도로 동작하는지, 뜨겁거나 차가운 환경에서도 같은 답을 내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검사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양산 라인에서 다 만든 칩을 걸러내는 검사이고, 다른 하나는 새 칩을 개발하는 도중에 하는 검사입니다. 뒤쪽은 목적이 다릅니다 — 불량을 골라내는 것이 아니라 설계가 의도대로 동작하는지를 확인하고 문제의 원인을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훨씬 다양한 조건에서 훨씬 정밀하게 측정해야 하고, 검사 부품에 요구되는 사양도 그만큼 높습니다.

이 회사의 주력이 뒤쪽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검사를 완성된 칩을 걸러내는 마지막 관문으로 소개했는데, 실제로는 그 관문 이전에 개발실 안에서 벌어지는 검사가 따로 있고 그 시장이 이 회사의 자리입니다.

② 닿게 한다는 일의 진짜 난제

요즘 칩의 아래쪽에는 수백에서 수천 개의 단자가 격자로 붙어 있습니다. 검사하려면 이 단자 전부에 동시에 닿아야 하는데, 여기서 세 가지가 한꺼번에 어렵습니다.

첫째는 균일함입니다. 칩 표면은 완벽한 평면이 아니고 단자의 높이도 조금씩 다릅니다. 그래서 딱딱한 침을 그대로 대면 어떤 단자는 눌리고 어떤 단자는 뜹니다. 스프링이 들어간 핀을 쓰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각 핀이 독립적으로 눌리면서 높이 차이를 흡수합니다. 둘째는 힘의 크기입니다. 확실히 닿게 하려면 세게 눌러야 하는데, 세게 누르면 단자가 눌려 상하고 칩 전체에 걸리는 힘이 수백 킬로그램에 이릅니다. 그래서 약하게 누르면서도 접촉 저항이 낮아야 한다는 상반된 요구를 동시에 만족시켜야 합니다.

셋째가 가장 까다롭습니다. 접점에 이물이 쌓입니다. 칩 단자 표면의 산화막이나 미세한 부스러기가 검사를 반복하는 동안 핀 끝에 달라붙고, 쌓이면 저항이 올라가 멀쩡한 칩이 불량으로 판정됩니다. 이 회사가 공개한 연구 실적에도 외력이 작을 때 접촉 저항이 올라가는 단점을 개선하기 위해 핀 끝을 여러 갈래로 나눈 구조를 개발했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정확히 이 문제를 겨냥한 설계입니다. 끝이 여러 갈래면 그중 하나가 이물에 막혀도 나머지가 닿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 울퉁불퉁한 바닥에 놓는 수천 개의 다리 탁자 다리가 넷인데 바닥이 고르지 않으면 하나가 뜹니다.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다리마다 길이를 따로 맞추거나, 눌리면 들어가는 스프링을 달아야 합니다. 검사용 소켓이 하는 일이 그것인데, 다리가 넷이 아니라 수천 개입니다. 그리고 그 수천 개가 전부 같은 힘으로 닿아야 하고, 너무 세게 누르면 상대편이 상하고 너무 약하면 닿지 않습니다. 게다가 이 일을 같은 소켓으로 수십만 번 반복해야 합니다. 여기에 하나가 더 있습니다. 다리 끝에 먼지가 쌓입니다. 매번 닦을 수 없으니 처음부터 먼지가 끼어도 닿는 모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끝을 여러 갈래로 쪼개는 설계가 그래서 나왔습니다.

③ 칩마다 다른 부품이 필요한 이유

②의 조건들은 칩이 정해져야 답이 나옵니다. 단자가 몇 개인지, 어떤 간격으로 놓였는지, 어느 정도 높이 차이가 있는지, 얼마나 빠른 신호를 주고받아야 하는지가 칩마다 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신호가 빨라질수록 핀의 길이와 굵기, 주변 재질까지 성능에 영향을 줍니다. 전기가 통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신호가 왜곡 없이 건너가야 하는데, 그 조건은 칩의 동작 속도와 단자 배치에 따라 매번 달라집니다.

그래서 테스트 소켓은 칩 하나에 하나씩 새로 설계됩니다. 이 회사의 제품이 3만여 종인 것도, 회사가 개발 초기 단계부터 고객에 붙어 대응하는 기술 영업 체계를 갖췄다고 밝히는 것도 여기서 나옵니다. 칩 설계가 확정되기 전부터 단자 배치를 함께 보고 검사 부품 구조를 잡아야 시제품이 나오는 시점에 맞출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이 사업의 성격이 정해집니다. 부품을 파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파는 것은 시간에 가깝습니다. 반도체 회사가 시제품을 받아 검사를 시작하려는데 검사 부품이 없으면 개발 일정 전체가 멈춥니다. 그 몇 주가 새 칩의 출시 시점을 정하고, 출시 시점이 그 칩의 성패를 가릅니다. 그러니 고객이 값보다 먼저 묻는 것은 언제까지 만들어줄 수 있느냐입니다.

④ 개발 단계에 먼저 들어간다는 것

여기까지가 이 회사의 물건이 왜 비싸게 팔리는지에 대한 설명이라면, 다음은 그 자리가 왜 오래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반도체 회사가 새 칩을 개발하며 검사를 반복하면 그 과정에서 데이터가 쌓입니다. 어떤 소켓으로 측정했을 때 어떤 값이 나왔는지에 대한 기록인데, 이 기록이 그 칩의 기준값이 됩니다. 그런데 양산에 들어갈 때 검사 부품을 다른 회사 제품으로 바꾸면 측정값이 미세하게 달라집니다. 접촉 저항이 조금만 달라도 경계선에 있는 칩의 판정이 뒤집힐 수 있기 때문에, 기준값을 다시 잡거나 최소한 두 부품의 차이를 검증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발 단계에서 쓰던 부품을 양산에서도 그대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값이 조금 더 비싸더라도 검증을 다시 하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이 구조가 뜻하는 바가 이 편의 핵심입니다 — 개발 단계에서 받은 주문은 그 자체로 매출이면서 동시에 몇 년 뒤 양산 물량에 대한 예약입니다. 시제품 검사용 부품은 소량이지만 개당 값이 높고, 양산용은 값이 낮은 대신 물량이 큽니다. 앞의 것을 잡으면 뒤의 것이 따라옵니다.

그리고 이 구조가 업황 방어력의 정체이기도 합니다. 스마트폰이 덜 팔리면 양산용 검사 부품 수요는 줄지만, 그렇다고 반도체 회사들이 새 칩 개발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시장이 어려울수록 다음 제품을 서두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회사의 매출이 반도체 사이클의 골에서도 크게 꺼지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⑤ 왜 전 공정을 직접 하는가

③에서 본 조건이 이 회사의 생산 방식을 정합니다. 주문마다 다른 물건을 짧은 시간 안에 만들어야 하는데, 공정을 밖에 맡기면 그때마다 협의하고 기다려야 합니다. 이 회사가 공시에서 전 공정을 자체적으로 수행하는 생산 시스템을 갖춰 품질 유지와 원가 경쟁력, 짧은 리드타임에서 우위를 확보했다고 밝히는 것이 그 뜻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공정들인지 보면 이해가 됩니다. 아주 가는 관을 뽑아 정밀하게 깎아내는 미세 가공, 그 안에 들어갈 스프링을 만드는 일, 접촉 저항을 낮추기 위해 표면에 금속을 입히는 도금,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부품들을 조립하는 일입니다. 원재료 매입 내역을 보면 관 종류가 72.4%, 도금 재료가 27.6%인데, 이 두 갈래가 곧 이 회사가 직접 하는 일의 뼈대입니다.

여기서 이 회사의 해자가 어디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어느 한 공정이 특별히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 공정들이 한 지붕 아래 붙어 있어서 주문을 받고 물건을 내보내기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것이 경쟁력입니다. 그리고 ③에서 본 대로 이 사업에서 팔리는 것이 시간이라면, 그 시간을 줄이는 구조 자체가 제품의 일부인 셈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소부장 기업의 강점이 대개 눈에 띄지 않는 공정 노하우에 있다고 한 것이 이런 형태로 나타납니다.

⑥ 소켓과 핀은 다른 리듬으로 팔립니다

마지막으로 두 제품군의 관계를 봐야 이 회사의 매출 구조가 정리됩니다. 소켓은 칩 하나에 하나씩 설계되는 전용품이고, 핀은 그 소켓 안에 들어가는 부품이면서 닳으면 갈아 끼우는 소모품입니다.

그래서 팔리는 시점이 다릅니다. 소켓은 새 칩이 설계될 때 팔리고, 핀은 그 소켓이 검사 라인에서 돌아가는 동안 계속 팔립니다. 앞은 개발의 함수이고 뒤는 생산량의 함수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소켓 비중이 계속 오르고 핀 비중이 내려온 것은, 이 회사의 매출이 생산량보다 개발 활동에 더 크게 걸리는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 변화를 어떻게 볼지는 갈립니다. 개발 활동은 생산량보다 안정적이라 사이클 방어에는 유리합니다. 반대로 개발 단계 물량은 규모의 상한이 있어서, 매출이 크게 뛰려면 결국 ④에서 본 대로 그 자리가 양산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이 회사가 신공장을 지어 생산능력을 크게 늘리고 있는 것도 그 국면을 준비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는지가 이 회사를 보는 관건입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3절을 정리하면 이 회사의 우위는 세 겹입니다. 첫째, 수천 개의 접점을 균일하게 닿게 하면서 접촉 저항을 낮게 유지하는 설계와 가공 노하우를 40년 넘게 쌓았습니다. 둘째, 미세 가공부터 도금과 조립까지 한 지붕 아래 두어 주문에서 납품까지의 시간이 짧습니다. 셋째, 고객의 칩 설계 초기 단계부터 함께 들어가 그 칩 전용 부품을 설계해본 이력이 있습니다.

셋 중 결정적인 것은 셋째입니다. 첫째는 시간이 지나면 경쟁사도 쌓을 수 있고, 둘째도 투자로 따라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특정 칩의 개발 초기부터 함께 조건을 잡아본 이력은 그 자리에 있었던 회사에만 남습니다. 그리고 ④에서 본 대로 그렇게 잡힌 기준값 때문에 양산 단계에서 부품을 바꾸기가 번거로워집니다. 값을 조금 깎아주겠다는 제안만으로는 움직이지 않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이 해자는 칩 하나 단위입니다

문제는 그 축적이 쌓이는 단위입니다. 그것은 산업 전체도 고객 전체도 아니라 개별 칩 위에 쌓입니다. 그 칩이 단종되면 그 소켓의 수명도 끝나고, 그 고객의 다음 칩에서는 다시 겨뤄야 합니다. 반도체 회사가 새 칩을 내놓는 주기가 짧아질수록 기회가 자주 열리는데, 그것은 이 회사에게 기회이면서 동시에 경쟁사에게도 기회입니다.

앞 편의 HPSP와 이 지점에서 갈립니다. 그 회사의 장벽은 압력 용기 인증처럼 회사 단위로 서 있어 한 번 넘어지면 전체가 흔들리는 대신 넘어지기 전까지는 통째로 지켜집니다. 이 회사의 장벽은 칩 단위로 서 있어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 대신 매번 조금씩 다시 겨뤄야 합니다. 후공정 히어로즈 두 편에서 본 설비 사업과 서비스 사업의 차이와 비슷한 구도인데, 여기서는 그 단위가 칩입니다.

그리고 접촉 방식 자체가 바뀔 수 있습니다

더 큰 변수는 기술 경로입니다. 이 회사의 주력은 스프링이 들어간 핀을 쓰는 방식인데, 인공지능 반도체처럼 칩이 크고 단자가 수천 개에 이르는 제품에서는 핀을 그만큼 많이 넣어야 해서 부담이 커집니다. 그래서 핀 대신 전도성 입자를 섞은 고무를 눌러 닿게 하는 방식이 대안으로 쓰이고 있고, 메모리 검사에서는 이미 그쪽이 주류가 됐습니다. 국내에도 그 방식으로 앞선 회사가 따로 있습니다.

두 방식은 장단이 다릅니다. 핀 방식은 정밀도와 신호 특성에서 유리하고 개발 단계의 까다로운 측정에 적합한 반면, 고무 방식은 구조가 단순하고 단자가 많은 큰 칩에서 비용이 낮습니다. 그러니 이 회사의 자리가 곧바로 위협받는다기보다, 인공지능 반도체 쪽에서 새로 열리는 시장의 상당 부분이 다른 방식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 정확한 표현입니다. 이 회사도 그 시장에 진입하려 하고 있으나 집필 시점 기준으로 확인된 것은 협의 단계까지입니다.

📌 그래서 무엇으로 판별할 것인가 — 개발실에서 잡은 자리가 공장까지 가는가 이 회사의 판별식은 분기 매출도 시장 점유율도 아닙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매출은 두 갈래가 서로 다른 리듬으로 움직여 합계만 봐서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고, 점유율은 칩마다 따로 정해져 하나의 숫자로 묶이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개발 단계에서 잡은 자리가 양산 물량으로 이어지고 있는가. ④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구조에서는 시제품 검사용 주문이 몇 년 뒤 양산 물량의 예약인데, 그 예약이 실제로 실행되는지가 이 회사의 다음 크기를 정합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검사용 핀의 매출이 절대 금액으로 늘어나는가 — 3절 ⑥에서 본 대로 핀은 생산량의 함수이므로, 개발 단계에서 잡은 칩이 양산에 들어가면 이 숫자가 먼저 반응합니다. 둘째, 새로 진입한 응용처에서 두 번째 주문이 나오는가 — 첫 주문은 시험일 수 있고 두 번째부터가 채택입니다. 셋째, 늘린 생산능력이 채워지는가 — 회사가 기존의 두 배 규모로 짓고 있는 공장이 가동에 들어간 뒤 이익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그 답을 줍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리노공업을 둘러싼 큰 그림

한 회사를 이해하려면 누구와 싸우고 누구에게 팔며 누구에게 기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회사의 지도에는 특징이 둘 있습니다. 경쟁자가 같은 물건을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같은 문제를 푸는 회사들이라는 점이 하나이고, 고객이 반도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 쪽에 가깝다는 점이 다른 하나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ISC [코스닥 095340] 전도성 입자를 섞은 고무를 눌러 닿게 하는 방식의 테스트 소켓에서 앞서 있는 국내 기업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두 회사는 같은 물건을 두고 겨루는 것이 아니라 접촉이라는 같은 문제를 다른 방식으로 푸는 관계이고, 단자가 많고 칩이 큰 인공지능 반도체 쪽에서 그 방식이 유리하다는 점이 경쟁의 성격을 정합니다.
  • 국내외 테스트 소켓 기업군 [코스닥·대만 등] 국내에도 테스트 소켓을 만드는 상장사가 여럿 있고 대만에도 같은 시장을 겨루는 회사가 있습니다. 3절 ③에서 본 대로 이 시장은 칩 하나마다 새로 겨루는 구조라, 시장 전체의 점유율보다 어느 칩에 누가 들어갔는지가 실질적인 승부입니다.
  • 중국 검사 부품 기업군 [중국] 자국 반도체 산업의 성장과 함께 검사 부품 쪽에서도 저가를 앞세운 진입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개발 단계의 까다로운 측정보다는 양산용 표준 물량에서 먼저 부딪히는 상대이며, 3절 ⑥에서 본 두 갈래 가운데 핀 쪽에 더 직접적인 압력입니다.

🤝 핵심 고객사

  • 삼성전자 [코스피 005930] 반도체 앵커기업 ①편에서 다룬 회사로, 업계에서 이 회사의 주요 고객으로 꼽힙니다. 설계와 제조를 함께 하는 종합반도체기업이라 개발 단계와 양산 단계의 검사 수요가 한 회사 안에서 모두 나온다는 점이 이 관계의 특징입니다.
  • 퀄컴·애플 등 스마트폰용 프로세서 설계 기업군 [나스닥 QCOM · AAPL 등] 새 프로세서를 설계할 때마다 그 칩 전용 검사 부품이 필요한 고객들입니다. 회사는 특정 고객 의존도를 낮춰왔다고 알려져 있는데, 3절 ③에서 본 대로 칩마다 새로 설계되는 구조라 고객이 늘어나는 것이 곧 제품 종류가 늘어나는 것이기도 합니다.
  • 인공지능 반도체를 직접 설계하는 기업군 [글로벌] 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자체 칩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새로 설계되는 칩의 수 자체가 늘었습니다. 설계 히어로즈 ②편에서 다룬 엔비디아의 자리를 넘보려는 시도들이 늘어날수록 이 회사의 시장이 커지는 구조인데, 4절에서 본 접촉 방식의 전환이 그 시장에서 어떻게 갈리는지가 변수입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초음파 진단기 제조사군 [코스피·코스닥 상장] 의료기기 부문의 고객들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매출 비중은 8%대이지만 반도체 업황과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 매출이고, 회사가 반도체 부품에서 쌓은 미세 가공 기술을 다른 산업에 옮겨본 사례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 후공정 히어로즈 ①편의 한미반도체 [코스피 042700] · 소부장 히어로즈 ⑥편의 유니테스트 직접 거래 관계는 아니지만 같은 반도체 후공정 구간에서 서로 다른 자리를 맡고 있습니다. 칩을 쌓고, 잘라 포장하고, 마지막에 시험하는 일이 각각 다른 국내 기업의 손을 거친다는 뜻이며, 이 회사는 그 마지막 단계에서 칩과 장비가 닿는 자리를 맡습니다.
  • 부산 지역 생산 기반 [비상장 협력사] 이 회사는 부산에 본사와 생산시설을 두고 있으며 기존에 흩어져 있던 생산라인을 통합하는 신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수도권 밖에 기반을 둔 채 수출 비중 90%대를 유지해온 드문 사례이고, 그만큼 지역 고용과 인력 수급이 이 회사의 변수에 포함됩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고객은 반도체를 설계하는 회사들이고 경쟁은 칩 하나마다 따로 벌어지며, 그 경쟁의 승부처가 값이 아니라 개발 일정에 맞출 수 있느냐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시장 점유율이라는 하나의 숫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4절에서 세운 판별식이 점유율 대신 개발 단계의 자리가 양산까지 이어지는지를 묻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에서 본 구조가 실제 숫자에 어떻게 찍히는지 보겠습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률의 크기가 아니라, 매출이 늘어나는 동안 이익률이 함께 올라갔다는 사실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분 매출 영업이익 비고
2024년(확정) 2,782억원 1,242억원(영업이익률 44.6%) 당기순이익 1,133억원. 검사 소켓 1,718억원(61.8%)·검사 핀 752억원(27.0%)·의료기기 284억원(10.2%)
2025년(확정) 3,725억원(YoY +33.9%) 1,770억원(YoY +42.5%, 영업이익률 47.5%) 당기순이익 1,520억원. 검사 소켓 2,439억원(65.5%)·검사 핀 871억원(23.4%)·의료기기 381억원(10.2%)
2026년 상반기(확정, 1~6월 누적) 2,430억원(YoY +27.2%) 1,208억원(YoY +36.7%, 영업이익률 49.7%) 당기순이익 1,063억원. 검사 소켓 1,664억원(68.5%)·검사 핀 565억원(23.3%)·의료기기 186억원(7.7%)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가장 먼저 짚어야 할 것은 이 표가 담고 있지 않은 기간입니다. 2026년 상반기는 6월까지의 실적이고, 이 회사 노동조합의 전면파업은 7월에 시작됐습니다. 즉 위 숫자에는 파업의 영향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습니다. 상반기까지의 흐름을 그대로 하반기에 이어 붙이면 안 되는 구간입니다. 고객별 매출은 공시되지 않습니다. 회사는 제품군별과 수출·내수로만 나눠 밝히므로 어느 고객이 얼마인지는 밖에서 확인할 수 없고, 5절의 고객 명단도 업계에 알려진 내용을 모은 것이지 매출 순서가 아닙니다. 개발용과 양산용의 구분도 공시되지 않습니다. 이 편의 핵심인 3절 ④의 구조는 회사 설명과 업계 통용 내용에 기반한 것이며, 검사 소켓 매출 가운데 개발 단계 물량이 얼마인지는 재무제표로 확인되지 않습니다.

표에서 먼저 볼 곳은 매출과 이익률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점입니다. 매출이 33.9% 늘 때 영업이익은 42.5% 늘었고, 이익률은 44.6%에서 47.5%, 다시 49.7%로 올랐습니다. 물량으로 채운 성장이 아니라 값이 함께 오른 성장이라는 뜻입니다. 3절 ③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제품이 칩마다 새로 설계되는 전용품이라 값이 비교되지 않고, 미세해질수록 요구 사양이 올라가 개당 값도 함께 오릅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제품군 구성의 변화입니다. 검사 소켓 비중이 61.8%에서 68.5%로 올라가는 동안 검사 핀은 27.0%에서 23.3%로 내려왔습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소켓은 새 칩이 설계될 때 팔리고 핀은 그 칩이 생산되는 동안 팔리므로, 이 회사의 매출 무게가 생산량보다 개발 활동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인공지능 반도체 경쟁으로 새로 설계되는 칩이 늘어난 국면과 방향이 맞습니다.

세 번째는 이 표에 없는 투자입니다. 회사는 부산에 기존 생산라인을 통합하는 신공장을 짓고 있는데, 토지 매입에 745억원을 썼고 공장 신설과 장비 구입에 972억원을 배정해 그중 786억원을 집행했습니다. 자체 자금으로 조달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아직 건설 중이라 감가상각이 시작되지 않았으므로 위 이익률에는 이 투자의 부담이 들어 있지 않습니다. 가동이 시작되면 비용이 먼저 들어오고 물량은 나중에 차므로, 그 구간의 이익률이 4절 판별식의 세 번째 확인 지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표에 없는 또 하나가 있습니다. 연구개발비가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율인데 2024년 3.61%, 2025년 3.52%, 2026년 상반기 2.81%로 낮아졌습니다. 절대 금액은 늘었지만 매출이 더 빠르게 늘어 비율이 내려간 것입니다. 이 회사의 연구개발이 회사 전체에 흩어져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비율만으로 개발 강도를 판단하기는 어렵고, 회사 스스로도 전 사원의 연구원화를 연구개발의 기본 개념으로 삼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여기까지가 이 회사가 무엇을 잘하는지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반대편입니다. 분기 하나의 악재가 아니라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위험을 층위별로 나눠 보겠습니다.

첫째, 노사 갈등입니다. 이 회사에는 2026년 3월 처음으로 노동조합이 생겼고 전체 직원의 과반이 가입했습니다. 임금·단체협약 교섭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7월에 부분파업을 거쳐 전면파업에 들어갔고, 집필 시점까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습니다. 핵심 쟁점은 임금 구조입니다 — 이 회사는 고정급보다 연말 성과급의 비중이 큰 방식을 오래 유지해왔는데, 노조는 안정적인 고정급으로 일부를 전환하자고 요구하고 사측은 고정 상여가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인건비 부담이 구조적으로 커진다는 이유로 맞서고 있습니다. 고용노동 당국이 교섭 재개를 촉구했고 여러 차례 교섭이 열렸지만 집필 시점 기준으로 타결되지 않았습니다.

이 사안이 왜 단순한 노사 문제로 끝나지 않는지는 3절 ⑤와 함께 보면 드러납니다. 이 회사의 경쟁력은 주문에서 납품까지의 시간이 짧다는 데 있고, 그 짧은 시간은 전 공정을 한 지붕 아래에서 사람이 붙어 처리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생산이 멈추면 그 강점이 바로 손상됩니다. 그리고 6절 ⚠️ 박스에서 짚은 대로 상반기 실적에는 이 영향이 전혀 들어 있지 않습니다.

둘째,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입니다. 창업주가 최대주주인데 2026년 들어 보유 지분의 상당 부분을 시간외 대량매매로 처분했습니다. 회사는 외국인 투자자의 매수 수요를 고려한 거래라고 설명했고 매각설을 부인했지만, 창업주가 고령이고 자녀들이 지분을 보유하지 않은 데다 승계 계획이 알려진 바 없어 시장에서는 경영권 매각의 사전 정리로 보는 시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업 경쟁력과는 다른 축의 변수이지만 주식 수급과 경영 안정성에 영향을 미치고, 첫째 항목과 겹치면 무게가 달라집니다.

셋째, 접촉 방식의 전환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인공지능 반도체처럼 단자가 수천 개에 이르는 큰 칩에서는 이 회사가 강한 방식이 비용 면에서 불리해집니다. 이 회사도 그 시장에 들어가려 하고 있지만 집필 시점까지 확인된 것은 협의 단계까지입니다. 지금 가장 빠르게 커지는 시장의 상당 부분이 다른 방식으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위험의 실체입니다.

넷째, 해자의 단위가 작다는 점입니다. 4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축적은 칩 하나 위에 쌓입니다. 한 번에 크게 잃지 않는 대신 매번 조금씩 다시 겨뤄야 하고, 반도체 회사들이 새 칩을 내놓는 주기가 짧아질수록 그 겨룸의 횟수도 늘어납니다.

다섯째, 신공장의 시차입니다. 6절에서 본 대로 기존의 두 배 규모로 짓고 있는 공장이 가동에 들어가면 감가상각은 즉시 발생하지만 물량은 서서히 찹니다. 그 사이에 이익률이 눌리는데, 이 회사는 이익률이 워낙 높아 그 폭이 눈에 잘 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공장을 채우려면 3절 ⑥에서 본 대로 개발 단계의 자리가 양산 물량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여섯째, 산업 사이클입니다. 3절 ④에서 본 방어력은 완충이지 차단이 아닙니다. 반도체 투자가 오래 위축되면 새로 설계되는 칩의 수도 결국 줄고, 양산용 검사 부품은 더 먼저 줄어듭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4부에서 밸류체인 끝에서 시작된 수요가 여러 단계를 건너 전달되며 증폭된다고 한 구조에서 이 회사도 자유롭지 않습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세 가지 해석

사실을 정리했으니 이제 해석입니다. 리노공업을 통해 이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보겠습니다.

① 팔리는 시점이 다르면 같은 산업도 다른 사업이 됩니다

앞 편의 HPSP와 이 회사는 둘 다 소부장 강소기업이고 이익률도 비슷한데 매출 곡선이 정반대였습니다. 한쪽은 유일한데 줄었고 다른 쪽은 경쟁자가 여럿인데 늘었습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기술의 우열이 아니라 물건이 팔리는 시점이었습니다 — 앞은 고객이 새 라인을 지을 때, 뒤는 고객이 새 칩을 그릴 때 팔립니다.

이 관점은 소부장 기업을 볼 때 일반적으로 쓸 수 있습니다. 어떤 회사의 매출이 고객의 어느 활동에 붙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면, 그 회사가 어떤 뉴스에 반응하는지가 예측됩니다. 설비 투자 계획에 붙어 있으면 고객의 자본지출 발표가 선행 지표이고, 생산량에 붙어 있으면 가동률이 지표이며, 개발 활동에 붙어 있으면 신제품 출시 주기가 지표입니다.

그리고 이 셋 가운데 개발 활동에 붙어 있는 매출이 사이클 방어에 가장 유리합니다. 생산은 수요가 줄면 바로 줄지만 개발은 오히려 어려울 때 서두르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규모의 상한이 있어서, 크게 자라려면 그 자리가 결국 생산 단계로 이어져야 합니다.

② 부품을 파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시간을 파는 회사가 있습니다

3절 ③에서 본 것이 이 편에서 가장 낯선 사실일 수 있습니다. 고객이 이 회사에 값보다 먼저 묻는 것은 언제까지 만들어줄 수 있느냐입니다. 검사 부품이 늦으면 칩 개발 일정 전체가 밀리고, 그 몇 주가 그 칩의 출시 시점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원가 경쟁력의 정의가 달라집니다. 싸게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빨리 만드는 능력이 값을 만들고, 그래서 이 회사가 미세 가공부터 도금과 조립까지 전부 직접 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밖에 맡기면 단가는 낮출 수 있어도 시간이 길어지는데, 이 사업에서는 그 교환이 손해입니다.

그래서 어떤 회사의 수직 통합을 볼 때는 그것이 원가를 위한 것인지 시간을 위한 것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앞쪽이면 규모가 커질수록 유리하고 뒤쪽이면 주문이 다양할수록 유리합니다. 이 회사가 3만여 종을 만들면서도 이익률이 높은 것은 뒤쪽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③ 이익률이 높다는 사실이 그 이익률의 조건을 가려줍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소부장 기업 중에서도 드물게 높습니다. 그런데 7절 첫째에서 본 노사 갈등의 쟁점이 그 이익률이 어떤 구조 위에 서 있었는지를 함께 보여줍니다. 고정급보다 성과급 비중이 큰 임금 구조는 회사 입장에서 고정비를 낮게 유지해주고, 그래서 업황이 흔들려도 이익률이 잘 지켜집니다.

이 구조가 옳은지 그른지를 여기서 판정할 일은 아닙니다. 다만 투자자 입장에서 확인할 것은 있습니다 — 어떤 회사의 높은 이익률이 기술에서만 오는지, 아니면 비용 구조의 설계에서도 오는지입니다. 뒤쪽이 섞여 있다면 그 구조가 바뀔 때 이익률도 함께 움직입니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변수는 재무제표에 미리 나타나지 않습니다. 6절에서 본 상반기 실적은 파업이 시작되기 전 숫자이고, 임금 구조가 바뀐다면 그 영향은 그보다 더 뒤에 나타납니다. 실적표가 늘 몇 걸음 뒤에서 따라온다는 사실을 이 회사가 지금 보여주고 있는 셈입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특정 날짜의 일정을 나열하는 대신,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네 가지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남깁니다.

첫째, 검사 핀의 매출이 절대 금액으로 늘어나는가. 4절 판별식의 첫 확인 지점입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핀은 생산량의 함수이므로, 개발 단계에서 잡은 칩이 양산에 들어가면 이 숫자가 먼저 반응합니다. 회사가 반기·사업보고서에서 제품군별 매출을 밝히므로 소켓과 핀의 금액을 나란히 놓고 보시면 됩니다. 소켓만 늘고 핀이 제자리라면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둘째, 늘린 생산능력이 채워지는가. 6절에서 본 대로 신공장은 감가상각이 먼저 시작되고 물량은 나중에 찹니다. 가동 이후 몇 분기 동안 이익률이 어디까지 내려갔다가 언제 회복되는지를 보시면 이 회사가 그 공간을 실제로 채우고 있는지가 드러납니다.

셋째, 새로 진입한 응용처에서 두 번째 주문이 나오는가. 첫 채택은 시험일 수 있습니다. 3절 ④에서 본 대로 이 회사의 구조에서 중요한 것은 한 번 들어간 자리가 그 제품의 수명 동안 이어지는 것이므로, 같은 고객의 다음 세대 제품에도 들어갔는지가 실질적인 확인입니다.

넷째, 임금 구조와 지배구조가 어떤 형태로 정리되는가. 7절 첫째와 둘째에서 본 두 변수는 사업과 다른 축이지만 이 회사에서는 이익률과 경영 안정성에 직접 닿아 있습니다. 어떤 결론이 나든 그 뒤의 손익 구조가 이전과 같은지를 확인하시는 것이 핵심이고, 그 답은 타결 시점이 아니라 그다음 몇 분기의 영업이익률에서 나옵니다.

10. 마무리하며

리노공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아직 시장에 나오지 않은 시제품 칩을 검사할 때 칩과 장비 사이를 이어주는 소모성 부품을, 종류마다 새로 설계해 짧은 시간에 만들어 내는 회사입니다. 3만여 종이라는 숫자가 그 방식의 결과이고, 소모품을 만들면서 영업이익률 40%대 후반을 낸다는 사실이 그 방식의 값입니다.

이 편에서 확인한 것은 그 값이 어디서 나오는가입니다. 이 회사가 파는 것은 부품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간에 가깝습니다. 검사 부품이 늦으면 칩 개발 일정 전체가 밀리므로 고객이 값보다 먼저 묻는 것은 납기이고, 그래서 미세 가공부터 도금과 조립까지 전부 직접 하는 구조 자체가 제품의 일부가 됐습니다. 그리고 개발 단계에서 한 번 들어간 부품은 측정 기준값 때문에 양산에서도 그대로 쓰이는 경우가 많아, 지금의 소량 주문이 몇 년 뒤 물량의 예약이 됩니다.

다만 그 예약이 반드시 실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자가 칩 하나 단위로 서 있어 매번 다시 겨뤄야 하고, 인공지능 반도체처럼 가장 빠르게 커지는 시장에서는 다른 접촉 방식이 유리한 국면이 열렸습니다. 여기에 창사 이래 처음 겪는 파업과 창업주의 지분 정리가 겹쳐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볼 때 물어야 할 것은 지금 이익률이 얼마인가가 아니라, 개발실에서 잡은 자리가 공장까지 따라가는가입니다.

다음 편은 소부장 히어로즈의 세 번째 자리, 원익IPS입니다. 이 회사가 다 만든 칩을 검사하는 자리에 있다면, 그 회사는 그 칩을 만드는 도중에 웨이퍼 위에 원자 단위로 층을 쌓아 올리는 장비를 만듭니다. 물건을 팔아 절반 가까이 남기는데 정작 영업이익률은 한 자릿수인 회사인데, 그 사이가 무엇으로 채워져 있는지가 그 편의 출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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