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DB하이텍, 12인치로 가지 않고 8인치에 남은 파운드리 (제조 히어로즈 ①)

2025년 이 회사는 웨이퍼를 157만 장 넘게 출하했습니다. 1년 전보다 18.1% 많은 물량이고, 두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각각 94.96%와 88.20%였습니다. 그런데 반도체 부문 매출은 18.6% 늘어나는 데 그쳤습니다. 두 숫자가 거의 같다는 것은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이 제자리였다는 뜻입니다. 공장은 꽉 찼는데 값은 오르지 않았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파운드리를 다루며 ‘한 장에 얼마를 받느냐가 이 사업의 전부’라고 했는데, 이 회사의 지난 3년이 그 문장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이 회사가 오래전에 내린 선택 하나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 업계가 12인치로 몰려갈 때 8인치에 남기로 한 것입니다.

1. 왜 지금 DB하이텍인가 — 미세공정 경쟁 밖의 반도체

8인치 파운드리라는 자리는 반도체 시리즈를 읽어오신 분들에게 낯선 종류일 수 있습니다. 앞선 편들에서 다룬 이야기가 대체로 더 작게 만드는 경쟁이었기 때문입니다. 나노 단위를 다투고, 극자외선 노광장비를 몇 대 확보했는지를 세고, 한 세대 앞선 공정을 누가 먼저 양산하느냐가 승부처였습니다.

이 회사는 그 경쟁에 없습니다. 웨이퍼 지름 8인치, 공정 선폭은 마이크로미터 단위입니다. 최신 공정과 비교하면 수백 배 굵습니다. 그런데도 두 공장이 90% 안팎으로 돌아가고, 2025년 영업이익률이 19.8%였습니다. 더 작게 만들지 않으면서도 돈을 버는 반도체가 있다는 뜻이고, 이 편은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다룹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파운드리를 설명하며 ‘설계는 남이 하고 만들기만 맡는 사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의 값어치가 웨이퍼 한 장에 얼마를 받느냐로 수렴한다고 했습니다. 이 회사는 그 명제가 가장 순수하게 적용되는 자리에 있습니다 — 자기 브랜드 제품도 일부 만들지만 매출의 대부분이 남의 설계를 받아 찍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편을 읽는 내내 배경에 두셔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2025년부터 이 회사의 연결 실적에 반도체가 아닌 사업이 섞여 들어왔습니다. 그해 7월 합금철 회사를, 8월에 건설 회사를 각각 지분 100%로 인수했습니다. 그래서 연결 매출 증가율과 반도체 사업의 실제 성장률이 다릅니다. 2절에서 그 차이를 숫자로 정리하겠습니다.

제조 히어로즈 두 번째 편에서 다룰 TSMC와 나란히 놓으면 이 자리의 성격이 한층 선명해집니다. 두 회사 모두 남의 설계도를 받아 웨이퍼를 찍어주는 파운드리인데, 갈림길에서 정반대를 골랐습니다. 그 회사는 세대가 바뀔 때마다 더 큰 돈을 걸며 최선단으로 계속 걸어갔고, 이 회사는 그 걸음을 멈추고 8인치에 남았습니다. 3부가 제조 단계를 포기의 연쇄로 정리하면서 이 산업에서 남는다는 것은 이긴다는 뜻이 아니라 계속 걸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했는데, 두 회사는 그 문장 앞에서 서로 다른 답을 낸 셈입니다. 어느 쪽이 옳았는지를 가르는 것이 아니라, 같은 사업 모델 안에 두 개의 답이 함께 있다는 점이 이 미니시리즈 두 편을 나란히 읽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이 글이 묻고자 하는 것은 세 가지입니다. 8인치와 12인치는 왜 다른 물건인가, 미세공정이 필요 없는 반도체가 따로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공장이 꽉 찼는데도 값이 오르지 않는 구조는 무엇을 뜻하는가.

DB하이텍, 한눈에 보기

📌 기본 정보 티커: 코스피 000990 | 사업 구성: 반도체(웨이퍼 수탁생산)가 매출의 대부분이며, 2025년 인수로 합금철·건설·골프장·부동산이 연결에 추가됨 | 생산 거점: 부천과 상우 두 캠퍼스에서 8인치 웨이퍼를 생산 | 지배구조: DB Inc.가 최대주주이며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지분이 30%에 못 미치는 구조 | 시장 내 위치: 아날로그와 전력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는 8인치 파운드리이며, 국내에서 이 영역을 전문으로 하는 상장사는 드묾 | 한 줄 정체성: 업계가 12인치와 미세공정으로 몰려갈 때 8인치에 남아, 더 작게 만드는 대신 더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값을 지켜온 파운드리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파는 것은 웨이퍼입니다. 정확히는 고객이 준 설계도대로 웨이퍼에 회로를 새겨 넘기는 일이고, 그 대가를 웨이퍼 장수로 받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그 안에 값을 가르는 요소가 여럿 있고, 최근에는 반도체가 아닌 사업까지 연결에 들어왔습니다.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반도체 — 매출의 대부분이자 이 편의 본체

2025년 이 부문 매출이 1조 3,317억원으로 연결 매출의 95%였습니다. 부천과 상우 두 캠퍼스에서 웨이퍼를 찍어 고객에게 넘깁니다. 만드는 것은 신호를 다루는 칩과 전력을 다루는 칩이 중심이고, 3절에서 그 두 갈래를 원리로 다루겠습니다.

돈을 받는 방식이 이 사업의 성격을 규정합니다. 웨이퍼 한 장에 얼마씩 받는 구조라, 매출은 ‘몇 장을 찍었는가’와 ‘한 장에 얼마를 받았는가’의 곱으로 결정됩니다. 그리고 두 숫자가 따로 움직입니다 — 물량이 늘어도 값이 내려가면 매출은 제자리이고, 물량이 그대로여도 어려운 공정으로 옮겨가면 매출이 늡니다.

공장이 얼마나 돌아가는지도 중요합니다. 반도체 공장은 짓는 데 조 단위가 들고 그 비용이 감가상각으로 매년 빠져나가는데, 그 부담은 웨이퍼를 몇 장 찍든 거의 같습니다. 그래서 가동률이 떨어지면 한 장당 짊어지는 고정비가 급격히 커집니다. 이 회사의 2025년 평균 가동률은 부천 94.96%, 상우 88.20%였습니다.

2025년에 새로 들어온 것들 — 반도체가 아닌 사업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변화가 있습니다. 2025년 7월 1일 합금철을 만드는 회사의 지분 100%를, 8월 29일 건설 회사의 지분 100%를 각각 취득해 연결에 편입했습니다. 회사는 사업 다각화와 협업을 통한 시너지를 목적으로 밝혔습니다.

그 결과 2025년 연결 매출 1조 3,972억원에 합금철 401억원과 건설 30억원이 더해졌고, 기존에 있던 골프장·부동산 224억원과 합쳐 반도체가 아닌 사업이 655억원가량을 차지하게 됐습니다. 비중으로는 5% 안팎이지만, 성장률을 볼 때는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연결 매출 증가율과 사업의 실제 성장은 다릅니다 2025년 이 회사의 연결 매출은 1조 1,312억원에서 1조 3,972억원으로 23.5% 늘었습니다. 언뜻 큰 폭의 성장인데, 반도체만 떼어보면 1조 1,227억원에서 1조 3,317억원으로 18.6% 증가입니다. 차이는 그해에 인수한 회사들이 더해졌기 때문입니다. 합금철은 7월부터, 건설은 9월부터 연결에 들어왔으므로 2026년에는 온전히 반영돼 그 효과가 더 커집니다. 즉 앞으로 몇 분기 동안 연결 매출 증가율은 반도체 사업의 실제 성장보다 높게 보일 것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를 보실 때는 사업부문별 매출표를 반드시 여셔야 합니다. 회사가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반도체·골프장·건설·합금철을 나눠 공시하므로 확인이 어렵지 않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이 글의 6절 표는 반도체 부문 매출을 따로 적었습니다.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을 계산하려면 연결 전체가 아니라 반도체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인수를 어떻게 볼지는 갈립니다. 한쪽에서는 경기를 타는 반도체 사업의 변동성을 다른 사업으로 덜어내려는 선택으로 읽을 수 있고, 다른 쪽에서는 본업과 무관한 영역으로 자원이 나가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7절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습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여기서부터가 이 글의 본론입니다. 읽는 렌즈를 하나 먼저 드리겠습니다. 파운드리가 어떤 사업인지,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공정이 어떤 단계로 이뤄지는지는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그래서 이 절은 그 위에서 다른 질문으로 갑니다 — 왜 어떤 반도체는 굳이 작게 만들 필요가 없는가. 웨이퍼 크기가 무엇을 정하는지(①), 아날로그 반도체가 미세공정을 요구하지 않는 이유(②), 전력을 다루는 칩이 왜 다른 물건인지(③), 그리고 그래서 웨이퍼 한 장 값이 무엇으로 정해지는지(④)를 순서대로 보겠습니다.

① 8인치와 12인치 — 크기가 정하는 것

웨이퍼는 반도체를 새기는 둥근 판입니다. 지름이 8인치면 약 20센티미터, 12인치면 약 30센티미터입니다. 지름이 1.5배인데 넓이는 2.25배가 되므로, 같은 칩을 찍으면 12인치 한 장에서 두 배 넘게 나옵니다.

그러면 12인치가 무조건 유리해 보이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웨이퍼가 커지면 공장 설비가 통째로 달라지고, 그 설비값이 웨이퍼 넓이보다 훨씬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그래서 12인치 공장은 한 장을 아주 많이 찍어야 본전이 나옵니다 — 스마트폰 프로세서나 메모리처럼 같은 칩을 수억 개씩 만드는 제품에 맞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 대형 오븐과 작은 오븐 빵집에 한 번에 백 개를 굽는 대형 오븐과 스무 개를 굽는 작은 오븐이 있다고 해보겠습니다. 같은 빵을 매일 천 개씩 판다면 대형 오븐이 훨씬 싸게 먹힙니다. 한 번 돌릴 때마다 드는 전기와 사람 손이 개수로 나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문이 제각각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오늘은 이 손님이 서른 개, 내일은 저 손님이 열 개를 다른 모양으로 주문한다면 대형 오븐은 매번 절반도 못 채우고 돌아갑니다. 그때는 작은 오븐 여러 대가 낫습니다. 8인치가 남아 있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세상에는 수억 개씩 만드는 칩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종류가 아주 많고 각각은 적게 팔리는 칩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 물건을 12인치 공장에 넣으면 라인을 바꾸느라 시간이 다 가고 값이 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대형 오븐은 새로 사야 하지만 작은 오븐은 이미 값을 다 치른 것이 많습니다. 8인치 설비는 오래전에 감가상각이 끝난 것들이라 원가 구조가 완전히 다릅니다.

② 아날로그 반도체는 왜 작아지지 않아도 되는가

반도체는 크게 디지털과 아날로그로 나뉩니다. 디지털은 0과 1만 다루고, 아날로그는 그 사이의 연속적인 값을 다룹니다. 소리·빛·온도·전압처럼 세상에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은 전부 아날로그이고, 그것을 디지털로 바꿔주는 칩이 아날로그 반도체입니다.

디지털 칩은 작아질수록 좋습니다. 트랜지스터를 더 많이 넣을수록 계산이 빨라지고, 같은 넓이에 더 많이 들어가니 개당 값도 내려갑니다. 반도체 산업이 수십 년 동안 미세공정 경쟁을 해온 이유입니다.

아날로그는 다릅니다. 이 칩이 하는 일은 계산이 아니라 신호를 정확하게 다루는 것인데, 트랜지스터를 작게 만들수록 오히려 불리해집니다. 작아지면 잡음에 약해지고, 소자마다 특성이 조금씩 달라지며, 다룰 수 있는 전압 폭이 좁아집니다. 신호를 정밀하게 재야 하는 물건에게는 전부 나쁜 방향입니다.

그래서 아날로그 반도체는 굵은 공정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영역의 경쟁력은 선폭이 아니라 다른 데서 나옵니다 — 같은 회로를 만들어도 얼마나 균일하게 나오는지, 온도가 바뀌어도 값이 흔들리지 않는지, 오래 써도 특성이 변하지 않는지입니다. 이런 것은 장비를 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정을 오래 돌려본 데서 나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미세공정 경쟁과 무관한 반도체 시장 반도체 뉴스는 대부분 미세공정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쓰이는 반도체의 상당수는 그 경쟁과 무관합니다. 자동차 한 대에 반도체가 수백 개 들어가는데 그중 최신 공정으로 만드는 것은 몇 개뿐입니다. 나머지는 창문을 올리고, 배터리 전압을 재고, 센서 신호를 읽는 칩들이며 전부 굵은 공정으로 만듭니다. 가전과 산업 설비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시장의 특징은 종류가 아주 많고 각각의 물량은 적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고객에게 크게 의존하지 않는 대신, 고객 수백 곳을 관리해야 하고 그만큼 영업과 설계 지원에 손이 많이 갑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최신 공정 시장과 경기 사이클이 다릅니다. 스마트폰이 안 팔려도 자동차와 산업 설비 수요가 버텨주는 해가 있고, 반대인 해도 있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파운드리를 하나로 묶어 다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 서로 다른 사이클을 타는 시장이 겹쳐 있습니다.

③ 전력을 다루는 칩 — 왜 다른 물건인가

이 회사의 또 다른 주력이 전력 반도체입니다. 전기를 끄고 켜고 바꾸는 역할을 하는데, 신호를 다루는 칩과는 요구 조건이 완전히 다릅니다.

가장 큰 차이가 전압과 열입니다. 신호용 칩은 몇 볼트를 다루지만 전력용은 수십에서 수백 볼트를 다룹니다. 그리고 전기를 끄고 켤 때마다 열이 납니다. 그래서 트랜지스터를 만드는 방식 자체가 다릅니다 — 얇게 만들면 높은 전압에서 뚫리고, 열이 빠져나갈 통로도 확보해야 합니다.

여기서 어려운 것은 그 두 종류를 한 칩에 함께 넣는 일입니다. 요즘 부품들은 전력을 다루면서 동시에 그것을 제어하는 회로가 필요한데, 둘을 따로 만들어 붙이면 크기와 값이 커집니다. 그래서 신호용 소자와 전력용 소자를 하나의 웨이퍼에 함께 새기는 공정이 나왔고, 이 회사가 오래 다뤄온 영역이 그것입니다.

이 공정이 값어치를 갖는 이유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성질이 다른 소자를 한 판에 넣으려면 공정 단계가 크게 늘고, 어느 한 단계에서 조건을 잘못 잡으면 다른 쪽 소자가 망가집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공정 단계가 수백 개라고 했는데, 이런 복합 공정은 그보다 더 늘어납니다. 그리고 단계가 늘어난 만큼 웨이퍼 한 장 값을 더 받습니다.

④ 그래서 웨이퍼 한 장 값은 무엇이 정하는가

①②③을 하나로 묶으면 이 사업의 구조가 드러납니다. 8인치 파운드리에서 웨이퍼 한 장 값을 올리는 방법은 크게 셋입니다.

첫째, 공정 단계가 많은 제품으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③에서 본 복합 공정이 그 예이고, 단계가 늘면 시간과 손이 더 들어가는 만큼 값을 더 받습니다. 둘째, 만들기 까다로운 제품을 맡는 것입니다. 수율을 내기 어려운 물건일수록 대신 만들어줄 회사가 적으니 값이 유지됩니다. 셋째, 고객과 함께 설계 단계부터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품이 다른 공장으로 옮겨가기 어려워집니다.

반대로 값이 떨어지는 경로도 분명합니다. 단순한 제품 비중이 늘거나, 같은 물건을 만들 수 있는 공장이 많아지거나, 고객이 값으로만 비교하기 시작하면 내려갑니다. 그리고 8인치는 세계적으로 설비가 많이 남아 있는 영역이라 이 압박이 상시로 존재합니다.

그래서 이 사업을 볼 때는 물량과 값을 반드시 나눠 봐야 합니다. 공장이 꽉 차 있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이 값을 지키면서 채운 것인지 값을 내려 채운 것인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4절에서 이 관점을 판별식으로 정리하겠습니다.

⑤ 아직 넘지 못한 것들

첫째, 값이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인트로에서 짚은 대로 2025년 반도체 매출 증가율과 웨이퍼 출하량 증가율이 거의 같았습니다. 공장은 90% 안팎으로 돌았는데 한 장에서 받는 값은 제자리였다는 뜻이고, ④에서 본 세 가지 방법이 아직 충분히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둘째, 12인치 쪽에서 내려오는 압박이 있습니다. 최신 공정 수요가 약해지는 국면에서는 12인치 공장들이 굵은 공정 물량까지 받으려 합니다. 원래 8인치가 맡던 제품이 12인치로 옮겨가면 이 시장의 값이 함께 내려갑니다.

셋째, 8인치 설비 자체가 늘고 있습니다. 특히 중국에서 대규모 증설이 이어졌고, 그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 값 압박이 커집니다. 관절 히어로즈와 센서 히어로즈 편들에서 중국의 증설이 값을 떨어뜨리는 과정을 반복해 봤는데, 반도체에서도 같은 구조가 작동합니다.

⚠️ 이 세 가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셋은 하나로 이어집니다. 8인치 시장에 설비가 남아 있고 위에서는 12인치가 내려오니, 값을 지키려면 ④에서 본 세 방법 중 하나를 계속 밀어야 합니다. 다만 이 회사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 8인치 설비는 대부분 감가상각이 끝났습니다. 새로 짓는 회사와 달리 설비 부담이 가볍고, 그래서 값이 내려가는 국면에서도 버틸 여지가 큽니다. 2024년 매출이 줄었을 때도 영업이익률 16.9%를 유지한 배경입니다. 그리고 이 시장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②에서 본 대로 아날로그와 전력 반도체는 원리상 미세공정으로 갈 수 없는 물건이고, 자동차와 산업 설비가 있는 한 수요도 남습니다. 문제는 그 시장이 얼마나 커지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서 이 회사가 어떤 자리를 잡느냐입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3절을 정리하면 이 회사가 8인치에 남아 버틸 수 있는 이유는 세 겹입니다. 첫째, 설비가 이미 값을 다 치렀습니다. 둘째, 아날로그와 전력을 함께 다루는 공정을 오래 돌려봤습니다. 셋째, 이 영역은 원리상 미세공정으로 갈 수 없어 시장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두 번째가 특히 중요합니다. 3절 ②에서 본 대로 아날로그 공정의 경쟁력은 선폭이 아니라 균일성과 안정성에서 나오고, 그것은 장비를 사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공정을 오래 돌려본 데서 나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는 파운드리의 진짜 자산을 ‘수율 데이터’로 정리했는데, 이 회사가 쥔 것이 그런 종류입니다 — 어느 조건에서 무엇이 잘못되는지를 아는 기록입니다.

셋째 겹도 짚어둘 값어치가 있습니다. 아날로그 반도체와 전력 반도체는 3절 ②에서 본 대로 원리상 미세공정으로 갈 수 없는 물건입니다. 그래서 이 시장은 최신 공정이 아무리 앞서가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자동차와 산업 설비가 존재하는 한 신호를 다루고 전력을 끄고 켜는 칩은 계속 필요하고, 그 칩들은 8인치 파운드리에서 만들어집니다. 이 회사가 오래 버틴 배경이자, 앞으로도 시장 자체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셋은 값을 지켜주지는 않습니다

여기서 이 편이 던지고 싶은 질문이 나옵니다. 위 세 겹은 이 회사가 이 시장에 남아 있게 해주지만, 웨이퍼 한 장 값을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는 버티는 힘이지 값을 받는 힘이 아니고, 공정 경험도 같은 물건을 만드는 다른 8인치 공장이 여럿이면 값으로 비교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8인치 파운드리라는 자리의 근본적인 성격입니다. 시장은 남지만 그 안에서 값을 받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며, 둘을 섞어 읽으면 이 회사를 잘못 보게 됩니다. 실제로 그런 국면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3절 ⑤에서 짚은 대로 8인치 설비가 세계적으로 늘었고, 위에서는 12인치가 굵은 공정 물량까지 받으려 합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웨이퍼 한 장 값은 2024년에 크게 내려간 뒤 2025년에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 대목에서 ②편의 TSMC와 정확히 반대편에 서게 됩니다. 그 회사도 결국 웨이퍼 한 장에 얼마를 받느냐로 승부하는데, 값을 올리는 길이 최선단으로 계속 올라가는 것이라 세대마다 더 큰 비용을 감당해야 합니다. 반대로 이 회사는 감당해야 할 비용이 훨씬 작은 대신 값을 올릴 사다리도 짧습니다. 같은 질문에 두 회사가 정반대 조건으로 답하고 있는 셈이고, 그래서 두 편의 판별식도 같은 지표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봅니다 — 한쪽은 값을 올릴 수 있는가를 묻고, 다른 쪽은 오르는 비용을 값으로 따라잡을 수 있는가를 묻습니다.

📌 그래서 무엇으로 판별할 것인가 —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이 올라가는가 이 회사의 판별식은 매출액도 가동률도 아닙니다. 둘 다 물량이 늘면 함께 좋아지는데, 물량은 값을 내리면 얼마든지 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봐야 할 것은 반도체 부문 매출을 웨이퍼 출하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회사가 사업보고서에 두 숫자를 모두 공시하므로 직접 계산할 수 있습니다 — 반도체 부문 매출은 사업부문별 매출표에, 웨이퍼 출하량은 생산실적 표에 나옵니다. 이 기준이 정확한 이유는 3절 ④에서 본 구조 때문입니다. 8인치 파운드리에서 값이 오르는 유일한 길은 더 어려운 공정으로 옮겨가는 것이고, 그 이동은 한 장 값에 바로 나타납니다. 반대로 값이 제자리라면 물량을 늘려 매출을 만들고 있다는 뜻이며, 그것은 설비가 남아 있는 시장에서 오래 가지 못합니다. 확인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반도체 매출 증가율이 웨이퍼 출하량 증가율보다 높은가. 둘째, 매출총이익률이 함께 오르는가 — 어려운 공정은 값을 더 받는 만큼 원가도 더 드니, 이익률까지 올라야 진짜 개선입니다. 셋째, 회사가 복합 공정이나 신규 공정의 비중을 밝히기 시작하는가. 참고로 이 계산을 할 때는 반드시 반도체 부문만 써야 합니다. 2절에서 본 대로 2025년부터 연결에 합금철과 건설이 들어왔으므로, 연결 매출 전체를 웨이퍼 수량으로 나누면 값이 부풀려집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DB하이텍을 둘러싼 큰 그림

한 회사를 이해하려면 누구와 싸우고 누구에게 팔며 누구에게 기대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 회사의 지도에는 특징이 하나 있습니다 — 같은 파운드리라도 12인치 최신 공정 회사들과는 사실상 다른 시장에 있고, 정작 직접 부딪히는 상대는 이름이 덜 알려진 8인치 전문 회사들입니다.

층을 나눠 보시면 더 선명해집니다. 옆에서는 같은 8인치 전문 회사들과 겨루고, 위에서는 12인치가 굵은 공정 물량을 가져가려 내려오며, 아래에서는 중국의 증설 물량이 값을 누릅니다. 그리고 고객은 최신 공정 시장과 완전히 다른 쪽에 있습니다.

🌏 글로벌 라이벌

  • Vanguard International Semiconductor [대만 상장]  대만의 8인치 전문 파운드리로 이 회사와 가장 직접적으로 겹칩니다. 아날로그와 전력 반도체를 주력으로 하고, 규모와 고객 기반에서 앞서 있어 값 경쟁이 벌어지면 먼저 부딪히는 상대입니다.
  • Tower Semiconductor [나스닥 TSEM]  이스라엘 기반의 특수 공정 파운드리입니다. 아날로그와 무선 주파수, 이미지 센서 같은 영역에서 3절 ④가 말한 ‘어려운 공정으로 값을 받는’ 전략을 오래 써온 회사이며, 이 회사가 가려는 방향의 참고 사례이자 경쟁자입니다.
  • 중국 8인치 파운드리군 [중국]  3절 ⑤에서 짚은 값 압박의 진원지입니다. 자국 수요와 정책 지원을 발판으로 설비를 크게 늘렸고, 그 물량이 시장에 나오면서 8인치 전반의 값이 눌렸습니다. 관절 히어로즈와 센서 히어로즈 편들에서 반복해 본 구조가 반도체에서도 같은 형태로 나타납니다.
  • 대형 12인치 파운드리군 [대만·한국 등]  직접 경쟁자는 아니지만 최신 공정 수요가 약해지는 국면에서 굵은 공정 물량까지 받으려 내려옵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파운드리를 하나로 묶어 다뤘는데, 실제로는 이 경계가 경기에 따라 움직입니다.

🤝 핵심 고객사

  • 아날로그·전력 반도체 설계 회사군 [글로벌]  이 회사의 주력 고객입니다. 자기 공장 없이 설계만 하는 회사들이며, 반도체 밸류체인 2부에서 팹리스를 다루며 본 구조 그대로입니다. 종류가 많고 각각의 물량은 적어 고객 수백 곳을 관리해야 합니다.
  • 자동차·산업 전자 고객군 [글로벌]  3절 ② 박스에서 본 대로 자동차 한 대에 들어가는 반도체 대부분이 굵은 공정으로 만들어집니다. 이 시장은 검증 기간이 길어 한 번 채택되면 오래 가는 대신, 진입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 가전·디스플레이 고객군 [국내·해외]  전력 제어와 신호 처리 칩의 수요처입니다. 경기를 타는 시장이라 물량 변동이 크고, 이 회사의 가동률이 흔들리는 원인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삼성전기 [코스피 009150]  반도체 소부장 히어로즈 ⑧편에서 다룬 회사입니다. 칩을 만들지 않으면서 칩 성능을 결정하는 기판을 만드는데, 이 회사가 찍은 웨이퍼가 잘려 칩이 된 뒤 그 기판 위에 올라갑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와 4부를 잇는 자리에서 만나는 관계입니다.
  • 국내 팹리스 기업군 [코스닥 상장]  설계만 하는 국내 회사들에게 이 회사는 몇 안 되는 국내 생산 선택지입니다. 해외 파운드리에 맡기면 물량이 적어 뒤로 밀리기 쉬운데, 가까운 곳에 공장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이 생태계에 갖는 의미가 작지 않습니다.
  • 국내 반도체 소재·장비 기업군 [코스닥 상장]  8인치 공정용 소재와 장비를 대는 회사들입니다. 최신 공정 장비와 달리 국산화 비중이 높은 영역이라, 이 회사의 가동률이 이들의 실적과 함께 움직입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시장이 사라지지는 않지만 그 안에 설비가 남아 있고, 위에서는 12인치가 내려오며 아래에서는 중국이 밀어 올립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파운드리의 승부처를 ‘수율과 고객 신뢰’로 정리했는데, 이 회사는 그 둘을 갖고도 값을 올리지 못하는 국면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국면이 얼마나 이어지느냐가 이 회사의 다음 몇 년을 결정합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앞에서 본 구조가 실제 숫자에 어떻게 찍히는지 보겠습니다. 이 표에서 중요한 것은 매출의 크기가 아니라, 물량과 값이 따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연결 매출과 반도체 부문 매출, 그리고 웨이퍼 출하량을 함께 실었습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분 매출 영업이익 비고
2023년(확정) 연결 1조 1,542억원 / 반도체 1조 1,542억원 2,654억원(영업이익률 23.0%) 매출총이익 4,420억원(이익률 38.3%). 웨이퍼 출하량 123만 6,779장. 반도체 매출을 출하량으로 나누면 장당 93만원대
2024년(확정) 연결 1조 1,312억원(YoY -2.0%) / 반도체 1조 1,227억원 1,908억원(YoY -28.1%, 영업이익률 16.9%) 매출총이익 3,868억원(이익률 34.2%). 웨이퍼 출하량 133만 5,299장으로 7.9% 늘었으나 매출은 감소. 장당 84만원대로 하락
2025년(확정) 연결 1조 3,972억원(YoY +23.5%) / 반도체 1조 3,317억원(YoY +18.6%) 2,773억원(YoY +45.3%, 영업이익률 19.8%) 매출총이익 5,004억원(이익률 35.8%), 당기순이익 2,526억원. 웨이퍼 출하량 157만 6,821장(YoY +18.1%)으로 반도체 매출 증가율과 거의 같음. 장당 84만원대 유지. 평균 가동률 부천 94.96%·상우 88.20%. 연결 매출에는 7월 인수한 합금철 401억원과 9월 인수한 건설 30억원이 포함
2026년 상반기(확정) 연결 7,740억원(YoY +21.9%) / 반도체 7,563억원 1,721억원(YoY +36.3%, 영업이익률 22.2%) 매출총이익 2,918억원(이익률 37.7%). 1년 전 같은 기간 영업이익률은 19.9%였음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위 네 행은 모두 회사가 공시한 확정 실적입니다(연결 기준). 반도체 부문 매출과 웨이퍼 출하량도 사업보고서와 반기보고서에 공개된 수치입니다. 장당 환산치는 회사가 공시한 숫자가 아니라 반도체 부문 매출을 웨이퍼 출하량으로 나눈 값입니다. 제품 구성이 바뀌면 같은 계산이 다른 결과를 내므로 방향성 참고로만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이 계산이 4절 판별식의 근거이므로, 절대값보다 연도별 방향을 보시는 편이 정확합니다. 2025년 연결 매출 증가율 23.5%를 그대로 성장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2절에서 짚은 대로 그해 7월과 9월에 인수한 회사들이 더해진 결과이며, 반도체만 보면 18.6%입니다. 2026년에는 인수 효과가 온전히 반영돼 이 차이가 더 커집니다. 이 편의 다른 수치 중 다음은 관측이거나 해석입니다 — 8인치 설비의 감가상각 진행 정도, 중국 증설이 값에 미친 영향, 12인치의 굵은 공정 진입 규모, 공정 난도와 웨이퍼 값의 관계.

표에서 가장 눈여겨볼 곳은 2024년과 2025년의 대비입니다. 2024년에는 웨이퍼를 7.9% 더 찍었는데 반도체 매출이 오히려 줄었습니다. 값이 크게 내려갔다는 뜻입니다. 2025년에는 18.1% 더 찍었고 매출도 18.6% 늘었습니다. 물량만큼 늘었다는 것은 값이 제자리였다는 뜻입니다.

즉 이 회사는 2024년에 값을 크게 내주고, 2025년에는 그 값을 회복하지 못한 채 물량으로 매출을 만들었습니다. 4절에서 판별식을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이 올라가는가’로 잡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이 회사에서 매출액이나 가동률은 신호를 주지 않고, 그 둘을 나눈 값만이 방향을 알려줍니다.

두 번째로 볼 것은 이익률입니다. 매출총이익률이 38.3%에서 34.2%로 떨어졌다가 35.8%로, 2026년 상반기 37.7%까지 회복했습니다. 값이 제자리인데 이익률이 오른 것은 물량이 늘면서 고정비가 나뉘었기 때문입니다. 3절 ①에서 본 대로 8인치 설비는 대부분 감가상각이 끝나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세 번째는 곳간입니다. 2025년 말 현금및현금성자산 3,231억원에 단기금융상품 1,328억원, 기타 유동 금융자산 6,069억원을 들고 있습니다. 값 압박이 이어지는 국면에서도 버틸 여유가 있고, 2절에서 본 인수에 쓸 자금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표에 없는 것을 봐야 합니다. 공정별·제품별 매출 구분이 공시되지 않습니다. 3절 ④에서 값을 올리는 방법으로 복합 공정 비중 확대를 짚었는데, 그 비중이 실제로 늘고 있는지는 외부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4절 판별식이 장당 환산치라는 간접 지표에 기댄 것도 그 때문입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여기까지가 강점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제 반대편을 봐야 합니다. 단기 악재가 아니라 이 회사의 구조 자체에서 나오는 위험을 층위별로 짚겠습니다.

첫째, 값을 올리지 못하는 구조입니다. 6절에서 본 대로 웨이퍼 한 장 값이 2024년 저점에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3절 ⑤에서 짚은 세 가지 압박 — 8인치 설비 과잉, 12인치의 하향 진입, 중국 증설 — 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고, 어느 것도 이 회사가 통제할 수 없습니다.

둘째, 물량으로 매출을 만드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2025년 평균 가동률이 부천 94.96%로 사실상 꽉 찼습니다. 더 찍으려면 설비를 늘려야 하는데, 값이 오르지 않는 국면에서 8인치에 증설하는 것은 위험한 선택입니다. 즉 지금의 성장 방식은 곧 벽에 부딪힙니다.

셋째, 경기를 크게 탑니다. 아날로그와 전력 반도체의 수요처가 자동차·가전·산업 설비인데, 전부 경기에 민감한 시장입니다. 2024년 매출이 줄고 영업이익이 28% 감소한 것이 그 사이클의 결과였습니다.

넷째, 공정별 실적이 공개되지 않습니다. 6절 마지막에서 짚은 대로 어떤 공정이 얼마나 늘고 있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습니다. 회사가 값을 올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어도 그것이 확인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투자자는 간접 지표에 기댈 수밖에 없습니다.

다섯째, 본업과 무관한 사업으로의 확장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2025년에 합금철과 건설 회사를 각각 지분 100%로 인수했습니다. 회사는 사업 다각화와 시너지를 목적으로 밝혔으나, 반도체 회사가 합금철을 만드는 구조가 어떤 시너지를 내는지는 아직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수에 쓴 자금은 반도체 사업의 공정 전환에 쓸 수도 있던 돈입니다.

여섯째, 지배구조입니다. 최대주주 지분이 특수관계인을 포함해도 30%에 못 미칩니다. 이 구조는 두 방향으로 작동합니다 — 경영권 방어에 취약하다는 점과, 소액주주 입장에서는 회사의 자본 배분 결정이 주주 이익과 정렬되는지를 계속 확인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다섯째에서 짚은 인수 결정이 그 확인이 필요한 사례입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세 가지 해석

사실을 정리했으니 이제 해석입니다. DB하이텍을 통해 이 산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것 세 가지를 짚겠습니다.

① 공장이 꽉 찼다는 것은 좋은 소식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가동률 95%라는 숫자를 만나면 보통 호황으로 읽습니다. 그런데 6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는 그 가동률로 값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물량이 18% 늘 때 매출도 18% 늘었으니, 한 장에서 받는 값은 그대로였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두 상태의 다음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값을 지키면서 채운 공장은 다음 사이클에서 더 받을 수 있지만, 값을 내려 채운 공장은 그 값이 새 기준이 됩니다. 한 번 내려간 단가를 다시 올리려면 고객에게 그럴 이유를 줘야 하는데, 그것이 3절 ④에서 본 세 가지 방법입니다.

그래서 제조업 기사에서 가동률을 만나면 매출과 물량을 함께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셋을 나란히 놓아야 그 회사가 값을 지키며 채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계산은 웨이퍼든 자동차든 강판이든 물량 단위가 공시되는 산업이면 어디서나 됩니다.

② 미세공정 경쟁 밖에도 반도체 시장이 있습니다

반도체 시리즈를 읽어오시면서 나노 경쟁 이야기를 여러 편에서 보셨을 겁니다. 그런데 3절 ② 박스에서 본 대로 세상에 쓰이는 반도체의 상당수는 그 경쟁과 무관합니다. 자동차 한 대에 수백 개가 들어가는데 최신 공정으로 만드는 것은 몇 개뿐입니다.

이 시장의 성격은 최신 공정 시장과 정반대입니다. 종류가 아주 많고 각각의 물량은 적으며, 한 고객이 매출의 큰 몫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신 공정 회사들이 겪는 ‘고객 한 곳의 결정이 실적을 흔드는’ 문제가 덜한 대신, 고객 수백 곳을 관리해야 하는 부담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이클도 다릅니다. 스마트폰이 안 팔려도 자동차와 산업 설비가 버텨주는 해가 있고 반대인 해도 있습니다. 반도체 관련 뉴스를 읽으실 때 그것이 어느 시장 이야기인지를 먼저 가르시면, 같은 ‘반도체 호황’이나 ‘반도체 불황’이라는 표현이 회사마다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이 보입니다.

③ 감가상각이 끝난 설비는 버티는 힘이지 이기는 힘이 아닙니다

이 회사의 가장 큰 강점으로 자주 꼽히는 것이 8인치 설비의 감가상각이 끝났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 2024년 매출이 줄었을 때도 영업이익률 16.9%를 지킬 수 있었던 배경이고, 값이 내려가는 국면에서 새로 짓는 회사보다 오래 버팁니다.

그런데 그 강점이 값을 올려주지는 않습니다. 감가상각이 끝났다는 것은 ‘이 값에도 남는다’는 뜻이지 ‘이 값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리고 같은 조건인 8인치 공장이 세계에 여럿이면, 그 여유는 값을 더 내릴 여지로 쓰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설비 부담이 없다’는 설명을 만나면 한 번 더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 그 여유가 값을 지키는 데 쓰이는가, 아니면 값을 내려 물량을 채우는 데 쓰이는가. 앞이면 이익률이 유지되고 뒤면 매출은 늘어도 장당 값이 내려갑니다. 이 회사의 지난 2년이 뒤쪽에 가까웠고, 그것이 4절 판별식이 묻는 바입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특정 날짜의 이벤트를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런 항목은 몇 달이면 낡습니다. 대신 몇 년이 지나도 유효한 질문 네 가지와, 각각을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는지를 남깁니다.

첫째, 반도체 매출 증가율이 웨이퍼 출하량 증가율보다 높은가. 4절에서 세운 판별식입니다. 회사가 사업보고서에 두 숫자를 모두 공시하므로 직접 나눠 보시면 됩니다. 매출이 물량보다 빨리 늘면 값이 오른 것이고, 같이 늘면 제자리이며, 물량만 늘면 값이 내려간 것입니다.

둘째, 매출총이익률이 함께 오르는가. 첫 번째와 반드시 같이 보셔야 합니다. 어려운 공정으로 옮겨가면 값을 더 받는 만큼 원가도 더 드는데, 이익률까지 올라야 진짜 개선입니다. 값만 오르고 이익률이 제자리면 원가 상승분을 그대로 받은 것에 가깝습니다.

셋째, 공정별 또는 제품별 매출을 공개하기 시작하는가. 지금은 반도체가 하나로 묶여 있어 3절 ④의 세 방법이 작동하는지 외부에서 알 수 없습니다. 회사가 이 구분을 밝히기 시작한다면 그 자체가 자신감의 신호이고, 판별식을 훨씬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됩니다.

넷째, 반도체가 아닌 사업이 어디까지 커지는가. 2025년에 합금철과 건설이 연결에 들어왔습니다. 이 비중이 계속 커지면 이 회사를 반도체 기업으로 보는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사업부문별 매출표에서 반도체 비중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보시면 됩니다.

10. 마무리하며

DB하이텍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업계가 12인치와 미세공정으로 몰려갈 때 8인치에 남아, 더 작게 만드는 대신 더 어렵게 만드는 쪽으로 값을 지켜온 파운드리입니다. 2025년 두 공장이 90% 안팎으로 돌았고 영업이익률 19.8%를 냈습니다. 동시에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은 2024년 저점에서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이 편은 제조 히어로즈의 첫 자리입니다. 반도체 밸류체인 3부에서 제조 구간을 훑으며 ‘설계는 남이 하고 만들기만 맡는 사업의 값어치가 웨이퍼 한 장에 얼마를 받느냐로 수렴한다’고 했는데, 이 회사가 그 명제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보여줍니다. 최신 공정도 아니고 자기 브랜드도 아닌, 남의 설계를 받아 찍는 일 하나로 1조원대 매출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이 편에서 확인한 것은 그 사업의 성적표가 매출액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매출은 값을 내리면 물량으로 만들 수 있고, 가동률은 그 결과일 뿐입니다. 봐야 할 것은 그 둘을 나눈 값이며, 그것이 오르지 않으면 공장을 아무리 돌려도 제자리입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이 회사를 볼 때 가장 흔한 오해는 8인치를 뒤처진 기술로 읽는 것입니다. 3절 ②에서 본 대로 아날로그와 전력 반도체는 원리상 미세공정으로 갈 수 없는 물건이고, 자동차와 산업 설비가 있는 한 이 시장은 남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낡았느냐가 아니라 그 시장 안에 공장이 너무 많다는 것이며, 그 조건에서 값을 지키는 방법을 찾는 것이 이 회사의 과제입니다.

다음 편은 같은 제조 히어로즈의 두 번째 자리, TSMC입니다. 남의 설계도를 받아 찍는다는 같은 사업 모델로 정반대 자리에 선 회사이며, 웨이퍼 한 장에서 받는 값을 올리기 위해 세대마다 더 큰 돈을 걸어야 하는 쪽의 이야기입니다. 두 편을 나란히 읽으시면 파운드리라는 한 단어 안에 얼마나 성격이 다른 두 전략이 들어 있는지가 보이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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