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마켓포커스] K-잠수함, 기술로 이기고 외교로 두 번 밀린 이유 (무기가 된 외교 ①)

폴란드는 2022년부터 한국산 K9 자주포와 K2 전차를 반복해서 사들였습니다. 조선·방산 밸류체인 총정리 3부에서 다룬 것처럼 2025년 7월에도 K2 2차 계약(8조 8,000억원)을 체결했을 정도로 한국 무기에 화끈한 신뢰를 보여준 나라입니다. 그런데 그 폴란드가 정작 자국 잠수함 사업에서는 한국이 아닌 스웨덴 사브를 골랐고, 2026년 6월 30일 약 7조 5,000억원 규모 최종 건조 계약까지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열흘도 지나지 않은 7월 6일, 이번엔 캐나다가 최대 60조원 규모 잠수함 사업에서 한화오션이 아닌 독일 TKMS를 선택했습니다. 두 사건을 각각 따로 보면 그냥 수주 실패 두 건입니다. 그런데 나란히 놓으면 훨씬 구조적인 패턴이 보입니다 — 기술은 두 나라 모두에서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았는데, 정작 계약서에는 한국의 이름이 없었습니다. 같은 나라가 전차는 두 번 사고 잠수함은 안 샀다는 사실까지 겹쳐 보면, 이 시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것이 성능이 아니라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오늘은 그 정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긴 쪽이 정말 이긴 것인지까지 따라가 보겠습니다.

1. 무슨 일이 있었나 — 8개월 새 두 번의 고배

먼저 사실관계를 시간순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두 사건이 서로 다른 나라에서 벌어졌는데도 결론에 이르는 문법이 거의 같다는 점을 눈여겨보시면 좋겠습니다.

  • 2025.11 폴란드 오르카 프로젝트(약 8조원, 잠수함 3척)에서 스웨덴 사브의 A26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습니다. 브와디스와프 코시니아크카미시 폴란드 부총리는 스웨덴이 납기·기술협력·상호 조달 조건에서 가장 우수한 종합 제안서를 냈다고 선정 배경을 밝혔습니다. 성능이 아니라 조건을 앞세운 설명이라는 점이 이후 벌어질 일의 예고편이었습니다.
  • 2025.12 폴란드와 스웨덴이 합의각서를 체결하며 2026년 상반기 최종 이행계약 체결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 2026.4 한화오션이 장보고-Ⅲ 배치2 3척에 1척 임대를 더한 재도전 제안을 냈습니다. 오르카 요구 성능이 재조정되던 국면에서 나온 두 번째 기회 모색이었고, 실제로 이 무렵 폴란드 국방차관이 “스웨덴의 최종 제안이 기대치에 못 미치면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을 수 있다”며 다른 파트너와의 협상 재개 가능성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하면서 사업 전체가 원점 재검토될 조짐마저 보였습니다.
  • 2026.6.30 결국 폴란드는 사브 자회사 코쿰스와 약 7조 5,000억원 규모 최종 건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한화오션의 재도전은 계약 직전까지 이 사업을 흔드는 변수가 됐을지언정 결과를 뒤집지는 못했습니다.
  • 2026.7.6 폴란드 계약으로부터 열흘도 지나지 않아 캐나다 초계잠수함사업(CPSP, 최대 60조원·잠수함 최대 12척에 30년 유지보수)에서 독일 TKMS가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고 한화오션은 차순위에 그쳤습니다.
  • 2026.7.7 발표 다음 날 한화오션 주가가 22.83% 급락했습니다. 같은 날 한화시스템도 17.18% 하락했는데, 이 회사가 레이더·전자장비 협력사로 이 사업에 참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 종목이 아니라 두 종목이 함께 빠졌다는 사실이 이 수주전의 성격을 보여줍니다.

마지막 항목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화오션은 이 사업에 혼자 들어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HD현대중공업·현대차그룹·정부 지원까지 묶어 수소 트럭과 충전 인프라, LNG 투자 확대, 현지 기업 협력을 아우르는 경제 패키지를 제안했고, 알려진 규모만 약 7조원 투자에 110조원 경제적 기여였습니다. 조선·방산 밸류체인 총정리 4부에서 확인한 대로 이런 형태를 방산 원팀이라 부르는데, 이번 제안은 단순한 무기 판매가 아니라 국가 대 국가의 산업 동맹 제안에 훨씬 가까웠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짚을 것이 있습니다. 두 사업의 시차가 열흘도 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폴란드가 최종 계약에 서명한 6월 30일과 캐나다가 결과를 발표한 7월 6일 사이에 한국 조선업계가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없었습니다. 대응이 늦어서 진 것이 아니라, 두 나라가 각자의 판단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독립적으로 내려진 두 결정이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는 사실 자체가, 이것이 개별 협상의 실패가 아니라는 첫 번째 근거입니다.

그럼에도 결과는 TKMS의 승리였습니다. 그리고 이 지점이 이 글의 출발점입니다 — 국가 차원의 패키지를 통째로 얹고도 졌다면, 이 시장에서 승부를 가르는 변수는 제안의 크기가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2. 왜 자꾸 밀리는가 —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입니다

두 사건의 원인을 뜯어보면 세 갈래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셋은 나란히 놓인 세 항목이 아닙니다. 하나가 근본 변수이고 나머지 둘은 그 변수가 제도와 산업 특성이라는 서로 다른 옷을 입고 나타난 형태입니다. 근본부터 보겠습니다.

기술이 아니라 동맹이 갈랐다 — 근본 변수

폴란드 사례부터 보면 결정적인 배경이 하나 있습니다. 스웨덴이 2024년 NATO에 가입했다는 사실입니다. 스웨덴이 동맹 안으로 들어오면서 폴란드에게 이 나라는 더 이상 그냥 좋은 잠수함을 만드는 외국 회사가 아니라, 발트해에서 같은 편으로 함께 작전할 나라가 됐습니다. 실제로 이 무렵 오르카의 요구 성능이 재조정됐는데, 장거리 타격 능력의 우선순위가 내려가고 발트해 연안 작전과 통합작전 능력이 앞으로 올라왔습니다. 기술 경쟁의 채점 기준 자체가 동맹 관계 변화에 따라 다시 짜인 것입니다.

캐나다도 문법이 같습니다. 선정 이유로 제시된 것은 NATO 상호운용성, 북극 해역 최적화, 그리고 유럽 내에 이미 깔려 있는 정비 인프라였습니다. 셋 다 성능 지표가 아니라 관계와 위치에 관한 조건입니다. 잠수함은 한 번 사면 30년 넘게 쓰는 장비이고 그동안 계속 부품과 정비를 받아야 하는데, 그 30년을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가 성능표보다 앞선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 시리즈의 제목이 왜 ‘무기가 된 외교’인지가 드러납니다. 무기를 파는 경쟁에서 외교가 변수 중 하나인 것이 아니라, 외교 자체가 무기로 쓰이고 있습니다. 스웨덴은 NATO 가입이라는 외교적 사건 하나로 폴란드 시장의 채점표를 바꿨고, 독일은 이미 유럽 안에 있다는 위치만으로 캐나다의 요구조건에 들어맞았습니다. 한국이 아무리 좋은 잠수함을 만들어도 이 조건은 기술로 충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변수는 한국이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납기를 당길 수도 있고 가격을 낮출 수도 있고 현지 생산을 늘릴 수도 있지만, NATO 회원국이 될 수는 없습니다. 뒤에 나올 두 갈래는 이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실제 계약 조건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는 형태입니다.

바이 유러피언과 절충교역 — 근본 변수가 제도로 구현된 형태

유럽 방산 시장에는 유럽산을 우선 사자는 정책 기조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EU 차원의 방위산업 육성 프로그램들이 자금 지원 조건에 유럽산 부품 비율을 걸어두는 방식이 대표적입니다. 표면적으로는 산업 정책이지만 실제 효과는 비유럽 공급자에 대한 진입 장벽입니다.

여기에 절충교역이 겹칩니다. 절충교역은 무기를 사면서 판매국에 자국 산업으로의 기술 이전이나 현지 생산, 부품 발주 같은 반대급부를 요구하는 관행입니다. 발주국 입장에서는 무기도 얻고 산업도 키우는 방식이고, 공급자 입장에서는 계약 금액의 상당 부분을 현지에 되돌려줘야 하는 부담입니다.

이번 두 사업에서도 이 조건이 그대로 드러났습니다. 폴란드가 선정 이유로 든 상호 조달 조건이란 결국 폴란드 기업이 이 사업에서 무엇을 만들게 되느냐는 문제이고, 캐나다가 언급한 유럽 내 기존 정비 인프라란 앞으로 30년간 정비 물량이 어디로 흘러가느냐는 문제입니다. 한화오션이 약 7조원 투자와 110조원 경제적 기여라는 국가 차원 패키지를 들고 나간 것도 바로 이 항목에서 점수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한국도 이 게임의 규칙을 정확히 알고 있었고 감당할 준비도 돼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밀렸다는 것은, 이 항목의 점수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지리와 관계로 매겨지는 부분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절충교역이 지리적 거리를 비용으로 바꾸는 방식 절충교역의 핵심은 “얼마에 파느냐”가 아니라 “그 돈이 어디로 돌아오느냐”입니다. 발주국은 무기 대금의 일부가 자국 공장과 일자리로 되돌아오기를 원하고, 그 비율과 방식을 계약 조건으로 명시합니다. 그래서 이 조건은 지리적으로 가까운 공급자에게 구조적으로 유리합니다. 스웨덴 조선소가 폴란드에 현지 생산 라인을 깔고 기술자를 보내는 것과, 한국 조선소가 같은 일을 하는 것은 이동 거리와 인력 파견 비용, 언어와 규격의 차이만큼 부담이 다릅니다. 성능표에는 절대 나타나지 않지만 제안서 총점에는 반영되는 항목입니다. 폴란드 부총리가 선정 이유로 든 “납기·기술협력·상호 조달 조건”이 정확히 이 영역이고, 캐나다가 언급한 “유럽 내 기존 정비 인프라”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①번의 동맹이라는 변수가 계약서 문구로 번역되면 이런 모습이 됩니다.

왜 유독 잠수함에서만 반복되는가 — 근본 변수가 무기 특성과 만난 형태

여기서 반드시 짚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같은 폴란드가 K9 자주포와 K2 전차는 반복해서 샀습니다. 2025년 7월 K2 2차 계약만 8조 8,000억원 규모였습니다. 같은 나라, 같은 시기, 같은 한국 방산 기업들인데 지상무기는 팔리고 잠수함은 안 팔립니다. 동맹이 변수라면 왜 전차에는 작동하지 않았을까요.

무기의 성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전차와 자주포는 사 오면 그 나라 군대가 독립적으로 운용합니다. 정비도 상당 부분 자국에서 가능하고, 다른 나라 장비와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며 함께 싸울 일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반면 잠수함은 정반대입니다 — 바다 밑에서 동맹국 함정·항공기와 정보를 주고받으며 작전해야 하고, 통신 규격과 지휘 체계가 맞지 않으면 아예 같은 작전에 넣을 수 없습니다. 게다가 30년 넘게 쓰면서 계속 정비와 성능 개량을 받아야 하는 장비입니다.

캐나다 CPSP의 계약 구조를 다시 보면 이 차이가 숫자로 확인됩니다. 이 사업은 ‘잠수함 최대 12척’이 아니라 ‘잠수함 최대 12척에 30년 유지보수’입니다. 즉 발주국이 사는 것의 상당 부분은 배가 아니라 앞으로 30년 동안 이어질 관계입니다. 조선·방산 밸류체인 총정리 4부에서 확인한 대로 함정 MRO는 한 번 거래를 트면 그 배가 퇴역할 때까지 반복 물량이 들어오는 구조인데, 이 말은 발주국 입장에서 뒤집으면 한 번 고르면 30년 동안 그 나라에 묶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30년을 함께할 상대를 고르는 자리에서는 지금 이 순간의 성능표보다 그 상대가 30년 뒤에도 같은 편일 것인가가 더 무거운 질문이 됩니다. K-잠수함 수출이 지상무기와 달리 이 지점에서 반복해 막히는 구조적 이유가 여기 있고, 동시에 이것이 왜 극복 가능한 문제가 아닌지도 설명해줍니다 — 한국이 아무리 좋은 정비 체계를 제안해도, 그것을 30년 동안 유럽 한복판에서 유지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기술이 아니라 지정학이 답하기 때문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 공구를 사는 일과 팀에 합류하는 일 전차를 사는 것은 좋은 공구를 사는 일에 가깝습니다. 성능이 좋고 값이 맞으면 어느 브랜드든 상관없습니다. 고장 나면 부품을 주문하면 되고, 그 공구가 다른 공구와 실시간으로 대화할 필요도 없습니다. 잠수함을 사는 것은 팀에 새 멤버를 들이는 일에 가깝습니다. 30년을 함께 일할 사람이고, 다른 멤버들과 같은 언어로 즉시 소통해야 하며, 아프면 팀이 함께 돌봐야 합니다. 그래서 실력만 보고 뽑지 않습니다 — 이미 우리 팀과 일해본 적이 있는지, 우리 규칙에 익숙한지를 함께 봅니다. 지상무기에서는 통하던 한국의 기술·가격 경쟁력이 잠수함에서 반복해 막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이 장벽은 무기 종류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며, 모든 방산 수출에 똑같이 걸리는 벽은 아닙니다.

세 갈래에 순위를 매기면 — 기술이라는 무기와 외교라는 무기

세 갈래를 나란히 늘어놓고 끝내면 ‘이유가 많다’는 것 말고는 남는 것이 없습니다. 위계를 매기면 이렇습니다. ①(동맹)이 근본 변수이고, ②(바이 유러피언·절충교역)는 그 변수가 계약 조건이라는 제도로 구현된 형태이며, ③(무기 특성)은 그 변수가 어떤 품목에서 세게 작동하고 어떤 품목에서 약하게 작동하는지를 정하는 조절 장치입니다.

이 구조에 이름을 붙이면 ‘기술이라는 무기와 외교라는 무기’가 됩니다. 이 시장에는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무기가 있고, 한국은 앞의 것을 갖췄지만 뒤의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 두 무기는 서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 기술을 아무리 끌어올려도 외교 점수가 오르지 않고, 반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이름은 이 글 끝까지 따라옵니다.

폴란드 vs 캐나다, 한눈에 비교

아래 표는 두 사업의 규모나 조건을 우열로 비교하는 표가 아닙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두 사건이 같은 문법을 따랐는지, 그리고 지금 한국이 쥔 카드의 크기가 어느 쪽에서 더 큰지를 같은 항목으로 맞대어 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분 폴란드 오르카 캐나다 CPSP
사업 구조 잠수함 3척 신조. 발트해 연안 작전 중심 잠수함 최대 12척에 30년 유지보수를 묶은 장기 계약. 북극 해역 작전 중심
규모 약 8조원. 최종 건조 계약 약 7조 5,000억원 최대 60조원. 캐나다 몫 추정 최소 20조원, 영업이익률 10% 안팎 기대
한국이 앞섰던 점 즉시 건조 가능한 검증된 설계, 3척에 1척 임대를 더한 파격 제안 실전 배치 가능한 완성 설계, 국가 차원 경제 패키지(약 7조원 투자·110조원 기여)
한국을 막은 점 스웨덴의 NATO 가입 이후 재조정된 요구 성능, 현지화·오프셋 강점 NATO 상호운용성, 북극 최적화, 유럽 내 기존 정비 인프라
한 줄 정체성 동맹 재편이 채점표 자체를 바꾼 사례 기술로 이기고 관계로 진 사례
현재 문의 상태 최종 계약 체결로 사실상 닫힘 차순위 지위 유지. 승자의 생산능력 병목에 따라 다시 열릴 여지
같은 시기 지상무기 K9·K2는 반복 수출 성공(K2 2차 8조 8,000억원) 해당 없음

표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규모 차이입니다. 캐나다 CPSP는 폴란드 오르카의 7배가 넘는데도 두 사업의 결론과 그 이유는 사실상 같은 문법을 따랐습니다. 성능이 아니라 관계가 승부를 갈랐다는 점입니다. 다만 마지막 두 행을 보면 온도차가 분명합니다 — 폴란드는 최종 계약까지 체결되며 문이 완전히 닫힌 반면, 캐나다는 아직 닫히지 않았습니다.

3. 뒤집어보면 — 이긴 쪽도 안심할 처지가 아닙니다

여기까지가 진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한 번 뒤집어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확인해야 할 것이 두 가지입니다 — 한국의 기술이 실제로 어느 위치에 있었는가, 그리고 이긴 쪽이 그 계약을 실제로 감당할 수 있는가입니다.

먼저 한국 기술의 실제 위치

한국의 기술력 자체는 상당히 인정받았습니다. 대한민국 해군의 3,000톤급 독자 설계 잠수함 도산안창호함(KSS-Ⅲ)은 2026년 5월 1만 4,000km에 달하는 태평양 횡단 항해에 성공하며, NATO가 우려하던 상호운용성 문제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잠수함이 오래, 멀리, 문제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을 실제 항해로 증명한 사례입니다.

기술 격차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수직발사관(VLS)입니다. 잠수함에서 미사일을 수직으로 쏘아 올리는 이 장비는 선체 높이를 많이 잡아먹어 통상 원자력 잠수함에만 주로 탑재되는데, 도산안창호급은 재래식 디젤·전기 잠수함임에도 이를 갖췄습니다. 전 세계에서 VLS를 탑재한 재래식 잠수함은 한국을 포함해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고, TKMS를 비롯한 유럽 잠수함 대다수는 아직 이 기술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설계의 성숙도에서도 차이가 있었습니다. 업계 분석에 따르면 한국형 잠수함은 이미 실전 배치가 가능한 ‘즉시 배치’ 무기인 반면, TKMS가 캐나다에 제안한 잠수함은 개념 설계 단계에 더 가까웠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즉 캐나다는 지금 당장 쓸 수 있는 배 대신 앞으로 만들어야 하는 배를 골랐습니다. 한화오션이 결과 발표 후 입장문에서 ‘나토 동맹의 벽을 넘어서지 못했다’고 밝힌 것은 이 대비를 정확히 짚은 표현입니다.

다만 균형을 위해 이 기술 우위의 반대편도 함께 봐야 합니다. TKMS 관계자의 발언이 겨냥한 지점, 즉 수출 경험이라는 항목은 실제로 한국의 약한 고리입니다. 잠수함은 자국 해군용으로 잘 만드는 것과 남의 나라 요구 사양에 맞춰 지어 인도하고 그 뒤 수십 년간 정비까지 책임지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고, 발주국은 그 경험을 가진 상대를 선호합니다. 유럽 잠수함 업체들이 오랜 기간 여러 나라에 수출하며 쌓아온 이력은 성능표에 없지만 제안서 심사에서는 확실히 계산되는 자산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2절에서 세운 프레임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수출 실적이란 결국 다른 나라와 오래 일해본 기록이고, 그 기록 자체가 관계의 축적입니다. 즉 외교라는 무기는 정부 간 동맹만이 아니라 기업의 레퍼런스라는 형태로도 존재합니다. 한국이 이 항목을 채우는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 어디서든 한 번 지어서 인도하고 정비까지 해내는 것. 4절 낙관론에서 비유럽 시장이 중요해지는 이유가 단순히 장벽이 낮아서만은 아닌 셈입니다.

상대편도 이 격차를 사실상 인정한 셈이 됐습니다. 수주전이 한창이던 2026년 6월 TKMS 관계자는 “한국은 잠수함 수출 경험이 부족하고 양해각서는 종이에 불과하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놓았습니다. 순수하게 기술과 실적으로 정면 승부를 걸기보다 상대의 신뢰도를 흔드는 언사를 택했다는 점 자체가, 성능만으로는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읽힙니다.

그리고 이긴 쪽의 사정

이제 반전입니다. TKMS가 캐나다 사업을 따냈다고 해서 이 물량을 감당할 여력까지 충분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폴란드 군사 전문매체 디펜스24는 2026년 7월 분석 기사에서, 60조원 규모 수주의 화려한 이면에 신규 함정을 즉각 대량 생산할 수 없는 독일 조선소의 물리적 한계와, 새 잠수함이 실전 배치될 때까지 노후 잠수함을 계속 연장 운용해야 하는 캐나다 왕립 해군의 현실적 딜레마가 함께 얽혀 있다고 짚었습니다.

숫자로 보면 사정이 분명해집니다. TKMS의 수주잔고는 2026년 7월 기준 206억 유로(약 36조 2,4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캐나다 물량 외에도 독일·노르웨이가 공동 발주한 Type 212CD, 싱가포르 잠수함, 인도와 협상 중인 6척 규모 사업까지 잠수함 부문에서만 여러 대형 프로젝트가 동시에 걸려 있습니다. 캐나다가 요구하는 최대 12척을 이 모든 기존 일감 위에 얹어 제때 소화할 수 있을지, 업계에서는 산업적 여력 자체를 의문시하는 시각이 나옵니다.

조선업에서 수주잔고가 사상 최대라는 말은 양날의 검입니다. 일감이 많다는 뜻인 동시에, 새 일감을 받아도 앞의 배를 다 짓기 전에는 착수할 도크가 없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조선·방산 밸류체인 총정리 2부에서 확인한 대로 조선소의 생산능력은 도크 수와 인력이라는 물리적 한계에 묶여 있어, 수주가 늘었다고 단기간에 늘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잠수함은 상선보다 훨씬 오래 걸리고 훨씬 숙련된 인력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문이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습니다

여기서 계약 조건 하나가 중요해집니다. 캐나다는 TKMS와의 협상이 결렬되거나 기대 조건에 미치지 못할 경우, 차순위인 한화오션을 우선협상대상자로 다시 지정해 재협상할 권리를 남겨뒀습니다. 마크 카니 총리가 이 여지를 공개적으로 언급했습니다. 즉 이 승부는 발표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행 단계에서 다시 열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열쇠가 한국이 앞섰던 바로 그 지점입니다. 한화오션이 강조해온 즉시 배치 가능한 검증된 설계와 빠른 납기는, 계약을 놓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카드로 남아 있습니다. TKMS의 생산능력이 실제로 발목을 잡는 순간 캐나다에게 필요한 것은 ‘가까운 나라의 배’가 아니라 ‘지금 나올 수 있는 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2절에서 붙인 이름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기술이라는 무기와 외교라는 무기는 서로 대체되지 않는다고 했는데, 여기에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 외교라는 무기는 승자가 약속을 지킬 수 있을 때만 유효합니다. 관계로 계약을 따냈는데 배를 제때 못 내놓으면, 그 관계는 다음 단계에서 힘을 잃습니다. 지금 캐나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정확히 그 시험입니다.

4. 그래서 지금, K-잠수함 수출을 어떻게 봐야 할까

이 질문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앞서 세운 ‘기술이라는 무기와 외교라는 무기’라는 구분을 기준으로 양쪽 시각을 정리하면 판단에 참고할 틀이 나옵니다.

🔍 신중론에 무게를 두는 시각

첫째, 8개월 새 두 건이 연달아 무산된 것은 우연으로 보기 어렵습니다. 유럽 NATO 회원국을 상대로 한 잠수함 수출은 한국이 아무리 기술력과 납기 경쟁력을 갖춰도 동맹 정치라는 구조적 장벽 앞에서 반복적으로 밀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두 번은 사고일 수 있지만 세 번이면 구조입니다.

둘째, 이 변수는 한국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폴란드 사례에서 봤듯 동맹국이 NATO에 새로 가입하는 사건 하나로도 사업 요구조건 자체가 재조정될 수 있습니다. 제안서를 아무리 잘 써도 채점표가 도중에 바뀌면 방법이 없습니다.

셋째, 승자의 병목이 곧 한국의 기회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TKMS의 생산능력이 문제가 되더라도 캐나다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한국만이 아닙니다. 일정을 늦추거나, 물량을 줄이거나, 노후 잠수함 수명을 더 연장하는 선택지도 있습니다. 3절의 반전은 가능성이지 예정된 결과가 아닙니다.

넷째, 이번 두 건은 실적에도 이미 반영됐습니다. 발표 다음 날 한화오션 22.83%, 한화시스템 17.18%라는 낙폭은 시장이 이 사업을 상당 부분 기대에 반영해두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대형 수주전은 따내면 크게 오르지만 놓치면 그만큼 크게 빠지는 구조라는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 낙관론에 무게를 두는 시각

첫째, 캐나다 사업은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닙니다. TKMS의 수주잔고가 이미 사상 최대인 상황에서 최종 협상이 결렬되거나 생산 능력 문제로 이행이 늦어지면, 한화오션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이어받을 권리가 남아 있습니다.

둘째, 그리고 이것이 더 중요한데, 동맹 장벽은 유럽·NATO 시장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한화오션은 2025년 3분기 실적 발표에서 필리핀·콜롬비아·칠레·그리스, 그리고 중동(사우디아라비아로 추정)까지 잠수함 사업을 협의 중이라고 밝혔는데, 이들 대부분은 NATO 동맹 변수에서 자유로운 시장입니다. 2절 ③번에서 본 대로 이 장벽은 무기 종류와 시장에 따라 다르게 작동하지 모든 곳에 똑같이 걸리지 않습니다.

셋째, 이번 탈락이 기술력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캐나다는 자국 안보 싱크탱크로부터 한국산 잠수함을 도입하면 자국 산업 회복력 강화에 도움이 된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즉 한국은 후보에 오르지 못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에 다른 기준으로 밀린 것이고, 그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 시장에서는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넷째, 지상무기가 증거입니다. 같은 폴란드가 K9과 K2는 반복해서 샀습니다. 한국 방산의 기술·가격·납기 경쟁력이 시장에서 통한다는 사실 자체는 이미 증명됐고, 잠수함에서 막힌 것은 그 경쟁력의 문제가 아니라 품목 특성의 문제입니다.

다섯째, 시간이 한국 편만은 아닙니다. 캐나다의 재협상 권리가 살아 있다고 해도 그것은 TKMS가 실패할 경우에 열리는 문이고, 그동안 한화오션은 그 대형 물량을 계산에 넣지 못한 채 다른 사업을 채워야 합니다. 조선업은 도크를 비워두는 것이 곧 비용인 산업이라, 열릴지 모르는 문을 기다리는 것과 다른 일감으로 도크를 채우는 것 사이에서 선택이 필요해집니다.

그래서 무엇을 보면 판별할 수 있는가

신중론과 낙관론이 같은 사실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으므로, 이 논쟁을 실제로 가를 기준이 필요합니다. 하나로 수렴합니다 — 그 사업이 동맹 변수가 작동하는 시장인가 아닌가입니다. 발주국이 NATO 또는 EU 회원국이고 품목이 장기 정비와 상호운용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면, 한국의 기술·가격 경쟁력은 그대로 반영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비유럽 시장이거나 독립 운용이 가능한 품목이라면 그 경쟁력이 거의 그대로 반영됩니다.

그리고 이 판별식에는 예외 조항이 하나 붙습니다. 동맹 변수가 작동하는 시장이라도, 승자가 물량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 변수는 무력화됩니다. 캐나다의 재협상 권리가 바로 그 조항이며, 3절에서 확인한 TKMS의 수주잔고가 그 조항이 발동될 조건입니다.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평시에는 외교라는 무기가 이기고, 승자가 약속을 못 지키는 순간 기술이라는 무기가 다시 유효해집니다.

이 관점은 다른 방산 수주전을 볼 때도 그대로 쓸 수 있습니다. 수주 소식을 만났을 때 물어야 할 첫 질문은 ‘우리 기술이 더 좋은가’가 아니라 ‘이 사업에 동맹 변수가 걸려 있는가’이고, 걸려 있다면 두 번째 질문은 ‘승자가 그 물량을 감당할 수 있는가’입니다. 다음 절이 그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한 관찰 목록입니다.

5. 앞으로 지켜볼 체크포인트

아래 항목에는 각각 그것이 동맹 변수의 세기를 보여주는 지표인지, 승자의 이행 능력을 보여주는 지표인지를 함께 적었습니다.

  • 캐나다 TKMS 정식 계약의 체결 시점과 조건 [이행 능력 · 판별식 직결] 3절에서 짚은 생산능력 병목이 실제 계약 조건, 특히 납기와 물량에 어떻게 반영되는지가 핵심입니다. 협상이 길어지거나 척수가 줄거나 인도 일정이 뒤로 밀린다면 예외 조항이 발동될 조건에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 TKMS의 다국가 물량 동시 이행 여부 [이행 능력] 캐나다·독일·노르웨이·싱가포르·인도 사업을 사상 최대 수주잔고 위에서 함께 소화해내는지가 관건입니다. 어느 한 곳에서 인도 지연이 발생하면 다른 발주국들의 계산도 함께 달라집니다.
  • 비유럽 잠수함 사업의 구체적 진전 [동맹 변수 · 판별식 직결] 필리핀·그리스·중동 등에서 협의가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지는, 동맹 변수가 없는 시장에서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그대로 수주로 전환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판별식의 앞쪽 절반을 검증하는 자리입니다.
  • 수상함 시장에서의 결과 [동맹 변수] 잠수함이 아닌 수상함에서도 같은 장벽이 작동하는지, 아니면 지상무기처럼 기술·가격 경쟁력이 그대로 통하는지를 보여줍니다. 2절 ③번에서 세운 ‘무기 특성이 장벽의 세기를 정한다’는 설명이 맞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 EU 방산 자금 지원 프로그램의 역외 조달 규정 변화 [동맹 변수] 유럽산 우선 기조가 강해지는지 완화되는지는 이 시장 전체의 문턱 높이를 정합니다. 규정이 완화되면 한국의 기술 경쟁력이 반영될 여지가 커지고, 강화되면 유럽은 당분간 접어두고 비유럽에 집중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 폴란드 오르카의 실제 건조 진행 상황 [이행 능력] 이미 최종 계약이 체결됐지만, 2절에서 다룬 요구 성능 재조정이 실제 설계와 인도 일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는 별개 문제입니다. 여기서도 지연이 발생한다면 ‘가까운 공급자를 고르면 안전하다’는 전제 자체가 흔들립니다.

6. 마무리하며

기술이라는 무기와 외교라는 무기. 8개월 사이 벌어진 두 사건은 이 두 무기가 서로 대체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 폴란드에서는 전차를 두 번 팔았지만 잠수함은 못 팔았고, 캐나다에서는 기술을 인정받고도 관계라는 벽 앞에 멈췄습니다.

두 사건을 나란히 놓아야만 보이는 것도 있었습니다. 규모가 7배 넘게 차이 나는 두 사업이 같은 문법으로 결론에 도달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였다면 그 나라의 특수한 사정으로 설명하고 넘어갈 수 있었겠지만, 두 번 반복되면 그것은 사정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그리고 구조는 다음번에도 작동합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한국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도 알려줍니다. 기술을 더 끌어올리는 것으로는 이 벽을 넘지 못합니다. 넘는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 벽이 없는 시장에서 실적을 쌓아 레퍼런스라는 형태의 관계 자산을 만들거나, 벽이 있는 시장에서 승자가 흔들릴 때까지 차순위 자리를 지키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공교롭게도 지금 한국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3절에서 확인했듯 외교라는 무기로 이긴 쪽이 그 약속을 지킬 수 있느냐는 별개의 문제이고, 지금 TKMS가 그 시험대에 올라 있습니다. 기술이라는 무기는 이미 이겼지만 외교라는 무기가 없었던 한국과, 외교로는 이겼지만 감당할 생산력이 있는지 의심받는 유럽 기업. 어느 쪽 무기가 끝까지 버티느냐에 따라 결과가 다시 뒤집힐 수 있는 열린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이 프레임이 왜 이 시리즈 전체로 확장되는지만 짚어두겠습니다. 무기를 파는 일에서 외교가 변수로 작동한다는 것은, 반대로 무기를 사는 일이 그 나라의 외교적 선택이기도 하다는 뜻입니다. 발주국은 배를 고르는 동시에 앞으로 30년 함께할 편을 고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반대편, 즉 사는 쪽이 아니라 파는 쪽이 자기 산업을 지키려고 문을 걸어 잠글 때는 어떤 모습이 될까요. 다음 두 편이 그 이야기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이야기를 한 걸음 더 파고들겠습니다. 동맹이 무기가 되는 구조를 유럽에서 봤다면, 그 다음은 미국입니다. 213조원 규모 한미 조선 협력 프로젝트 MASGA가 축포와 브레이크를 동시에 울린 이유를 같은 깊이로 들여다보겠습니다.

📚 함께 보면 좋은 글

🌐 조선·방산 마켓포커스 — 무기가 된 외교
⚙️ 조선·방산 밸류체인 총정리 마스터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