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22일, 미국 플로리다 마러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미 해군의 새로운 프리깃함 건조 계획을 발표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한국의 회사와 함께 일하게 될 것입니다… 한국 회사인 한화는 위대한 회사입니다.” 자국 해군 함정 건조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미국 대통령이 외국 기업의 이름을 콕 집어 ‘위대한 회사’라 부른 겁니다. 이 장면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같은 해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 중 1,5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213조원을 조선업 협력에 배정했습니다. 세계 2위 원전 강국 프랑스를 꺾고 체코에서 15년 만의 원전 수출을 따낸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번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이 먼저 한국에 손을 내민 것입니다. 그날 트럼프 대통령이 발표한 것은 ‘골든 플릿’이라는 이름의 함대 증강 계획이었고, 그 계획의 첫 배를 지을 파트너로 한국 기업이 지목됐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군함을 가진 나라가 자기 배를 지을 손을 밖에서 찾은 것입니다. 반도체 다음이 전력·원전이었다면, 이제 그다음은 조선·방산입니다. 오늘부터 4부에 걸쳐 Core Asset Insight는 왜 지금 전 세계가 한국의 배와 무기에 주목하는지, 그 조선·방산 밸류체인이 어떤 갈래로 나뉘고 각 갈래에서 무엇이 어려운지를 원리부터 따라가겠습니다.
1. 왜 지금 조선·방산인가 — 석 장의 카드
전력·원전 밸류체인 시리즈에서 우리는 AI가 만들어낸 ‘전기 부족’이라는 새로운 병목을 다뤘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기, 전혀 다른 두 산업이 동시에 조명을 받고 있습니다. 바로 배를 만드는 조선업과, 무기를 만드는 방산업입니다. 얼핏 AI와 무관해 보이는 이 두 산업이 왜 지금 뜨거워졌는지, 석 장의 카드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카드 ① — 미국의 러브콜, MASGA
미국은 한때 세계 최고의 조선 강국이었지만, 지금은 전 세계 상선 발주량의 0.1%밖에 소화하지 못하는 처지입니다. 반면 미 해군은 노후 함정 교체와 신형 잠수함 증산이라는 숙제를 안고 있는데, 정작 자국 조선소의 생산능력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그래서 미국이 눈을 돌린 곳이 한국입니다. 2025년 7월, 한미 관세협상이 타결되는 과정에서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약속했고, 이 중 1,500억 달러(약 213조원)를 조선업 협력에 배정했습니다. 이 프로젝트에는 ‘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줄여서 MASGA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2026년 4월에는 워싱턴 D.C.에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가 문을 열었고, 양국은 4개 분야 15건의 업무협약을 체결했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 목수가 부족한 이웃집 미국과 한국의 관계는, 집을 짓고 싶은데 정작 동네에 실력 있는 목수가 남아있지 않은 집주인과, 세계에서 가장 실력 좋은 목수를 보유한 이웃집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집주인(미국)은 직접 목수를 키우는 대신, 이웃집(한국)에 ‘우리 집을 지어달라’며 공사비를 미리 맡기고 있는 셈입니다. 다만 국가 안보와 직결된 ‘군함’이라는 집은 함부로 남의 손에 맡기지 않는 게 원칙이라, 상선 건조 협력과 군함 건조 협력은 진행 속도와 개방 정도가 다릅니다.
카드 ② — K-방산의 실적 점프
국내 주요 방산 4사(한화에어로스페이스·현대로템·한국항공우주(KAI)·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구 LIG넥스원))의 2025년 합산 매출은 40조 4,526억원, 영업이익은 4조 6,324억원이었습니다. 각 사 사업보고서에 실린 확정 실적입니다. 전년보다 매출은 79.5%, 영업이익은 74.6% 늘어난 수치인데, 이 증가율은 그대로 읽으면 어긋납니다.
40조원 가운데 26조 6,078억원이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 곳에서 나왔고, 이 회사의 매출은 1년 만에 137% 불어났습니다. 그런데 그 증가의 큰 몫은 무기를 더 팔아서 생긴 것이 아니라, 자회사 한화오션의 1년치 실적이 처음으로 통째로 연결에 잡힌 데서 왔습니다. 한화오션의 2025년 매출은 12조 6,884억원, 영업이익은 1조 1,091억원입니다. 즉 ‘방산 4사 합산 40조원’ 안에는 무기가 아니라 배를 지어 번 돈이 12조원 넘게 섞여 있습니다. 무기 쪽만 떼어 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방산 부문 매출이 8조 1,331억원, 영업이익이 2조 129억원으로 이 부문에서 처음 2조원을 넘었습니다.
이 섞임은 착시가 아니라 이 산업의 구조 그 자체입니다. 조선과 방산이 한 회사 안에 들어 있으니 합산 실적에도 함께 잡히는 것이고, 왜 그렇게 묶여 있는지는 7절에서 따로 다룹니다. 다만 숫자를 읽을 때는 둘을 갈라야 합니다. ‘방산 실적이 좋아졌다’는 이야기와 ‘연결에 잡히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이야기는 성격이 다르고, 섞어 읽으면 성장의 크기를 잘못 재게 됩니다. 이 시리즈에서 조선·방산 기업의 합산 숫자를 만날 때마다 그 안에 어느 사업이 들어 있는지를 먼저 확인하시길 권하는 이유입니다.
수주잔고도 같은 방식으로 봐야 합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지상방산 부문 수주잔고는 2025년 말 기준 약 37조 2,000억원으로 1년 전보다 14.8% 늘었는데, 이것은 앞으로 몇 년치 일감을 미리 확보했다는 뜻이지 그 돈이 지금 통장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산업의 매출은 실제로 만들어 인도하는 진척도에 따라 몇 년에 걸쳐 나뉘어 잡히기 때문입니다. 한 해 매출이 8조원인 부문에 37조원짜리 잔고가 쌓여 있다는 것은 지금 속도로 만들어도 4년치 일감이 밀려 있다는 뜻으로 읽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구조는 3절에서 다시 자세히 다룹니다.
이 실적을 만들어낸 것은 폴란드에 판 K9 자주포와 K2 전차, 중동에 판 천궁-II 대공방어체계, 필리핀·이라크에 판 FA-50 전투기 같은 수출 물량이었습니다. 2025년에는 노르웨이에 K9이, 에스토니아에 다연장 유도무기 천무가 새로 나갔습니다. 어느 것도 올해 갑자기 개발한 물건이 아니라는 점이 이 카드의 핵심입니다 — 지금 팔리는 것은 한국군이 수십 년 굴려온 물건들이고, 그 이력이 값과 납기를 약속할 수 있게 해준 근거입니다.
카드 ③ — 5년으로 보면 9위, 한 해로 보면 4위
세계 무기 이전량을 가장 오래 추적해온 기관이 스웨덴의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입니다. 이 기관이 2026년 3월에 내놓은 공식 집계에서 한국의 무기 수출 점유율은 2021~2025년 5년 누적 기준 3.0%로 세계 9위였습니다. 직전 5년(2016~2020년)보다 24% 늘어난 수치인데, 같은 기간 미국이 27%, 프랑스가 21% 늘어난 것과 비슷한 속도이고 러시아가 64% 줄어든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런데 같은 기관의 자료에서 전혀 다른 숫자가 나오기도 합니다. 한겨레가 2026년 4월 SIPRI의 무기이전 데이터베이스에서 연도별 점유율을 따로 뽑아보니, 2025년 한 해만 놓고 보면 한국의 점유율은 6.0%로 세계 4위였습니다. 미국(42%)·프랑스(10%)·이스라엘(7.8%) 다음이고, 그 아래로 러시아(5.8%)·이탈리아(5.7%)·독일(5.1%)·중국(2.6%)이 이어집니다. 2024년에는 3.6%로 8위, 2015년에는 0.3%로 20위였으니 1년 만에 네 계단을 뛰어오른 셈입니다.
두 숫자의 간격이 곧 이 산업의 지금을 말해줍니다. 5년으로 묶으면 9위인데 최근 한 해만 떼면 4위라는 것은, 한국이 이미 큰 수출국이라기보다 빠르게 커지고 있는 수출국에 가깝다는 뜻입니다. 다만 두 숫자는 성격이 달라 나란히 놓고 쓸 때 주의가 필요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같은 SIPRI 자료인데 9위와 4위가 함께 도는 이유 SIPRI가 해마다 3월에 공식으로 내놓는 순위는 5년을 묶은 것입니다. 무기 이전량은 대형 계약 하나에 크게 흔들려서, 한 해만 떼면 추세를 잘못 읽기 쉽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SIPRI 발표」라는 말이 붙은 순위는 대개 이 5년 기준이고, 한국은 여기서 9위입니다. 반면 단년 순위는 SIPRI가 발표하지 않습니다. 누군가 데이터베이스에서 연도별로 뽑아내야 나오는 숫자이고, 2025년 4위도 언론이 그렇게 추출한 결과입니다. 틀린 숫자는 아니지만 발표된 순위와는 성격이 다르므로, 인용할 때는 5년 기준인지 단년인지와 누가 뽑은 것인지를 함께 밝히는 편이 정확합니다.
이 순위를 읽을 때 함께 알아두면 좋은 것이 시차입니다. SIPRI가 세는 것은 계약이 아니라 실제로 인도된 물량입니다. 폴란드 K2·K9 계약은 2022년부터 맺어졌지만 전차와 자주포가 실제로 건너가는 데는 몇 년이 걸리므로, 그 물량이 순위에 반영되는 시점도 그만큼 뒤로 밀립니다. 2025년 순위를 끌어올린 물량도 상당 부분은 2022~2023년에 맺은 폴란드 계약이 이제야 인도된 결과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순위는 오늘의 수주 성적표가 아니라 몇 년 전 수주의 성적표인 셈입니다. 그래서 최근 계약 소식이 아무리 많아도 순위가 곧바로 오르지는 않고, 반대로 지금 순위가 높다는 것은 몇 년 전에 이미 팔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시차는 3절에서 볼 수주와 매출 사이의 시차와 같은 구조이고, 이 산업을 읽을 때 가장 자주 걸려 넘어지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 순위는 무기가 오간 양을 세는 지표라, 기업별 매출을 세는 SIPRI 100대 방산기업 순위와는 아예 다른 표라는 점도 함께 기억해두시면 좋습니다.
2. 조선·방산 밸류체인 4단계 지도
반도체가 설계→제조→후공정, 전력·원전이 발전→송배전→저장으로 이어졌던 것처럼, 조선·방산도 몇 개의 큰 갈래로 나눠 봐야 이 산업 전체가 왜 동시에 들썩이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조선·방산은 사실 두 개의 다른 산업(조선업과 방산업)이 국내에서는 HD현대·한화 같은 몇몇 그룹 안에 함께 묶여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아래 네 갈래로 나눠서 접근합니다.
먼저 전체 지도를 한 장의 표로 펼쳐놓겠습니다. 각 단계의 대표기업을 국내와 해외로 나눠 적었는데, 여기 실린 곳이 그 단계의 전부는 아니고 이 시리즈에서 이름이 자주 등장할 회사들을 골라 담은 것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밸류체인 단계 | 이 단계가 하는 일 | 국내 대표기업 | 해외 대표기업 |
| ① 상선·에너지선박 | 배를 만들어 판다 — LNG운반선·컨테이너선·탱커 |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 | CSSC, 미쓰비시중공업, 핀칸티에리(Fincantieri) |
| ② 지상·항공 무기체계 | 육지·하늘의 무기를 만든다 — 전차·자주포·전투기·미사일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현대로템, 한국항공우주(KAI),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 라인메탈(Rheinmetall), RTX, 사브(Saab), 레오나르도(Leonardo) |
| ③ 해양방산·MRO | 군함·잠수함을 만들고, 남의 나라 군함도 고쳐준다 | 한화오션, HD현대중공업 | 헌팅턴 잉걸스(Huntington Ingalls Industries), TKMS |
| ④ 조선·방산 소부장 | 위 세 단계에 부품·소재·엔진을 댄다 | 한화시스템, 풍산, STX엔진, 아이쓰리시스템, 한화엔진, 한국카본, 동성화인텍 | GTT |
네 갈래가 각각 무엇인지부터 한 번씩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①상선·에너지선박은 선주라는 민간 고객에게 배를 지어 파는 사업입니다. 고객이 전 세계에 흩어져 있어 한 나라의 사정이 나빠져도 다른 곳에서 메울 수 있고, 대신 값은 세계 시황이 정합니다. ②지상·항공 무기체계는 전차·자주포·전투기·미사일을 만들어 각국 정부에 파는 사업입니다. 고객이 정부라 계약 한 건이 크고, 그만큼 성사되기까지 걸리는 시간도 깁니다. ③해양방산·MRO는 군함과 잠수함을 짓고 남의 나라 군함까지 고쳐주는 사업으로, ①의 설비를 쓰면서 ②의 고객을 상대하는 자리입니다. ④소부장은 앞의 셋에 엔진·탄약·레이더·소재를 대는 회사들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는 ①②③을 각각 한 편씩 다루고 ④는 앞 세 편에 흩어 넣습니다. 부품을 따로 떼어 한 편으로 묶지 않는 이유는, 조선·방산의 소부장은 완성품이 무엇이냐에 따라 요구 사양이 통째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같은 엔진이라도 상선에 들어가면 연비가 승부처이고 함정에 들어가면 소음이 승부처입니다. 완성품을 먼저 보고 그 옆에서 부품을 만나야 그 부품이 왜 그렇게 만들어졌는지가 보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상선과 군함은 고객이 다르고, 그래서 값이 정해지는 방식도 다릅니다 상선은 선주라는 민간 고객이 삽니다. 세계 어디서든 같은 배를 살 수 있으므로 값은 시황이 정하고, 발주가 몰리면 값이 오르고 뜸해지면 내립니다. 조선사가 값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부른 값을 받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군함과 무기는 정부가 삽니다. 파는 쪽이 정해져 있고 사는 쪽도 아무 데서나 살 수 없으므로, 값은 시황이 아니라 협상과 원가 계산으로 정해집니다. 국내 물량은 방위사업청이 원가를 따져 마진을 정하는 방식이라 이익률의 폭이 크지 않고, 수출 물량은 그 틀 밖에 있어 이익률이 더 벌어집니다. 같은 조선소에서 나온 배라도 상선이냐 군함이냐에 따라 실적이 움직이는 방식이 달라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구분은 이 시리즈 내내 따라다니므로 여기서 한 번 잡아두시면 좋습니다.
이 네 갈래는 반도체·전력·원전처럼 원료에서 완제품으로 이어지는 ‘일직선 조립 라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서로 독립적으로 움직이는 네 개의 사업 영역에 가깝습니다. 다만 한국에서는 HD현대중공업이 상선(①)과 해양방산(③)을 동시에 만들고, 한화그룹이 한화오션(①·③)·한화에어로스페이스(②)·한화시스템(④)을 계열사로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 네 갈래가 몇 개의 대기업 안에서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한 회사가 여러 편에 다시 등장합니다. 한화오션은 2부에서 LNG운반선을 짓는 회사로, 4부에서는 잠수함을 짓는 회사로 만나게 됩니다. 같은 회사를 두 번 보는 것이 아니라, 같은 도크에서 나온 두 개의 다른 사업을 보는 것입니다.
3. 조선업과 방산업은 실제로 어떻게 돌아가나
네 갈래 지도를 그렸으니, 이 산업이 실제로 어떤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고 어떻게 돈을 버는지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2~4부는 이 원리 위에서 개별 무기와 기업을 다루기 때문에, 여기서 한 번 정리해두면 나머지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① 조선업 — 배는 순서대로 짓지 않고 조각으로 나눠 짓습니다
오늘날 대형 상선·군함은 배 한 척을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짓지 않습니다. 대신 선체를 수십~수백 개의 ‘블록’이라는 조각으로 나눠, 각 블록을 공장 안에서 먼저 따로 조립한 뒤, 마지막에 대형 크레인으로 이 블록들을 도크(선박을 건조하는 대형 수조 형태의 시설)에 옮겨 용접으로 이어 붙이는 ‘블록건조공법’을 씁니다. 자동차를 부품 단위로 나눠 여러 라인에서 동시에 조립하는 것과 비슷한 발상인데, 이 방식 덕분에 여러 블록을 동시에 병렬로 만들 수 있어 건조 기간이 크게 단축됩니다. 한국 조선사들이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도 이 블록건조공법을 오랫동안 고도로 표준화·자동화해온 데 있습니다. 특히 LNG운반선처럼 화물창을 영하 163도로 유지해야 하는 배는, 블록 하나하나의 용접 정밀도가 조금만 어긋나도 극저온에서 균열이 생길 수 있어, 이 공법을 다루는 숙련도 자체가 곧 기술 격차로 이어집니다.
이 공법이 왜 중요한지는 시간으로 환산하면 분명해집니다. 배 한 척을 뱃머리부터 순서대로 짓는다면 앞 공정이 끝나야 뒤 공정을 시작할 수 있어 전체 기간이 각 공정의 합이 됩니다. 반면 블록으로 나누면 서로 다른 블록을 여러 공장에서 동시에 만들 수 있어, 전체 기간이 ‘가장 오래 걸리는 한 블록’ 수준으로 압축됩니다. 도크는 배를 짓는 공간이자 동시에 조선소의 생산능력을 결정하는 병목인데, 도크에 머무는 시간을 줄일수록 같은 도크로 더 많은 배를 지을 수 있습니다. 한국 조선사가 ‘빨리, 많이’ 지을 수 있다는 말은 결국 이 도크 회전율이 높다는 뜻입니다. 블록이 만들어지는 순서를 따라가 보면 이 산업이 왜 공장에 가까운지가 보입니다. 강판을 자르고 구부리는 가공을 거쳐, 작은 판재 몇 장을 붙이는 소조립, 평평한 벽체를 만드는 중조립, 선수·선미·기관실처럼 입체적인 덩어리를 만드는 대조립으로 점점 커집니다. 그다음 배관과 전선과 사다리 같은 의장품을 블록 단계에서 미리 심어 넣는 선행의장, 녹을 벗기고 페인트를 입히는 도장을 거칩니다. 마지막으로 도크 옆 야적장에서 블록 여러 개를 더 큰 덩어리로 미리 붙여두는 선행탑재(PE)를 하고, 그제야 도크로 옮겨 크레인이 한 번에 들어 올려 이어 붙입니다. 도크 밖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밖에서 끝내두는 것, 이것이 도크 회전율을 올리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도크와 안벽, 조선소의 두 병목 도크는 배를 짓는 자리이고 안벽은 다 지은 배를 대놓고 마무리하는 부두입니다. 도크는 바다와 맞닿은 거대한 웅덩이인데, 평소에는 수문을 닫아 물을 빼놓고 그 안에서 블록을 이어 붙입니다. 배 모양이 완성되면 물을 채워 배를 띄우고 수문을 열어 밖으로 끌어냅니다. 이것을 진수라고 합니다. 조선소의 생산능력이 도크 개수로 이야기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배 한 척이 도크를 쓰는 동안 그 도크에서는 다른 배를 지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조선사는 도크에 머무는 시간을 줄이려고 애쓰는데, 진수한 배를 안벽으로 빼내 남은 작업을 거기서 마치는 것도 그 방법 중 하나입니다. 도크는 몇 척을 동시에 지을 수 있느냐를, 안벽은 몇 척을 동시에 마무리할 수 있느냐를 정합니다.
여기서 진짜 어려운 것은 조각으로 나누는 발상이 아니라, 따로 만든 조각들이 도크에서 정확히 맞물리게 하는 일입니다. 용접은 강판을 녹여 붙이는 작업이라 본질적으로 열을 가하는 일이고, 열을 받은 쇠는 식으면서 줄어들고 휩니다. 업계에서 열수축이라 부르는 현상입니다. 길이 20미터짜리 블록의 용접선이 몇 밀리미터만 수축해도, 그 블록이 만나야 할 옆 블록과 단차가 생깁니다. 도크에서 그 단차를 발견하면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 잘라내고 다시 붙이는 동안 도크가 멈추고, 도크가 멈춘 만큼 다음 배의 일정이 밀립니다. 그래서 조선소는 두 가지를 합니다. 하나는 줄어들 만큼을 미리 계산해 처음부터 크게 자르거나 반대 방향으로 미리 휘어놓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블록이 공정을 넘어갈 때마다 치수를 재서 오차를 다음 공정으로 넘기지 않는 것입니다. 뒤쪽을 업계에서는 정도관리라고 부르는데, 배 한 척에 블록이 수백 개이므로 측정 지점은 수만 곳에 이릅니다. 한국 조선사가 오랜 시간 쌓아온 것은 블록으로 나누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 그 아이디어는 어느 나라나 씁니다 — 이 수만 번의 측정과 보정을 몸에 익힌 인력과, 그 데이터가 축적된 설계 표준입니다. 조선업의 경쟁력이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서 나온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② 조선업 — 실력은 ‘몇 척’이 아니라 ‘얼마나 어려운 배’로 잽니다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한국이 세계 1위’라는 표현이 자주 나올 텐데, 그 근거가 되는 단위를 먼저 잡고 가겠습니다. 배는 크기 차이가 워낙 커서, 단순히 ‘몇 척 지었다’로는 실력을 비교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업계에서는 CGT(표준화물톤수)라는 단위를 씁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CGT, 배의 ‘난이도 점수’ CGT는 단순히 배의 무게가 아니라, 그 배를 짓는 데 들어가는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작업 난이도)까지 반영한 단위입니다. 배의 부피를 나타내는 총톤수(GT)에 선종·선형별 계수를 곱해 구하는데, OECD가 만든 이 계수는 기준선을 하나 정해놓고 나머지를 그것과 견주는 방식입니다. 1만GT짜리 일반화물선을 1.0으로 놓고, 그 배 1GT를 짓는 데 드는 품을 기준으로 다른 배의 계수를 매깁니다. 그래서 덩치가 크다고 CGT가 큰 것이 아닙니다. 15만GT짜리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은 계수가 0.3이라 4만 5,000CGT로 잡힙니다. 기름을 담는 큰 통에 가까워 만드는 손이 덜 가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여객선은 계수가 2.0이라 같은 1만GT가 2만CGT가 됩니다. ‘CGT 기준 점유율 1위’라는 말이 단순히 배를 많이 만들었다는 뜻이 아니라 짓기 어려운 배를 많이 만들었다는 뜻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단위가 한국의 전략을 어떻게 드러내는지는 척당 평균으로 환산해보면 한눈에 들어옵니다. 클락슨리서치 집계 기준 2025년 한 해 한국이 수주한 배는 척당 평균 4만 7,000CGT였고 중국은 2만 5,000CGT였습니다. 중국이 한국보다 다섯 배 넘는 척수를 따내고도 척당 작업량은 절반 수준이었다는 뜻입니다. 같은 ‘한 척’이라는 말이 두 나라에서 전혀 다른 무게를 갖습니다.
이 차이가 왜 중요한지는 조선소의 셈법으로 옮겨보면 분명해집니다. 조선소가 파는 것은 사실 배가 아니라 도크에서 흘려보내는 시간입니다. 같은 여섯 달을 쓰더라도 그동안 4만 7,000CGT짜리 배를 뽑아내는 야드와 2만 5,000CGT짜리를 뽑아내는 야드는 같은 시간에 전혀 다른 양의 일을 판 것이고, 값도 그만큼 다르게 매겨집니다. 그래서 척수는 야드가 몇 번 회전했는지를 말해줄 뿐 그 회전이 얼마짜리였는지는 말해주지 않습니다. 뉴스에서 수주 척수만 비교한 기사를 볼 때 이 차이를 함께 떠올리시면 같은 숫자가 다르게 읽힙니다.
그렇다고 CGT가 높은 쪽이 늘 유리한 것은 아닙니다. CGT가 높다는 것은 짓기 어려운 배를 맡았다는 뜻이지 돈을 더 남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어려운 배일수록 들어가는 강재와 기자재의 등급이 올라가고 숙련공이 붙는 시간도 길어지므로, 난이도와 수익성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어려운 배를 짓는 능력은 값을 높게 받을 자격을 줄 뿐이고, 그 자격이 실제로 이익이 되려면 값을 매기는 시점의 시황이 받쳐줘야 합니다. 이 시리즈에서 CGT 점유율과 조선사의 이익률이 늘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게 될 텐데, 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③ 그래서 지금 세계 조선 시장은 이렇게 나뉘어 있습니다
시장을 볼 때는 두 가지 숫자를 갈라 봐야 합니다. 하나는 올해 실제로 지어 넘긴 배(인도)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지을 일감을 따낸 것(수주)입니다. 인도는 지금의 생산능력을, 수주는 몇 년 뒤의 일감을 보여줍니다. 클락슨리서치 집계로 2025년 전 세계는 1,930척·4,348만CGT를 인도했는데 그중 중국이 51.8%, 한국이 27.9%, 일본이 11.8%였습니다. 같은 해 수주에서는 중국이 63%, 한국이 21%로 인도 때보다 격차가 더 벌어집니다. 같은 세 나라를 두고 두 숫자가 다르게 나온다는 것이 이 시장의 성격을 먼저 말해줍니다.
두 숫자가 어긋난다는 사실 자체가 이 시장을 읽는 첫 단서입니다. 인도 점유율은 이미 몇 년 전에 따둔 일감이 지금 배로 나오고 있다는 뜻이고, 수주 점유율은 몇 년 뒤에 무엇이 나올지를 말해줍니다. 그래서 한 해의 점유율 한 줄만 보고 ‘누가 이기고 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실제로 2025년은 전 세계 발주가 전년보다 27% 줄어든 해였는데, 그 안에서 중국의 수주는 35% 줄고 한국은 8% 늘었습니다.
왜 발주가 줄어든 해에 한국이 늘었는가. 두 나라가 서로 다른 것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발주가 뜸한 국면에서는 선주가 값보다 확실함을 따지게 되고, 납기를 지킬 수 있는 야드로 물량이 몰립니다. 반대로 발주가 쏟아지는 국면에서는 값으로 받아내는 물량이 늘어 중국 쪽이 빠르게 커집니다. 같은 두 나라의 점유율이 국면에 따라 반대로 움직인다는 뜻이고, 그래서 점유율 숫자를 볼 때는 그것이 어떤 국면에서 나온 숫자인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점유율이 올랐다는 소식이 반드시 경쟁력이 올랐다는 뜻은 아니고, 내렸다는 소식이 반드시 밀렸다는 뜻도 아닙니다.
한국이 물량 경쟁 대신 ‘아무나 못 짓는 배’에 집중해온 전략이 여기서 확인됩니다. 다만 이 전략에는 조건이 하나 붙습니다 — 그 어려운 배의 발주가 계속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LNG운반선처럼 한국이 강한 선종은 전 세계 발주량 자체가 크지 않아, 한 해 발주가 비면 대체할 물량을 범용 선박에서 찾아야 하는데 그 자리는 이미 중국이 값으로 잡고 있습니다. 어려운 배에 집중한다는 것은 잘하는 자리를 지킨다는 뜻인 동시에 물러설 자리를 줄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조선·방산 밸류체인에서 한국이 선 자리가 왜 강하면서 동시에 좁은지, 그 전략이 왜 통했고 어디서 시험받는지는 2부에서 LNG운반선 이야기로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④ 방산업 — 무기는 파는 순간이 아니라 파는 순간부터 시작입니다
3~4부에서 개별 방산기업을 만나기 전에, 이 산업만의 독특한 사업 구조 하나를 짚고 가겠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 방산업은 ‘평생 A/S 계약이 딸린 판매’ 일반 제조업은 물건을 한 번 팔면 거래가 끝나지만, 방산업은 무기 하나를 팔면 그때부터 20~30년짜리 관계가 시작됩니다. 전차·전투기·군함은 팔고 나서도 부품 교체, 정비, 성능개량(업그레이드) 수요가 수십 년간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산기업의 ‘수주잔고’에는 이런 장기 A/S 물량까지 포함돼 있어, 다른 제조업보다 훨씬 안정적인 미래 매출을 미리 확보해둔 셈입니다. 또 하나 다른 점은, 고객이 개인이나 기업이 아니라 대부분 ‘정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출 하나가 성사되려면 회사의 기술력뿐 아니라 양국 정부 간의 외교 관계, 그리고 수출 허가라는 정치적 절차까지 함께 통과해야 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방산업에서 되풀이해 나오는 세 낱말 MRO는 유지보수(Maintenance)·수리(Repair)·정비(Overhaul)의 줄임말로, 무기를 판 뒤에도 계속 이어지는 수십 년짜리 사후관리 사업 전체를 가리킵니다. G2G(Government to Government, 정부간 계약)는 기업이 해외 고객사에 직접 파는 일반적인 수출과 달리, 파는 쪽 정부와 사는 쪽 정부가 계약의 당사자가 되는 방식입니다. 무기 수출이 곧 외교 사안이기도 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절충교역은 무기를 수출하는 나라가 그 대가로 수입국에 기술 이전이나 부품 발주 같은 반대급부를 주기로 약속하는 조건입니다. 수입국에는 자국 방산을 키우는 지렛대이고, 수출국에는 계약을 따내기 위한 협상 카드입니다.
세 용어가 왜 한 묶음인지를 보면 이 산업의 셈법이 드러납니다. G2G는 계약을 빠르게 만들어주고, 절충교역은 그 계약을 크게 만들어주며, MRO는 그 계약을 길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셋의 값은 서로 상쇄됩니다. 절충교역으로 현지생산 비중을 키우면 계약 총액은 늘지만 국내 공장에서 만들어 나가는 몫은 줄고, 기술까지 넘기면 그 나라가 몇 년 뒤 경쟁자가 됩니다. MRO는 20~30년짜리 안정적인 매출이지만, 그 매출은 이미 판 무기에서만 나오므로 오늘 수출을 못 하면 20년 뒤의 정비 매출도 없습니다. 그래서 방산기업의 실적을 읽을 때는 계약 금액보다 그 금액이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같은 3조원 계약이라도 완제품을 국내에서 만들어 보내는 계약과 절반을 현지에서 조립하는 계약은 국내 매출로 잡히는 크기가 다르고, 그 차이가 몇 년 뒤 손익계산서에 나타납니다. 3부에서 폴란드 계약을 뜯어볼 때 이 구분이 그대로 등장합니다.
⑤ 두 산업의 공통점 — 수주는 오늘, 매출은 몇 년에 걸쳐
다만 수주잔고가 두둑하다고 그 돈이 곧바로 매출로 잡히는 것은 아닙니다.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방산업도 계약 시점과 실제 매출 인식 시점 사이에 상당한 시차가 있는 대표적인 ‘수주산업’인데, 이 구조는 2부에서 조선업 사례로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이 시차가 생기는 이유는 회계 처리 방식에 있습니다. 배 한 척이나 무기 한 묶음을 만드는 데 3~5년이 걸리는데, 그 매출을 인도하는 해에 한꺼번에 잡으면 실적이 들쭉날쭉해집니다. 그래서 이런 수주산업은 공사 진척도에 따라 매출을 나눠 인식합니다. 즉 오늘 발표된 ‘몇 조원 계약’은 오늘의 매출이 아니라 앞으로 몇 년에 걸쳐 조금씩 나뉘어 들어올 예정 금액입니다. 수주잔고가 사상 최대라는 뉴스와 이번 분기 실적이 좋다는 뉴스는 서로 다른 이야기입니다. 이 시리즈에서 ‘역대 최대 수주’라는 헤드라인을 만날 때마다 그것이 언제부터 몇 년에 걸쳐 들어올 돈인지를 함께 세어보시면, 그 숫자의 크기가 다르게 보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수주잔고와 진행기준 수주잔고는 이미 계약은 했지만 아직 매출로 잡히지 않은 일감의 총액입니다. 통장 잔고가 아니라 앞으로 일해서 벌 돈의 목록에 가깝습니다. 진행기준은 그 돈을 어떻게 나눠 잡느냐에 관한 규칙입니다. 3년짜리 배를 지으면서 원가의 절반을 썼다면 계약액의 절반을 그해 매출로 잡습니다. 일이 진행된 만큼만 벌었다고 보는 방식이라, 수주가 몰린 해와 매출이 늘어나는 해가 어긋납니다. 그래서 이 산업에서는 실적 발표문의 매출과 수주 소식이 서로 다른 시간대를 가리킵니다. 매출은 몇 년 전에 딴 일감이 지금 소화되고 있다는 뜻이고, 수주잔고는 몇 년 뒤에 무엇이 소화될지를 말해줍니다.
4. 왜 네 갈래가 동시에 뜨는가 —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입니다
원리를 알았으니 이제 시점의 문제로 넘어가겠습니다. 이 산업의 능력은 어제오늘 생긴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배를 지었고 K9 자주포는 1999년에 전력화됐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지금 주목받는가. 원인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갈래입니다. 아래 셋이 가장 크게 겹쳤는데, 셋의 성격이 서로 다릅니다 — 하나는 수요가 커진 것이고, 하나는 경쟁자가 사라진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한국이 그동안 갖고 있던 것입니다. 갈래를 갈라 보는 이유는, 셋이 각각 다른 속도로 식거나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① 전 세계적인 재무장 물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은 국방비를 늘리고 있습니다. 독일의 2026년 국방예산은 약 1,080억 유로(약 160조원)로, 유럽 최대 방산기업 라인메탈 한 곳의 2025년 수주잔고만 638억 유로(약 94조원)에 달합니다. 중동 역시 이스라엘-이란 갈등과 후티 반군 리스크로 방공망 수요가 커지고 있습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나라가 늘어날수록, 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의 몸값도 함께 오릅니다.
다만 예산이 늘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절반의 설명입니다. 무기는 돈이 있다고 바로 살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 만들어줄 공장이 있어야 살 수 있는 물건입니다. 유럽 방산기업들도 수주를 잔뜩 받아뒀지만 생산라인을 늘리는 데는 몇 년이 걸립니다. 예산이 갑자기 늘어난 시점과 공장이 늘어나는 시점 사이에 간격이 벌어졌고, 그 간격을 지금 이미 돌아가고 있는 라인이 메우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에 열린 창입니다. 뒤집어 말하면 유럽의 라인이 채워지는 만큼 이 창은 좁아집니다.
② 미국의 조선 캐파 부족
미국이 배를 짓지 못하게 된 데에는 100년 넘은 법 하나가 크게 작용했습니다. 자국 조선업을 지키려고 만든 존스법인데,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존스법, 자국 조선업을 지키려다 자국 조선업을 말린 법 1920년에 만들어진 미국 존스법은 미국 안의 항구와 항구 사이를 오가는 배는 미국에서, 미국인이, 미국 자재로 지어야 한다고 정해두었습니다. 자국 조선소에 일감을 몰아주려는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경쟁이 사라진 자리에서는 값을 낮출 이유도 사라집니다. 미국에서 지은 배는 밖에서 지은 배보다 훨씬 비싸졌고, 비싸지니 발주가 줄었으며, 발주가 줄자 조선소와 숙련공이 함께 빠져나갔습니다. 지키려던 산업이 보호 안에서 말라간 셈입니다.
이 법 아래에서 미국 조선소의 생산능력은 수십 년째 쪼그라들었습니다. 클락슨리서치 집계 기준 미국의 전 세계 상선 건조 점유율은 0.1%에 불과합니다. 미 해군 함정마저 노후화와 정비 적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미국은 자국 캐파를 살릴 시간이 없다고 판단하고 한국의 생산능력을 직접 빌리는 쪽을 택했습니다. MASGA와 한화오션의 미국 필리조선소 인수, 미 해군 함정 정비(MRO) 수주가 모두 이 배경에서 나왔습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미국이 잃은 것이 기술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점입니다. 미국은 항공모함과 핵잠수함을 지을 수 있는 나라이고 설계 능력도 그대로 갖고 있습니다. 사라진 것은 그 설계를 물건으로 바꿔줄 숙련공과, 그 숙련공을 키워낸 물량입니다. 상선을 짓지 않으니 용접공이 일할 자리가 없고, 일할 자리가 없으니 사람이 들어오지 않고, 사람이 없으니 군함 건조도 늦어지는 순환입니다. 조선업의 경쟁력이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서 나온다는 3절의 이야기가 미국에서는 반대 방향으로 증명된 셈입니다.
③ 한국의 이중 경쟁력 — 가성비와 생산능력
한국이 이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는 단순히 ‘옆에 있어서’가 아닙니다. 현대로템의 K2 전차는 매년 생산능력을 15%씩 늘리고 있는데, 이는 독일 레오파르트(월 3대)나 미국 에이브람스(연 60대) 대비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입니다. 조선업에서도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까다로운 선종인 LNG운반선을 2024년 한 해에만 48척 건조했습니다. 같은 기간 중국은 28척에 그쳤습니다. ‘빨리, 많이, 잘’ 만드는 능력 자체가 지금 이 순간 세계에서 가장 희소한 자원이 됐고, 한국은 조선과 방산 양쪽에서 이 능력을 증명해왔습니다.
이 능력이 어디서 왔는지도 짚어둘 만합니다. 한국은 1970년대부터 조선소를 돌렸고 그 과정에서 불황도 여러 번 겪었는데, 그 시기를 버티며 도크와 인력을 유지한 것이 지금의 자산이 됐습니다. 방산도 마찬가지로 자국군이 K9과 K2를 수십 년간 실제로 굴려온 이력이 수출의 근거가 됐습니다. 즉 지금 팔리는 것은 새로 개발한 신제품이 아니라, 오래 만들어왔기 때문에 값과 납기를 약속할 수 있게 된 물건입니다. 이 자산은 돈으로 단숨에 살 수 없고 시간으로만 쌓이는데, 뒤집어 말하면 한 번 무너지면 되돌리는 데도 그만큼 시간이 걸립니다. 지금 미국이 겪고 있는 것이 정확히 그 되돌리기입니다.
5. 한국은 이 지도의 어디에 서 있나
앞 절에서 한국이 ‘빨리, 많이, 잘’ 만든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표현만으로는 한국의 위치가 정확히 전달되지 않습니다. 구간별로 나눠 보면 강한 곳과 약한 곳이 뚜렷하게 갈립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구간 | 세계를 쥔 쪽 | 한국의 자리 |
| 상선 전체(CGT) | 중국 51.8% (2025년 인도 기준), 값싼 범용 선박 위주 | 27.9%로 2위 — 물량 대신 ‘아무나 못 짓는 배’에 집중 |
| LNG운반선 | 한국 | 세계 최상위 — 척수보다 난이도에서 벌어진다. 2024년 한국 48척 대 중국 28척 건조 — 2부에서 상세 |
| LNG 화물창 원천기술 | 프랑스 GTT 독점 | 배를 지을 때마다 로열티 지불 — 2부에서 상세 |
| 선박 엔진 | 한국·일본·중국 | HD현대중공업·한화엔진·HD현대마린엔진이 국내 3사 |
| 전차·자주포 | 독일·미국·한국 | 생산능력과 납기에서 우위, 다만 전차 파워팩 등은 국산화 진행형 |
| 전투기(완제기) | 미국·유럽 | KAI가 경전투기 체급 보유, 다만 미국산 부품 탑재로 ITAR 통제 |
| 유도무기 | 미국(RTX)이 압도 | 천궁-II가 가격 경쟁력으로 중동에 진입 |
| 군함·잠수함 건조 | 미국·독일·프랑스 | 건조 능력은 최상위권, 수출 실적은 이제 쌓는 단계 |
| 함정 정비(MRO) | 미국 자국 법률이 시장을 닫아둠 | 군수지원함까지만 수주 가능 — 4부에서 상세 |
🚢 만드는 자리 — 여기서는 한국이 세계 최상위입니다
표를 세로로 훑어보면 규칙 하나가 보입니다. 한국이 세계 최상위인 구간은 전부 ‘크고 정밀한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자리입니다 — LNG운반선을 짓고, 전차와 자주포를 찍어내고, 군함을 건조하는 능력입니다. 반면 그 앞뒤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LNG선을 가장 잘 지으면서도 화물창 설계도의 뿌리는 프랑스가 쥐고 있어 배 한 척마다 로열티를 냅니다. 전투기를 통째로 만들 수 있으면서도 미국산 부품이 들어간 탓에 수출 허가는 미국이 승인해야 합니다. 함정을 잘 고칠 수 있어도 미국 법률이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전투함은 손댈 수 없습니다.
만드는 자리에서 한국이 강한 이유는 세 가지가 겹쳐서입니다. 첫째는 규모입니다 — 도크와 조립라인은 한 번 지으면 수십 년을 쓰는 설비인데, 한국은 불황기에도 이것을 접지 않고 버텼습니다. 둘째는 사람입니다. 3절에서 본 정도관리와 극저온 용접은 설비가 아니라 손끝에서 나오고, 그 손끝은 물량이 있어야 길러집니다. 셋째는 계열 안에서 부품까지 조달된다는 점입니다. 엔진도 탄약도 레이더도 국내에서 만들 수 있어, 밖에서 사 오는 나라보다 일정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의 경쟁력은 뉴스의 수주 금액보다 훨씬 느리게 움직입니다. 한 해 발주가 비어도 도크와 인력이 남아 있으면 다음 해에 회복되지만, 반대로 한 번 인력이 빠져나가면 수주가 몰려도 받아내지 못합니다. 미국이 지금 겪는 것이 정확히 그 상태입니다. 만드는 능력은 쌓이는 데도 무너지는 데도 시간이 걸리는 자산이라는 뜻이고, 그래서 이 섹터를 볼 때 분기 실적보다 인력과 설비 쪽 소식을 함께 봐야 합니다.
🔒 못 넘는 자리 — 설계도와 허가권은 남이 쥐고 있습니다
앞의 표에서 한국의 자리가 비어 있는 칸은 성격이 두 가지로 갈립니다. 하나는 설계도입니다 — LNG 화물창의 원천기술을 프랑스 GTT가 쥐고 있어 배 한 척마다 로열티가 나갑니다. 이건 기술의 문제라 국산화로 넘을 수 있고, 실제로 넘으려는 시도가 진행 중입니다. 다른 하나는 허가권입니다 — 전투기에 미국산 부품이 들어가면 어느 나라에 팔지를 미국이 승인해야 하고, 미 해군 함정 정비는 미국 법률이 문을 열어줘야 손댈 수 있습니다. 이건 기술로 넘을 수 있는 벽이 아닙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상대가 문을 열어주지 않으면 그만입니다.
두 벽을 구분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설계도의 벽은 연구개발비와 시간을 넣으면 줄어들지만, 허가권의 벽은 외교와 제도가 움직여야 줄어듭니다. 앞의 것은 기업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뒤의 것은 기업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방산기업의 수주 소식을 볼 때 그 계약이 어느 벽 안쪽에 있는지를 함께 보시면, 그 회사가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인지 아닌지가 갈립니다.
반도체 시리즈에서 한국이 설계에는 약하고 제조·후공정에 강했던 것, 전력·원전에서 원자로를 만들면서도 우라늄은 농축하지 못했던 것과 결이 같은 비대칭입니다. 만드는 능력은 세계 최상위인데, 그 능력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원천기술과 허가권은 다른 나라가 쥐고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세계 1위’라는 표현을 만날 때마다, 그 1위가 어느 층위의 1위인지 — 만드는 1위인지, 설계하는 1위인지, 팔 수 있는 권한을 가진 1위인지 — 를 한 번 더 물어보시길 권합니다.
⚖️ 그런데 지금은 만드는 쪽이 협상력을 갖는 국면입니다
다만 이 비대칭을 약점으로만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지금 세계가 한국에 손을 내미는 이유가 바로 ‘만드는 능력’ 자체가 희소해졌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설계도와 법률과 자본을 다 갖고 있으면서도 배를 지을 조선소가 없어 한국을 찾았습니다. 원천기술을 쥔 쪽이 반드시 유리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실제로 물건을 뽑아낼 수 있는 쪽이 협상력을 갖는 국면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원천기술을 쥔 쪽은 언제든 그 기술을 쓸 사람을 찾을 수 있지만, 지금은 만들 수 있는 곳이 몇 안 되기 때문에 반대 방향의 희소성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 국면이 얼마나 갈지가 이 시리즈 내내 따라다니는 질문이 됩니다. 미국이 자국 조선소를 되살리거나 유럽이 생산라인을 채우면 만드는 능력의 값은 다시 내려갑니다. 반대로 그 사이에 한국이 설계도와 허가권 쪽으로 한 칸이라도 올라서면, 국면이 바뀌어도 남는 것이 생깁니다. 지금 벌어들이는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를 봐야 하는 이유이고, 화물창 국산화나 미국 현지 조선소 인수 같은 소식이 단순한 투자 뉴스가 아닌 이유이기도 합니다.
6. 그늘도 있다 — 균형 잡힌 시각
다만 이 모든 흐름이 순탄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여섯 가지를 함께 봐야 하는데, 앞의 셋은 이 산업이 원래 안고 있는 성질이고 뒤의 셋은 지금 국면에서 새로 생긴 조건입니다.
첫째, 유력하게 점쳐지던 계약도 얼마든지 뒤집힙니다. 2026년 여름 한화오션은 최대 60조원 규모로 알려진 캐나다 차세대 잠수함 사업에서 독일 업체에 밀려 차순위에 그쳤고, 발표 당일 주가가 두 자릿수로 빠졌습니다. 잭팟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불발됐을 때의 낙폭도 컸던 사례이고, 이 산업에서 ‘유력하다’는 말과 ‘따냈다’는 말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지를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합니다. 무엇이 승부를 갈랐는지는 4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둘째, 수출이 몇 나라에 몰려 있습니다. SIPRI 집계로 2021~2025년 한국 무기 수출의 58%가 폴란드 한 나라였고, 그다음이 필리핀 18%, 아랍에미리트 9.5%였습니다. 상위 세 나라가 8할을 넘습니다. 지금까지는 이 집중이 강점으로 작동했습니다 — 한 나라가 반복해서 사주면 생산라인이 쉬지 않고 돌기 때문입니다.
다만 반대 방향도 함께 봐야 합니다. 폴란드의 재정이나 정권이 바뀌어 후속 계약 속도가 달라지면, 그 영향이 여러 나라에 분산되지 않고 한꺼번에 옵니다. 수주잔고의 크기만큼이나 그 잔고가 몇 개의 이름으로 채워져 있는지를 함께 보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셋째, 수주와 매출 사이의 시차는 위험을 양쪽으로 만듭니다. 3절에서 본 대로 이 산업의 매출은 공사 진척도에 따라 몇 년에 걸쳐 나뉘어 인식되는데, 그 몇 년 동안 원자재값과 환율이 움직입니다. 계약 시점에 계산한 이익이 인도 시점에 그대로 남아 있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좋은 쪽도 있습니다 — 수주가 잠시 뜸해도 과거에 따둔 물량이 매출로 들어오는 구간이 있어 실적이 곧바로 꺾이지는 않습니다. ‘사상 최대 수주잔고’와 ‘이번 분기 실적’은 서로 몇 년 떨어진 이야기이고, 그 사이에 무엇이 끼어들었는지를 보는 것이 이 산업의 실적을 읽는 법입니다.
넷째, 수요의 뿌리가 지정학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지금의 호황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중동 정세, 그리고 미중 갈등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 긴장이 완화되면 각국의 국방 예산 증액 속도도 함께 둔화될 수 있습니다. 기업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시장의 크기 자체를 정한다는 점에서, 이 섹터는 다른 산업보다 외부 요인에 크게 노출돼 있습니다.
다섯째, 조선업 쪽에는 공급 과잉이라는 오래된 그림자가 있습니다. 지금은 도크가 꽉 차 있지만, 호황기에 세계 각국이 조선소를 늘렸다가 발주가 꺾이면서 극심한 불황을 겪은 것이 이 산업의 역사입니다. 중국이 LNG선 건조 기간을 24~30개월까지 줄이며 한국을 추격하고 있다는 점도, 지금의 초격차가 영구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신호로 함께 읽어야 합니다.
여섯째, 유럽이 문을 좁히는 방향으로 제도를 손보고 있습니다. 유럽연합은 2025년 3월 발표한 재무장 계획(SAFE)에서 1,500억 유로 규모의 대출을 받으려면 국방 조달의 65% 이상을 역내에서 하도록 조건을 걸었습니다. 돈을 빌려주되 그 돈으로 유럽 안에서 사라는 뜻입니다. 앞의 넷째가 시장 전체의 크기에 관한 이야기였다면 이것은 그 시장에 한국이 들어갈 수 있느냐에 관한 이야기라, 성격이 다릅니다. 지금까지 유럽이 한국 무기를 산 이유가 값과 납기였는데, 제도가 역내 조달을 요구하기 시작하면 값과 납기가 좋아도 자격에서 걸릴 수 있습니다.
이 조건이 실제로 어디까지 명문화되는지는 3부의 폴란드 계약 부분에서 다룹니다. 다만 이미 체결된 계약과 앞으로 맺을 계약은 성격이 다르므로, 규정 변화 소식을 볼 때는 그것이 기존 물량에 걸리는 이야기인지 신규 입찰에 걸리는 이야기인지를 먼저 갈라 보셔야 합니다.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이 편에서 확정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한미 관세협상 과정의 3,500억 달러 투자 패키지와 그중 1,500억 달러(약 213조원)의 조선업 배정, 2026년 4월 한미 조선협력센터(KUSPC) 개소와 15건의 업무협약, 방산 4사 수주잔고의 2020년 21조 6,000억원 → 2025년 8월 83조 9,000억원 증가와 2025년 합산 매출 40조 4,526억원·영업이익 4조 6,324억원, 2026년 7월 6일 캐나다 CPSP 우선협상대상자 선정과 당일 한화오션 주가 22.83% 하락. 조선 통계는 클락슨리서치 집계입니다 — 2025년 세계 인도량 1,930척·4,348만CGT(중국 51.8%, 한국 27.9%, 일본 11.8%), 2025년 세계 수주량 2,036척·5,643만CGT(중국 63%, 한국 21%)와 전년 대비 27% 감소, 그 안에서 중국 35% 감소·한국 8% 증가, 2025년 수주 척당 평균 CGT(한국 4만 7,000·중국 2만 5,000). 무기 수출 통계에서 SIPRI가 2026년 3월 직접 발표한 것은 5년 누적분입니다 — 2021~2025년 한국 점유율 3.0%로 9위, 같은 기간 한국 수출의 58%가 폴란드·18%가 필리핀·9.5%가 아랍에미리트. 2025년 단년 점유율 6.0%·4위(2024년 3.6%·8위)는 SIPRI 발표가 아니라 한겨레가 SIPRI 무기이전 데이터베이스에서 연도별로 추출해 2026년 4월 보도한 수치입니다. 반면 다음은 추정이거나 진행 중인 사안입니다 — 캐나다 잠수함 사업의 ‘최대 60조원’ 규모, K2 전차의 연 15% 증산 계획, EU SAFE 규정의 국방조달지침 명문화 여부, 그리고 MASGA 협력의 구체적 이행 일정.
7. 이 흐름이 말해주는 것 — 다섯 가지 해석
213조원 MASGA 프로젝트와 캐나다 잠수함 차순위 판정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조선·방산이 뜨겁다’는 헤드라인 너머로 몇 가지 날카로운 시사점이 보입니다.
① 조선과 방산이 한 지붕 아래 있는 건 우연이 아닙니다
한화오션이 LNG운반선과 군함을 동시에 만들고, HD현대중공업이 상선과 해양방산을 함께 다루는 건 그저 사업 다각화가 아닙니다. 두 산업 모두 두꺼운 강판을 정밀하게 절단·용접해 거대한 구조물을 조립하는 ‘블록건조공법’이라는 같은 제조 DNA 위에 서 있습니다. 상선을 짓던 도크와 크레인, 그리고 그 도크에서 수십 년간 쌓아온 용접·의장 숙련 인력을 그대로 군함 건조에 옮겨 쓸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도체의 파운드리가 팹리스마다 다른 설계도를 받아 그대로 찍어내는 것과 달리, 조선·방산은 ‘큰 쇳덩이를 정밀하게 다루는 능력’ 자체가 상선이든 군함이든 공유되는 범용 자산이라는 점에서, 이 산업의 다각화는 오히려 매우 자연스러운 결합입니다. 다만 공유되는 것과 그대로 옮겨지는 것은 다릅니다. 3절에서 본 정도관리와 용접 숙련은 상선에서 군함으로 옮겨가지만, 군함에는 상선에 없는 요구가 덧붙습니다 — 폭발 충격을 견디는 구조, 소리를 내지 않는 기관 배치, 설계도 자체를 기밀로 다루는 보안 체계입니다. 그래서 상선을 잘 짓는 회사가 군함도 잘 짓는 것은 맞지만, 상선 실적이 군함 수주를 자동으로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이 시리즈에서 조선사를 볼 때 상선 수주잔고와 특수선 수주잔고를 따로 보셔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고, 4부에서 KDDX 수주전이 기술 점수가 아니라 보안 항목에서 갈린 것도 같은 이야기입니다.
한 지붕 아래 있다는 것은 설비만 나눠 쓴다는 뜻이 아닙니다. 회계에서도 한 덩어리로 묶인다는 뜻입니다. 1절에서 본 방산 4사 합산 매출 40조원 가운데 12조원 넘게가 한화오션의 조선 매출이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무기를 얼마나 팔았는지 보려고 편 숫자 안에 배를 얼마나 지었는지가 섞여 들어온 것입니다. 이 산업에서 ‘방산 실적’이라는 말이 생각보다 자주 부정확해지는 이유이고, 조선 사이클과 방산 사이클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움직이는데도 한 장의 손익계산서에 함께 담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 그룹 단위의 합산 숫자를 만나면, 그 안에 어느 사업이 몇 할씩 들어 있는지를 먼저 갈라 보시길 권합니다.
② MASGA는 축복이자 동시에 시험대입니다
미국이 213조원을 걸고 한국에 손을 내민 것은 분명한 기회이지만, 동시에 미국은 100년 넘게 자국 조선업을 보호해온 존스법이라는 장벽을 스스로 세워둔 나라이기도 합니다. 자국 산업을 지키려던 법이 오히려 자국 조선업을 고사시켰고, 이제는 그 빈자리를 외국(한국) 기업에 메워달라고 요청하는 역설적인 상황인 셈입니다. 이 모순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채로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MASGA는 한국에게 축복인 동시에 ‘외국 기업이 미국 안보 자산에 얼마나 깊이 들어갈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상선 협력은 빠르게 진행되는 반면 군함 건조 협력은 훨씬 조심스럽게 단계를 밟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시험대 위에 있기 때문입니다.
③ 이 산업에서 지표가 유독 여러 개로 갈리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 편에서만 해도 같은 것을 재는 숫자가 두 개씩 나왔습니다. 조선업 점유율은 2025년 인도 기준으로 한국이 27.9%인데 같은 해 수주 기준으로는 21%였고, 무기 수출 순위는 5년 누적으로 9위인데 단년으로는 4위였습니다. 둘 다 맞는 숫자인데 나란히 놓으면 다른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이 다중성은 통계기관들이 제각각이어서 생긴 것이 아닙니다. 원인은 하나입니다 — 이 산업에서는 파는 시점과 만드는 시점과 넘기는 시점이 몇 년씩 벌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어느 시점을 세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숫자가 나오고, 셋 다 그 산업의 진짜 모습입니다. 수주는 몇 년 뒤의 일감을 재는 것이고, 인도와 무기 이전량은 몇 년 전에 딴 일감이 지금 물건이 되어 나가는 양을 재는 것이며, 매출은 그 사이 어딘가에서 진행된 만큼을 재는 것입니다. 3절에서 본 진행기준의 시차와 SIPRI 순위의 시차가 같은 구조였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점을 알고 나면 지표를 고르는 일이 달라집니다. 어느 숫자가 더 정확한가를 묻는 대신, 내가 알고 싶은 것이 어느 시점인지를 먼저 정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이 회사가 얼마나 일하고 있는지가 궁금하면 인도와 매출을 보고, 몇 년 뒤에 어떨지가 궁금하면 수주와 잔고를 봅니다. 반도체나 전력·원전에서는 이 구분이 덜 중요했습니다.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이 짧아 시점 사이의 거리가 좁았기 때문입니다. 조선·방산에서 유독 ‘어느 기준이냐’가 따라다니는 것은 이 산업이 느리기 때문이지 통계가 부실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다중성은 동시에 이 산업을 홍보하거나 폄하하려는 쪽 모두에게 유리한 숫자를 골라 쓸 여지를 줍니다. 같은 한국 조선업을 두고 ‘세계 1위’와 ‘중국에 밀렸다’가 동시에 성립하는 것이 그래서입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에서는 인용하는 숫자마다 어떤 기준인지를 매번 밝히고, 독자께서도 ‘세계 1위’나 ‘세계 4위’ 같은 표현을 만날 때 그 뒤에 숨은 시점을 한 번 더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④ 이 산업은 반도체·전력원전보다 프로젝트 하나의 무게가 훨씬 무겁습니다
캐나다 잠수함 사업 하나에서 차순위로 밀렸다는 소식만으로 한화오션 주가가 하루 만에 22.83% 급락했다는 사실은, 이 산업 특유의 변동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반도체·전력원전은 여러 고객사·여러 계약이 쌓이며 실적이 비교적 완만하게 움직이는 반면, 조선·방산은 수십조 원짜리 개별 프로젝트 하나가 그 자체로 실적 전망을 뒤흔들 만큼 계약 단위가 극단적으로 큽니다. 이는 큰 잭팟이 터지면 주가가 단숨에 뛰어오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유력하게 점쳐지던 계약 하나가 불발되는 순간 그만큼 가파르게 꺾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시리즈를 읽을 때는 ‘수주잔고 총액’이라는 큰 숫자보다, 그 안에 아직 확정되지 않은 대형 프로젝트가 얼마나 큰 비중으로 걸려 있는지를 함께 살피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⑤ 이 산업의 승부는 결국 신뢰에서 갈립니다
마지막은 개별 관찰이 아니라, 이 4부작 전체를 관통하게 될 관점입니다. 앞의 네 가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공통점이 하나 보입니다 — 기술력이나 생산능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수가 매번 승부를 갈랐다는 점입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화를 ‘위대한 회사’라고 부른 것은 성능 평가가 아니라 신뢰의 표명이었습니다. MASGA가 축복이자 시험대인 이유도, 미국이 자국 안보 자산을 어디까지 외국 기업에 맡길 수 있느냐는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상선 협력은 빠르게 진행되는데 군함 건조 협력은 조심스럽게 단계를 밟는 차이도 여기서 나옵니다. 그리고 캐나다 잠수함 사업에서 한화오션이 밀린 것 역시 기술 부족 때문이 아니라, 동등한 조건에서 어느 나라를 파트너로 삼을 것인가라는 정치적 판단이었습니다. 이 관점은 앞으로 세 편에서 계속 확인됩니다. 2부에서는 LNG선을 세계에서 가장 잘 지으면서도 화물창 설계 IP를 쥔 프랑스에 로열티를 내야 하는 구조를, 3부에서는 계약을 빠르게 성사시키는 정부간 계약(G2G)이 사실은 ‘계약대로 이행할 나라’라는 신뢰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을, 4부에서는 그 신뢰가 하루아침에 뒤집힐 수도 있는 살아있는 변수라는 점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이 시리즈를 읽으실 때 기업의 기술력과 수주잔고만큼이나 함께 물어보시면 좋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 이 회사는 어떤 신뢰를 쌓아왔고, 지금 어떤 신뢰를 시험받고 있는가. 반도체와 전력·원전이 상대적으로 기술과 자본이 결정하는 게임이었다면, 조선·방산에는 ‘누가 이 나라를 믿고 안보를 맡길 것인가’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변수가 하나 더 얹혀 있습니다.
8. 오늘 배운 내용 한눈에 정리
🔑 핵심 정리
① 한국은 213조원 규모 MASGA 프로젝트로 미국의 러브콜을 받았고, 동시에 방산 4사 수주잔고 120조원을 돌파하며 SIPRI 단년 기준 세계 4위 무기수출국으로 도약했습니다.
② 조선·방산 밸류체인은 상선·에너지선박, 지상·항공 무기체계, 해양방산·MRO, 소부장의 네 갈래로 나뉘며, 반도체·전력원전과 달리 몇몇 대기업(HD현대·한화) 안에서 여러 갈래가 함께 묶여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③ 배는 순서대로 짓지 않고 수백 개의 블록으로 나눠 병렬로 짓습니다. 어려운 것은 나누는 발상이 아니라 따로 만든 조각이 도크에서 정확히 맞물리게 하는 일이고, 용접 열로 생기는 수축을 미리 계산해 잡아주는 정도관리가 그 핵심입니다. 그래서 조선소를 평가할 때는 도크 개수보다 그 도크를 몇 번 돌리는지를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④ 조선업의 실력은 척수가 아니라 CGT로 잽니다. CGT는 총톤수에 선종별 난이도 계수를 곱한 단위이며, 2025년 한국의 척당 평균은 4만 7,000CGT로 중국(2만 5,000CGT)의 약 두 배였습니다. 같은 한 척이 두 나라에서 다른 무게를 갖는다는 뜻입니다.
⑤ 방산업은 파는 순간부터 20~30년짜리 관계가 시작되는 사업이며, MRO·G2G·절충교역이 그 관계를 각각 길게·빠르게·크게 만듭니다. 다만 셋의 값은 서로 상쇄되므로, 계약 금액보다 그 금액이 어떤 조건으로 만들어졌는지를 먼저 봐야 합니다.
⑥ 이 모든 흐름의 배경에는 전 세계 재무장 물결, 미국의 조선 캐파 부족, 한국의 생산능력·가성비 경쟁력이라는 세 가지 구조적 이유가 있습니다. 다만 캐나다 잠수함 사업 차순위 판정 사례처럼, 이 기회가 항상 현실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균형 잡힌 시각도 함께 가져가야 합니다.
⑦ 한국이 세계 최상위인 구간은 모두 ‘크고 정밀한 물건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자리이며, 원천기술과 수출 허가권은 프랑스·미국이 쥐고 있는 비대칭 구조입니다.
⑧ 이 4부작을 관통하는 관점은 하나입니다 — 조선·방산은 기술과 생산능력의 경쟁이면서, 동시에 그보다 더 자주 ‘신뢰’라는 무형 자산으로 승부가 갈리는 산업입니다.
9. 마무리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위대한 회사’라 부른 한화, 그리고 이 회사가 속한 조선·방산 산업 전체가 지금 왜 주목받는지, 오늘 큰 그림을 잡아봤습니다. 다음 편부터는 이 조선·방산 밸류체인의 네 갈래를 하나씩 깊이 파고들겠습니다.
오늘 그린 지도에서 한 가지만 붙들어 두시면 좋겠습니다. 조선과 방산은 서로 다른 물건을 만드는 두 산업인데 한국에서는 같은 도크와 같은 회사 안에 들어 있고, 그래서 실적도 전략도 늘 함께 움직입니다. 2부부터는 그 도크 안으로 들어갑니다.
한 가지만 덧붙이겠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는 동안 숫자를 만나면 그 숫자가 어느 시점을 재고 있는지를 함께 물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산업은 느려서 파는 때와 만드는 때와 넘기는 때가 몇 년씩 벌어지고, 그 사이 어디를 세느냐가 곧 다른 숫자가 됩니다. 이 습관 하나가 앞으로 세 편을 읽는 데 가장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오늘 본 방산 4사의 합산 실적도 같은 종류였습니다. 40조원이라는 숫자 안에 배를 지어 번 돈이 12조원 넘게 들어 있었고, 그것을 갈라 보지 않으면 무기가 얼마나 팔렸는지를 알 수 없었습니다. 숫자가 틀린 것이 아니라 그 숫자가 무엇을 세고 있는지를 물어야 했던 것입니다.
- 2부 — 상선·에너지선박: 한국이 세계 최고 수준의 초격차를 가진 LNG운반선 이야기와, 이를 뒷받침하는 건조 프로세스·기자재 생태계, 그리고 세계 1위 자리 뒤에 숨은 화물창 기술 로열티 이야기까지 살펴봅니다.
- 3부 — 지상·항공 무기체계: K9 자주포·K2 전차·천궁·FA-50이 어떻게 폴란드에서 이라크까지 팔려나갔는지, 수출 계약의 타임라인과 정부간 계약(G2G)·절충교역 구조까지 따라갑니다.
- 4부 — 해양방산·MRO: 잠수함·군함 건조와 미 해군 함정 정비(MRO) 시장을 가로막는 미국 법률 장벽, 그리고 이 시리즈 초반에 소개한 캐나다 잠수함 차순위 사건의 전말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봅니다.
본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특정 종목에 대한 매수·매도 추천이 아닙니다. Core Asset Insight(코어에셋인사이트)는 목표주가를 제시하거나 저평가·고평가를 판정하지 않으며, 기업과 산업의 사업구조·기술·밸류체인에서의 위치를 설명하는 데 목적을 둡니다. 본문의 수치는 작성 시점에 공시·발표된 자료를 기준으로 하며, 확정된 사실과 회사가 밝힌 계획, 제3자 기관·언론의 추정을 구분해 표기했습니다. 공시와 시장 상황은 이후 달라질 수 있으니 최신 자료를 함께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본문에 언급된 종목을 보유하고 있을 수 있으며, 글의 발행 전후 일정 기간에는 해당 종목을 매매하지 않습니다. 투자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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