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8월, 폴란드는 한국산 K2 전차 180대를 약 8조 7,000억원(65억 달러)에 계약했습니다. 유럽 다른 나라들이 신형 전차를 계약하고 실전 배치까지 보통 5~10년을 기다리는 것과 달리, 한국은 이미 2022년 1차 계약 당시 계약 서명 후 반년도 안 돼 첫 물량을 인도했습니다. ‘빨리, 많이, 잘 만든다’는 1부에서 살펴본 한국의 경쟁력이, 사실은 지상·항공 무기체계에서도 똑같이 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리고 이 속도는 폴란드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시기 중동에서는 천궁 미사일이, 동남아에서는 FA-50 전투기가 잇따라 팔려나갔습니다. 오늘 Core Asset Insight는 조선·방산 밸류체인의 두 번째 갈래인 지상·항공 무기체계를 따라가면서, 자주포와 전차와 미사일이 각각 무엇이 어려운 물건인지를 원리부터 풀고, 그 물건들이 왜 이렇게 빨리 팔려나가는지, 그리고 그 속도가 무엇 위에 서 있는지를 함께 보겠습니다. K방산 수출을 두고 오가는 조 단위 숫자들이 실제로는 무엇을 세고 있는 숫자인지도 함께 갈라 보겠습니다.
1. 무기체계의 3대 갈래 — 땅·하늘·미사일
‘방산’이라고 하면 막연하게 하나로 묶어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무기가 어디서 쓰이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이 갈래를 먼저 잡아두면, 앞으로 이 시리즈에서 등장할 기업들이 각각 어느 영역의 ‘선수’인지 헷갈리지 않습니다.
- 지상무기 — 육지에서 싸우는 무기로, 전차(K2)·자주포(K9)·장갑차(레드백)가 대표적입니다. 현대로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 분야의 대표 기업입니다.
- 항공무기 — 하늘에서 싸우는 무기로, 전투기(FA-50, KF-21)·헬기(수리온)가 대표적입니다. 한국항공우주(KAI)가 이 분야의 대표 기업입니다.
- 유도무기 — 정밀 타격·방어 무기로, 지대공미사일(천궁-II)·다연장로켓(천무)이 대표적입니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구 LIG넥스원)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이 분야의 대표 기업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 축구팀의 포지션과 비슷합니다 지상무기·항공무기·유도무기는 축구팀의 수비수·미드필더·공격수처럼, 서로 다른 역할을 맡은 포지션이라고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전차·자주포(지상무기)는 상대 진영을 직접 밀고 들어가는 역할, 전투기(항공무기)는 하늘에서 넓은 범위를 커버하는 역할, 미사일(유도무기)은 정확히 목표물 하나를 정밀 타격하거나 날아오는 위협을 요격하는 역할입니다. 한 나라의 군대가 강하려면 이 세 포지션이 고루 갖춰져야 하듯, 한국의 방산 수출도 이 세 갈래가 동시에 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왜 한국은 이렇게 빠를까 — 정부간 계약(G2G)의 힘
앞서 인트로에서 폴란드가 계약 서명 후 반년도 안 돼 K2 전차를 인도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는 계약 방식 자체를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미국의 무기 수출은 상당 부분이 미 정부가 중개자로 참여하는 대외군사판매(FMS, Foreign Military Sales) 절차를 거칩니다. 이 경우 미 의회 통보, 국무부·국방부 검토 등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해서, 계약 체결까지만도 수년이 걸리는 경우가 흔합니다.
반면 한국의 방산 수출은 대부분 한국 정부와 구매국 정부가 직접 협상하는 정부간 계약(G2G, Government-to-Government)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큰 틀의 프레임워크 계약을 먼저 맺은 뒤, 세부 물량·사양은 ‘실행계약(Executive Contract)’ 단위로 쪼개 순차적으로 체결하는 방식을 주로 씁니다 — K2 폴란드 수출도 2022년 7월 K2 전차 약 1,000대·K9 자주포 648문·FA-50 48대라는 큰 틀의 기본계약을 먼저 맺은 뒤, 실행계약으로 나눠 순차적으로 물량을 확정해왔습니다(전차 물량은 현대로템이 1,000대, 폴란드 정부 발표가 980대로 서로 다르게 밝혔습니다). 여기에 더해 이미 개발이 끝나고 양산 라인이 가동 중인 무기체계를 파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속도를 높이는 요인입니다.
다만 무기 수출은 ‘팔고 끝’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무기 수출 계약에는 절충교역(오프셋, Offset)이라는 반대급부가 따라붙습니다. 구매국이 한국에 요구하는 기술이전·부품조달·현지생산 등을 통칭하는 개념으로, 앞서 살펴본 ‘현지생산’도 절충교역의 한 형태입니다. 한국은 통상 1,000만 달러 이상 규모의 무기를 수출할 때 계약 금액의 30~50%에 해당하는 절충교역 가치를 구매국에 제공해왔습니다. 지난 40년간(1983~2022년) 한국이 해외 무기 구매 과정에서 절충교역으로 확보한 가치만도 약 232억 달러에 달하는데, 이 중 절반 가까이가 국내 무기체계 개발을 위한 기술 획득에 쓰였습니다. 절충교역은 협상 과정을 복잡하게 만드는 부담이지만, 동시에 한국이 폴란드·중동 같은 신규 시장에서 ‘단순 판매자’를 넘어 ‘기술·산업 파트너’로 자리잡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세 갈래를 나눠 보는 이유는 종류가 달라서가 아니라 팔리는 방식이 달라서입니다. 지상무기는 한 번에 수백 대씩 나가고 그 나라가 채우고 나면 한동안 조용해집니다. 항공무기는 한 대 값이 크고 정치적 승인 절차가 길어 계약 하나에 몇 년이 걸립니다. 유도무기는 미사일이 소모품이라 한 번 들여온 나라가 계속 사들입니다. 같은 방산기업이라도 어느 갈래에 서 있느냐에 따라 실적이 움직이는 리듬이 다르다는 뜻이고, 이 편에서 세 갈래를 따로 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값을 만드는 방식도 갈래마다 다릅니다 — 지상무기는 대수가 값을 정하고(전차 180대 계약이 곧 180대분 매출), 항공무기는 대수보다 사양이 값을 정하며(같은 FA-50이라도 레이더와 무장에 따라 값이 크게 달라져 개량형 한 대가 기본형 여러 대보다 클 수 있습니다), 유도무기는 포대 수가 값을 정하되 그 뒤에 유도탄 보충이라는 긴 꼬리가 붙습니다. 계약 금액만 놓고 세 갈래를 나란히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이고, 각 갈래의 뉴스를 읽는 법이 달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2. 지상무기 — K9 자주포와 K2 전차, 폴란드를 두 번 뚫다
한국의 지상무기 수출은 2022년 폴란드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그해 폴란드는 K9 자주포 212문(약 24억 달러)과 K2 전차 180대(1차 계약)를 동시에 계약했습니다. 이후 계약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2023년 12월에는 K9 2차 계약(약 3조 5,000억원, K9PL 146문)이, 2025년 8월에는 K2 2차 계약(약 65억 달러·8조 7,000억원)이 이어졌습니다. 한국 표준형 K2GF 116대와 폴란드형 K2PL 64대를 합친 180대에, 구난·개척·교량 계열전차 81대와 정비·교육·탄약까지 묶인 계약입니다.
이 2차 계약의 핵심은 현지 생산입니다. 2026년 4월 현대로템과 폴란드 부마르 와벤디가 세부 협력계약을 맺으면서 180대 가운데 61대를 폴란드에서 만드는 것으로 확정됐고, 첫 현지 조립분은 2029년에 나올 예정입니다. 3차 실행계약도 K2PL 210대 규모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 가운데 90대를 폴란드가 만드는 안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계약을 거듭할수록 현지에서 만드는 비중이 커지는 흐름이고, 이것이 6절에서 볼 절충교역의 양날을 숫자로 보여주는 자리입니다.
이 타임라인에서 눈여겨볼 것은 금액보다 반복입니다. 무기 도입은 한 번 정하면 수십 년을 함께 가는 결정이라, 첫 계약은 물건을 사는 것이면서 동시에 상대를 시험해보는 일에 가깝습니다. 폴란드가 3년 사이에 같은 나라에서 네 번을 산 것은 그 시험을 통과했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갈래에서는 첫 수출국을 뚫는 데 걸리는 시간이 그다음 계약을 만드는 속도보다 훨씬 깁니다.
자주포와 전차는 무엇이 다른가
K9과 K2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겉모습이 비슷합니다. 둘 다 궤도로 굴러가고 포신이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은 전혀 다릅니다. 이 차이를 알아두면 왜 두 무기가 각각 다른 회사의 주력인지, 그리고 왜 폴란드가 둘을 함께 샀는지가 이해됩니다.
💡 쉽게 비유하면 — 창을 든 병사와 활을 쏘는 궁수 전차는 창을 들고 앞으로 밀고 나가는 병사입니다. 적을 눈으로 보면서 직선으로 쏘고(직사), 맞으면서 싸워야 하니 두꺼운 갑옷을 두릅니다. 자주포는 뒤에 서서 포물선을 그려 쏘는 궁수입니다(곡사).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산 너머 목표를 때리기 때문에 적을 직접 볼 일이 없고, 그래서 갑옷도 얇습니다. 대신 궁수는 화살을 쏜 자리에 계속 서 있으면 안 됩니다 — 상대 궁수가 그 자리를 계산해 되쏘기 때문입니다. 자주포가 ‘스스로 움직이는 포’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전의 견인포는 트럭이 끌고 다녀야 해서 쏘고 나서 자리를 뜨는 데 한참이 걸렸고, 그 사이에 반격을 맞았습니다. 자주포는 쏘자마자 스스로 이동합니다. 업계에서 이를 ‘쏘고 튄다(Shoot & Scoot)’고 부르는데, 현대 포병에서 생존과 직결되는 능력입니다.
K9이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는 이유도 이 ‘시간’에 있습니다. 진지에 도착해 첫 포탄을 쏘기까지 정지 상태에서 30초, 이동 중이라도 60초 안에 끝냅니다. 급속 발사로는 15초 안에 3발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포가 자기 위치를 스스로 인식하고(자동위치확인), 표적 좌표만 넣으면 사격 제원을 자동으로 계산해 포신을 겨누며(자동사격통제), 포탄 장전까지 기계가 하기(자동장전)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도를 펴고 계산해 포신을 돌리던 일을 전부 자동화한 결과입니다. 사거리는 40km 이상으로, 적 후방 깊숙한 곳까지 때릴 수 있게 설계됐습니다.
K2 전차의 강점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포탄을 기계가 장전하는 자동장전장치를 갖춰 승무원이 3명이면 되는데, 서방 주력 전차 상당수가 장전수를 포함해 4명을 태우는 것과 대비됩니다. 사람이 한 명 줄면 그만큼 포탑을 작게 만들 수 있고, 작아진 만큼 맞을 확률도 줄어듭니다. 여기에 유기압 현수장치라는 장치가 차체 자세를 스스로 조절해, 경사지에서도 포신을 원하는 각도로 겨눌 수 있습니다. 산이 많은 한반도에서 쓰려고 만든 전차라는 사정이 설계에 남은 것인데, 이것이 수출에서는 뜻밖의 값이 됐습니다 — 평지 위주로 설계된 서방 전차들이 어려워하는 지형을 가진 나라들이 그만큼 있기 때문입니다.
두 무기의 성격 차이는 수출 시장에서도 그대로 드러납니다. 자주포는 전차보다 값이 싸고 운용 부담도 적어 도입 문턱이 낮은 반면, 전차는 한 나라 육군의 주력을 통째로 바꾸는 결정이라 훨씬 무겁습니다. 폴란드가 2022년에 K9과 K2를 동시에 계약한 것은, 포병 화력과 기갑 전력을 한꺼번에 갈아 끼우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럽에서 포병 화력의 중요성이 재확인된 것도 이 결정의 배경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현지생산(License Production)이 왜 유리한가 K2PL처럼 ‘완제품을 통째로 수출’하지 않고 ‘부품을 보내 상대국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현지생산(License Production)이라고 합니다. 얼핏 한국 입장에서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대국에 일자리와 기술 일부를 나눠주는 대신 계약 규모를 훨씬 키우고, 정치적으로도 우호적인 관계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전략입니다. 폴란드가 유독 한국 무기를 대규모로, 반복해서 사들이는 이유 중 하나도 이 현지생산 방식으로 자국 방산 산업까지 함께 키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주포의 승부처는 포탄이 얼마나 멀리 날아가느냐가 아니라 명령을 받은 뒤 첫 발이 나가기까지 걸리는 시간, 그리고 쏘고 나서 그 자리를 뜨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이 두 시간을 줄이려면 세 가지가 함께 빨라져야 합니다. 자기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를 스스로 아는 항법 장치, 목표 좌표를 받아 포신의 각도와 장약량을 계산하는 사격통제 컴퓨터, 그리고 무거운 포탄을 사람 대신 밀어 넣는 자동장전 장치입니다. 셋 중 하나라도 느리면 나머지가 빨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자주포를 만들 수 있는 나라와 포신만 만들 수 있는 나라가 갈리는 자리가 여기입니다.
여기에 물리적 제약이 하나 더 붙습니다. 포신은 쏠 때마다 안쪽이 조금씩 깎여 나가는 소모품이라 정해진 발수를 쏘면 교체해야 합니다. 빠르게 연속으로 쏠수록 포신이 뜨거워지고 마모도 빨라지므로, 급속발사 능력은 순간의 속도만이 아니라 그 속도를 견디는 재질과 냉각 설계까지 함께 갖춰야 나오는 값입니다. 자주포가 겉보기에 전차와 비슷해 보여도 만드는 어려움의 성격이 다른 이유가 여기 있고, 성능표의 숫자만큼이나 그 숫자를 실제로 몇 년간 굴리며 유지했는지를 함께 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현대로템(K2)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K9)가 이 지상무기 수출의 두 축입니다. 1부에서 K2의 증산 속도(연 15%)가 독일 레오파르트(월 3대)나 미국 에이브람스(연 60대)보다 훨씬 빠르다는 것을 봤는데, 그 숫자가 왜 무기가 되는지는 이 갈래에서 특히 분명해집니다.
전차는 한 나라 육군의 주력을 통째로 갈아 끼우는 물건이라, 사는 쪽은 ‘좋은 전차’보다 ‘약속한 해에 도착하는 전차’를 먼저 따집니다. 유럽 최대 경쟁자인 독일 라인메탈은 전차·장갑차·탄약을 모두 만드는 회사이고 기술에서 한국에 밀리지 않지만, 2절 앞에서 본 대로 수주가 넘치는데 생산라인을 늘리는 데 몇 년이 걸립니다. 한국이 파고든 자리는 성능의 빈틈이 아니라 그 몇 년이라는 시간의 빈틈입니다.
그래서 이 갈래에서 봐야 할 것은 성능표가 아니라 캐파입니다. 증산 계획이 실제로 공장 증설과 인력 채용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그 캐파가 현지생산으로 나갈 몫과 국내에서 만들어 보낼 몫으로 어떻게 나뉘는지가 이 회사들의 다음 몇 년을 정합니다. 다만 증산 속도는 회사가 제시한 계획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 실제로 그만큼 늘었는지는 몇 년 뒤 인도 실적으로만 확인됩니다.
3. 항공무기 — FA-50, 6개국 140대 이상을 수출하다
전투기는 무기체계 중에서도 개발과 수출이 가장 까다로운 분야입니다.
그런데 한국항공우주(KAI)가 만드는 경전투기 FA-50은 이미 필리핀·이라크·폴란드·말레이시아·태국 등 6개국에 140대 이상 수출된 상태입니다. 2025년 6월에는 필리핀이 FA-50 12대를 추가로 계약(약 7억 달러)했는데, 이는 그해 KAI의 최대 규모 단일 계약이었습니다. 폴란드에 수출된 FA-50PL과 말레이시아에 수출된 FA-50M은 AESA 레이더(정밀 목표 탐지 레이더)와 공중급유 기능까지 갖춘 개량형으로, 단순 훈련기가 아니라 실전에 투입 가능한 경전투기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AESA 레이더가 기존 레이더와 다른 점은 작동 방식 자체에 있습니다. 옛날 레이더는 접시 모양의 안테나 하나를 모터로 물리적으로 빙글빙글 돌려가며 전파를 쏘고 받았는데, AESA는 이 접시 대신 수백~수천 개의 작은 송수신 소자를 평면에 촘촘히 박아두고, 이 소자들이 쏘는 전파의 위상을 전자적으로 미세하게 조절해 마치 안테나를 돌린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냅니다. 물리적으로 움직이는 부품이 없다 보니 고장이 덜 나고, 여러 목표를 거의 동시에 추적할 수 있으며, 신호를 훨씬 정교하게 조작할 수 있어 적의 방해전파에도 강합니다.
전투기 수출이 유독 까다로운 이유는 기체를 잘 만드는 것과 파는 것이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전투기 한 대에는 엔진, 레이더, 전자전 장비, 미사일이 각각 다른 회사의 제품으로 들어가고 그중 상당수가 미국이나 유럽 것입니다. 그래서 완제기를 통째로 설계할 수 있어도 그 안의 부품을 만든 나라가 수출을 승인해줘야 팔 수 있습니다. 뒤에서 볼 ITAR가 바로 이 승인 절차이고, 이 갈래가 지상무기나 유도무기보다 외부 변수에 더 크게 노출돼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경전투기’는 어떤 자리인가 FA-50 앞에 붙는 ‘경(輕)’은 크기와 무장 탑재량, 항속거리가 F-35나 KF-21 같은 주력 전투기보다 작다는 뜻입니다. 원래 이 기체는 조종사를 길러내는 고등훈련기 T-50에서 출발했습니다. 훈련기는 실전기보다 단순하고 값이 싸야 하는데, 여기에 레이더와 무장을 얹어 실제 전투도 할 수 있게 만든 것이 FA-50입니다. 얼핏 어중간해 보이는 이 자리에 왜 시장이 있을까요. 전투기는 사는 값보다 유지하는 값이 훨씬 큰 물건이기 때문입니다. 주력 전투기 한 대를 띄우려면 정비 인력, 부품, 활주로, 조종사 훈련까지 통째로 갖춰야 합니다. 예산이 넉넉하지 않은 나라 입장에서는 ‘훈련기로도 쓰고 유사시 실전에도 투입할 수 있는’ 한 기종을 사는 편이 현실적입니다. 필리핀·말레이시아·태국처럼 FA-50을 도입한 나라들의 공통점이 여기 있습니다. 그래서 이 체급의 경쟁은 최고 성능 싸움이 아니라 ‘같은 예산으로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는가’의 싸움입니다.
이 구도를 알고 나면 경쟁 기종을 읽는 법도 달라집니다. 성능만 놓고 보면 한 체급 위인 스웨덴 그리펜이 유리하지만, 값과 운용 부담까지 함께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시장에서 지는 방식은 성능에서 밀리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그 나라의 예산 안에 들어오는 조합을 먼저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이 편에서 KAI에 대해 기억해둘 점은 이 회사가 국내에서 완제기(전투기 한 대를 통째로 설계·조립)를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능력이 있었기에 FA-50이라는 수출 상품이 애초에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해외 경쟁구도를 보면, FA-50과 같은 체급의 경공격기·고등훈련기 시장에서는 이탈리아 레오나르도(Leonardo)의 M-346FA와 스웨덴 사브(Saab)의 그리펜이 대표적인 경쟁기종으로 꼽힙니다. 특히 그리펜은 더 강력한 전자전·무장 통합 능력을 앞세워, 태국이 그리펜 C/D에서 E형으로 갈아타는 등 한 체급 위에서 FA-50을 압박하고 있습니다. KAI는 이에 맞서 말레이시아 2차 도입분(18대)에 AIM-120 암람 미사일을 통합하는 방안을 추진 중인데, 관건은 미국의 수출통제(ITAR) 승인 속도입니다. 앞서 폴란드 FA-50PL 계약에서도 암람 통합 승인이 지연되며 납기가 밀린 전례가 있어, 이 시장에서는 기술력만큼이나 미국의 무기수출 허가 속도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합니다.
ITAR(International Traffic in Arms Regulations, 국제무기거래규정)는 미국이 자국의 무기 관련 기술·부품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통제하기 위해 만든 법입니다. 문제는 이 규정이 미국이 직접 수출하는 무기뿐 아니라, 미국산 부품이 단 하나라도 들어간 제3국의 무기에도 적용된다는 점입니다. FA-50에는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의 엔진을 비롯해 여러 미국산 핵심 부품이 들어가 있는데, 이 때문에 한국이 아무리 빨리 만들어 팔고 싶어도 최종 수출 승인은 미국 정부의 손에 달려 있습니다. 앞에서 본 설계·조립 능력이 있어도, 정작 무기를 완성하는 마지막 열쇠 하나는 미국이 쥐고 있는 셈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방산 계약은 왜 1차·2차로 나뉘나 폴란드 K9 1차 계약, K2 2차 계약처럼 이 갈래의 뉴스에는 차수가 붙습니다. 무기 도입은 한 번에 전부 계약하지 않고, 먼저 큰 틀에서 총 물량과 조건을 합의하는 기본계약을 맺은 뒤 예산이 확보되는 대로 실제 물량을 나눠 계약하는 방식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뒤쪽을 실행계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기본계약 약 1,000대’ 같은 숫자와 ‘이번에 180대 계약’ 같은 숫자는 성격이 다릅니다. 앞의 것은 상대국이 사겠다고 밝힌 목표이고, 뒤의 것만 돈과 일정이 확정된 계약입니다. 상대국 예산이 바뀌면 앞의 숫자는 줄어들 수 있습니다. 방산 뉴스에서 큰 숫자를 만나면 그것이 기본계약의 목표인지 실행계약의 확정분인지를 먼저 갈라 보셔야 하는 이유입니다.
이 체급에서 한국이 자리를 잡은 과정도 짚어둘 만합니다. T-50은 애초에 수출을 노리고 만든 기체가 아니라 자국 조종사를 길러낼 훈련기가 필요해서 개발한 것이었습니다. 그 훈련기를 자국 공군이 오래 굴리며 문제를 잡아냈고, 거기에 레이더와 무장을 얹어 실전기로 키운 것이 FA-50입니다. 수출품이 먼저 있고 자국이 나중에 산 것이 아니라, 자국이 먼저 쓴 물건이 수출품이 된 순서입니다. 앞서 본 K9·K2도 같고, 이것이 이 산업에서 자국군의 규모가 곧 수출 경쟁력이 되는 이유입니다.
4. 유도무기 — 천궁-II, 중동에 대공방어 벨트를 완성하다
유도무기는 세 갈래 중 가장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분야입니다.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의 천궁-II(M-SAM2)는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요격하는 지대공 방어체계로, ‘한국형 패트리엇’이라 불립니다. 이런 요격체계는 크게 세 단계로 작동합니다. 먼저 레이더가 날아오는 미사일이나 항공기를 탐지해 그 궤적을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지휘통제 시스템이 이 궤적을 계산해 요격할 위치와 시점을 판단한 뒤, 마지막으로 유도탄을 발사합니다. 발사된 유도탄은 자체 센서나 지상 레이더가 계속 보내주는 위치 정보를 받아 스스로 궤도를 미세하게 수정하며 목표에 근접해, 직접 충돌하거나 근처에서 폭발해 파편으로 격추합니다. 시속 수천 킬로미터로 날아오는 탄도미사일을 상대해야 하는 만큼, 이 세 단계(탐지-계산-유도)를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느냐가 요격체계의 성능을 가릅니다. 이 세 단계가 왜 어려운지부터 보고, 그다음에 이 무기가 중동에서 어떻게 하나의 ‘벨트’를 만들어갔는지를 따라가겠습니다.
① 날아오는 것을 맞힌다는 일 — 지금 있는 곳이 아니라 도달할 곳을 쏩니다
이 일이 왜 어려운지는 단순한 셈에서 시작합니다. 요격은 날아오는 물체가 지금 있는 자리를 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유도탄이 도착할 시점에 그 물체가 있을 자리를 쏘는 것입니다. 탄도미사일은 마하 단위로 움직이므로 계산이 조금만 늦어도 그 사이 목표는 수백 미터를 지나가 버립니다. 그래서 이 무기의 성능은 유도탄이 얼마나 빠른가보다 탐지에서 판단까지 몇 초가 걸리는가에 더 크게 걸려 있습니다. 같은 유도탄을 쓰더라도 레이더와 통제 소프트웨어가 다르면 결과가 갈리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천궁-II는 유도탄 하나가 아니라 세 덩어리로 이뤄진 체계입니다. 하늘을 훑어 표적을 찾고 궤적을 따라가는 다기능 레이더, 그 궤적을 받아 무엇을 먼저 쏠지 판단하는 교전통제소, 그리고 명령을 받아 유도탄을 내보내는 발사대입니다. 한 포대가 이 셋을 한 세트로 갖추고, 여러 포대를 작전통제소가 다시 묶습니다. 방공망을 산다는 말이 미사일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 이 구조를 통째로 들여온다는 뜻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방공망은 「포대」로 셉니다 방공망 계약 소식에는 미사일 몇 발이 아니라 몇 개 포대라는 단위가 나옵니다. 포대는 레이더 한 대와 교전통제소 한 대, 그리고 발사대 여러 대를 묶은 한 세트를 가리킵니다. 이 한 세트가 하늘의 한 구역을 맡습니다. 그래서 포대 수는 곧 그 나라가 몇 군데를 동시에 지킬 수 있느냐를 뜻합니다. 같은 금액이라도 포대를 적게 사고 유도탄을 많이 사는 계약과, 포대를 많이 사고 유도탄을 적게 사는 계약은 전혀 다른 물건을 산 것입니다. 방공 계약의 금액을 다른 나라 계약과 나란히 비교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포대 수와 유도탄 수량, 그리고 정비·교육 패키지가 어떻게 묶였는지에 따라 같은 체계라도 값이 크게 달라집니다.
② 세워두는 무기가 아니라 몇 초 안에 답해야 하는 무기입니다
발사 방식에도 이 시간 싸움이 들어 있습니다. 천궁-II는 유도탄을 발사관 안에서 가스 압력으로 먼저 밀어 올린 뒤 공중에서 로켓 모터를 점화하는 방식을 씁니다. 발사대에서 곧바로 불을 뿜으면 화염이 발사대를 상하게 하고, 무엇보다 미사일이 처음부터 한 방향으로 튀어 나가야 합니다. 반면 일단 공중에 띄워놓고 점화하면 그 짧은 순간에 어느 쪽으로 갈지를 정할 수 있어, 사방에서 오는 표적에 같은 발사대로 대응할 수 있습니다. 수직으로 세워둔 발사관이 전방위 방어 장비가 되는 것이 이 차이 덕분입니다.
유도탄 자체도 두 단계로 목표를 찾습니다. 처음에는 지상 레이더가 계속 보내주는 좌표를 받아 대략적인 방향으로 날아가고, 표적에 충분히 가까워지면 유도탄 앞머리에 달린 자체 레이더가 켜져 스스로 추적을 넘겨받습니다. 지상 레이더에만 의존하면 그 레이더가 교란되거나 여러 표적을 동시에 상대할 때 한계가 오는데, 마지막 구간을 유도탄이 스스로 처리하면 한 포대가 동시에 상대할 수 있는 표적 수가 늘어납니다. 방공망의 값어치가 사거리보다 동시 교전 능력에서 갈린다는 말이 여기서 나옵니다.
③ 그래서 이 분야의 진입장벽은 미사일이 아니라 조합에 있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왜 유도무기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손에 꼽는지가 보입니다. 로켓을 날리는 기술만으로는 부족하고, 하늘을 훑는 레이더와 몇 초 안에 판단하는 소프트웨어, 그리고 그 셋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하는 통합 능력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국내에서도 이 셋이 한 회사에 있지 않습니다 — 유도탄은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레이더는 한화시스템, 발사대와 차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맡습니다. 이라크 계약이 ‘원팀’으로 나간 것이 미담이 아니라 이 무기의 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구조는 파는 쪽에도 사는 쪽에도 오래가는 관계를 만듭니다. 한번 들여온 방공망은 레이더 소프트웨어를 갱신하고 유도탄을 보충하며 수십 년을 씁니다. 다른 나라 체계로 갈아타려면 레이더부터 통제소까지 전부 바꿔야 하므로 쉽게 바꾸지 못합니다. 1절에서 본 ‘평생 A/S 계약이 딸린 판매’가 가장 강하게 작동하는 갈래가 바로 여기이고, 중동에서 한 나라가 도입하면 이웃 나라가 따라오는 흐름도 같은 성질에서 나옵니다.
- 2022년 — UAE, 약 2조 7,000억원
- 2023년 — 사우디아라비아, 약 4조 3,000억원
- 2024년 9월 — 이라크, 3조 7,135억원
UAE·사우디아라비아·이라크로 이어지는 이 계약들은 우연이 아니라, 중동 지역에 하나의 대공방어 벨트를 형성해가는 흐름입니다. 이라크 계약은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체계·유도탄) 혼자가 아니라 한화시스템(레이더, 약 8,600억원)·한화에어로스페이스(발사대·차량, 약 6,170억원)가 함께 참여하는 ‘원팀’ 구조로 진행됐습니다.
천궁-II가 이 나라들에서 선택받은 이유는 값입니다. 미국 패트리엇과 비슷한 탄도미사일 요격 성능을 갖췄으면서도 단가는 절반 이하로 알려져 있어, 예산이 한정된 나라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 됩니다. 다만 이 ‘절반 이하’는 업계에서 통용되는 추정이고, 방공망은 포대 구성과 유도탄 수량에 따라 계약 금액이 크게 달라져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점은 함께 알아두셔야 합니다.
이 시장의 절대 강자는 미국의 RTX(옛 레이시온)입니다. 수주잔고 규모가 한국 기업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지만 그만큼 값도 비쌉니다. 그래서 한국이 서 있는 자리는 패트리엇을 밀어내는 자리가 아니라, 패트리엇을 살 수는 없지만 방공망은 필요한 나라들이 택하는 자리입니다. 시장의 크기가 미국과의 성능 경쟁이 아니라 그런 나라가 몇이나 되느냐로 정해진다는 뜻이고, 그래서 이 갈래의 다음 계약이 어디서 나올지는 기술 뉴스보다 각국 국방예산 소식에서 먼저 보입니다.
5. 대표기업 지도 — 누가 이 무기를 만드나
세 갈래를 다 봤으니 누가 무엇을 만드는지를 한 장으로 정리하겠습니다. 다만 회사 이름을 갈래별로 늘어놓는 것만으로는 이 섹터의 구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 편에서 눈여겨볼 점은 한 회사가 한 갈래만 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고, 그래서 이라크 천궁 계약 같은 ‘원팀’ 구조가 가능해집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 갈래 | 무엇을 파는가 — 그리고 무엇이 뒤따라오는가 | 대표 기업 |
| 지상무기 | 한 번에 수백 대씩 나가고 그 나라가 채우면 한동안 조용해진다 — 대수가 곧 값이고, 뒤에 부품과 정비가 붙는다 | 현대로템, 한화에어로스페이스 |
| 항공무기 | 대수보다 사양이 값을 정한다 — 개량형 한 대가 기본형 여러 대보다 클 수 있고, 파는 자격은 부품을 만든 나라가 쥔다 | 한국항공우주(KAI) |
| 유도무기 | 포대를 판다 — 레이더·통제소·발사대가 한 세트로 나가고, 그 뒤에 유도탄 보충이라는 긴 꼬리가 붙는다 |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
| 부품·소재 | 완성 무기가 나갈 때마다 함께 실린다 — 자기 수주보다 남의 수출에 실적이 걸린다 | 한화시스템, 풍산, STX엔진, 아이쓰리시스템 |
표를 세로로 읽으면 같은 ‘방산주’라는 말로 묶이는 회사들이 실은 서로 다른 박자로 움직인다는 것이 보입니다. 지상무기 회사는 큰 계약 하나에 몇 년치가 걸리고, 항공무기 회사는 남의 나라 승인 일정에 묶이며, 유도무기 회사는 한 번 들어간 나라에서 꾸준히 벌고, 부품 회사는 자기가 딴 수주보다 남이 딴 수출에 실적이 좌우됩니다. 방산 뉴스를 볼 때 어느 회사의 소식인지만큼이나 그 회사가 어느 줄에 서 있는지를 먼저 보시면, 같은 뉴스가 회사마다 다른 크기로 닿는 이유가 설명됩니다.
🇰🇷 국내 — 코스피 상장 방산 4사
-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코스피 012450] K9 자주포를 만드는 이 시리즈의 핵심 기업입니다. 지상무기뿐 아니라 천궁 발사대·차량, 항공기 엔진까지 아우르는 종합 방산기업으로, 한화그룹 방산 계열의 중심축이기도 합니다. 조선·방산 4부작에서 유일하게 세 갈래(지상·유도·소부장)에 모두 등장하는 회사입니다.
- 현대로템 [코스피 064350] K2 전차를 만듭니다. 전차라는 단일 품목의 비중이 커서 폴란드 계약 하나의 진척 여부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이 큰 편이고, 철도차량 사업도 함께 하고 있어 방산 외 사업부의 업황도 함께 봐야 합니다.
- 한국항공우주(KAI) [코스피 047810] FA-50·KF-21·수리온을 만드는 국내 유일의 완제기 제작사입니다. 전투기 한 대를 통째로 설계하고 조립할 수 있는 능력은 국내에서 이 회사만 갖고 있으며, 그 능력이 있었기에 FA-50이라는 수출 상품이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 [코스피 079550] 천궁-II를 비롯한 유도무기 체계와 유도탄을 만듭니다. 미사일이라는 소모성 품목을 다루기 때문에, 한 번 도입한 나라가 재구매를 이어가는 구조가 다른 무기체계보다 뚜렷합니다.
🇰🇷 국내 — 함께 봐야 할 부품·소재 기업
- 한화시스템 [코스피 272210] 천궁-II의 눈에 해당하는 다기능 레이더를 만듭니다. 앞서 본 요격 3단계 중 첫 단계인 ‘탐지’를 담당하는 셈이라, 유도탄만큼이나 이 체계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 풍산 [코스피 103140] 탄약을 만듭니다. 무기 본체가 한 번 팔리는 물건이라면 탄약은 계속 쓰이는 소모품이라, 무기 수출이 늘수록 뒤따라 오는 수요가 길게 이어지는 구조입니다.
- STX엔진 [코스피 077970] K9·K1 전차용 특수고속엔진을 만듭니다. 2부에서 선박용 엔진 기업으로 등장했던 회사가 여기서 다시 나오는데, 조선과 방산이 한 생태계 안에 얽혀 있다는 이 시리즈의 관찰이 부품 단계에서도 확인되는 사례입니다.
- 아이쓰리시스템 [코스닥 214430] 적외선 영상 검출기를 만듭니다. 유도탄이 목표를 스스로 찾아가려면 열을 감지하는 눈이 필요한데, 그 눈에 해당하는 핵심 부품입니다.
🌏 해외 — 이들이 상대하는 경쟁자
- Rheinmetall [프랑크푸르트 RHM] 독일 기업으로 전차·장갑차·탄약을 아우르는 유럽 최대 방산기업이자 지상무기에서 한국의 가장 큰 경쟁자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수주는 넘치는데 생산라인을 늘리는 데 몇 년이 걸린다는 점이 한국에 창을 열어줬습니다.
- RTX [뉴욕 RTX] 옛 레이시온으로, 패트리엇 방공체계를 만드는 유도무기 시장의 절대 강자입니다. 백로그 규모가 한국 기업들과 비교가 안 될 만큼 크지만 그만큼 값도 비싸, 천궁-II가 파고드는 틈이 바로 이 가격 차이입니다.
- Saab [스톡홀름 상장] 스웨덴 기업으로 그리펜 전투기를 만듭니다. FA-50보다 한 체급 위에서 더 강력한 전자전·무장 통합 능력을 앞세워 경쟁하며, 태국이 그리펜 E형으로 갈아탄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 Leonardo [밀라노 LDO] 이탈리아 기업으로 M-346FA를 만듭니다. FA-50과 가장 직접적으로 같은 체급에서 부딪히는 기종입니다.
이 목록을 보시면 국내 기업들의 위치가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완성 무기를 만드는 네 회사가 각자 다른 갈래를 맡고 있고, 그 아래에 레이더·탄약·엔진·검출기를 대는 부품 기업들이 받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구조 덕분에 이라크 천궁 계약처럼 여러 회사가 하나의 패키지로 묶여 나가는 수출이 가능해집니다. 개별 회사의 수주 뉴스를 볼 때, 그 계약에 다른 어느 회사가 함께 들어가 있는지를 확인하면 파급 범위를 훨씬 정확하게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구조를 한 겹 더 들어가 보면 국내 방산 4사가 서로 경쟁 관계만은 아니라는 것이 보입니다. 같은 나라의 같은 예산을 놓고 다투는 국내 사업에서는 경쟁자이지만, 해외 대형 계약에서는 한 패키지 안에 함께 들어가는 협력자가 됩니다. 이라크 천궁 계약에서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금액을 나눠 받은 것이 그 예입니다. 그래서 이 섹터의 기업을 볼 때는 그 회사가 직접 따낸 수주만큼이나, 다른 회사의 수출 소식에 자기 몫이 얼마나 걸려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부품 기업일수록 이 성질이 강해지는데, 이 편에서 만난 한화시스템·풍산·STX엔진·아이쓰리시스템이 그런 자리에 서 있습니다.
6. 그늘도 있다 — 균형 잡힌 시각
지금까지 살펴본 수출 성과들이 앞으로도 똑같은 속도로 이어질 거라 낙관하기는 이릅니다. 여섯 가지를 함께 봐야 하는데, 앞의 셋은 계약이 만들어지는 조건에 관한 것이고 뒤의 셋은 그 계약이 실적으로 바뀌는 과정에 관한 것입니다.
첫째, 유럽이 문을 좁히고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3월 발표한 재무장 계획(SAFE)에서, 1,500억 유로 규모의 대출을 받으려면 국방 조달의 65% 이상을 EU 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습니다. 이 ‘유럽산 우선’ 기조가 국방조달지침 개정으로 명문화되면, 폴란드처럼 한국 무기를 적극적으로 사들였던 나라들도 앞으로는 역내 조달 비중을 늘려야 하는 압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미 체결된 폴란드 계약은 SAFE와 별개 재원으로 진행되고 있어, 기존 계약이 당장 흔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함께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절충교역은 계약을 키우는 대신 국내에 남는 몫을 줄입니다. 현지생산 비중이 커질수록 계약 총액은 늘지만, 그 물량이 폴란드 공장에서 조립되는 만큼 국내 생산과 고용으로 잡히는 부분은 줄어듭니다. ‘몇 조원 계약’이라는 헤드라인과 실제로 국내 기업 실적에 반영되는 금액 사이에 간극이 생길 수 있다는 뜻이라, 계약 발표를 볼 때 현지생산 비율이 얼마인지를 함께 확인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셋째, ITAR는 이미 실제로 납기를 늦춘 적이 있습니다. 폴란드 FA-50PL 계약에서 암람 미사일 통합 승인이 지연되며 인도 일정이 밀렸던 사례가 그것입니다. 이는 가정이 아니라 벌어진 일이고, 말레이시아 2차 도입분에도 같은 변수가 걸려 있습니다. 한국 기업의 기술력이나 생산능력과 무관하게 미국 정부의 결정 하나로 일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은, 이 섹터를 볼 때 상시로 얹어둬야 할 리스크입니다.
넷째, 수주와 매출 사이에는 긴 시차가 있습니다. 무기 수출도 조선업과 마찬가지로 계약한 시점이 아니라 실제로 만들어 인도하는 진척도에 따라 매출이 나뉘어 잡힙니다.
이 간격이 얼마나 되는지는 폴란드 사례에서 그대로 드러납니다. 2022년 기본계약이 조 단위로 발표됐지만, 관세청 통관 통계로 2022년부터 4년간 폴란드로 실제 나간 K2·K9·FA-50의 수출액은 47억 달러, 우리 돈으로 7조원 안팎이었습니다. 계약서에 적힌 숫자와 그동안 실제로 배에 실려 나간 물건의 값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도 틀린 숫자가 아니라 재는 시점이 다를 뿐인데, 이 구분을 하지 않으면 같은 회사를 두고 ‘역대 최대 수주’와 ‘생각보다 매출이 안 나온다’가 동시에 성립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다섯째, 지금의 수요가 만들어진 방식이 다음 사이클의 모양도 정합니다. 이 산업의 수요가 지정학에 매여 있다는 것은 1부에서 짚었는데, 무기체계 쪽에는 한 겹이 더 있습니다. 각국이 지금 사들이는 것은 당장 쓸 물량이 아니라 20~30년을 쓸 장비라는 점입니다. 한 번 채우고 나면 그 나라는 한동안 다시 사지 않습니다. 폴란드가 기본계약 물량을 다 채우고 나면 그다음 대형 수요는 폴란드가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 나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갈래를 볼 때는 올해 얼마나 팔았는가만큼이나 다음 고객이 누구인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재무장 국면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개별 나라의 구매는 몇 년 단위로 몰렸다 끊기고, 그 사이를 메우는 것이 앞서 본 정비·부품·성능개량 수요입니다. 수출 계약 소식이 뜸해지는 구간이 와도 그것이 곧 실적 공백을 뜻하지 않는 이유이고, 반대로 대형 계약 하나가 그 회사의 다음 10년을 정해버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여섯째, 지금 팔리는 무기가 한 세대 안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도 함께 봐야 합니다. K9은 1999년, K2는 2014년에 전력화됐고 천궁-II는 2017년에 개발이 끝났습니다. 지금의 수출은 그 시기에 국가가 개발비를 대고 자국군이 먼저 사서 굴려준 결과입니다. 다음 세대 수출품이 나오려면 지금 개발이 진행돼야 하는데, 개발과 수출 사이의 간격이 10년 이상이라 오늘의 실적으로는 그 파이프라인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섹터를 길게 볼 때는 수주잔고 옆에 연구개발비와 정부 개발사업 참여 현황을 함께 놓아야 합니다. KF-21이나 차세대 유도무기처럼 지금은 매출을 거의 만들지 않는 사업이 10년 뒤의 수출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개발이 비어 있는 회사는 지금 수주잔고가 아무리 두꺼워도 그 잔고를 다 소진한 뒤에 팔 물건이 없습니다.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이 편에서 확정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 폴란드 K9 1차 계약(2022년, 212문·약 24억 달러)과 K9 2차 계약(2023년 12월, K9PL 146문·약 3조 5,000억원), K2 2차 계약(2025년 8월, K2GF 116대+K2PL 64대·약 8조 7,000억원)과 그중 61대의 폴란드 현지 생산 확정(2026년 4월), FA-50의 6개국 140대 이상 수출과 필리핀 12대 추가 계약(2025년 6월, 약 7억 달러), 천궁-II의 UAE(2022년, 약 2조 7,000억원)·사우디(2023년, 약 4조 3,000억원)·이라크(2024년 9월, 3조 7,135억원) 계약, K9의 공개 사양(사거리 40km 이상, 급속발사 15초 3발). 반면 다음은 목표이거나 협상 중인 사안입니다 — 폴란드 K2 기본계약 가운데 1·2차 실행계약 360대를 뺀 나머지의 후속 계약(3차 실행계약은 K2PL 210대 규모로 협의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말레이시아 2차 도입분의 암람 통합, 천궁-II와 패트리엇의 가격 차이(‘절반 이하’는 업계에서 통용되는 추정으로 공식 발표가 아닙니다), 그리고 EU SAFE 규정의 국방조달지침 명문화 여부. 특히 무기 가격은 계약마다 사양과 부대장비 구성이 달라 단순 비교가 어렵다는 점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7. K방산 속도가 말해주는 것 — 네 가지 해석
폴란드 K2·K9의 반복 계약과 이라크 천궁 ‘원팀’ 수주를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K방산이 빠르다’는 헤드라인 너머로 몇 가지 날카로운 시사점이 보입니다.
① G2G의 진짜 자산은 계약 속도가 아니라 ‘국가 신뢰’입니다
한국이 미국식 FMS보다 빠른 이유를 단순히 ‘절차가 짧다’는 것으로만 이해하면 반쪽짜리 설명입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구매국 정부가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계약대로 이행할 신뢰할 수 있는 상대’로 인정했기 때문에 국가 대 국가 계약이 가능한 것입니다. 폴란드가 K2·K9을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사들인 것도 첫 계약에서 실제로 반년 만에 물건을 받아본 경험이 신뢰로 쌓였기 때문입니다. 즉 G2G라는 계약 방식 자체가 경쟁력의 원천이 아니라, 그 방식을 가능하게 만든 ‘이미 검증된 실행력’이 진짜 자산입니다. 이 신뢰는 한 번 쌓으면 다음 계약의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지만, 반대로 한 번이라도 납기를 어기면 회복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자산이기도 합니다.
1·2부에서도 이 산업의 승부가 신뢰에서 갈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 갈래의 신뢰는 앞의 둘과 성격이 다릅니다. 조선에서의 신뢰는 ‘제때 문제없이 넘겨준다’는 실행의 신뢰였습니다. 여기서는 거기에 하나가 더 붙습니다 — 이 무기를 넘겨도 되는 상대인가, 그리고 이 나라가 앞으로도 부품과 정비를 끊지 않을 것인가라는 판단입니다. 무기는 팔고 나서도 20~30년을 함께 가야 하는 물건이라, 사는 쪽은 물건만이 아니라 그 나라의 앞으로 30년을 함께 사는 셈입니다.
이 신뢰가 다른 산업의 신뢰와 다른 점은 정부가 보증한다는 데 있습니다. 기업이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만들어도 상대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믿지 못하면 계약이 성사되지 않고, 반대로 한 번 국가 사이의 신뢰가 서면 그다음 계약은 개별 기업의 영업력과 무관하게 빨라집니다. 그래서 이 섹터의 기업을 볼 때는 그 회사의 수주 소식만큼이나 정상회담이나 국방장관 방문 같은 외교 일정을 함께 보게 되는데, 다른 제조업에서는 보기 어려운 성질입니다.
② ITAR는 K방산의 숨은 병목입니다
2부에서 살펴본 GTT 로열티와 정확히 같은 패턴이 여기서도 반복됩니다. 조선업이 LNG선을 세계에서 가장 잘 지으면서도 화물창 설계 IP를 프랑스가 쥐고 있어 로열티를 내야 했던 것처럼, KAI가 완제기를 통째로 만들 수 있어도 미국산 부품이 하나라도 들어가면 최종 수출 승인이라는 마지막 열쇠는 미국이 쥐고 있습니다. 폴란드 FA-50PL 계약의 암람 통합 지연 사례가 보여주듯, 이 병목은 한국의 기술력이나 생산능력과는 무관하게 언제든 발목을 잡을 수 있는 변수입니다. 밸류체인 전체를 아무리 잘 갖춰도 특정 한 지점의 통제권을 다른 나라가 쥐고 있다면, 그 산업은 완전한 자기 결정권을 갖지 못한다는 원칙이 조선업에 이어 방산업에서도 확인되는 셈입니다.
다만 두 경우의 성격은 다릅니다. 화물창 설계는 기술이라 국산화로 넘을 수 있고 실제로 한국이 그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반면 ITAR는 기술이 아니라 제도입니다. 같은 성능의 부품을 국내에서 만들어내면 그 부품에 대한 통제는 벗어나지만, 전투기 한 대에 들어가는 미국산 부품을 전부 대체하려면 엔진부터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 KF-21이 왜 그렇게 오래 걸리는 사업이고 왜 국가가 직접 나서야 하는 사업인지가 여기서 설명됩니다.
③ 절충교역은 계약을 키우는 무기이자 동시에 양날의 검입니다
현지생산과 기술이전이 폴란드 같은 신규 시장을 여는 열쇠였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절충교역은 동시에, 한국이 오늘 기술을 나눠준 상대국이 10~20년 뒤에는 스스로 전차·자주포를 만들어 한국과 같은 시장에서 경쟁할 잠재적 경쟁자로 자라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K2PL처럼 폴란드 현지에서 조립하는 물량이 늘어날수록, 폴란드의 방산 기술과 생산 역량도 함께 성장합니다. 지금 당장은 계약 규모를 키우는 win-win으로 보이지만, 이 거래가 장기적으로 한국의 독점적 지위를 스스로 깎아 먹는 셈이 될지, 아니면 더 큰 동맹 관계로 이어질지는 시간이 지나야 판가름 날 문제입니다.
그래서 절충교역 조건을 볼 때는 무엇을 넘기는지를 갈라 봐야 합니다. 조립 공정을 넘기는 것과 설계 도면을 넘기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앞의 것은 그 나라가 우리 물건을 계속 사게 만드는 장치에 가깝고, 뒤의 것은 그 나라가 우리 없이도 만들 수 있게 되는 길을 여는 일입니다. 계약 발표에서 현지생산 비율만큼이나 기술이전의 범위를 함께 확인해야 하는 이유이고, 이 구분은 4부의 잠수함 사업에서도 그대로 등장합니다.
④ 이제 한국은 무기 한 점이 아니라 ‘통합 방공망’을 팝니다
이라크 천궁 계약에서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유도탄)·한화시스템(레이더)·한화에어로스페이스(발사대·차량)가 함께 ‘원팀’으로 참여한 구조는 우연이 아니라 새로운 수출 전략입니다. 개별 무기 하나를 파는 것보다, 탐지-지휘통제-요격이라는 방공망 전체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 파는 쪽이 훨씬 부가가치가 높고, 구매국 입장에서도 서로 다른 나라의 장비를 조합하며 생기는 호환성 문제를 피할 수 있어 매력적입니다. UAE·사우디·이라크로 이어진 벨트가 단순히 ‘같은 무기를 세 번 판 것’이 아니라 ‘중동이라는 지역 전체의 방공 체계를 한국 컨소시엄이 설계해나가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시리즈의 다음 계약이 어디서 나올지 가늠하는 데도 도움이 됩니다.
패키지로 파는 방식은 값을 올리는 것 이상의 효과를 냅니다. 레이더와 통제소와 발사대가 한 나라 것으로 묶이면 그 나라는 그 체계 안에서 계속 움직이게 되고, 다음 증강분도 같은 공급자에게 가게 됩니다. 무기 한 점을 파는 것이 거래라면 방공망을 파는 것은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한국이 중동에서 UAE·사우디·이라크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든 것도 개별 계약을 따로 딴 결과라기보다, 첫 나라에서 만들어진 이 관계가 이웃 나라의 판단에 근거가 됐기 때문으로 보는 편이 이 산업의 성질에 맞습니다.
8. 오늘 배운 내용 한눈에 정리
🔑 핵심 정리
① 지상·항공 무기체계는 지상무기(전차·자주포)·항공무기(전투기)·유도무기(미사일) 세 갈래로 나뉘며, 각각 현대로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 / 한국항공우주 /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가 대표주자입니다.
② 폴란드는 2022년 K2 약 1,000대·K9 648문·FA-50 48대의 기본계약을 맺은 뒤 K9과 K2를 각각 두 차례씩 실행계약으로 확정했고, 그중 일부는 ‘현지생산’ 방식으로 계약 규모와 관계를 함께 키웠습니다.
③ FA-50은 이미 6개국에 140대 이상 수출되며 KAI를 ‘국내 유일 완제기 제작사’로 만들어줬습니다.
④ 천궁-II는 UAE→사우디→이라크로 이어지는 중동 대공방어 벨트를 완성하며, 미국 패트리엇 대비 절반 이하로 알려진 값을 무기로 삼고 있습니다(업계 통용 추정으로, 포대 구성에 따라 달라집니다).
⑤ 요격체계는 유도탄 하나가 아니라 다기능 레이더·교전통제소·발사대 세 덩어리로 이뤄집니다. 국내에서도 이 셋을 한 회사가 만들지 않아 (LIG디펜스앤에어로스페이스·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 이라크 계약이 원팀으로 나갔고, 방공망을 판다는 말은 물건을 판다기보다 관계를 맺는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⑥ 자주포의 승부처는 사거리가 아니라 시간입니다 — 첫 발이 나가기까지, 그리고 쏘고 자리를 뜨기까지. 항법·사격통제·자동장전 셋이 함께 빨라야 나오는 값이라, 포신만 만들 수 있는 나라와 자주포를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여기서 갈립니다.
⑦ 다만 EU의 ‘유럽산 우선’ 정책(SAFE)이라는 구조적 리스크는 앞으로 계속 지켜봐야 합니다.
⑧ 한국의 빠른 납기는 미국식 대외군사판매(FMS) 대신 정부간 직접계약(G2G)과 실행계약 분할 방식을 쓰기 때문이며, 계약에는 대부분 기술이전·현지생산 등 절충교역(오프셋) 의무가 뒤따릅니다. 2부에서 살펴본 진행기준 매출인식 원리는 무기 수출 계약에도 그대로 적용돼, 대형 계약 발표와 실제 매출 반영 사이에는 시차가 존재합니다.
⑨ 자주포와 전차는 겉모습만 비슷할 뿐 하는 일이 다릅니다 — 전차는 적을 보며 직사로 쏘는 돌파용, 자주포는 수십 km 밖에서 곡사로 쏘고 즉시 이동하는 화력 지원용입니다. K9의 강점은 화력보다 오히려 시간(초탄 30초, 급속발사 15초 3발)에 있습니다.
⑩ 이 모든 계약을 관통하는 것은 결국 신뢰입니다. G2G가 빠른 이유도, ITAR가 병목인 이유도, 절충교역이 양날의 검인 이유도 전부 누가 누구를 어디까지 믿느냐의 문제입니다.
9. 마무리하며
오늘은 K방산 수출의 두 축인 지상·항공 무기체계를 살펴봤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갈래이자, 1부에서 소개하고 2부에서도 다시 예고했던 캐나다 잠수함 탈락 사건의 전말이 담긴 해양방산·MRO로 넘어갑니다.
오늘 확인한 관점 하나를 들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 이 산업에서 계약을 따내고 지키는 것은 기술력만이 아니라 신뢰입니다. 4부에서 만날 KDDX 수주전과 캐나다 잠수함 사례는, 그 신뢰가 얼마나 정교하게 관리돼야 하는 자산이며 동시에 얼마나 쉽게 뒤집힐 수 있는 변수인지를 한꺼번에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 본 원리 하나를 함께 들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 이 갈래의 무기들은 파는 순간이 아니라 도입한 나라가 그 장비를 굴리는 20~30년 동안 값을 만들어냅니다. 자주포의 포신은 소모품이고 미사일은 쓰면 없어지며 전투기는 정비를 받아야 뜹니다. 그래서 계약 금액이라는 큰 숫자 뒤에, 그 계약이 앞으로 몇 년치의 부품과 정비를 함께 데려오는지를 보시면 이 산업의 실적이 왜 계약 발표와 다른 박자로 움직이는지가 보입니다.
- 4부 — 해양방산·MRO: 한화오션·HD현대중공업의 잠수함·군함 건조 경쟁, KDDX 수주전, 그리고 미 해군 함정 정비(MRO) 시장 진출기를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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