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서진시스템, ESS로 불리는데 반도체 장비가 더 커진 금속 가공 회사 (ESS 히어로즈 ③)

2024년 서진시스템의 매출에서 에너지저장장치(ESS) 장비는 52.4%였습니다. 회사 매출의 절반이 넘었고 누구나 이 회사를 ESS 회사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2026년 상반기에는 그 비중이 29.9%로 내려앉았고, 대신 반도체 장비가 16.0%에서 44.7%로 올라 1위가 됐습니다. 2년 사이 두 사업의 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1,087억원에서 상반기 524억원 적자로 돌아섰습니다.

1. 왜 지금 서진시스템인가

밸류체인 ④부가 정리한 국면은 앞선 두 편에서 이미 다뤘습니다. 셀을 만드는 회사들이 그 안에서 무엇을 바꿨는지가 ①②편의 이야기였고, 한쪽은 설비를 돌렸고 다른 한쪽은 판매처를 넓혔습니다.

이 편은 셀이 아니라 그것을 담는 쪽을 봅니다. 배터리 셀만으로는 저장장치가 되지 않습니다. 셀을 모듈로 묶고 그것을 랙에 꽂아 컨테이너에 넣어야 비로소 발전소 옆에 놓을 수 있는 설비가 됩니다. 서진시스템은 그 컨테이너와 구조물, 부품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 회사를 ESS 회사로만 부르면 지금의 모습을 설명하지 못합니다. 2026년 상반기 기준으로 매출의 44.7%가 반도체 장비에서 나오고 ESS는 29.9%입니다. 회사가 스스로를 「글로벌 메탈 플랫폼 전문 공급업체」라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입니다.

이 편이 붙잡을 구조는 그 이동입니다. 한 시장이 빠지고 다른 시장이 그 자리를 채우는 일이 지금 이 회사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가능한 이유와 그럼에도 손익이 적자로 돌아선 이유를 함께 봐야 이 회사가 설명됩니다. 시장을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것이 무엇을 지켜주고 무엇을 지켜주지 못하는지가 이 편에서 드러납니다.

베트남에 29만평 이상의 생산 시설을 두고 있고 국내 5개사와 해외 23개사를 포함해 계열회사가 28곳 입니다. 해외 법인은 베트남 13곳, 미국 5곳, 중국 2곳, 인도네시아 2곳, 헝가리 1곳입니다. 이 편에서 답을 찾아볼 질문은 셋입니다. 금속을 깎고 붙이는 일이 왜 첨단 산업의 부품이 되는가. 한 회사가 어떻게 ESS와 반도체 장비를 함께 만드는가. 그리고 매출이 옮겨가는 동안 왜 이익이 사라졌는가.

📌 기본 정보 티커: 코스닥 178320 | 회사 소개: 글로벌 메탈 플랫폼 전문 공급업체 | 사업 구성(2026년 상반기 기준): 반도체 장비 44.7%, ESS 장비 29.9%, 통신 장비 9.7%,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부품 6.8% | 생산 거점: 베트남 29만평 이상 대규모 생산 시설이 중심, 계열회사 28곳(베트남 13·미국 5·중국 2·인도네시아 2·헝가리 1) | 고객 구성: 2026년 상반기 매출의 41.9%와 19.0%를 차지하는 두 고객사가 있으며 회사는 이를 영업비밀로 익명 처리 | 한 줄 정체성: 금속을 깎고 붙여 첨단 산업의 함체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ESS가 빠진 자리를 반도체 장비가 채우고 있는 중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서진시스템의 사업은 여섯 갈래로 나뉩니다. 회사가 사업보고서에 적은 순서대로 ESS 장비, 반도체 장비,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부품, 통신 장비, 산업기계 및 생활가전, 중공업 부품입니다. 겉으로는 서로 관계없어 보이는 시장들인데 한 회사가 모두 다룹니다.

이 여섯이 한 회사에 있을 수 있는 이유는 파는 것이 같기 때문입니다. 이 회사가 파는 것은 저장장치도 반도체 장비도 아니고, 그 안에 들어가는 금속 구조물과 부품입니다. 알루미늄과 철을 깎고 굽히고 붙여 고객이 요구한 모양으로 만들어 넘깁니다.

매출 비중을 보면 그 여섯 가운데 넷이 대부분을 차지합니다. 2026년 상반기 기준 반도체 장비가 3,086억원 으로 44.7%, ESS 장비가 2,067억원으로 29.9%, 통신 장비가 672억원으로 9.7%, 전기자동차 및 배터리 부품이 468억원으로 6.8%입니다.

이 비중이 지금 빠르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2024년에는 서진시스템 ESS 장비가 52.4%로 압도적이고 반도체가 16.0%였는데, 2025년에 37.3%와 27.3%로 좁혀졌고 2026년 상반기에 29.9%와 44.7%로 뒤집혔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ESS는 2024년 6,360억원에서 2025년 3,978억원으로 줄었고 반도체는 1,943억원에서 2,913억원으로 늘었습니다.

값이 정해지는 방식은 여섯 갈래가 대체로 비슷합니다. 고객이 설계를 주고 그에 맞춰 만들어 넘기는 주문 생산이며, 회사는 「고객사의 생산계획에 의한 주문 생산방식」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가 정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싸게 잘 만드느냐이지 무엇을 만들지가 아닙니다.

돈이 들어오는 주기는 짧습니다. 회사는 수주현황을 기재하지 않는 이유로 「통상 2주에서 2개월 이전에 생산제품 주문을 접수하는 단기발주 형식」이라고 밝혔습니다. 몇 년짜리 수주잔고를 쌓아두는 사업이 아니라 고객의 생산 계획에 붙어 짧게 도는 사업이라는 뜻입니다.

고객 구성은 집중돼 있습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6,904억원 가운데 한 고객이 2,890억원으로 41.9%, 다른 고객이 1,315억원으로 19.0%를 차지합니다. 둘을 합치면 60.9%인데 회사는 「주요 고객사 및 그 매출액에 관한 내용은 영업비밀」이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원가는 어디로 나가는가. 주요 원재료는 알루미늄과 철재류이고 2026년 상반기 매입액이 각각 415억원과 348억원입니다. 알루미늄은 대부분 수입하고 철재류는 베트남 현지의 포스코 법인 등에서 사 옵니다. 여기에 베트남 29만평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과 인건비가 붙는데, 이 부분이 3절에서 볼 이 회사의 구조와 직결됩니다.

사업이 여섯인 이유도 여기서 나옵니다. 고객이 다르면 요구하는 물건이 다른데, 그 물건을 만드는 데 쓰이는 기본 기술은 같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는 산업별로 사업부를 나눈 것이 아니라 같은 능력을 여러 산업에 팔고 있는 셈이고, 회사가 스스로를 특정 산업의 회사가 아니라 「메탈 플랫폼」이라 부르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저장장치에서 배터리 말고 무엇이 필요한가 에너지저장장치라고 하면 배터리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발전소 옆에 놓이는 것은 컨테이너입니다. 그 안에 배터리 셀이 모듈로 묶여 랙에 꽂혀 있고, 그것을 관리하는 장치와 냉각 설비, 소화 설비가 함께 들어갑니다. 컨테이너 자체가 하는 일이 많습니다. 비바람과 먼지를 막고, 안에서 난 열이 빠져나갈 통로를 만들며, 지진이나 운송 중 충격에도 안의 배터리가 흔들리지 않게 잡아줍니다. 그리고 만에 하나 불이 났을 때 그것이 옆 컨테이너로 번지지 않도록 막아야 합니다. 이 모든 것이 금속 구조물의 일입니다. 알루미늄과 철을 깎고 굽히고 용접해 정해진 치수 안에서 그 기능들을 담아내야 하고, 오차가 크면 배터리가 들어가지 않거나 열이 제대로 빠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장장치 시장이 커지면 배터리 회사만 바빠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터리를 담을 함체를 만드는 회사도 함께 바빠지고, 반대로 그 시장이 식으면 함께 식습니다. 서진시스템이 ESS 회사로 불려온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밸류체인 ④부와 ESS 히어로즈 앞선 두 편이 배터리 셀을 다뤘다면 이 편은 그 셀을 담는 쪽을 봅니다. 금속을 깎고 붙이는 일은 오래된 기술인데, 그 물건이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요구가 전혀 달라집니다. 그리고 그 요구의 공통점이 이 회사가 여섯 시장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이유가 됩니다. 금속 가공이 왜 어려워지는지(①), 저장장치 함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②), 반도체 장비 부품은 무엇이 다른지(③), 그럼에도 왜 같은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지(④), 그 유연함이 지금 어떻게 작동했는지(⑤), 그리고 그것이 왜 이익을 지켜주지 못했는지(⑥)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① 금속을 깎는 일이 어려워지는 지점

금속을 자르고 구멍을 뚫고 굽히는 일은 오래된 기술입니다. 그런데 그 물건이 정밀해질수록 어려움이 급격히 커집니다. 이유는 금속이 가공 중에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깎을 때 열이 납니다. 절삭 공구가 금속을 파고들면서 마찰로 열이 생기고, 금속은 열을 받으면 팽창합니다. 뜨거울 때 정확히 깎아놓아도 식으면 치수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용접은 더 심합니다. 한 곳을 녹여 붙이면 그 주변이 수축하면서 전체가 휘어집니다.

그래서 정밀한 금속 부품을 만드는 일은 깎는 기술이 아니라 변형을 예측하고 보정하는 기술에 가깝습니다. 어느 순서로 가공할지, 어디를 먼저 붙일지, 어느 정도 여유를 두었다가 나중에 다듬을지를 정해야 하고, 그 판단은 재질과 두께와 형상마다 다릅니다.

여기에 크기가 문제를 키웁니다. 작은 부품은 조금 틀어져도 보정할 수 있지만 사람 키만 한 구조물은 한쪽 끝의 오차가 반대쪽에서 크게 벌어집니다. 저장장치 컨테이너나 반도체 장비의 프레임처럼 큰 물건을 정밀하게 만드는 일이 아무나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어려움은 재질마다 다르게 나타납니다. 알루미늄은 가볍고 열을 잘 전달해 함체와 방열 부품에 쓰이지만 무르기 때문에 깎을 때 눌리기 쉽고 용접이 까다롭습니다. 철은 단단해 다루기는 수월하나 무겁고 녹이 슬어 표면 처리가 따로 필요합니다. 같은 도면이라도 어느 재질로 만드느냐에 따라 공정 순서가 달라지고, 이 회사가 두 재질을 모두 다루는 것이 그만큼의 축적을 요구합니다.

💡 쉽게 비유하면 — 한복 짓기와 옷장 짜기 천을 마름질해 옷을 지을 때는 조금 틀어져도 바느질하면서 맞출 수 있습니다. 천이 늘어나고 접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무로 옷장을 짤 때는 다릅니다. 판재 하나가 몇 밀리미터만 어긋나도 문이 닫히지 않고, 그것을 고치려면 다시 깎아야 합니다. 금속은 옷장 쪽인데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나무는 깎는 동안 크기가 그대로지만 금속은 열을 받아 팽창하고 식으면서 수축합니다. 깎을 때 정확했던 치수가 식은 뒤에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숙련된 목수가 나무의 결을 보고 순서를 정하듯, 금속 가공에서도 어느 순서로 깎고 붙일지를 정하는 일이 실력을 가릅니다. 같은 도면을 주어도 만드는 곳에 따라 결과가 다른 이유이고, 고객이 한 번 정한 공급자를 잘 바꾸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② 서진시스템 ESS 함체가 해야 하는 일

저장장치 컨테이너는 겉으로 보면 큰 철제 상자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담기는 것이 배터리라 요구가 까다롭습니다. 첫째가 열입니다. 배터리는 충전하고 방전할 때마다 열이 나는데, 그 열이 안에 갇히면 수명이 줄고 위험해집니다.

그래서 컨테이너 안에는 공기나 냉각수가 도는 길이 설계돼 있고, 그 길을 만드는 것이 금속 구조물의 일입니다. 어느 쪽에서 찬 것을 넣고 어디로 더운 것을 뺄지, 그 통로가 배터리 랙 사이를 어떻게 지날지가 함체의 형상을 정합니다.

둘째가 화재입니다. 배터리에서 불이 나면 온도가 매우 높아지고 옆으로 번지기 쉽습니다. 컨테이너는 그 번짐을 막는 마지막 벽이므로, 안에서 불이 나도 일정 시간 견디고 밖으로 열이 새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소화 설비가 작동할 공간과 배관이 함께 들어갑니다.

셋째가 구조입니다. 컨테이너 하나에 수십 톤의 배터리가 들어가고 그것을 트레일러에 실어 현장까지 옮깁니다. 운송 중 흔들림과 설치 후 지진에도 안의 랙이 뒤틀리지 않아야 하며, 여러 개를 나란히 놓고 위로 쌓기도 하므로 하중을 견디는 설계가 필요합니다.

넷째가 밀폐입니다. 컨테이너 안에는 전기가 흐르는 설비가 가득한데 빗물이나 습기가 들어가면 고장으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문과 이음매마다 밀폐 구조가 들어가고, 동시에 열을 빼는 통로는 열려 있어야 합니다. 막아야 할 것과 통해야 할 것이 한 상자 안에 있어야 하는 셈이고, 그 둘을 함께 만족시키는 것이 설계의 어려움입니다.

③ 서진시스템 반도체 장비 부품은 무엇이 다른가

회사가 반도체 장비 사업으로 적어둔 품목은 「반도체 식각·증착 공정 웨이퍼 이송장비, 전원구동장치 등」입니다. 웨이퍼를 옮기는 장치와 그것을 담는 챔버, 그리고 장비의 프레임 같은 것들입니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저장장치와 성격이 다릅니다. 첫째가 정밀도입니다. 웨이퍼는 머리카락 굵기보다 훨씬 얇은 회로가 새겨지는 물건이라 그것을 옮기는 장치가 조금만 흔들려도 문제가 됩니다.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도가 요구됩니다.

둘째가 청정도입니다. 반도체 공정은 먼지 한 톨이 불량을 만드는 환경이라, 부품 표면에서 미세한 입자가 떨어져 나오면 안 됩니다. 그래서 가공 후 표면 처리와 세정이 중요하고, 어떤 재질을 쓰느냐부터 다르게 정해집니다.

셋째가 진공과 화학입니다. 식각과 증착은 진공 상태에서 반응성 강한 기체를 다루는 공정이라, 챔버는 진공을 견디면서 그 기체에 부식되지 않아야 합니다. 알루미늄에 특수한 표면 처리를 하거나 다른 합금을 쓰는 이유입니다.

저장장치 함체가 크고 튼튼해야 한다면 반도체 장비 부품은 작고 정확해야 합니다. 요구의 방향이 다른 셈인데, 그럼에도 이 회사가 둘을 함께 만드는 것이 다음 갈래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부품들은 장비 회사가 직접 만들지 않습니다. 반도체 장비를 설계하는 회사는 공정 기술과 제어 소프트웨어에 집중하고, 금속을 깎고 붙이는 일은 밖에 맡깁니다. 그래서 장비 시장이 커지면 그 부품을 만드는 회사들도 함께 바빠지는데, 인공지능용 반도체 투자가 늘어난 것이 이 회사의 반도체 장비 매출이 급증한 배경으로 보입니다.

④ 그럼에도 같은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이유

여기가 이 편의 핵심입니다. 회사는 사업보고서에서 생산능력을 산정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습니다 — 「대부분의 제조설비들이 특정 사업부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양한 사업부문별 제품생산에 복합적, 선별적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이 회사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저장장치 함체를 만들던 설비로 반도체 장비 부품도 만든다는 뜻입니다. 금속을 깎고 굽히고 붙이는 기본 공정이 같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고, 달라지는 것은 도면과 공차와 표면 처리입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생산능력은 「저장장치 몇 대」나 「반도체 부품 몇 개」로 셀 수 없습니다. 같은 설비가 이번 달에는 컨테이너를 만들고 다음 달에는 챔버를 만들 수 있으므로, 그 설비가 무엇을 만들지는 그때 어느 주문이 들어와 있느냐가 정합니다.

이것이 이 회사가 여섯 시장을 함께 다룰 수 있는 이유이고, 동시에 한 시장이 빠질 때 다른 시장으로 옮겨갈 수 있는 이유입니다. 다만 그 옮겨감에는 대가가 따르는데, ⑥에서 다시 보겠습니다.

다만 완전히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반도체 장비 부품처럼 청정도가 요구되는 제품은 일반 가공 구역과 분리된 공간이 필요하고, 큰 함체를 다루는 설비와 정밀 부품을 다루는 설비는 크기부터 다릅니다. 공유되는 것은 기본 공정과 인력의 숙련이지 모든 설비가 아니며, 그래서 이동에는 여전히 준비가 필요합니다.

⑤ 그 유연함이 지금 작동했습니다

2024년부터 2026년 상반기 사이에 이 회사에서 벌어진 일이 정확히 그 옮겨감입니다. ESS 장비 매출이 6,360억원에서 3,978억원으로 줄어드는 동안 반도체 장비가 1,943억원에서 2,913억원으로 늘었고, 2026년 상반기에는 반도체가 3,086억원으로 반년 만에 전년 연간 매출을 넘어섰습니다.

비중으로 보면 더 뚜렷합니다. ESS는 52.4%에서 37.3%, 29.9%로 계속 내려갔고 반도체는 16.0%에서 27.3%, 44.7%로 계속 올라갔습니다. 두 사업의 순위가 2년 만에 완전히 뒤바뀐 것입니다.

이런 이동이 가능한 회사는 많지 않습니다. 설비가 특정 제품에 묶여 있으면 그 시장이 식을 때 함께 식기 때문입니다. 셀을 만드는 회사가 라인을 바꾸는 데 시간과 비용을 쓰는 것도 그 설비가 화학과 형태에 묶여 있어서입니다.

이 회사의 설비는 그런 구속이 덜합니다. 금속을 다루는 기본 공정이 같으므로 도면이 바뀌면 다른 물건을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어느 시장이 빠지면 다른 시장의 주문으로 그 자리를 채웁니다. 사업이 여섯인 것이 위험을 나눈 것이 아니라 설비를 놀리지 않는 방법이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이 이동이 회사의 선택만은 아니었습니다. ESS 쪽 주문이 줄어든 것은 이 회사가 정한 일이 아니라 고객의 사정이었고, 반도체 쪽 주문이 늘어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회사가 한 것은 그 변화에 설비를 맞춰 대응한 것이며, 대응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강점이지 방향을 고른 것은 아닙니다.

⑥ 그런데 왜 이익이 사라졌는가

매출이 옮겨갔는데 이익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2024년 영업이익 1,087억원이 2025년 11억원으로 99% 줄었고 2026년 상반기에는 524억원 적자입니다. 유연함이 매출은 지켜줬는데 이익은 지켜주지 못한 것입니다.

첫째 이유는 옮겨가는 과정에 비용이 든다는 것입니다. 같은 설비로 다른 물건을 만들려면 치구를 바꾸고 조건을 다시 잡아야 하며 그 사이 불량이 나옵니다. 그리고 새 제품의 수율이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는 협상력입니다. 2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는 고객이 준 도면대로 만드는 주문 생산이고 주요 고객 둘이 매출의 60.9%를 차지합니다. 새 시장에 들어갈 때는 실적이 없으므로 값을 낮춰 잡을 수밖에 없고, 그 낮은 값이 초기 물량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셋째는 규모입니다. 베트남 29만평 시설과 28개 계열회사를 유지하는 비용은 어느 사업이 크든 작든 그대로 나갑니다. 매출이 2024년 1조 2,137억원에서 2025년 1조 663억원으로 12% 줄었을 때 그 고정비가 적은 매출에 실리면서 이익이 급격히 무너졌습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이 회사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두 겹입니다. 하나는 3절 ①에서 본 대형 정밀 가공의 축적이고, 다른 하나는 베트남에 갖춰둔 규모입니다. 앞은 시간이 필요하고 뒤는 자본이 필요합니다.

베트남 쪽을 좀 더 봐야 합니다. 29만평 이상의 부지에 생산 시설을 두고 있고 회사는 「부품 및 설비 내재화와 전 제조 공정의 수직 계열화」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다고 밝힙니다. 금속 가공은 인건비 비중이 높은 사업이므로 어디서 만드느냐가 원가를 크게 가릅니다.

그리고 고객의 승인 절차가 또 하나의 문턱입니다. 회사가 위험 요인을 설명하면서 「주요 매출처가 글로벌 탑티어 기업으로 협력사 승인 과정 까다로움」이라고 적어두었습니다. 대형 고객에 부품을 대려면 그 회사의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그 과정에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데 이 해자의 성격을 짚어둬야 합니다. 지켜주는 것은 「싸고 정확하게 만든다」이지 「이것만 만들 수 있다」가 아닙니다. 고객이 도면을 주고 그대로 만들게 하는 구조에서는 만드는 쪽이 값을 정하기 어렵고, 그래서 잘 만들수록 물량은 늘어도 남기는 몫은 얇아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가 언제까지 유효할지는 이 회사가 도면을 받는 쪽에서 도면에 관여하는 쪽으로 옮겨가는가입니다. 고객과 함께 설계 단계부터 참여하면 값을 협상할 여지가 생기고, 계속 받기만 하면 싸게 만드는 경쟁에 머뭅니다. 4절의 판별식이 자리를 채우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자리의 성격을 함께 묻는 이유입니다.

한 가지 더 짚어둘 것은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이 완제품의 겉이 아니라 속이라는 점입니다. 소비자가 보는 브랜드는 고객의 것이고 이 회사의 이름은 어디에도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잘 만들어도 최종 시장에서 이름값이 쌓이지 않고, 협상의 근거는 값과 품질과 납기뿐입니다.

📌 이 회사를 판별하는 질문 하나 매출 성장률은 이 회사를 판별해주지 못합니다. 사업이 여섯 갈래인데 그 안에서 서로 늘고 줄기 때문에 합친 숫자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ESS 비중도 답이 아닙니다 — 2024년 52.4%에서 2026년 상반기 29.9%로 내려갔지만 그것이 곧 나빠진 것은 아니고, 그 자리를 반도체가 채웠기 때문입니다. 영업이익률도 그대로 읽기 어렵습니다. 이동하는 과정의 비용이 섞여 있어 평시의 수익성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빠진 ESS 자리를 반도체가 메우고 있는가.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반기·사업보고서의 주요 제품 현황에서 사업부문별 매출액과 비중을 연도별로 나란히 놓습니다. 합친 매출이 아니라 각 부문의 금액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봐야 이동의 방향과 속도가 보입니다. 둘째, 그 이동이 매출을 유지하고 있는지를 봅니다. ESS가 줄어든 만큼 반도체가 늘었다면 총매출이 유지되지만, 늘어난 폭이 작으면 전체가 줄어듭니다. 실제로 2025년에는 총매출이 12% 줄었습니다. 셋째, 영업이익률이 회복되는지를 함께 봅니다. 이동이 끝나고 새 제품의 수율이 올라오면 이익률이 돌아와야 하는데, 돌아오지 않으면 새로 들어간 시장의 값이 애초에 얇았다는 뜻입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서진시스템을 둘러싼 큰 그림

이 회사의 관계도는 사업부문마다 상대가 달라 여러 겹으로 그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객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아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제한적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국내외 금속 가공 전문업체 [다수, 비상장 포함] — 같은 종류의 가공을 하는 회사들입니다. 다만 이 회사만큼 여러 산업에 걸쳐 있고 해외에 대규모 생산 기지를 둔 곳은 많지 않습니다. 그 회사의 사정이 이 회사의 물량을 정하는 구조입니다.
  • 중국·동남아 제조업체 [다수] — 인건비에서 겨루는 상대입니다. 이 회사가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둔 것이 이 경쟁에 대한 대응이며, 회사가 「가격 경쟁력」을 강조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 고객사의 내재화 [잠재적 위협] —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고객의 완제품에 들어가는 구조물이므로, 고객이 그것을 직접 만들기로 하면 물량이 사라집니다. 도면을 고객이 가진 구조에서는 이 위험이 늘 있습니다.

🤝 핵심 고객사

  • 고객(나) [비공개] — 2026년 상반기 매출의 41.9%인 2,890억원을 차지하는 최대 고객입니다. 회사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이름을 밝히지 않아 어떤 회사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 고객(가) [비공개] — 같은 기간 19.0%인 1,315억원입니다. 두 고객을 합치면 60.9%로, 매출의 3분의 2 가까이가 두 곳에서 나옵니다.
  • 반도체 장비 제조사와 저장장치 사업자 [다수] — 회사가 사업부문으로 밝힌 시장의 최종 수요처입니다. 반도체 장비 부문이 매출의 44.7%로 가장 크고, 그다음이 저장장치입니다.

🔗 이 시리즈와의 연결고리

  • LG에너지솔루션 [코스피 373220]·삼성SDI [코스피 006400] — ESS 히어로즈 ①②편의 주인공들입니다. 두 회사가 만드는 배터리 셀이 이 회사가 만드는 함체 안에 들어갑니다. 직접 거래 관계는 공시로 확인되지 않으나 같은 밸류체인의 앞뒤에 있습니다. 같은 물건을 만드는 회사인데 이 회사는 여러 시장에 걸쳐 있다는 점이 다릅니다.
  • 플루언스 에너지 [나스닥 FLNC] — ESS 히어로즈 ④편에서 다룰 회사입니다. 셀과 함체를 모아 시스템 으로 만들어 파는 쪽이며, 이 회사가 만드는 것과 같은 종류의 구조물을 위탁생산으로 조달합니다.
  • 포스코 [코스피 005490] 베트남 법인 — 철재류의 주요 매입처로 사업보고서에 기재돼 있습니다. 이 회사가 베트남에 생산 기지를 둔 것이 소재 조달에서도 이점이 되는 구조입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왼쪽에는 알루미늄과 철을 대는 소재 회사가 있고 오른쪽에는 반도체 장비, 저장장치, 통신, 전기차 같은 서로 다른 산업의 고객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서 이 회사는 같은 설비로 각기 다른 물건을 만들어 넘깁니다. 도면도 값도 밖에서 정해지므로 이 회사가 쥔 것은 만드는 능력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지도에는 큰 공백이 하나 있습니다. 오른쪽 고객의 이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매출의 60.9%를 차지하는 두 고객이 익명이라, 그들이 어떤 산업에 있고 그 산업의 사정이 어떤지를 밖에서 가늠할 수 없습니다. 부문별 매출 비중의 변화가 그것을 짐작하게 하는 유일한 단서입니다. 그래서 고객 구성이 바뀌면 이 회사의 모습도 함께 달라집니다.

4절의 판별식이 부문 구성의 이동을 묻는 이유가 여기에서도 확인됩니다. 이 회사를 볼 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어느 시장에서 얼마를 벌고 있는지이고, 그 구성이 어떻게 움직이는지가 이 회사의 다음을 알려줍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서진시스템 실적표를 볼 때는 합친 매출보다 그 안의 구성 변화를 먼저 봐야 합니다. 여섯 사업이 서로 늘고 줄기 때문에 합계만으로는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습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분 매출 영업이익 비고
2024년(연간, 확정) 1조 2,137억원(YoY +55.9%) 1,087억원(YoY +121.8%) 영업이익률 9.0%. 2023년은 매출 7,786억원·영업이익 489억원(6.3%). ESS 장비 52.4%·반도체 장비 16.0%
2025년(연간, 확정) 1조 663억원(YoY -12.1%) 11억원(YoY -99.0%) 영업이익률 0.1%. ESS 장비 37.3%·반도체 장비 27.3%로 격차가 좁혀진 해
2026년 1분기(확정) 2,801억원(YoY -0.4%) 영업손실 330억원 전년 동기는 영업이익 209억원
2026년 2분기(확정) 4,101억원(YoY +58.6%) 영업손실 194억원 상반기 누적 매출 6,903억원·영업손실 524억원. 반도체 장비 44.7%·ESS 장비 29.9%로 순위 역전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첫째, 위 네 행은 모두 공시된 확정 실적이며 금액은 원화이고 연결 기준입니다. 이 표에 연간 전망 행이 없는 것은 회사가 연간 매출·영업이익 가이던스를 공시하지 않기 때문이며, 표는 최근 확정 분기까지로 마감했습니다. 둘째, 이 회사는 생산능력과 가동률을 공시하지 않습니다. 제조설비가 여러 사업부문에 복합적으로 쓰여 일괄 기준으로 산정하기 어렵고, 일부 사업부문은 고객사와의 비밀유지계약 때문에 공개할 수 없다고 회사가 밝혔습니다. 다른 제조업 회사에서 쓰는 가동률 지표를 이 회사에는 적용할 수 없습니다. 셋째, 수주잔고도 공시되지 않습니다. 통상 2주에서 2개월 전에 주문을 받는 단기발주 방식이라 수주현황을 기재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어, 앞으로의 물량을 미리 가늠할 수 있는 지표가 없습니다. 넷째, 주요 고객이 익명입니다. 매출의 41.9%와 19.0%를 차지하는 두 고객사가 영업비밀을 이유로 「고객(가)」와 「고객(나)」로만 기재돼 있습니다.

서진시스템 실적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매출과 이익이 함께 움직이지 않는 구간입니다. 2024년에는 매출이 55.9% 늘면서 영업이익이 121.8% 늘었는데, 2025년에는 매출이 12.1% 줄었을 뿐인데 영업이익이 99.0% 사라졌습니다.

이 비대칭이 3절 ⑥에서 본 고정비 구조를 보여줍니다. 베트남 29만평 시설과 28개 계열회사를 유지하는 비용은 매출이 줄어도 그대로 나갑니다. 그래서 매출이 12% 줄어든 것이 이익에서는 99% 감소로 증폭됐습니다.

2026년의 두 분기를 보면 그 안에서 다시 갈립니다. 1분기 매출은 2,801억원으로 전년과 거의 같았는데 영업이익이 209억원 흑자에서 330억원 적자로 뒤집혔습니다. 반면 2분기는 매출이 58.6% 늘면서 적자 폭이 194억원으로 줄었습니다.

부문 구성을 겹쳐 보면 그 흐름이 설명됩니다. 2026년 상반기 서진시스템 반도체 장비 매출이 3,086억원으로 2025년 연간 2,913억원을 반년 만에 넘어섰습니다. 반도체 쪽이 빠르게 늘면서 2분기 매출을 밀어 올렸고 적자 폭도 줄었습니다.

다만 아직 흑자로 돌아서지는 못했습니다. ESS 장비가 2024년 6,360억원에서 2025년 3,978억원으로 2,382억원 줄었는데, 반도체가 같은 기간 970억원 늘어 그 절반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자리를 메우고 있지만 아직 다 메우지는 못한 상태입니다.

마지막으로 계절성도 봐야 합니다. 2026년 1분기 매출이 2,801억원이었는데 2분기에 4,101억원으로 46% 늘었습니다. 고객의 생산 계획에 붙어 짧게 도는 사업이라 분기별 편차가 크고, 한 분기의 숫자로 회사의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반기나 연간으로 묶어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첫 번째 층위는 고객 집중입니다. 두 고객이 매출의 60.9%를 차지하는데 이름이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 고객의 사정이 나빠지면 실적이 직접 흔들리는데, 밖에서는 그것을 미리 알 방법이 없습니다. 고객이 공개되지 않으므로 그 회사의 실적 발표를 보고 미리 대비할 수도 없습니다.

두 번째 층위는 도면을 고객이 가진 구조입니다. 이 회사는 고객이 준 설계대로 만드는 주문 생산이므로 무엇을 만들지도 얼마에 팔지도 고객 쪽에 무게가 실립니다. 잘 만들수록 물량은 늘어도 남기는 몫은 얇아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도면이 밖에 있으면 그 물건을 다른 데 팔 수도 없어, 그 고객이 발주를 멈추면 만들던 것이 그대로 멈춥니다.

세 번째 층위는 앞을 내다볼 지표가 없다는 점입니다. 수주잔고도 가동률도 공시되지 않고 주문은 2주에서 2개월 전에 들어옵니다. 회사도 밖에서도 몇 달 뒤를 가늠하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네 번째 층위는 고정비입니다. 베트남 29만평 시설과 28개 계열회사를 유지하는 비용이 매출과 무관하게 나가므로, 물량이 줄면 손익이 빠르게 무너집니다. 2025년에 매출 12% 감소가 이익 99% 감소로 증폭된 것이 그 예입니다.

다섯 번째 층위는 이동의 비용입니다. 3절 ⑥에서 본 대로 설비를 다른 제품으로 돌리는 데는 치구 교체와 조건 잡기, 초기 불량이 따릅니다. 여러 시장을 오갈수록 이 비용이 반복됩니다.

여섯 번째 층위는 새 시장의 값입니다. 실적이 없는 시장에 들어갈 때는 값을 낮춰 잡아야 하고, 그 값이 초기 물량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매출은 늘어도 이익이 따라오지 않는 구간이 생기는 이유입니다.

일곱 번째 층위는 해외 사업의 관리 부담입니다. 계열회사가 28곳이고 그중 23곳이 해외입니다. 규모가 주는 이점이 있지만 그만큼 관리해야 할 대상이 많고, 환율과 각국의 규제가 실적에 함께 작용합니다. 그리고 그 법인들의 손익이 연결로 합쳐지므로 어느 곳에서 문제가 생겼는지가 밖에서 잘 보이지 않습니다.

여덟 번째 층위는 소재 값입니다. 주요 원재료가 알루미늄과 철재류인데 둘 다 국제 시세를 따라 움직입니다. 값이 오르면 원가가 함께 오르고, 그것을 고객에게 넘기려면 협상이 필요한데 두 번째 층위에서 본 대로 이 회사가 유리한 위치에 있지 않습니다. 주문이 2주에서 2개월 전에 들어오는 구조라 그 협상을 할 시간도 넉넉하지 않습니다.

아홉 번째 층위는 두 시장의 사이클입니다. 반도체 장비 투자와 저장장치 설치는 서로 다른 이유로 움직이므로 한쪽이 좋을 때 다른 쪽이 나쁠 수 있고, 지금이 그런 국면입니다. 다만 둘이 동시에 나빠지는 구간도 올 수 있으며, 그때는 옮겨갈 곳이 없어 고정비가 그대로 손실이 됩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네 가지 해석

① 설비가 무엇에 묶여 있는지가 그 회사의 유연함을 정합니다

이 회사는 생산능력을 공시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제조설비들이 특정 사업부문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양한 사업부문별 제품생산에 복합적, 선별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입니다. 셀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셀 기준이 없는 것입니다.

이 문장이 뜻하는 바가 큽니다. 설비가 특정 제품에 묶여 있지 않으므로 한 시장이 식으면 다른 시장의 주문으로 채울 수 있습니다. 실제로 ESS가 빠지는 동안 반도체가 그 자리를 채웠고, 2년 만에 두 사업의 순위가 뒤바뀌었습니다.

다만 유연함에는 대가가 있습니다. 무엇이든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무엇에도 특화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어느 시장에서도 대체하기 어려운 존재가 되기 어렵습니다. 값을 정하는 힘이 고객 쪽에 있는 구조가 여기서 나옵니다.

그래서 제조업 회사를 볼 때는 생산능력 표의 유무와 그 이유를 함께 봐야 합니다. 물량 단위로 세는 회사는 그 설비가 특정 제품에 묶여 있다는 뜻이고, 세지 못하는 회사는 유연한 대신 특화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 나은지는 그 시장이 얼마나 자주 바뀌느냐가 정합니다.

그리고 이 판단은 회사가 무엇을 공시하느냐로도 확인됩니다. 생산능력을 물량으로 세는 회사는 그 단위를 정할 수 있을 만큼 제품이 정해져 있다는 뜻이고, 세지 못한다고 밝히는 회사는 그렇지 않다는 뜻입니다. 공시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 회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정보인 셈입니다.

② 자리를 메우는 것과 이익을 지키는 것은 다릅니다

이 회사는 ESS가 빠진 자리를 반도체로 메웠습니다. 매출로 보면 성공적인 이동입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2024년 1,087억원에서 2025년 11억원으로 사라졌고 2026년 상반기에는 적자입니다.

이동에는 세 가지 비용이 붙기 때문입니다. 설비를 돌리는 과정의 불량과 지연, 새 시장에서 실적이 없어 낮춰 잡아야 하는 값, 그리고 그 사이에도 그대로 나가는 고정비입니다. 매출이 유지돼도 이익은 그만큼 깎입니다.

다만 이 비용이 영구적인 것은 아닙니다. 새 제품의 수율이 올라오고 실적이 쌓이면 값을 다시 협상할 수 있고, 그때 이익률이 돌아옵니다. 문제는 그 시점이 언제인지를 밖에서 알기 어렵고, 그 사이 또 다른 이동이 시작되면 비용이 겹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업 구성이 옮겨가는 회사를 볼 때는 매출이 유지되는지만 보지 말고 이익률이 언제 돌아오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이동이 끝났는데도 돌아오지 않으면 새로 들어간 시장의 값이 애초에 얇았다는 뜻입니다.

③ 고정비가 큰 회사에서 매출 감소는 증폭됩니다

2025년 이 회사의 매출은 12.1% 줄었습니다. 그런데 영업이익은 99.0% 사라졌습니다. 매출 감소 폭의 여덟 배가 넘는 이익 감소입니다.

베트남 29만평 시설과 28개 계열회사를 유지하는 비용이 매출과 무관하게 나가기 때문입니다. 매출이 줄면 그 고정비를 감당할 몫이 줄어들고, 손익분기 근처에서는 작은 매출 변화가 이익을 크게 흔듭니다.

이 구조는 반대 방향으로도 작동합니다. 2024년에는 매출이 55.9% 늘 때 영업이익이 121.8% 늘었습니다. 올라갈 때도 내려갈 때도 증폭되는 것이고, 그래서 한 해의 실적으로 회사의 상태를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고정비가 큰 회사에서는 이익의 절대액보다 매출이 어느 수준을 넘느냐를 봐야 합니다. 그 수준이 손익분기이고, 그것을 넘으면 늘어난 매출의 상당 부분이 이익으로 남습니다. 이 회사라면 2025년 1조 663억원과 2024년 1조 2,137억원 사이 어디쯤에 그 선이 있습니다.

다만 손익분기를 넘는 것과 이익률이 회복되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매출이 다시 늘어 흑자로 돌아서더라도 그 매출이 값이 얇은 제품으로 채워져 있으면 이익률은 예전만 못합니다. 그래서 흑자 전환 자체보다 어느 수준의 이익률로 돌아오는지가 이동의 성패를 가릅니다.

④ 고객이 익명이면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듭니다

이 회사는 매출의 41.9%와 19.0%를 차지하는 두 고객을 「고객(가)」와 「고객(나)」로만 표기합니다. 영업비밀이라는 이유이고, 공시 규정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결과 밖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듭니다. 고객이 어떤 산업에 있는지 알면 그 산업의 업황으로 이 회사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데, 이름을 모르면 그 경로가 막힙니다. 게다가 이 회사는 수주잔고도 가동률도 공시하지 않아 대체 지표마저 얇습니다.

그렇다고 비공개 자체를 나쁜 신호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대형 고객과의 계약에는 비밀유지 조항이 흔하고, 회사가 「협력사 승인 과정이 까다롭다」고 밝힌 것을 보면 그 고객들이 요구 수준이 높은 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고객이 익명인 회사에서는 사업부문별 매출 비중이 사실상 유일한 창입니다. 어느 부문이 늘고 줄었는지를 보면 그 고객이 속한 산업의 사정을 짐작할 수 있고, 이 회사의 경우 반도체 장비 비중이 올라간 것이 그쪽 고객의 주문이 늘었다는 뜻이 됩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앞으로 이 회사에 관한 소식을 접했을 때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질문 네 개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함께 적어둡니다.

첫째, 빠진 ESS 자리를 반도체가 메우고 있는가. 반기·사업보고서의 주요 제품 현황에서 사업부문별 매출액을 연도별로 나란히 놓습니다. 비중만이 아니라 금액을 봐야 하는데, 한쪽이 줄어든 만큼 다른 쪽이 늘었는지가 총매출의 방향을 정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영업이익률이 돌아오는가. 이동하는 과정의 비용이 사라지면 이익률이 회복돼야 합니다. 매출이 2024년 수준으로 돌아왔는데도 이익률이 그때만 못하면 새로 들어간 시장의 값이 얇다는 뜻입니다.

셋째, 고객 구성이 바뀌는가. 주요 매출처의 비중이 공시되므로 두 고객의 몫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를 봅니다. 60.9%에서 더 올라가면 집중이 심해지는 것이고, 내려가면 고객이 분산되는 것입니다.

넷째, ESS 쪽 물량이 돌아오는가. 저장장치 시장 자체는 커지고 있으므로 이 회사의 ESS 매출이 다시 늘어날 여지가 있습니다. ESS 히어로즈 앞선 편들에서 본 대로 셀 제조사들이 저장장치 물량을 늘리고 있고, 그 물량에는 함체가 함께 필요합니다.

덧붙여 확인해두면 좋은 것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회사가 설비 투자를 어디에 하고 있는지입니다. 현금흐름표의 유형자산 취득 규모와 사업보고서의 설비 신설 내역을 보면 어느 사업에 무게를 싣는지가 드러납니다. 반도체 쪽에 전용 설비를 늘리고 있다면 이동이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는 뜻이고, 그때는 유연함의 일부를 내주고 특화를 택한 것이 됩니다.

10. 마무리하며

서진시스템은 금속을 깎고 붙여 첨단 산업의 함체와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서, ESS가 빠진 자리를 반도체 장비가 채우고 있는 중입니다. 이 한 줄에 이 회사의 강점과 부담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설비가 특정 제품에 묶여 있지 않아 시장을 옮겨 다닐 수 있고, 바로 그래서 어느 시장에서도 값을 정하는 쪽에 서지 못합니다.

확인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금속 가공은 오래된 기술인데 물건이 커지고 정밀해질수록 어려워집니다. 깎을 때 나는 열과 용접할 때 생기는 수축 때문에 치수가 움직이고, 그것을 예측해 보정하는 것이 실력을 가릅니다. 저장장치 함체는 열을 빼고 화재를 막고 하중을 견뎌야 하며, 반도체 장비 부품은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정밀도와 청정도를 요구합니다. 요구의 방향이 다른데도 같은 공장에서 만들 수 있는 것은 금속을 다루는 기본 공정이 같기 때문이고, 회사가 생산능력을 공시하지 않는 이유도 설비가 부문 사이를 오가기 때문입니다.

남는 질문은 두 갈래입니다. 반도체가 ESS의 빈자리를 온전히 채울 것인가. 그리고 채운 뒤에 이익률이 돌아올 것인가. 앞의 질문에는 사업부문별 매출액의 변화가 답하고, 뒤의 질문에는 매출이 회복된 시점의 영업이익률이 답할 것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회사가 만드는 것과 배터리 셀을 함께 모아 시스템으로 파는 회사, 플루언스 에너지를 다룹니다. 이 회사가 부품과 함체를 만드는 쪽이라면 그 회사는 그것들을 모아 전력망에 넘기는 쪽입니다. 같은 밸류체인의 위아래를 나란히 놓으면 저장장치라는 사업에서 누가 무엇을 감당하고 누가 어디서 남기는지가 보입니다. 앞으로 어느 회사를 보든 되풀이해 던져볼 질문은 같습니다 —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무엇이고, 그것을 무엇이라 부를지는 누가 정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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