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원전 밸류체인 총정리 ③] 송배전(변압기·전력기기), 조용한 병목의 정체

변압기 한 대를 주문하면, 코로나19 이전에는 30~60주면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지금, 이 리드타임은 전력용 변압기 평균 128주, 발전기와 그리드를 잇는 승압변압기(GSU)는 144주, 특수 사양은 최대 4년까지 늘어났습니다. 4년이면 웬만한 대학교 졸업장을 딸 수 있는 시간입니다. 1~2부에서 우리는 원전을 짓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는 ‘발전’ 단계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전기를 많이 만들어도, 그 전기를 실어 나를 변압기 하나를 받는 데 4년이 걸린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오늘은 전력·원전 밸류체인 총정리 3부로,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이 산업 전체의 발목을 잡고 있는 ‘송배전·전력기기’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 왜 하필 변압기인가

1부에서 설명했듯, 전력 밸류체인은 발전·송배전·저장이 동시에 맞물려야 하는 삼각편대입니다. 그중에서도 송배전은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실제로 쓸 수 있는 곳까지 실어 나르는 ‘도로’ 역할을 하는데, 이 도로 위에서 전압을 바꿔주는 핵심 장비가 바로 변압기입니다. 발전소에서 만든 전기를 멀리 보내려면 전압을 아주 높여야(승압) 손실이 줄고, 가정이나 데이터센터에서 실제로 쓰려면 다시 낮춰야(강압) 합니다. 이 승압·강압을 담당하는 변압기가 없으면, 아무리 발전소를 많이 지어도 그 전기는 그저 발전소 안에 갇혀 있을 뿐입니다.

💡 쉽게 비유하면  변압기는 고속도로의 톨게이트와 비슷합니다. 아무리 넓은 도로(발전 설비)를 깔아도 톨게이트(변압기)가 부족하면 차량(전기)이 정체됩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에서는 이 톨게이트를 새로 짓는 데만 최대 4년이 걸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변압기가 전압을 바꾸는 원리 자체는 200년 가까이 된 오래된 물리 법칙 하나에 기대고 있습니다. 철심 하나에 전선을 두 다발로 나눠 감아두고, 한쪽(1차 코일)에 교류 전기를 흘려보내면 전선 주위에 시시각각 변하는 자기장이 만들어집니다. 이 변하는 자기장이 철심을 타고 다른 쪽(2차 코일)에도 전달되면서, 그 코일에도 전기가 유도되는데, 이를 ‘전자기유도’라고 부릅니다. 이때 나오는 전압의 크기는 양쪽 코일을 감은 횟수의 비율에 따라 정확히 정해집니다. 1차 코일을 100번, 2차 코일을 10번 감았다면 전압은 10분의 1로 낮아지는 식입니다. 즉 변압기 안에는 복잡한 전자회로가 아니라, 철심에 감긴 두 개의 코일이 전부입니다. 다만 초고압으로 갈수록 이 코일 사이에 흐르는 전기가 서로 스파크를 일으키지 않도록 절연시키는 기술의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는데, 이것이 뒤에서 다룰 초고압 변압기의 진짜 진입장벽입니다.

그런데 전압을 한 번만 바꾸면 될 것 같은데, 왜 변압기가 그렇게 많이 필요할까요. 전기가 발전소에서 우리 집 콘센트까지 오는 동안 전압이 계단처럼 여러 번 내려오기 때문입니다. 발전소에서 나온 전기는 먼저 765kV나 345kV 같은 초고압으로 올려 장거리를 달리고, 도시 근처의 변전소에서 154kV로 한 번 낮추고, 다시 22.9kV로 낮춰 동네까지 들어온 뒤, 마지막으로 전봇대나 건물 지하의 작은 변압기가 220V로 낮춰 콘센트에 도달합니다.

💡 쉽게 비유하면 — 고속도로에서 골목길까지 전압 단계는 도로 위계와 거의 똑같습니다. 고속도로(765kV)에서 국도(154kV)로, 다시 시내도로(22.9kV)로, 마지막에 골목길(220V)로 내려오는 구조입니다. 고속도로를 그대로 집 앞까지 끌고 올 수 없듯, 초고압 전기를 그대로 가정에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이 계단마다 변압기가 하나씩 필요하고, 계단의 높이에 따라 변압기의 크기와 값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765kV급 초고압 변압기는 무게가 수백 톤에 이르러 전용 운송 장비로 옮겨야 하는 반면, 전봇대 위의 배전용 변압기는 사람이 올려다볼 정도의 크기입니다. 뉴스에서 ‘변압기 부족’이라고 할 때 대개는 이 계단의 맨 위, 즉 초고압 쪽을 가리킵니다.

이 계단 구조가 이 산업의 지형도 결정합니다. 계단 위로 갈수록 다루는 전압이 높아 절연 난도가 올라가고, 그래서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줄어들며, 값과 이익률도 함께 올라갑니다. 반대로 계단 아래쪽 배전기기는 만들 수 있는 회사가 많아 경쟁이 치열합니다. 뒤에서 볼 한국 3사의 제품 라인업이 계속 더 높은 전압 등급으로 올라가려 하는 것도, 그쪽이 경쟁자가 적고 마진이 두터운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2. 병목의 세 가지 원인

시장조사기관 우드매켄지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전력용·배전용 변압기 공급 부족률은 각각 30%, 10%에 달합니다. 이 품귀 현상은 세 가지 원인이 동시에 겹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원인 구체적 수치
노후화 미국 변압기의 55% 이상이 가동 33년 초과, 배전변압기 약 4,000만 대(절반 이상)가 기대수명 초과
수요 급증 2019년 이후 전력용 변압기 수요 116~119% 증가, 발전기 승압변압기(GSU)는 274% 급증
수입 의존 미국 전력용 변압기의 약 80%, 배전변압기의 약 50%를 수입에 의존. 국내 제조는 전력용 수요의 약 20%만 충당

이 세 가지가 겹치면서 변압기 가격은 2020년 대비 60~80% 뛰었고, 리드타임은 앞서 언급한 대로 최대 4년까지 늘어났습니다. 여기에 변압기의 핵심 원자재인 방향성 전기강판과 구리 공급 부족까지 겹치며 압박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세 원인의 뿌리를 따라가 보면 결국 ‘수요 예측 실패’로 모입니다. 미국 전력 수요는 2000년대 이후 20년 가까이 거의 제자리걸음이었고, 그 사이 변압기 제조사들은 신규 생산라인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미국 내 변압기 제조 능력은 수십 년째 정체된 반면, 지금 가동 중인 변압기 상당수는 그 정체기 이전인 수십 년 전 건설 붐 때 지어져 노후화까지 겹쳤습니다. 그런데 AI 데이터센터가 등장하며 수요가 불과 몇 년 만에 급반전하자, 오랫동안 투자를 미뤄온 공급망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겁니다.

3. 전력기기 핵심 개념 정리

바로 다음 절에서 다룰 한국 기업들의 제품이 왜 계속 더 높은 전압 등급(154kV→345kV→765kV급)으로 올라가는지, 그리고 이후 전력기기 히어로즈 시리즈에서 각 회사의 제품 라인업을 이해하려면, 아래 세 단어를 먼저 짚고 가는 게 도움이 됩니다.

📌 초고압(UHV) 변압기  765kV 같은 초고전압을 다루는 대형 변압기입니다. 대용량 전력을 장거리로 보내는 ‘고속도로 톨게이트’에 해당하며, 다루는 전압이 높을수록 제작 난이도와 진입장벽이 커집니다.

📌 HVDC(초고압직류송전)  전기를 직류로 바꿔서 장거리·대용량으로 보내는 방식입니다. 교류보다 손실이 적고, 육지와 섬(예: 해상풍력) 사이처럼 서로 다른 전력망을 연결할 때 유리해 ‘전력 고속도로’로 불립니다.

📌 스마트그리드  발전부터 소비까지 전력망 전체를 디지털로 연결해 실시간으로 감시·제어하는 지능형 전력망입니다. 재생에너지·ESS·전기차까지 통합 관리하며, 문제가 생긴 구간을 스스로 감지해 복구하는 ‘자가치유’ 기능을 지향합니다.

HVDC가 왜 손실이 적은지도 짚고 넘어갈 만합니다. 우리가 흔히 쓰는 교류(AC)는 1초에 60번씩 전류의 방향이 바뀌는데, 이렇게 방향이 계속 바뀌다 보니 전선 표면 쪽으로만 전류가 몰리는 ‘표피효과’가 생겨 전선의 단면적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여기에 전압과 전류의 위상이 어긋나면서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전선만 데우는 ‘무효전력’까지 발생합니다. 반면 방향이 계속 일정한 직류(DC)는 이런 손실 요인 자체가 없어, 같은 거리를 보낼 때 손실이 훨씬 적습니다. 다만 직류는 변압기의 전자기유도 원리를 그대로 쓸 수 없어 전압을 바꾸기가 까다롭기 때문에, 단거리에서는 여전히 교류가 유리하고 초장거리·해저 구간에서만 HVDC가 진가를 발휘합니다. 그리고 앞서 짚었듯 다루는 전압이 높아질수록 코일 사이 절연 기술의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초고압(UHV) 변압기나 HVDC 설비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것입니다.

변압기 말고 또 무엇이 — 차단기와 배전기기

전력기기를 변압기와 동의어로 생각하기 쉽지만, 전력망에는 변압기 못지않게 중요한 장비가 하나 더 있습니다. 차단기입니다. 전선에 사고가 나거나 과전류가 흐를 때 그 구간의 전기를 순간적으로 끊어주는 장치인데, 가정용 두꺼비집을 수십만 볼트 규모로 키운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말은 간단한데 실제로는 대단히 어려운 기술입니다. 수십만 볼트가 흐르는 전선을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순간, 그 틈으로 전기가 공기를 뚫고 건너뛰며 ‘아크’라는 강렬한 불꽃이 생깁니다. 이 아크는 수천 도에 이르러 접점을 녹여버릴 수 있어, 떼어놓는 것보다 이 불꽃을 얼마나 빨리 꺼뜨리느냐가 진짜 관건입니다. 그래서 접점 주변을 절연성이 뛰어난 특수 가스로 채워 아크를 즉시 소멸시키는 방식이 오랫동안 표준이었고, 이런 설비를 가스절연개폐장치(GIS)라고 부릅니다.

최근 이 분야에서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도 알아둘 만합니다. 그동안 널리 쓰이던 절연 가스가 온실효과가 매우 큰 물질이라, 유럽을 중심으로 규제가 강화되면서 진공이나 건조 공기 같은 대체 방식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시작됐습니다. 오래된 기술 위에 새 규제가 얹히면서 장비를 교체할 이유가 하나 더 생긴 셈인데, 이는 앞서 본 노후 설비 교체 수요와 겹쳐 이 산업의 발주를 밀어 올리는 또 하나의 요인입니다.

계단의 아래쪽, 즉 배전 영역도 규모가 작지 않습니다. 공장과 빌딩, 데이터센터 안에서 전기를 각 설비로 나눠주는 배전반과 개폐기, 그리고 그것을 제어하는 자동화 기기가 여기에 속합니다. 초고압 변압기만큼 화려하지는 않지만 수요처가 훨씬 많고 교체 주기도 짧아, 꾸준한 매출이 나오는 구간입니다. 뒤에서 볼 LS ELECTRIC이 ‘배전에 강점’이라고 소개되는 것이 바로 이 영역을 가리킵니다.

스마트그리드는 이 모든 장비 위에 얹히는 층입니다. 변압기와 차단기, 배전반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넣어 전력망 전체를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제어하는 개념인데, 재생에너지처럼 출력이 들쭉날쭉한 전원이 늘어날수록 필요성이 커집니다. 4부에서 볼 ESS도 결국 이 지능형 전력망의 한 구성요소로 작동합니다. 전력기기 기업들이 단순 제조를 넘어 소프트웨어와 시스템 쪽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것도 이 흐름 위에 있습니다.

4. 전기를 옮기는 또 하나의 축 — 초고압·해저 케이블

송배전을 이야기할 때 변압기가 주로 조명받지만, 실제로 전기를 실어 나르는 것은 케이블입니다. 변압기가 전압을 바꿔주는 톨게이트라면, 케이블은 그 사이를 잇는 도로 자체입니다. 1부의 밸류체인 지도에서 송배전 칸에 ‘변압기·초고압케이블’을 나란히 적어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리고 이 도로를 까는 일 역시 변압기 못지않게 소수만 할 수 있는 영역입니다.

전선 한 가닥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겉보기에 케이블은 구리나 알루미늄 도체에 절연층을 씌운 단순한 물건입니다. 그런데 1절에서 본 것과 같은 문제가 여기서도 그대로 반복됩니다 — 절연입니다. 초고압 케이블은 도체 주위에 가교폴리에틸렌이라는 절연 소재를 입히는데, 이 층 안에 눈에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은 기포나 이물질이 하나라도 섞이면 그 지점에 전기장이 몰려 절연이 무너집니다. 수십만 볼트가 흐르는 전선에서 절연이 한 곳이라도 무너지면 그 구간 전체를 못 쓰게 됩니다. 그래서 케이블 제조의 핵심은 ‘두껍게 감는 기술’이 아니라 ‘수십 킬로미터에 걸쳐 결함 하나 없이 균일하게 감는 기술’입니다.

직류로 보내는 HVDC 케이블은 난도가 한 단계 더 올라갑니다. 3절에서 본 대로 직류는 방향이 바뀌지 않는데, 바로 그 때문에 절연체 안에 전하가 한쪽으로 계속 쌓이는 현상이 생깁니다. 교류에서는 방향이 계속 바뀌니 이 전하가 쌓일 틈이 없지만, 직류에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축적돼 결국 절연을 위협합니다. HVDC용 절연 소재가 따로 개발돼야 하는 이유이고, 교류 케이블을 잘 만드는 회사라고 해서 곧바로 HVDC 케이블을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유입니다.

해저 케이블 — 진짜 진입장벽은 케이블이 아니라 배입니다

바다에 까는 케이블은 또 다른 세계입니다. 육상 케이블은 중간중간 접속함을 두고 이어 붙일 수 있지만, 바닷속에서는 그 접속부가 가장 약한 고리가 됩니다. 그래서 해저 케이블은 수십 킬로미터를 이음매 없이 한 번에 뽑아내야 하고, 수압과 해류, 어선의 닻이나 저인망에 긁히는 상황까지 견디도록 철선으로 외장을 덧입힙니다. 완성된 케이블 한 롤의 무게가 수천 톤에 이르는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산업의 진짜 진입장벽은 케이블을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그것을 실어다 바다에 까는 배에 있습니다. 해저 케이블 포설선은 수천 톤짜리 케이블을 감아 싣고 정해진 항로를 따라 정밀하게 풀어놓아야 하는 특수 선박인데, 새로 건조하면 수년이 걸립니다. 케이블을 만들 수 있어도 깔 배가 없으면 수주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대한전선은 2025년 5월 적재용량 7,000톤급 포설선을 1,154억원에 사들였는데, 회사가 밝힌 인수 이유가 ‘새로 건조하는 것에 비해 약 2년의 시간과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아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산업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이 사실은 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해외 — 해저 케이블을 선도해온 유럽 기업

세계 시장은 오랫동안 유럽이 선도해왔습니다. 이탈리아 프리즈미안과 프랑스 넥상스가 대표적으로, 유럽의 해상풍력 단지 건설을 발판 삼아 해저 케이블 역량을 쌓아왔습니다. 그 뒤를 한국 기업들이 따라붙고 있습니다.

🇰🇷 국내 — 초고압·해저 케이블 2사

  • LS전선 [LS그룹 계열 비상장사]  국내 최대 전선 기업으로 초고압 케이블과 해저 케이블 양쪽에서 앞서 있습니다. 상장사가 아니라 직접 투자 대상은 아니지만, 이 구간의 국내 역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름입니다.
  • 대한전선 [코스피 001440]  1941년 설립된 국내 최초 전선 회사로, 초고압 케이블 기술을 앞세워 미국 500kV 프로젝트를 수주하고 유럽으로 시장을 넓히고 있습니다. 앞서 본 포설선 인수로 해저 케이블 시공까지 직접 하는 체제를 갖췄고, 국내 HVDC 시장에도 처음 진입했습니다.

케이블 기업을 볼 때는 변압기 3사와 조금 다른 잣대가 필요합니다. 변압기는 만들어 실어 보내면 끝이지만, 해저 케이블은 만들고 실어 나르고 직접 깔아주는 것까지가 한 묶음입니다. 그래서 수주 규모가 크고 공사 기간이 길며, 그만큼 한 프로젝트의 성패가 실적에 미치는 영향도 큽니다. 3부에서 본 변압기의 ‘수주잔고가 곧 실적 가시성’이라는 공식이 케이블에서는 조금 더 울퉁불퉁하게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5. 한국 전력기기 3사, 세계로 뻗어가다

이 병목은 한국 전력기기 기업들에는 오히려 기회가 됐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 [코스피 267260]·효성중공업 [코스피 298040]·LS ELECTRIC [코스피 010120] 세 회사는 미국 변압기 시장의 약 25%를 점유하고 있고, 이미 5~6년치(일부는 2031년까지) 주문이 밀려 있는 상태입니다.

초고압 변압기 수출, 사상 최고치

한국무역협회(KITA) 통계에 따르면 10,000kVA 이상 대형 변압기 수출액은 2025년 13억 달러를 기록하며, 2010년 이후 처음으로 10억 달러를 넘어섰습니다. 이는 1977년 관련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래 최고치입니다. 미국이 약 7억 3,800만 달러로 최대 구매국이며, 최근 3년 사이 대미 수출이 약 7배로 늘었습니다.

여기서 수출되는 대형 변압기 상당수가 바로 앞서 짚은 초고압(UHV)급 제품입니다. 다루는 전압이 높을수록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적어 진입장벽이 큰데, 한국 3사가 이 고부가가치 구간에서 앞서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 국내 — 현지 생산 확대 경쟁

  • HD현대일렉트릭: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 미국 최대 전력변압기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으며, 미국 법인 매출이 2017년 약 1억 달러에서 2025년 약 4억 달러로 늘었습니다. 영국 내셔널그리드로부터 초고압 변압기 약 2,200억원 규모를 전량 수주하기도 했습니다.
  • 효성중공업: 2019년 미쓰비시로부터 4,650만 달러에 인수한 테네시주 멤피스 공장에서 연간 생산량을 130대에서 250대 이상으로 늘려가고 있으며, 최대 765kV·1,500MVA급 초고압 변압기까지 생산합니다. 국내에는 HVDC 변압기 전용 공장(약 3,300억원 규모)도 착공했습니다.
  • LS ELECTRIC: 배전 분야에 강점을 두고 텍사스주 배스트롭 공장을 완공했으며, 독일 RWE로부터 유럽向 첫 초고압 변압기(약 620억원)를 수주했습니다.

🌏 해외 — 변압기 시장에서 상대하는 경쟁자

  • Hitachi Energy [히타치 도쿄 6501 계열]  스위스 ABB의 전력망 사업을 히타치가 인수해 만든 회사로, 초고압 변압기와 HVDC 설비에서 세계 최상위권입니다. 북미 증설에 나선 대표적인 경쟁자이기도 합니다.
  • Siemens Energy [프랑크푸르트 ENR]  지멘스에서 분리된 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변압기부터 가스터빈까지 전력 설비 전반을 다룹니다. 다음 절에서 볼 가스터빈 완판 이야기의 당사자이기도 합니다.

두 회사가 한국 3사보다 기술이 뒤처져서 지금의 기회가 온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히 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이들도 오랫동안 이 시장의 강자였고, 지금 뒤늦게 북미 증설에 나선 상태입니다. 한국 3사가 앞서 있는 것은 ‘지금 당장 만들어 보낼 수 있는 라인이 있다’는 시점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 시장 전망치를 볼 때 주의할 점  북미 변압기 시장이 2034년까지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이는 아직 실현되지 않은 시장조사기관의 추정치입니다. 또한 지금의 품귀 현상은 본질적으로 설비투자 사이클의 성격을 갖고 있어, Hitachi Energy [히타치 도쿄 6501 계열]·Siemens Energy [프랑크푸르트 ENR] 등 글로벌 기업들이 추진 중인 약 20억 달러 규모의 북미 증설분이 2028년경 가동을 시작하면 공급 부족이 완화되거나 공급 과잉으로 전환될 가능성도 함께 염두에 둬야 합니다.

6. 병목은 변압기만이 아니다 — 가스터빈도 완판

변압기가 유일한 병목은 아닙니다. 가스터빈은 2부에서 다룬 원전·화력의 증기터빈과는 원리가 다릅니다. 원전·화력은 물을 끓여 만든 증기로 터빈을 돌리는 간접 방식이지만, 가스터빈은 천연가스를 압축한 공기와 함께 곧바로 태워 그 폭발적인 연소 가스 자체로 터빈 날개를 직접 밀어 돌립니다. 물을 끓이는 단계 자체가 없다 보니 시동을 걸고 최대 출력에 이르기까지 몇 분에서 길어야 수십 분이면 충분한데, 원전이나 대형 화력이 완전 가동까지 몇 시간에서 며칠씩 걸리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되는 속도입니다. 이런 특성 때문에 가스터빈은 태양광·풍력 발전량이 갑자기 줄어드는 순간 재빨리 대신 투입되는 ‘피커(peaker)’ 역할을 맡기에 최적화된 설비로 꼽힙니다. 데이터센터 수요가 원전·재생에너지만으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기 위해 가스발전 수요도 함께 늘면서, 전 세계 3대 대형 가스터빈 제조사가 모두 사실상 완판 상태에 들어갔습니다. GE Vernova [뉴욕 GEV]는 2025년 말 기준 백로그가 80GW에 달해 2029년까지 생산 슬롯이 차 있고, Siemens Energy도 약 60GW 백로그로 2028회계연도까지 완판됐으며, 미쓰비시파워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7011 계열] 역시 2028년까지 완판된 상태입니다. 이는 지금의 전력 공급 부족이 특정 설비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발전부터 송배전까지 밸류체인 전반에 걸친 구조적 병목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보여줍니다.

왜 가스터빈이 ‘기계공학의 꽃’이라 불리는가

가스터빈이 이렇게 귀한 물건이 된 데는 기술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연소 가스로 직접 터빈을 돌린다는 것은, 터빈 날개가 그 뜨거운 가스를 정면으로 맞는다는 뜻입니다. 최신 대형 가스터빈의 터빈 입구 온도는 섭씨 1,500도를 넘는데, 이는 날개를 만드는 금속의 녹는점보다 높은 온도입니다. 녹아야 정상인 온도에서 날개가 수만 시간을 견뎌야 하는 셈입니다.

이 모순을 푸는 방법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 니켈 계열의 초내열합금을 쓰되 금속 내부의 결정 경계를 아예 없앤 단결정 구조로 주조합니다. 결정과 결정이 만나는 경계가 고온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둘째, 날개 표면에 세라믹 계열의 열차폐 코팅을 입혀 열이 금속에 직접 닿지 않게 합니다. 셋째, 날개 내부에 미세한 냉각 통로를 뚫어 압축기에서 뽑아낸 찬 공기를 흘려보내고, 표면의 작은 구멍으로 내보내 날개 겉면에 공기 막을 만듭니다. 이 세 가지가 동시에 맞아떨어져야 날개가 견딥니다.

그래서 가스터빈 날개 하나의 값이 중형차 한 대와 맞먹는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형 가스터빈 한 기에 이런 날개가 450개 넘게 들어가고, 부품 수는 4만 개에 이릅니다. 소재·정밀주조·냉각설계·연소·시스템 통합이라는 서로 다른 분야의 최고 수준 기술이 한꺼번에 모여야 완성되기 때문에, 이 물건을 만들 수 있는 나라가 오랫동안 넷뿐이었습니다.

🇰🇷 한국은 다섯 번째로 이 문턱을 넘었습니다

두산에너빌리티 [코스피 034020]가 2013년 국책과제로 개발에 착수해 2023년 7월 한국서부발전 김포열병합발전소에서 첫 국산 가스터빈(270MW급)의 상업운전을 시작했습니다. 착수부터 상업운전까지 꼭 10년이 걸렸고, 이로써 한국은 미국·독일·일본·이탈리아에 이어 발전용 대형 가스터빈을 독자 개발한 다섯 번째 나라가 됐습니다. 이후 출력을 380MW급으로 키운 모델도 개발해 후속 수주로 이어가고 있습니다.

이 10년이라는 숫자를 기억해두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세계 3대 제조사가 2028~2029년까지 완판이라는 것은, 새로 뛰어들려는 회사에게 ‘그때까지 기다리거나, 10년을 들여 직접 만들거나’라는 두 선택지만 남겨둔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 해외 — 가스터빈 시장을 나눠 가진 3사

  • GE Vernova [뉴욕 GEV]  GE에서 분리된 전력·에너지 전문 기업으로, 2025년 말 기준 가스터빈 백로그가 80GW에 달해 2029년까지 생산 슬롯이 차 있습니다.
  • Siemens Energy [프랑크푸르트 ENR]  약 60GW 백로그로 2028회계연도까지 완판된 상태입니다. 앞 절에서 본 변압기 증설의 당사자이기도 해서, 발전과 송배전 양쪽에서 동시에 병목의 한가운데 서 있는 회사입니다.
  • 미쓰비시파워 [미쓰비시중공업 도쿄 7011 계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의 발전 부문으로, 역시 2028년까지 완판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7. 그늘도 있다 — 균형 잡힌 시각

이 병목이 한국 기업들에게 기회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 기회의 성격을 정확히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첫째, 설비투자 사이클의 정점 부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변압기든 가스터빈이든 케이블이든, 지금 부족한 것은 한 번 갖춰두면 수십 년 쓰는 설비입니다. 부족할 때는 값이 치솟지만 채워지고 나면 수요가 급격히 줄어듭니다. 5~6년치 수주잔고는 실적 가시성이 높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그 이후를 무엇으로 채울지가 이미 지금부터의 과제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둘째, 경쟁사 증설이 예정돼 있습니다. Hitachi Energy·Siemens Energy 등이 추진 중인 북미 증설분이 2028년을 전후해 가동을 시작하면 공급 부족은 완화되거나 공급 과잉으로 뒤집힐 수 있습니다. 지금의 협상력이 기술 격차가 아니라 시점의 차이 위에 서 있다면, 그 시점이 지나면 협상력도 함께 이동합니다.

셋째, 원자재 가격에 노출돼 있습니다. 변압기의 방향성 전기강판, 케이블의 구리는 모두 국제 시세에 따라 움직이는 원자재입니다. 수주는 몇 년 전에 확정되는데 원자재는 그 사이에 오르내리기 때문에, 수주 규모가 곧바로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국내 전선 업계에서도 매출은 늘었는데 수익성은 제한적이라는 실적이 나오곤 합니다.

넷째, 관세와 현지 생산 요구라는 변수가 있습니다. 미국이 전력 설비의 자국 내 생산을 강하게 요구하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업들이 앞다퉈 현지 공장을 짓고 있는데, 이는 기회이자 동시에 고정비 부담입니다. 현지 수요가 예상보다 빨리 식으면 그 공장이 그대로 부담으로 남습니다.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이 편에서 확정된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 2025년 국내 대형 변압기 수출액 13억 달러(한국무역협회, 1977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와 대미 수출 약 7억 3,800만 달러, 효성중공업의 멤피스 공장 인수(2019년, 4,650만 달러), LS ELECTRIC의 독일 RWE 수주(약 620억원), 대한전선의 포설선 인수(2025년 5월, 1,154억원), 두산에너빌리티 첫 국산 가스터빈의 2023년 7월 상업운전 개시. 반면 다음은 추정이거나 진행 중인 계획입니다 — 미국 변압기 공급 부족률 30%·10%(우드매켄지 추정), 미국 시장 점유율 약 25%, 북미 변압기 시장의 2034년 전망, 글로벌 기업들의 약 20억 달러 규모 북미 증설분과 그 가동 시점, 그리고 가스터빈 3사의 백로그 수치. 특히 리드타임과 부족률은 조사기관과 기준 시점에 따라 편차가 크므로 방향성으로 참고하시길 권합니다.

8. 이 병목이 말해주는 것 — 다섯 가지 해석

변압기와 가스터빈이라는 두 개의 조용한 병목을 나란히 놓고 보면, 단순히 ‘리드타임이 길다’는 헤드라인 너머로 몇 가지 날카로운 시사점이 보입니다.

① 이 병목은 어제오늘 생긴 게 아니라 20년 전에 이미 예정돼 있었습니다

변압기 리드타임 4년이라는 숫자만 보면 갑자기 터진 위기처럼 느껴지지만, 그 뿌리는 20년 가까이 이어진 ‘수요 정체’에 있습니다. 전력 수요가 제자리걸음이던 그 오랜 시간 동안 변압기 제조사들은 새 공장에 투자할 이유가 없었고, 그 결과 지금 가동 중인 설비 상당수는 그보다 훨씬 이전, 투자가 활발했던 옛 건설 붐 시기에 지어진 채 나이만 먹었습니다. 즉 지금의 병목은 최근 AI 붐이 ‘만든’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곪아 있던 구조적 문제를 AI 붐이 ‘드러낸’ 것에 가깝습니다. 이 구분이 중요한 이유는, 공급을 늘리는 데도 똑같이 긴 시간이 걸린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공장을 새로 짓고 숙련 인력을 기르는 데는 수요가 붙는 속도만큼 빠르게 따라갈 수 없어, 이 병목은 정책 발표 몇 번으로 풀릴 문제가 아니라 최소 몇 년 단위로 지켜봐야 하는 구조적 현상입니다.

② 초고압 변압기 경쟁의 본질은 사실 ‘절연 기술’ 경쟁입니다

변압기 자체의 원리는 앞서 살펴봤듯 철심에 감긴 두 코일이 전부일 만큼 단순합니다. 그런데도 초고압으로 갈수록 이 단순한 장치를 만들 수 있는 회사가 전 세계적으로 손에 꼽히는 이유는, 다루는 전압이 높아질수록 코일 사이에서 전기가 새거나 스파크를 일으키지 않도록 절연하는 기술의 난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기 때문입니다. 즉 변압기 시장의 진입장벽은 ‘더 큰 철심을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더 높은 전압을 안전하게 가둬두는 절연 노하우’에 있습니다. 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 ELECTRIC 세 회사가 유독 765kV급 초고압 구간에서 강한 것도, 오랜 세월 이 절연 기술을 국내외 현장에서 검증받아온 축적의 결과에 가깝습니다.

③ 한국 3사의 호황은 ‘영원한 호황’이 아니라 ‘시차가 만든 기회의 창’입니다

한국 3사가 5~6년치 일감을 쌓아둔 지금의 호황은 실력만으로 만들어진 결과는 아닙니다. Hitachi Energy·Siemens Energy 같은 경쟁사들이 뒤늦게 북미 증설에 나선 상태고, 이 증설분이 2028년을 전후해 가동을 시작하면 지금의 공급 부족은 완화되거나 심하면 공급 과잉으로 뒤집힐 수도 있습니다. 즉 지금 한국 기업들이 누리는 협상력은 ‘경쟁자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시차’ 위에 서 있는 것에 가깝습니다. 이 시차가 몇 년이나 더 이어질지, 그리고 그 사이 한국 기업들이 이 이익을 어디에 재투자해 다음 진입장벽(차세대 절연 기술, 대용량화 등)을 쌓아두는지가, 2028년 이후에도 이 호황이 계속될지를 가르는 진짜 변수입니다.

④ 변압기와 가스터빈이 동시에 완판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이중 병목’의 신호입니다

변압기는 ‘만든 전기를 옮기는’ 능력이 부족한 병목이고, 가스터빈은 ‘애초에 전기를 더 만드는’ 능력이 부족한 병목입니다. 밸류체인 상 완전히 다른 지점에 있는 이 두 설비가 동시에 몇 년 치씩 완판됐다는 것은, 지금의 전력 부족이 어느 한 구간만 뚫으면 해결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발전(가스터빈)과 송배전(변압기)이라는 두 개의 서로 다른 밸류체인 단계에서 동시에 공급이 막혀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설령 변압기 공급이 정상화되더라도 그 전기를 만들어낼 발전 설비 자체가 부족하다면 병목은 다른 이름으로 계속 존재하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리즈가 발전·송배전·저장이라는 세 단계를 하나씩 따로 보지 않고 ‘삼각편대’로 함께 봐야 한다고 강조해온 이유이기도 합니다.

⑤ 이 구간에서 돈으로 살 수 있는 가장 비싼 물건은 시간입니다

1부에서 이 산업의 계층마다 시계가 다르고,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비싸진다는 관점을 잡아뒀습니다. 송배전은 그 관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구간입니다. 변압기는 200년 된 전자기유도 원리로 돌아가는 장치이고, 케이블은 도체에 절연층을 씌운 물건이며, 원리만 보면 둘 다 첨단이라고 부르기 민망할 만큼 단순합니다. 그런데도 지금 이 물건들의 값이 뛰고 리드타임이 4년까지 늘어난 이유는 만들기 어려워서가 아니라 만드는 데 오래 걸려서입니다.

이 구간에서 가장 상징적인 장면이 대한전선의 포설선 인수입니다. 새로 건조하면 2년이 걸릴 배를 중고로 사들여 그 2년을 건너뛰었고, 회사는 그 대가로 1,154억원을 냈습니다. 배를 산 것이 아니라 2년을 산 셈입니다. 두산에너빌리티가 가스터빈 독자 개발에 10년과 1조원을 들인 것도 같은 이야기의 다른 버전입니다 — 그 10년을 건너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10년을 들였습니다.

그래서 이 구간의 기업을 볼 때 던져야 할 질문은 ‘기술이 얼마나 앞서 있는가’보다 ‘지금 당장 만들어 보낼 수 있는 자리가 있는가’에 가깝습니다. 국내 3사의 5~6년치 수주잔고, 가스터빈 3사의 2029년까지 찬 생산 슬롯, 대한전선이 확보한 포설선 — 이 셋의 공통점은 전부 기술이 아니라 ‘확보된 시간’이라는 자산입니다.

동시에 이 관점은 ③번에서 짚은 경고와 정확히 맞물립니다. 시간이 희소성을 만들었다면, 경쟁자들이 그 시간을 다 쓰고 나면 희소성도 사라집니다. 지금 한국 기업들이 벌어들이는 것은 기술 프리미엄이 아니라 시간 프리미엄이고, 시간 프리미엄은 정의상 한시적입니다. 2028년 전후를 이 시리즈가 반복해서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9. 오늘 배운 내용 한눈에 정리

🔑 핵심 정리

① 변압기 리드타임이 최대 4년까지 늘어난 것은 노후화·수요급증·수입의존이라는 세 가지 원인이 동시에 겹친 결과입니다.

② 한국 전력기기 3사(HD현대일렉트릭·효성중공업·LS ELECTRIC)는 미국 변압기 시장의 약 25%를 점유하며 이 병목의 최대 수혜자로 떠올랐습니다.

③ 초고압 변압기 대미 수출은 2025년 사상 최고치(13억 달러)를 기록했지만, 이는 설비투자 사이클의 성격을 가진 만큼 2028년 이후 증설분 가동에 따른 반전 가능성도 함께 봐야 합니다.

④ 가스터빈 3사도 모두 완판 상태로, 병목이 변압기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력 공급망 전반의 구조적 현상임을 보여줍니다.

⑤ 송배전은 변압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초고압·해저 케이블도 같은 절연 기술의 벽 위에 서 있고, 해저에서는 케이블보다 그것을 깔 포설선이 더 큰 진입장벽입니다.

⑥ 이 구간의 진짜 자산은 기술이 아니라 확보된 시간입니다 — 수주잔고도, 생산 슬롯도, 포설선도 전부 시간을 사둔 것이며, 그래서 이 프리미엄은 한시적입니다.

10. 마무리하며

발전소를 짓는 일도, 원전을 수출하는 일도 화려하게 조명받지만, 정작 그 전기를 실제로 전달하는 변압기라는 ‘조용한 부품’이 지금 이 산업 전체의 속도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화려한 발전 설비 뒤에 숨은 이 병목을 이해해야, 왜 한국의 평범해 보이는 중공업 회사들이 갑자기 주목받는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 밸류체인의 마지막 조각, 전기를 저장해두는 ESS 이야기로 마무리하겠습니다. 뜻밖에도 전기차 판매 부진이 이 산업의 숨은 동력이 되고 있다는 반전을 함께 다루겠습니다.

1부의 관점으로 다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이 회사들이 주목받는 것은 갑자기 기술이 좋아져서가 아니라, 세상이 갑자기 급해졌는데 이들만 이미 만들 준비가 돼 있었기 때문입니다. 가장 느린 것이 가장 비싸지는 산업에서, 미리 준비해둔 시간만큼 값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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