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분석] 산일전기, 공장 하나로 미국 전력망에 변압기를 대는 회사 (전력기기 히어로즈 ④)

2026년 상반기 산일전기의 영업이익률은 37.4%였습니다. 같은 기간 국내 최대 전력기기 회사인 HD현대일렉트릭이 25.0%, 효성중공업이 13.7%였으니 두 회사를 크게 앞선 숫자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공장은 경기도 안산 한 곳뿐이고, 만드는 것은 초고압이 아니라 배전급 변압기입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반기보고서에 적힌 생산능력 산출 방식입니다 — 「평균 제조 인원수 × 52주 × 52시간」. 이 회사의 생산능력은 설비의 수가 아니라 사람의 수로 계산됩니다.

1. 왜 지금 산일전기인가

전력기기 히어로즈 앞선 세 편은 모두 같은 국면에서 출발했습니다. 밸류체인 ③부가 「조용한 병목」이라 부른 납기 지연이 값을 밀어 올렸고, 국내 전력기기 회사들의 이익률이 함께 뛰었습니다. 업계 전체에 온 조건이므로 그것만으로는 어느 회사도 설명되지 않습니다.

갈리는 것은 그 국면에서 각 회사가 무엇을 했는가입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은 만든 물량을 어느 시장에 보낼지를 골랐고, ②편의 효성중공업은 변압기와 아파트를 함께 안고 갔으며, ③편의 LS일렉트릭은 네 부문 가운데 전력에 자원을 몰아넣었습니다. 세 회사 모두 여러 선택지 사이에서 무언가를 고른 것입니다.

산일전기는 다릅니다. 이 회사가 한 것은 고르는 일이 아니라 좁히는 일이었습니다. 제품은 배전급 변압기 하나로, 시장은 미국 하나로, 공장은 안산 하나로 좁혀두고 그 안에서 사람을 늘려왔습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3,145억원 가운데 수출이 3,049억원으로 97%이고, 그중 미국이 2,747억원으로 전체의 87%입니다.

1976년 설립돼 2024년 7월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이 회사는 배전 변압기와 리액터를 만듭니다. 전압으로 보면 배전급이지만 일반 전력망용이 아니라 인버터·신재생에너지 설비·에너지저장장치처럼 특수한 조건에 맞춰 설계하는 제품이 중심이고, 회사는 이를 특수변압기로 분류합니다.

이 편에서 답을 찾아볼 질문은 셋입니다. 배전급 변압기로 어떻게 37%대 이익률이 나오는가. 공장이 하나뿐인 회사가 어떻게 생산을 계속 늘려왔는가. 그리고 좁히는 선택이 지금은 유리하게 작동하는데 언제까지 그럴 것인가.

📌 기본 정보 티커: 코스피 062040 | 설립: 1976년, 2024년 7월 유가증권시장 상장 | 사업 구성(2026년 상반기 기준): 변압기·리액터 등 98.1%, 소프트스타터 등 0.1%, 기타 1.8% | 지배구조: 최대주주는 대표이사 박동석, 설립 이후 최대주주 변동 없음 | 생산 거점: 경기도 안산공장 한 곳 | 시장 내 위치: 미국 배전 변압기 시장에 검증을 마치고 진입한 소수 국내 업체 중 하나로, 2026년 상반기 수출 비중 97%·미국 비중 87% | 한 줄 정체성: 제품과 시장과 공장을 하나씩으로 좁혀두고 사람을 늘려 생산을 키우는 특수변압기 전문회사

2. 이 회사는 무엇을 팔아 어떻게 돈을 버는가

산일전기 변압기 사업은 사실상 하나의 제품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 3,145억원 가운데 변압기와 리액터가 3,085억원으로 98.1%를 차지합니다. 나머지는 전기모터의 기동 충격을 줄여주는 소프트스타터가 2억 6,000만원, 사후관리 용역이 57억원입니다. 사업 구성을 나눠 설명할 것이 거의 없는 회사입니다.

그 하나가 무엇인지가 이 회사를 이해하는 출발점입니다. 전압으로 분류하면 배전 변압기인데, 회사는 이것을 일반 배전 변압기와 구분해 특수변압기라고 부릅니다. 보고서의 설명을 그대로 옮기면 「인버터, 신재생에너지 장치, 에너지저장장치 등 매우 다양한 고객의 요구 사양을 반영하여 특수한 조건과 환경에서 사용되도록 만들기 위해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변압기」입니다.

전력망에 표준품으로 들어가는 배전 변압기와 무엇이 다른지가 여기서 갈립니다. 표준품은 규격이 정해져 있어 대량으로 찍어내고 값도 시장 가격을 따라갑니다. 반면 이 회사가 만드는 것은 태양광 발전소나 데이터센터, 선박처럼 쓰이는 자리마다 조건이 다른 제품이라 주문마다 설계가 달라집니다. 만드는 난도가 올라가는 대신 값을 개별로 협상할 수 있게 됩니다.

파는 곳은 압도적으로 미국입니다. 2026년 상반기 산일전기 수출 3,049억원 가운데 미국이 2,747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87%입니다. 회사는 미국 전력기기 시장의 성격을 「보수적인 경향이 국내보다 더욱 강한 편」이라 적으면서, 이미 진입해 매출을 내고 있는 업체는 고객사로부터 철저히 검증받은 업체이고 신규 업체가 들어오기는 어렵다고 설명합니다.

고객 구성에는 특이한 점이 있습니다. 2026년 상반기 매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거래처가 넷인데 각각 32.1%, 19.9%, 19.0%, 18.5%로 합치면 89.5%입니다. 그리고 회사는 이 넷을 A사·B사·C사·D사로만 표기하고 이름을 밝히지 않습니다. 매출의 아홉 할이 네 곳에서 나오는데 그 넷이 누구인지는 밖에서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대금은 인도 시점에 매출로 인식합니다. 고객의 사양에 맞춰 설계하고 제작한 뒤 넘기는 구조인데, 중요한 것은 그 주기가 짧다는 점입니다. 초고압 변압기처럼 몇 년짜리 프로젝트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짧은 주기로 도는 제품이라, 지금 받은 주문이 비교적 빨리 매출로 나타납니다.

원가는 어디로 나가는가. 2026년 상반기 매출원가가 1,663억원으로 매출의 52.9%인데, 그 중심은 재료비와 인건비입니다. 변압기는 철심에 쓰는 전기강판과 코일에 쓰는 구리가 재료의 대부분이고 두 소재 모두 국제 시세를 따라 움직입니다. 그리고 3절에서 볼 대로 이 회사에서는 코일을 감고 조립하는 사람의 손이 생산능력 그 자체이므로, 인건비는 물량이 줄어도 함께 줄지 않습니다.

판매비와관리비는 상반기 307억원으로 매출의 9.8%에 그칩니다. 고객이 넷뿐이고 그 넷과 오래 거래해온 구조라 영업에 드는 비용이 크지 않다는 뜻이며, 이것이 37%대 영업이익률을 떠받치는 요인 가운데 하나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같은 배전 변압기인데 왜 값이 다른가 변압기는 전압으로 초고압·배전으로 나뉘고, 흔히 초고압이 어렵고 비싸며 배전은 흔하고 싸다고 여겨집니다. 실제로 전력망에 표준 규격으로 들어가는 배전 변압기는 대량 생산되는 부품에 가깝고 값도 그렇게 매겨집니다. 그런데 같은 전압대에도 전혀 다른 제품이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소에서 인버터가 만들어낸 전기를 받는 변압기는 파형에 왜곡이 섞여 들어와 열이 더 나고, 그 열을 견디도록 따로 설계해야 합니다. 선박에 들어가는 변압기는 흔들림과 염분을 견뎌야 하고, 데이터센터용은 갑작스러운 부하 변동을 감당해야 합니다. 규격이 아니라 조건이 제품을 정하는 것입니다. 이 차이가 값을 가릅니다. 표준품은 여러 회사가 같은 물건을 만들어 값으로 경쟁하지만, 조건에 맞춰 설계하는 제품은 그 조건을 이해하고 만들어본 회사가 많지 않습니다. 산일전기가 스스로를 배전 변압기가 아니라 특수변압기 회사로 설명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37%대 이익률의 출발점도 이 구분에 있습니다.

3. 핵심 기술 — 원리로 파고들기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이 초고압 변압기를 만드는 데 왜 몇 년이 걸리는지를 풀었다면, 이 편은 그보다 작은 변압기가 왜 어려워지는지를 봅니다. 크기가 작아지면 만들기 쉬워질 것 같은데 이 회사의 이익률은 오히려 더 높습니다. 그 역설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그것이 왜 사람의 문제로 이어지는지를 차례로 보겠습니다. 왜 요구 조건이 제품을 어렵게 만드는지(①), 특히 신재생과 만나면 무엇이 달라지는지(②), 그 어려움이 왜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게 걸리는지(③), 미국이라는 시장이 왜 문턱이 높은지(④), 그 문턱을 넘은 뒤에 무엇이 달라지는지(⑤), 그리고 이 구조가 남기는 한계는 무엇인지(⑥)입니다.

① 산일전기 변압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조건입니다

변압기의 원리는 단순합니다. 철심에 코일 두 개를 감고 한쪽에 교류를 흘리면 변하는 자기장이 생기고, 그 자기장이 다른 코일에 전기를 만들어냅니다. 감은 횟수의 비율이 전압의 비율을 정합니다. 여기까지는 초고압이든 배전급이든 같습니다.

어려움은 그다음에 붙습니다. 이상적인 교류는 매끄러운 파형인데 실제로 들어오는 전기는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파형이 일그러져 있으면 원래 주파수 말고 그 배수의 성분이 섞여 들어오는데, 이것을 고조파라 부릅니다. 문제는 이 성분이 철심과 코일에서 원래보다 훨씬 많은 열을 만든다는 점입니다.

열이 왜 문제인가 하면 절연이 열에 약하기 때문입니다. 코일을 감싼 절연물과 절연유는 온도가 높을수록 빨리 상하고, 그만큼 변압기의 수명이 줄어듭니다. 그래서 고조파가 섞이는 자리에 들어갈 변압기는 같은 용량이라도 철심을 더 크게 잡거나 냉각을 강화하거나 절연 등급을 올려야 합니다. 겉으로는 같은 배전급인데 안이 전혀 다른 물건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조정은 계산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고조파가 얼마나 열을 만들지는 그 설비의 운전 방식에 따라 달라지므로, 결국 비슷한 조건에서 만들어본 경험이 설계의 정확도를 정합니다. 이 회사가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변압기」라고 적을 때의 기술력은 새로운 원리를 아는 것이 아니라 조건마다 얼마를 더 잡아야 하는지를 아는 축적에 가깝습니다.

💡 쉽게 비유하면 — 맞춤 정장과 기성복 기성복은 치수 몇 가지를 정해두고 대량으로 만듭니다. 만드는 쪽은 같은 패턴을 반복하면 되므로 값이 싸지고, 사는 쪽은 자기에게 딱 맞지는 않아도 대체로 입을 만합니다. 전력망에 표준 규격으로 들어가는 배전 변압기가 이쪽입니다. 맞춤 정장은 다릅니다. 어깨가 한쪽으로 기울었는지, 팔을 자주 올리는 일을 하는지에 따라 패턴을 조정합니다. 그리고 그 조정을 얼마나 해야 하는지는 책에 적혀 있지 않고 여러 벌 만들어본 재단사의 손에 있습니다. 산일전기가 만드는 특수변압기가 이쪽입니다. 차이가 하나 더 있습니다. 맞춤 정장 가게는 재봉틀을 열 대 더 들여놓아도 매출이 열 배가 되지 않습니다. 재단할 수 있는 사람이 늘어야 합니다. 이 회사의 생산능력이 설비가 아니라 사람 수로 계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조건이 하나 더 붙습니다. 전기가 흐르는 방식만이 아니라 놓이는 자리도 설계를 바꿉니다. 선박에 들어가는 변압기는 파도에 흔들리고 염분이 섞인 공기를 맞으므로 고정 방식과 표면 처리가 달라야 하고, 해양플랜트나 석유화학 설비에 들어가면 폭발 위험이 있는 환경을 견디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회사가 목표 시장으로 신재생과 전력계통에 더해 선박·해양플랜트·철도를 함께 적어둔 것이 이 때문입니다.

📌 알아두면 좋은 개념 — 고조파는 왜 생기고 왜 해로운가 전력망의 교류는 1초에 60번 방향이 바뀌는 매끄러운 물결 모양입니다. 그런데 이 물결이 늘 매끄럽지는 않습니다. 인버터처럼 스위치를 빠르게 켜고 꺼서 교류를 만들어내는 장치, 그리고 전기를 일정하지 않게 끌어 쓰는 장치들이 물결을 일그러뜨립니다. 수학적으로 보면 일그러진 물결은 원래 주파수의 물결에 그 배수 주파수의 물결들이 겹친 것과 같습니다. 60헤르츠에 180헤르츠, 300헤르츠 같은 성분이 섞여 들어오는 것이고, 이 배수 성분들을 고조파라고 부릅니다. 왜 해로운가 하면 주파수가 높을수록 손실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철심에서 생기는 손실은 주파수의 제곱에 가깝게 늘고, 코일에서는 높은 주파수의 전류가 도선의 표면 쪽으로 몰려 실질적인 단면적이 줄어듭니다. 같은 전력을 보내는데 열은 훨씬 많이 나는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고조파가 있는 자리에 들어갈 변압기는 같은 용량이라도 여유를 두고 설계해야 합니다. 얼마나 여유를 둘지는 그 설비가 만드는 고조파의 크기에 달려 있고, 그 크기는 운전 방식에 따라 달라집니다. 이것이 이 회사가 말하는 「고객의 요구 사양」의 실체이고, 표준품으로는 대응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② 신재생과 만나면 조건이 한 겹 더해집니다

회사는 2022년 이후 신재생에너지 관련 매출 비중이 크게 늘었고 2023년부터는 미국 전력망 교체 수요가 더해졌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두 수요가 겹친 것이 지금의 성장인데, 앞쪽이 이 회사의 제품을 특히 까다롭게 만듭니다.

태양광 발전소에서 나오는 전기는 원래 직류입니다. 이것을 전력망에 넣으려면 교류로 바꿔야 하고 그 일을 인버터가 합니다. 그런데 인버터가 만드는 교류는 발전기가 돌면서 만드는 매끄러운 파형이 아니라 스위치를 빠르게 켜고 끄면서 만들어낸 계단 모양에 가깝습니다. 필터로 다듬어도 ①에서 본 고조파가 남습니다.

여기에 출력이 날씨에 따라 오르내린다는 조건이 붙습니다. 구름이 지나가면 발전량이 급격히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는데, 그때마다 변압기가 받는 부하가 흔들립니다. 부하가 오르내리면 온도도 함께 오르내리고, 온도 변화가 반복되면 절연물이 팽창과 수축을 되풀이하며 더 빨리 상합니다. 같은 용량으로 같은 시간을 써도 수명이 다르게 닳는 것입니다.

에너지저장장치는 또 다른 조건입니다. 충전할 때와 방전할 때 전류가 반대로 흐르므로 양방향을 견뎌야 하고, 데이터센터라면 갑작스러운 부하 급증을 감당해야 합니다. 회사가 「매우 다양한 고객의 요구 사양」 이라고 적은 것이 이 목록이며, 요구가 다양하다는 말은 곧 만들 때마다 다시 설계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조정에는 한 방향으로만 갈 수 없다는 제약이 있습니다. 열을 줄이려고 철심을 키우면 변압기가 커지고 무거워지는데, 놓일 자리의 공간과 하중은 대체로 정해져 있습니다. 태양광 발전소의 패드 위나 선박의 기관실처럼 자리가 좁으면 키울 수 없고, 그러면 다른 방법으로 열을 처리해야 합니다. 조건이 여럿일 때 설계가 어려워지는 것은 각 조건이 서로를 제약하기 때문입니다.

③ 그래서 어려움이 설비가 아니라 사람에게 걸립니다

여기가 이 편의 갈림길입니다. 주문마다 설계가 달라지면 자동화가 어렵습니다. 같은 물건을 반복해 만들 때는 기계가 사람보다 빠르지만, 매번 다른 물건을 만들 때는 설계를 읽고 판단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코일을 감는 간격, 절연물을 넣는 위치, 조립 순서가 제품마다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가 반기보고서의 생산능력 산출근거에 그대로 적혀 있습니다. 「각 사업연도 평균 제조 인원수 × 52주 × 52시간 기준으로 계산한 최대 생산 가능 공수」입니다. 설비의 대수도 라인의 길이도 아니고 사람의 수입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이 전력변압기 몇 대, 배전반 몇 면으로 공시하는 것과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이 방식이 뜻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생산을 늘리려면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실제로 이 회사의 생산능력은 2024년 33,368EA에서 2025년 35,431EA, 2026년 44,133EA로 늘었는데 공장은 안산 한 곳 그대로입니다. 건물을 짓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사람을 채워 캐파를 늘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에는 한계가 함께 옵니다. 사람은 뽑는다고 곧바로 제 몫을 하지 않습니다. 매번 다른 설계를 다뤄야 하므로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시간 동안 인건비는 나가는데 생산은 늘지 않습니다. 2026년 상반기 가동률이 87.20%인 것도 이 사정과 무관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숙련의 내용도 짚어둘 만합니다. 코일을 감는 일은 단순 반복처럼 보이지만 절연물을 어느 간격으로 끼우고 도선을 어느 장력으로 당기는지가 성능과 수명을 가릅니다. 너무 느슨하면 사고 전류가 흐를 때 코일이 움직여 손상되고, 너무 팽팽하면 절연물이 눌려 얇아집니다. 도면에 적힌 수치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는 구간이 남아 있고, 그 구간을 메우는 것이 경험입니다.

④ 미국이라는 시장의 문턱

이 회사 매출의 87%가 미국에서 옵니다. 그런데 미국 전력기기 시장은 들어가기 어려운 시장으로 알려져 있고, 회사도 보고서에 그 점을 명시했습니다. 시장 내 보수적인 경향이 국내보다 강해서 신규 업체가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 보수적인가 하면 변압기가 고장 났을 때의 결과 때문입니다. 배전 변압기 한 대가 망가지면 그 아래에 붙은 수용가의 전기가 끊깁니다. 그리고 변압기는 한 번 설치하면 수십 년을 쓰므로, 값이 조금 싸다고 검증되지 않은 제품을 넣었다가 몇 년 뒤 문제가 생기면 그 손해가 훨씬 큽니다. 사는 쪽이 새 공급자를 시험해볼 이유가 별로 없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이 시장의 진입 절차는 규격 인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인증을 받아도 실제 납품 실적이 쌓여야 하고, 그 실적이 몇 년간 문제없이 돌아가야 비로소 목록에 오릅니다. 회사가 「이미 진입하여 꾸준히 매출을 발생시키는 업체는 이미 철저하게 검증받은 업체」라고 적은 것이 이 과정을 가리킵니다.

이 문턱이 지금은 이 회사 편입니다. 미국이 노후 전력망을 대거 교체하고 신재생 설비를 늘리는 국면에 들어섰는데, 이미 검증을 마친 공급자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값이 오르는데도 새로 들어오는 회사가 적은 이유이고, 37%대 이익률이 유지되는 배경이기도 합니다.

검증의 내용도 한 겹 들여다볼 만합니다. 규격 시험은 새 제품이 정해진 조건을 만족하는지를 보는 것이지만, 전력회사가 실제로 확인하려는 것은 그 제품이 20년 뒤에도 문제없을지입니다. 그런데 20년을 기다려볼 수는 없으므로 대신 보는 것이 공급자의 기록입니다. 몇 년 동안 몇 대를 납품했고 그중 몇 대에서 문제가 생겼는지가 그 판단의 근거가 되고, 그래서 새로 들어오는 회사는 보여줄 것이 없는 상태에서 시작합니다.

⑤ 문턱을 넘은 뒤에 달라지는 것

검증을 통과하고 나면 관계의 성격이 바뀝니다. 고객이 공급자를 쉽게 바꾸지 못하게 되므로 거래가 길어지고, 새 사양이 필요할 때 먼저 상의하는 상대가 됩니다. 이 회사의 고객이 넷뿐인데 그 넷이 매출의 89.5%를 차지하는 것이 그 관계의 모습입니다.

다만 이 집중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넷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값과 물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지만, 그 넷 가운데 하나만 발주를 줄여도 매출의 20% 안팎이 흔들립니다. 그리고 회사가 이 넷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밖에서는 그들이 어떤 회사인지, 그들의 사업이 어떤 상태인지를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여기에 시차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검증에 몇 년이 걸린다는 것은 이 회사에 유리한 진입장벽이면서, 동시에 이 회사가 새 고객을 늘리는 데도 같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지금 넷에 몰려 있는 구조를 풀려면 지금부터 몇 년을 들여야 하고, 그 사이 기존 넷의 사정이 실적을 정합니다.

⑥ 좁힌 선택이 남기는 한계

이 회사가 좁혀둔 것은 셋입니다. 제품은 배전급 특수변압기 하나, 시장은 미국 하나, 공장은 안산 하나입니다. 이 좁힘이 지금의 이익률을 만들었지만 그만큼 대안도 없습니다.

제품 쪽에서는 초고압으로 올라가는 길이 열려 있지 않습니다. 초고압 변압기는 다루는 무게와 시험 설비가 전혀 다른 수준이라 지금의 공장으로는 만들 수 없고, 만들려면 새로 지어야 합니다. 시장 쪽에서는 미국 외의 지역을 늘리려면 그 시장의 검증을 다시 받아야 합니다. 공장 쪽에서는 사람을 늘리는 것 말고 캐파를 키울 방법이 마땅치 않고, 그마저 안산 부지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성장에는 상한선이 그어져 있습니다. 다만 그 상한이 어디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생산능력이 2년 사이 32% 늘었고 가동률은 87.20%로 아직 여유가 있으므로, 당분간은 지금의 방식으로 더 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여유가 끝났을 때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4. 왜 경쟁사는 따라오지 못하는가 — 그리고 그 이유가 언제까지 유효한가

이 회사의 자리를 지켜주는 것은 두 겹입니다. 하나는 3절 ④에서 본 미국 시장의 검증 절차이고, 다른 하나는 ①②에서 본 조건별 설계의 축적입니다. 앞은 시간이 필요하고 뒤는 경험이 필요한데, 둘 다 돈으로 건너뛸 수 없는 종류입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②③편의 세 회사와 견주면 이 회사의 위치가 분명해집니다. 세 회사 모두 이 회사보다 규모가 훨씬 크고 초고압까지 만들 수 있는데, 이익률은 이 회사가 가장 높습니다. 큰 회사가 배전급 특수변압기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는 것은 만들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럴 이유가 크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고압 한 대의 값이 배전급 수십 대에 맞먹는 국면에서, 한정된 인력과 설비를 어디에 쓸지는 정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이 회사의 해자는 기술의 격차라기보다 관심의 격차에 가깝습니다. 큰 회사들이 더 큰 물건에 집중하는 동안 남겨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고, 그 자리가 마침 신재생과 데이터센터 때문에 빠르게 커진 것입니다. 이 구도는 초고압 쪽 수요가 꺾이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국 현지 생산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습니다. 미국은 전력 설비의 자국 내 생산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그 요구가 강해지면 국내에서 만들어 수출하는 이 회사의 구조가 불리해집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이 미국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는 것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해자의 유효 기간을 판단할 때 봐야 할 것은 그래서 둘입니다. 검증을 마친 새 공급자가 얼마나 빨리 늘어나는가, 그리고 현지 생산 요구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는가입니다. 앞은 몇 년 단위로 움직이고 뒤는 정책이 정합니다.

📌 이 회사를 판별하는 질문 하나 매출 성장률은 이 회사를 판별해주지 못합니다. 미국 전력망 교체와 신재생 확대라는 흐름이 워낙 강해 검증을 마친 공급자라면 대체로 매출이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익률도 마찬가지입니다 — 값이 오르는 국면에서는 이 업계 전체의 이익률이 함께 올랐습니다. 미국 비중 87%라는 숫자도 그 자체로는 강점인지 위험인지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물어야 할 것은 하나입니다 — 늘어난 매출이 사람을 늘려서 온 것인가. 확인하는 방법은 셋입니다. 첫째, 반기·사업보고서의 생산능력 표를 봅니다. 이 회사는 생산능력을 EA 단위로 공시하고 그 산출근거가 제조 인원수이므로, 이 숫자가 늘었다면 사람이 늘어난 것입니다. 둘째, 같은 보고서의 가동률을 함께 봅니다. 생산능력이 늘었는데 가동률이 함께 올랐다면 뽑은 사람이 제 몫을 하고 있다는 뜻이고, 생산능력만 늘고 가동률이 내려갔다면 아직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쌓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셋째, 매출 증가율과 생산능력 증가율을 견줍니다. 매출이 생산능력보다 훨씬 빠르게 늘었다면 그 차이는 값이 오른 몫이고, 값의 상승은 언젠가 멈춥니다.

5. 경쟁·협력 지도 — 산일전기를 둘러싼 큰 그림

이 회사의 관계도는 다른 전력기기 회사보다 단순하면서 동시에 불투명합니다. 만드는 것이 하나이고 파는 곳도 한 나라에 몰려 있는데, 정작 그 고객들의 이름이 공개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 글로벌 라이벌

  • HD현대일렉트릭 [코스피 267260] —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주인공입니다. 같은 미국 시장을 보지만 주력이 초고압이라 정면으로 겹치는 구간은 크지 않습니다. 다만 미국에 생산법인을 두고 있어 현지 생산 요구가 강해질 때의 대응 여력이 다릅니다.
  • 효성중공업 [코스피 298040] — 전력기기 히어로즈 ②편의 주인공으로, 미국 자회사를 통해 현지 시장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회사와 마찬가지로 미국이 주요 시장이지만 초고압 중심이고 건설 부문을 함께 안고 있어 재무 구조가 전혀 다릅니다.
  • 미국·유럽의 배전 변압기 제조사 [다수, 비상장 포함] — 현지 업체들이 이 회사와 같은 자리를 두고 겨룹니다. 다만 미국의 노후 설비 교체 수요가 현지 생산능력을 넘어선 것이 이 회사가 들어갈 틈이 생긴 배경입니다.

🤝 핵심 고객사

  • A사 [미국 추정, 비공개] — 2026년 상반기 매출의 32.1%를 차지하는 최대 거래처입니다. 회사가 이름을 밝히지 않아 어떤 회사인지 확인할 수 없습니다.
  • B사·C사·D사 [비공개] — 각각 19.9%, 19.0%, 18.5%입니다. A사와 합치면 89.5%로, 이 회사 매출의 아홉 할이 넷에서 나옵니다. 넷의 비중이 고르게 나뉘어 있다는 점은 한 곳에 대한 종속을 줄여주지만, 넷 모두 같은 미국 시장에 있다면 분산 효과는 제한적입니다.
  • 신재생·데이터센터 사업자 [최종 수요] — 회사가 직접 계약하는 상대는 아닐 수 있으나, 이 회사 제품이 실제로 쓰이는 자리입니다. 태양광 발전소와 에너지저장장치, 데이터센터 전력 설비의 증설 속도가 이 회사의 수요를 정합니다.

🇰🇷 국내 협력 생태계

  • 포스코 [코스피 005490] 등 소재 공급사 — 변압기 철심에 쓰는 전기강판을 공급합니다. 이 소재는 세계적으로 만드는 곳이 많지 않아, 전력기기 수요가 몰리는 국면에서는 변압기 공장보다 강판 공장이 먼저 병목이 됩니다.
  • LS일렉트릭 [코스피 010120] — 전력기기 히어로즈 ③편의 주인공입니다. 국내 전력기기 시장에서는 겹치는 구간이 있으나 이 회사가 사실상 수출 전업이라 국내에서 부딪히는 정도는 크지 않습니다.
  • 산일파트너스 [비상장 종속회사] — 2025년 4월 설립된 종속회사로, 이 회사의 재무제표가 2025년부터 연결 기준으로 바뀐 계기입니다. 실적을 연도별로 비교할 때 이 변경을 감안해야 합니다.

이 지도를 한 걸음 물러나 보면 이 회사의 위치가 드러납니다. 왼쪽에는 국내 소재 회사가 있고 오른쪽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미국 고객 넷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안산 공장 하나가 있습니다. 국내에서 재료를 사서 국내에서 만들어 미국에 파는 단순한 선이고, 그 선 위의 어느 한 점이 끊기면 대체할 경로가 거의 없습니다.

이 단순함이 지금은 강점으로 작동합니다. 여러 시장을 관리하는 데 드는 비용이 없고, 한 종류의 제품에 인력과 경험이 집중되며, 판매관리비가 매출의 9.8%에 그칩니다. 다만 같은 단순함이 위험의 집중이기도 합니다. 4절의 판별식이 성장의 원천을 묻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 이 구조에서 성장이 이어지려면 결국 사람이 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지도에서 경쟁의 성격이 다른 편들과 다릅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②③편의 세 회사는 서로 같은 입찰에 들어가 겨루는 관계였지만, 이 회사가 실제로 겨루는 상대는 국내 회사가 아니라 미국 현지의 배전 변압기 제조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과의 경쟁도 값으로 붙는 싸움이 아니라 「지금 만들어줄 수 있는가」의 문제에 가깝습니다. 수요가 현지 생산능력을 넘어선 국면이기 때문입니다.

6. 숫자로 보는 지금 — 구조가 숫자에 어떻게 나타나는가

산일전기 영업이익률을 볼 때 눈여겨볼 것은 성장의 속도보다 이익률이 그 속도를 따라 어떻게 움직였는가입니다.

표를 좌우로 밀어서 보실 수 있습니다.

구분 매출 영업이익 비고
2024년(연간, 확정) 3,340억원(YoY +55.7%) 1,092억원(YoY +134.4%) 영업이익률 32.7%. 별도 기준. 2023년은 매출 2,145억원·영업이익 466억원(21.7%)
2025년(연간, 확정) 5,019억원(YoY +50.3%) 1,786억원(YoY +63.5%) 영업이익률 35.6%. 2025년 4월 종속회사 설립으로 연결 기준 전환
2026년 1분기(확정) 1,503억원(YoY +52.1%) 554억원(YoY +47.9%) 영업이익률 36.9%
2026년 2분기(확정) 1,641억원(YoY +28.0%) 620억원(YoY +34.3%) 영업이익률 37.8%. 상반기 누적 매출 3,145억원·영업이익 1,175억원(37.4%), 수출 비중 97%·미국 비중 87%

⚠️ 숫자를 볼 때 주의할 점 첫째, 위 네 행은 모두 공시된 확정 실적이며 금액은 원화입니다. 다만 회계 기준이 중간에 바뀌었습니다. 2024년까지는 별도재무제표 기준이고, 2025년 4월 종속회사 산일파트너스를 설립하면서 2025년부터 연결 기준으로 작성됩니다. 두 해를 나란히 놓을 때 이 차이를 감안해야 합니다. 둘째, 이 표에 연간 전망 행이 없습니다. 회사가 연간 매출·영업이익 가이던스를 공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생산능력 단위에 주의해야 합니다. 이 회사는 생산능력을 EA(개수)로 공시하는데, 그 산출근거가 「평균 제조 인원수 × 52주 × 52시간」입니다. 설비 기준이 아니라 인력 기준이므로 다른 전력기기 회사의 생산능력·가동률과 직접 비교할 수 없습니다. 넷째, 고객 구성이 비공개입니다. 매출의 89.5%를 차지하는 네 거래처가 A사·B사·C사·D사로만 기재돼 있어 그들이 어떤 회사인지,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를 밖에서 확인할 수 없습니다.

표에서 가장 눈여겨볼 것은 이익률의 방향입니다. 2023년 21.7%에서 2024년 32.7%, 2025년 35.6%, 2026년 2분기 37.8%까지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올라왔습니다. 매출이 세 해 만에 2,145억원에서 5,019억원으로 두 배 넘게 늘어나는 동안 이익률까지 함께 올랐다는 뜻입니다.

보통 생산을 급하게 늘리면 이익률이 눌립니다. 사람을 새로 뽑으면 숙련되기까지 시간이 걸리고 그 기간의 인건비가 원가에 실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회사에서는 그런 눌림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값이 오른 폭이 그 부담보다 컸다는 뜻이고, 3절 ④에서 본 시장의 문턱이 값을 지켜준 결과로 읽힙니다.

생산능력과 매출을 나란히 놓으면 그 비중을 가늠할 수 있습니다. 생산능력은 2024년 33,368EA에서 2026년 44,133EA로 32.3% 늘었는데, 매출은 3,340억원에서 연 환산 6,290억원 수준으로 88% 늘었습니다. 만드는 개수보다 매출이 훨씬 빠르게 늘었으므로 나머지는 대당 받는 값이 올랐다는 뜻이 됩니다.

2026년 두 분기를 비교하면 다른 신호도 보입니다. 1분기 매출은 전년 대비 52.1% 늘었는데 2분기는 28.0%로 증가율이 절반가량 낮아졌습니다. 반면 영업이익 증가율은 47.9%에서 34.3%로 덜 떨어졌고 이익률은 오히려 올랐습니다. 성장 속도는 완만해지는데 남기는 몫은 아직 두터워지고 있는 국면입니다.

마지막으로 판매비와관리비를 봐야 합니다. 상반기 307억원으로 매출의 9.8%인데, 이 수준은 고객이 넷뿐이고 그 넷과 오래 거래해온 구조에서 나옵니다. 5절에서 본 고객 집중이 위험이면서 동시에 비용 구조의 이점이기도 하다는 것이 이 숫자에 담겨 있습니다.

7. 그늘도 있다 — 구조적 리스크

첫 번째 층위는 고객 집중입니다. 네 거래처가 매출의 89.5%를 차지하고, 그중 하나가 32.1%입니다. 이 넷 가운데 하나가 발주를 줄이면 매출의 20~30%가 흔들리는데, 회사가 이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므로 그 위험을 밖에서 가늠할 방법이 없습니다.

두 번째 층위는 시장 집중입니다. 산일전기 수출의 대부분이 미국 한 나라로 가고, 매출로 보면 87%입니다. 미국의 전력망 투자 속도가 느려지거나 정책이 바뀌면 대신 채울 다른 시장이 이 회사에는 얇습니다. 국내 매출 비중이 3%에 그친다는 것은 뒤집으면 국내에 기댈 곳이 없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세 번째 층위는 현지 생산 요구입니다. 미국은 전력 설비를 자국 내에서 만들도록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이 회사는 안산에서 만들어 수출합니다. 요구 수준이 올라가면 현지에 공장을 지어야 하고, 그것은 이 회사가 지금까지 하지 않은 종류의 투자입니다.

네 번째 층위는 사람에 걸린 캐파입니다. 3절 ③에서 본 대로 생산을 늘리려면 사람을 뽑아야 하는데, 뽑은 사람이 제 몫을 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수요가 급하게 늘어나는 국면에서 이 시차가 기회를 놓치게 만들 수 있고, 반대로 수요가 꺾이면 늘려둔 인력이 그대로 부담이 됩니다.

다섯 번째 층위는 공장이 하나라는 것입니다. 안산 한 곳에서 모든 생산이 이뤄지므로 화재나 사고, 노사 문제 같은 사건이 생기면 대체할 곳이 없습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이 국내·미국·중국에 공장을 나눠 둔 것과 대비되는 지점입니다.

여섯 번째 층위는 값의 사이클입니다. 지금의 37%대 이익률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국면에서 나온 것입니다. 세계 전력기기 회사들이 일제히 증설하고 있고 그 설비가 완공되면 값이 내려갑니다. 그리고 6절에서 본 대로 이 회사 매출 증가의 상당 부분이 값에서 왔으므로, 값이 내려갈 때의 영향도 그만큼 큽니다.

일곱 번째 층위는 소재입니다. 전기강판과 구리는 세계적으로 공급처가 많지 않고 국제 시세를 따라 움직입니다. 이 회사가 소재를 국내에서 조달하는 비중이 크다면 그 공급처의 사정이 납기에 그대로 옮겨오고, 소재 값이 오를 때 그것을 판가에 얼마나 전가할 수 있는지가 이익률을 정합니다.

여덟 번째 층위는 회계 기준의 변경입니다. 2025년부터 연결 기준으로 바뀌었으므로 그 이전 수치와 단순 비교하면 성장률이 실제와 다르게 보일 수 있습니다. 종속회사의 규모가 아직 크지 않아 차이가 작더라도, 연도별 비교를 할 때는 이 점을 함께 봐야 합니다.

아홉 번째 층위는 대체 기술입니다. 신재생 설비에 들어가는 변압기의 수요는 인버터와 짝을 이루는데, 전력 변환 방식이 바뀌면 변압기의 사양이나 필요 자체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지금 당장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 회사 매출의 상당 부분이 신재생 관련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으로는 봐야 할 축입니다.

8. 이 회사가 말해주는 것 — 네 가지 해석

① 생산능력을 무엇으로 재는지가 그 회사의 성격을 알려줍니다

사업보고서의 생산능력 표는 대개 스쳐 지나가는 자료입니다. 그런데 그 표의 산출근거를 읽으면 그 회사가 무엇으로 만드는 회사인지가 드러납니다. 이 회사는 「평균 제조 인원수 × 52주 × 52시간」으로 계산하고,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은 전력변압기 몇 대, 배전반 몇 면으로 공시합니다.

이 차이는 표기 방식의 차이가 아니라 사업의 차이입니다. 설비로 재는 회사는 공장을 지어야 캐파가 늘고, 사람으로 재는 회사는 사람을 뽑아야 늡니다. 앞은 돈과 시간이 크게 들지만 한 번 지으면 오래 가고, 뒤는 상대적으로 유연하지만 숙련이라는 시차가 붙습니다.

다만 이 구분이 우열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매번 다른 것을 만드는 사업에서는 자동화가 오히려 불리하고, 같은 것을 반복하는 사업에서는 설비가 압도적으로 유리합니다. 이 회사가 사람으로 캐파를 재는 것은 기술이 뒤처져서가 아니라 주문마다 설계가 달라지는 제품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조업 회사를 볼 때는 생산능력 표의 단위와 산출근거를 먼저 확인해볼 만합니다. 대·톤·면처럼 설비 단위인지, 인원이나 공수처럼 사람 단위인지, 아니면 금액인지에 따라 그 회사가 성장하는 방식과 병목이 생기는 자리가 전혀 달라집니다.

② 좁히는 것도 전략이고, 그 전략에는 고유한 위험이 따릅니다

사업을 넓히는 것은 대개 성장으로, 좁히는 것은 후퇴로 읽힙니다. 그런데 이 회사는 제품과 시장과 공장을 하나씩으로 좁혀둔 채 세 해 만에 매출을 두 배 넘게 늘렸고 이익률은 21.7%에서 37.8%까지 올렸습니다.

좁힘이 유리하게 작동한 이유는 셋입니다. 한 종류의 제품에 인력과 경험이 쌓여 조건별 설계의 정확도가 올라갔고, 한 시장에 집중해 그 시장의 검증 절차를 통과했으며, 고객이 적어 영업 비용이 매출의 10%를 넘지 않습니다. 넓게 벌였다면 어느 것도 이 정도로 깊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좁힘의 이점은 그 좁은 자리가 커지고 있을 때만 성립합니다. 미국 전력망 교체와 신재생 확대라는 흐름이 마침 이 회사가 서 있는 자리를 키워줬고, 그 흐름이 없었다면 같은 구조가 그냥 작은 회사로 남았을 것입니다. 전략이 옳았던 것과 운이 좋았던 것을 갈라내기 어려운 구간입니다.

그래서 집중된 회사를 볼 때는 그 집중이 지금 커지는 자리를 향하고 있는지를 함께 봐야 합니다. 같은 집중이라도 시장이 커지는 국면에서는 레버리지가 되고 줄어드는 국면에서는 도피처가 없는 구조가 됩니다. 그리고 그 국면은 회사가 정하지 못합니다.

③ 고객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회사는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듭니다

이 회사는 매출의 89.5%를 차지하는 네 거래처를 A사·B사·C사·D사로만 표기합니다. 공시 규정상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거래처와의 비밀유지 약정이 있거나 영업상 이유로 밝히지 않는 경우가 흔합니다.

다만 그 결과 투자자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줄어듭니다. 고객이 어떤 산업에 속하는지 알면 그 산업의 업황으로 이 회사의 앞날을 가늠할 수 있는데, 이름을 모르면 그 경로가 막힙니다. 전력기기 히어로즈 ①편의 HD현대일렉트릭이 넥스트에라 에너지와 사우디전력청을 밝히고 있어 두 곳의 투자 계획을 따라갈 수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그렇다고 비공개 자체를 나쁜 신호로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오히려 소수의 대형 고객과 깊은 관계를 맺은 회사일수록 그 관계를 노출하지 않으려는 유인이 큽니다. 문제는 좋고 나쁨이 아니라 밖에서 검증할 수 없다는 사실 그 자체이고, 그렇다면 다른 지표로 대신 확인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고객이 비공개인 회사에서는 매출 지역별 구성과 제품별 구성, 그리고 그 회사가 속한 시장의 투자 통계를 대신 봐야 합니다. 이 회사라면 미국의 전력망 투자 규모와 신재생 설비 증설량이 그 대체 지표이고, 고객 넷의 이름을 몰라도 그들이 사는 이유가 늘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④ 산일전기 영업이익률처럼 계속 오르는 숫자는 출처를 물어야 합니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률은 2023년 21.7%에서 2026년 2분기 37.8%까지 한 번도 꺾이지 않고 올랐습니다. 보통은 생산을 급하게 늘리면 이익률이 눌리는데 그런 눌림조차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출처를 가르려면 매출과 생산능력을 나란히 놓으면 됩니다. 생산능력은 2년 사이 32.3% 늘었는데 매출은 88% 늘었습니다. 만든 개수보다 매출이 훨씬 빠르게 늘었으므로 그 차이가 대당 받는 값이 오른 몫이고, 이익률 상승의 상당 부분이 거기서 왔다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고 값만으로 설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값이 오르는 것은 이 업계 전체의 조건인데 이 회사의 이익률이 유독 높기 때문입니다. 판매관리비가 매출의 9.8%에 그치는 구조와, 조건별 설계라는 진입장벽이 함께 작용한 결과로 보는 편이 정확합니다.

그래서 이익률이 오르는 회사를 볼 때는 그 상승이 값에서 왔는지 구조에서 왔는지를 갈라야 합니다. 값에서 온 몫은 사이클이 돌면 반납되고 구조에서 온 몫은 남습니다. 생산능력과 매출의 증가율 차이가 앞의 크기를 가늠하는 가장 간단한 방법이고, 이 계산은 사업보고서 두 표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9. 이 회사를 계속 지켜보는 법

앞으로 이 회사에 관한 소식을 접했을 때 스스로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질문 네 개와, 각각을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는지를 함께 적어둡니다.

첫째, 늘어난 매출이 사람을 늘려서 온 것인가. 반기·사업보고서의 생산능력 표에서 EA 수치를 보고 매출 증가율과 견줍니다. 생산능력이 함께 늘었다면 인력이 늘어난 것이고, 생산능력은 그대로인데 매출이 늘었다면 값이 오른 것입니다. 두 경우는 값이 꺾일 때 받는 충격의 크기가 다릅니다.

둘째, 뽑은 사람이 제 몫을 하고 있는가. 같은 보고서의 가동률을 봅니다. 생산능력이 늘어나는 동안 가동률이 유지되거나 오르면 새 인력이 자리를 잡고 있다는 뜻이고, 가동률이 내려가면 숙련되지 않은 인력이 쌓이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셋째, 고객과 시장의 집중이 풀리고 있는가. 주요 매출처 현황에서 상위 거래처의 수와 비중을, 그리고 지역별 매출에서 미국 외의 비중을 봅니다. 이 숫자들이 움직이면 회사가 5절에서 본 단순한 선을 넓히려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넷째, 미국의 현지 생산 요구가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는가. 관련 정책과 이 회사의 설비투자 공시를 함께 봅니다. 현지 공장 건설을 결정한다면 지금까지의 좁힌 구조에서 벗어나는 첫 움직임이 되고, 그 투자가 이익률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가 다음 몇 년의 관전 지점이 됩니다.

덧붙여 하나만 더 확인해두면 좋겠습니다. 이 회사가 번 돈을 어디에 쓰는지입니다. 값이 좋은 국면에서 들어온 현금은 설비와 인력을 늘리는 데 쓸 수도 있고, 배당이나 자사주로 돌릴 수도 있으며, 미국 현지 공장 같은 새 투자에 쓸 수도 있습니다. 현금흐름표의 투자활동 항목과 유형자산 취득 규모를 연도별로 놓고 보면 그 방향이 드러나고, 그것이 이 회사가 좁힌 구조를 유지할 생각인지 넓힐 생각인지를 알려줍니다.

10. 마무리하며

산일전기는 제품과 시장과 공장을 하나씩으로 좁혀두고 사람을 늘려 생산을 키우는 특수변압기 전문회사입니다. 이 한 줄에 이 회사의 강점과 위험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좁혔기 때문에 깊어질 수 있었고, 좁혔기 때문에 대안이 없습니다.

확인한 것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변압기를 어렵게 만드는 것은 크기가 아니라 조건이고, 인버터와 신재생 설비가 만드는 조건은 특히 까다롭습니다. 그런 제품은 주문마다 설계가 달라져 자동화가 어렵고, 그래서 이 회사의 생산능력은 설비가 아니라 사람의 수로 계산됩니다. 여기에 미국 시장의 검증 문턱이 겹치면서 이미 들어간 공급자가 값을 지킬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고, 그 결과가 2023년 21.7%에서 2026년 2분기 37.8%까지 오른 영업이익률이었습니다.

남는 질문은 두 갈래입니다. 이 값이 언제까지 갈 것인가. 그리고 값이 내려갈 때 이 회사가 기댈 곳이 있는가. 앞의 질문에는 세계 전력기기 회사들의 증설 완공 시점과 미국의 현지 생산 요구 수준이 답하고, 뒤의 질문에는 고객과 시장의 집중이 풀리는지가 답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면서 확인한 것은 같은 병목 앞에서 회사마다 다른 답을 냈다는 사실입니다. 어디에 팔지를 고른 회사, 건설을 놓지 않은 회사, 한 부문에 자원을 몰아넣은 회사, 그리고 아예 좁혀둔 회사. 값이 오르는 국면은 같았는데 그 국면에서 한 선택이 각각의 재무제표를 다르게 만들었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케이블로 출발해 중전기까지 넓힌 회사, 일진전기를 다룹니다. 이 회사가 하나로 좁혀 깊어졌다면 그 회사는 뿌리가 다른 두 사업을 함께 키워왔습니다. 전선과 변압기가 한 회사에 있다는 것이 무엇을 주고 무엇을 가져가는지를 보면, 좁힘과 넓힘 사이의 선택지가 하나 더 늘어납니다. 앞으로 어느 회사를 보든 되풀이해 던져볼 질문은 같습니다 — 좋은 조건이 왔을 때 이 회사는 무엇을 했는가.

📚 함께 보면 좋은 글

⚡ 전력 히어로즈 시리즈
⚙️ 전력·원전 밸류체인 총정리 마스터하기